러시아 뮤지컬의 진수 - <우 니키트스키흐 보로트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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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자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9-14 23:52조회2,8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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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표적인 공연예술 장르 가운데 하나로서 뮤지컬은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성인들에게는 동시대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전달한다. 멜로디와 독창, 군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타(他) 장르에 비해 특히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뮤지컬은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에게 가장 대중적인 무대예술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코미디적인 성격이 강했던 20세기 초반에서부터 버라이어티(variety) 성격이 강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은 쇠퇴와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대중들에게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우리의 아동들에게는 <피터 팬 Peter Pan>,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등의 작품들이 친숙하며, 청소년과 성인들에게는 <캐츠 Cats>,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에비타 Evita>, <시카고 Chicago>,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그리고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와 같은 ‘브로드웨이’식 혹은 유럽풍의 작품들이 잘 알려져 있다. 이 곳 러시아에서도 ‘뮤지컬 붐’이 일고 있는 근황 자체는 여느 나라와 다름없다. 하지만 독특한 러시아 뮤지컬만의 전통이 있으니, 바로 ‘우 니키트스키흐 보로트’(Театр У Никитских ворот, 이하 니키트스키) 극장의 작품들이라 하겠다.
러시아의 극장들을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상기되는 곳이 볼쇼이 극장과 마린스키 극장,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처럼 크고 웅장한 극장들이다. 제정 러시아의 왕가를 떠올릴 법한 거대한 석주(石柱)와 화려한 금장(金裝), 광활한 무대와 장치물들은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하다. 여기에 어우러지는 테너와 소프라노의 협연, 어릿광대의 익살스런 행위, 칠순을 넘긴 노배우들의 애잔한 연기는 수백의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로부터 우렁찬 갈채와 환호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화려한 무대가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다시 말해 소박하지만 살아있는 연극의 힘을 발산하는 곳이 바로 모스크바의 군소 극장들이다. 모스크바에는 약 13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극장들이 있는데, 대극장과 오페라 류의 음악극 전용 극장을 제외하고서라도 40여 곳에 달하는 연극 전용 소극장이 있다. 그 가운데 니키트스키 극장은 특히 뮤지컬로 성공한 대표적인 소극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필가이자 철학자인 D.디드로가 주창한 ‘제4의 벽’을 마치 관통하기라도 하는 듯, 그 어느 곳 보다 배우들의 호흡과 열정이 관객들의 피부에 생생히 와 닿는 모스크바 니키트스키 극장의 뮤지컬들을 잠시 감상해 보자.
좁은 무대 속 다양한 세상 - 우 니키트스키흐 보로트 극장
국립 니키트스키 극장이 창설된 것은 불과 25년 전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러시아 정통 사실주의 연극과 셰익스피어, 스트린드버그, 입센 류의 서구유럽 연극이 대부분의 극장 레퍼토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굴지(屈指)의 연출가들이 거성처럼 곳곳에 버티고 있었으니 당대 연극계는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실례로, 미수(米壽)를 넘긴 U.류비모프가 예술 감독으로 있는 타간카 극장(Театр на Таганке)은 1964년 창설된 이래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거장 P.포멘코가 이끄는 마스테르스카야 포멘코(Мастерская П.Фоменко)도 러시아 최대 연극축제인 ‘황금 마스크 축제’에서 해마다 입상 후보에 오른다. 이 외에도 독특한 해석으로 각광받는 유고 자파드 극장(Театр на Юго-Западе), 표현주의 연극의 대표자 격인 메이예르홀드 센터가 있다. 이처럼 쟁쟁한 극장들 속에서 니키트스키 극장은 뮤지컬의 맹아(萌芽)를 키워 나가야만 했다.
1983년 니키트스키 극장이 처음 설립될 당시 무대는 정규 좌석이 채 100석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배우진도 전문화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극장 이미지 또한 애호가들을 위한 극장, 다시 말해 비전문적 극장으로 알려졌을 뿐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극, 혹은 비전문 배우들이 연기하는 아마추어 극이 상연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들은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기 위해 주야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무대를 거닐었다. 이런 고된 노작의 단계를 거쳐 니키트스키 극장은 1987년에서야 정식 프로 극장-스튜디오로 등록이 되었다. 프로 극단이 된 이후 그들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상연되는 고정 레퍼토리를 통해 소비에트 대중들에게 점차적으로 인식되어 나갔다.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극장은 경험 쌓인 장년배우들을 영입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학교극으로 기본기가 다져진 젊은 배우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이들의 조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작업에도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수고의 결실로 니키트스키 극장은 오랜 숙원(宿願)이었던 ‘국립극장’이란 칭호를 1991년 국가 예술 위원회로부터 부여받게 되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의 신화 - <가련한 리자>
1990년대 이후부터 니키트스키 극장의 명성은 비단 러시아 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97년 프랑스에서 열린 아비뇽 연극 페스티벌에 공식작품으로 초청됨을 비롯하여 2003년 독일 모노연극 페스티벌 초청, 2005년 서울 뮤지컬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보였다. 현재 상연되고 있는 30여 편의 레퍼토리만 둘러보더라도 그들의 세계적인 명성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극장의 예술 감독이자 총연출가인 마르크 로조프스키(M.Rozovskij)가 직접 각색하고 작곡과 무대 안무까지 총지휘한 일련의 뮤지컬 작품들이다.
마르크 로조프스키 예술 감독은 1970년 대 말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여 성황리에 공연을 상연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홀스토메르>를 직접 각색한 <말의 이야기>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이 작품은 뉴욕 상연을 통해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大書特筆)되었으며,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를 거쳐 국립 런던 극장에서도 수차례 상연되는 과업을 이룩하기도 하였다. 국내에도 알려진 바, 로조프스키 감독은 <홀스토메르>로 현 문화관광부의 수장인 유인촌 장관과 서울에서 협업을 펼친 이력이 있다. 이 외에도 A. 쿠프린의 중편소설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 <감브리누스>로 내한한 경력이 있는 로조프스키 감독은 가히 러시아가 낳은 ‘뮤지컬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그가 빼놓지 않고 자랑하는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러시아의 문호 카람진의 작품 <가엾은 리자>이다.
꽃을 팔아 홀어머니를 모시며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처녀 리자의 일생과 사랑의 실패를 주 모티프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1989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극찬을 받았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대형 무대의 호화뮤지컬을 상상하는 독자에게는 이 작품이 어색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출연 배우라고 해봤자 고작 4-5명에 불과하고, 음향 효과를 위해 쓰인 악기도 피아노와 드럼, 바이올린, 오르간이 전부이니 말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쓰는 현대식 컴퓨터 음악은 애초에 찾아볼 수도 없다. 무대 장식 또한 서구의 그것과는 크게 대별되어, 나무로 만든 함과 목조 가옥을 상징하는 단순한 장식물이 무대의 전부이다. 하지만 동작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배우들의 ‘하모니’는 연출가 스타니슬라프스키(S.Stanislavskij)가 죽기 전까지 그토록 강조하였던 배우훈련의 완성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러시아 뮤지컬의 매혹적인 향수 - <비바, 파르퓸!>
한편의 뮤지컬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출가는 수많은 시연과 수정의 작업 속에서 배우들을 연마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물들은 더러는 행간의 주인공이 되기도, 더러는 영원히 삭제되기도 한다. 로조프스키의 <비바, 파르퓸!>에서도 상황은 동일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비바, 파르퓸!>의 원작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이다. 하지만 무대화된 로조프스키의 작품은 완전한 별개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누가 뭐래도 로조프스키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이다. 또한 소극장인 니키트스키 극장의 뮤지컬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보다 <비바, 파르퓸!>이 발산하는 진한 향기를 통해 발산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인물과 창조된 대사, 원작과 상이한 환경, 무엇보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사건과 슈제트의 색다른 전개가 로조프스키의 <비바, 파르퓸!>을 완전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든다.
창작자로부터 전해진 자유로운 환상과 몽환적이면서도 냉혹한 극의 분위기는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비바, 파르퓸!>의 마력에 한순간에 빠져들게 한다. 동시에 ‘네카지스트이’(볼품없는, 흉한 몰골을 의미-필자 주)라 불리는 주인공 안드레이가 전하는 호소력 짙은 메시지 전달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이러한 특성은 러시아 사실주의의 전통과도 일맥(一脈)한다 볼 수 있다.
여기에 재즈 가수이자 작곡가인 알렉스가 직접 작곡한 노래들은 러시아적 전통에 브로드웨이의 가창법을 접목한 새로운 실험적 요소이다. 벌써 수해 전부터 TV쇼와 연단 무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알렉스는 러시아에 재즈를 정착시키는 인물 가운데 한명으로서, 로조프스키 감독과의 협업은 진지한 구상 속에 진행되었다 할 수 있다. 서구 연극과 공연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러시아 연극의 전통 사이에서 새로운 뮤지컬을 찾고자 고심하던 로조프스키 감독은 오랜 숙고 끝에 러시아 민요와 전통 춤에 재즈와 힙합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조심스레 행하였다. 그 결과 서구의 대극장 뮤지컬 형식에 러시아적 숨결이 녹아나는 <비바, 파르퓸!>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특히 여주인공인 뉴라가 죽음의 문턱에서 부르는 노래는 관객들을 더욱 애타게 만든다. 역을 맡은 테오나 돌리코바는 모스크바 뮤지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연되었던 <메트로 Metro>라는 작품에서 이미 가창력과 안무를 검증받았으며, 이들 외에 40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뚜렷한 개성을 지닌 실력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바, 파르퓸!>을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견인하는 가장 큰 역할은 노파 역의 중년 배우들이다. 정제된 음색과 지나치지 않은 동작, 여기에 신랄한 희극성과 고양된 비극성을 동시에 소화해 낼 수 있는 그들의
러시아 뮤지컬계의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음유시인이자 극작가로 잘 알려진 율리 김의 작품을 개작한 뮤지컬 <판판의 황금 튤립>을 초연해 10여 년간 꾸준한 인기 속에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몰리에르의 <돈 주앙>을 초연으로 상연하고 있음을 비롯해, 체호프의 <벚나무 밭>과 <바냐 외삼촌>, 톨스토이의 <산송장>, 이오네스코의 <코뿔소> 등 걸출한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거의 대부분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변용된 체호프의 연극보다는 고전적 정취 속에서 무대가 아니라 무대 너머에 있는, 다시 말해 체호프가 말하고자 하는 ‘일상’을 느끼게 하는 체호프 공연을 만날 수 있다. <바냐 외삼촌>에 등장하는 소냐와 보이니츠키의 삶의 아이러니도, 영지 매각이 임박한 순간에서조차 외부 세계로 맴도는 <벚나무 밭>의 가예프와 류보피 안드레예브나의 공허한 삶도, 이 극장에서는 관객의 삶에 침입한 듯 관객과 함께 공존한다. 무대와 객석이, 혹은 극 중 인물과 관객의 삶이 공존하기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니키트스키 극장은 동시대인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삶 자체의 극장’으로 관객에게 인식되고 있다. 작지만 독립적이며 고유의 무대 미학으로 가득한 이 극장이 한국 연극계에도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러시아의 극장들을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상기되는 곳이 볼쇼이 극장과 마린스키 극장,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처럼 크고 웅장한 극장들이다. 제정 러시아의 왕가를 떠올릴 법한 거대한 석주(石柱)와 화려한 금장(金裝), 광활한 무대와 장치물들은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하다. 여기에 어우러지는 테너와 소프라노의 협연, 어릿광대의 익살스런 행위, 칠순을 넘긴 노배우들의 애잔한 연기는 수백의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로부터 우렁찬 갈채와 환호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화려한 무대가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다시 말해 소박하지만 살아있는 연극의 힘을 발산하는 곳이 바로 모스크바의 군소 극장들이다. 모스크바에는 약 13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극장들이 있는데, 대극장과 오페라 류의 음악극 전용 극장을 제외하고서라도 40여 곳에 달하는 연극 전용 소극장이 있다. 그 가운데 니키트스키 극장은 특히 뮤지컬로 성공한 대표적인 소극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필가이자 철학자인 D.디드로가 주창한 ‘제4의 벽’을 마치 관통하기라도 하는 듯, 그 어느 곳 보다 배우들의 호흡과 열정이 관객들의 피부에 생생히 와 닿는 모스크바 니키트스키 극장의 뮤지컬들을 잠시 감상해 보자.
좁은 무대 속 다양한 세상 - 우 니키트스키흐 보로트 극장
국립 니키트스키 극장이 창설된 것은 불과 25년 전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러시아 정통 사실주의 연극과 셰익스피어, 스트린드버그, 입센 류의 서구유럽 연극이 대부분의 극장 레퍼토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굴지(屈指)의 연출가들이 거성처럼 곳곳에 버티고 있었으니 당대 연극계는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실례로, 미수(米壽)를 넘긴 U.류비모프가 예술 감독으로 있는 타간카 극장(Театр на Таганке)은 1964년 창설된 이래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거장 P.포멘코가 이끄는 마스테르스카야 포멘코(Мастерская П.Фоменко)도 러시아 최대 연극축제인 ‘황금 마스크 축제’에서 해마다 입상 후보에 오른다. 이 외에도 독특한 해석으로 각광받는 유고 자파드 극장(Театр на Юго-Западе), 표현주의 연극의 대표자 격인 메이예르홀드 센터가 있다. 이처럼 쟁쟁한 극장들 속에서 니키트스키 극장은 뮤지컬의 맹아(萌芽)를 키워 나가야만 했다.
1983년 니키트스키 극장이 처음 설립될 당시 무대는 정규 좌석이 채 100석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배우진도 전문화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극장 이미지 또한 애호가들을 위한 극장, 다시 말해 비전문적 극장으로 알려졌을 뿐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극, 혹은 비전문 배우들이 연기하는 아마추어 극이 상연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들은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기 위해 주야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무대를 거닐었다. 이런 고된 노작의 단계를 거쳐 니키트스키 극장은 1987년에서야 정식 프로 극장-스튜디오로 등록이 되었다. 프로 극단이 된 이후 그들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상연되는 고정 레퍼토리를 통해 소비에트 대중들에게 점차적으로 인식되어 나갔다.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극장은 경험 쌓인 장년배우들을 영입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학교극으로 기본기가 다져진 젊은 배우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이들의 조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작업에도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수고의 결실로 니키트스키 극장은 오랜 숙원(宿願)이었던 ‘국립극장’이란 칭호를 1991년 국가 예술 위원회로부터 부여받게 되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의 신화 - <가련한 리자>
1990년대 이후부터 니키트스키 극장의 명성은 비단 러시아 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97년 프랑스에서 열린 아비뇽 연극 페스티벌에 공식작품으로 초청됨을 비롯하여 2003년 독일 모노연극 페스티벌 초청, 2005년 서울 뮤지컬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보였다. 현재 상연되고 있는 30여 편의 레퍼토리만 둘러보더라도 그들의 세계적인 명성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극장의 예술 감독이자 총연출가인 마르크 로조프스키(M.Rozovskij)가 직접 각색하고 작곡과 무대 안무까지 총지휘한 일련의 뮤지컬 작품들이다.
마르크 로조프스키 예술 감독은 1970년 대 말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여 성황리에 공연을 상연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홀스토메르>를 직접 각색한 <말의 이야기>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이 작품은 뉴욕 상연을 통해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大書特筆)되었으며,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를 거쳐 국립 런던 극장에서도 수차례 상연되는 과업을 이룩하기도 하였다. 국내에도 알려진 바, 로조프스키 감독은 <홀스토메르>로 현 문화관광부의 수장인 유인촌 장관과 서울에서 협업을 펼친 이력이 있다. 이 외에도 A. 쿠프린의 중편소설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 <감브리누스>로 내한한 경력이 있는 로조프스키 감독은 가히 러시아가 낳은 ‘뮤지컬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그가 빼놓지 않고 자랑하는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러시아의 문호 카람진의 작품 <가엾은 리자>이다.
꽃을 팔아 홀어머니를 모시며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처녀 리자의 일생과 사랑의 실패를 주 모티프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1989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극찬을 받았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대형 무대의 호화뮤지컬을 상상하는 독자에게는 이 작품이 어색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출연 배우라고 해봤자 고작 4-5명에 불과하고, 음향 효과를 위해 쓰인 악기도 피아노와 드럼, 바이올린, 오르간이 전부이니 말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쓰는 현대식 컴퓨터 음악은 애초에 찾아볼 수도 없다. 무대 장식 또한 서구의 그것과는 크게 대별되어, 나무로 만든 함과 목조 가옥을 상징하는 단순한 장식물이 무대의 전부이다. 하지만 동작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배우들의 ‘하모니’는 연출가 스타니슬라프스키(S.Stanislavskij)가 죽기 전까지 그토록 강조하였던 배우훈련의 완성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러시아 뮤지컬의 매혹적인 향수 - <비바, 파르퓸!>
한편의 뮤지컬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출가는 수많은 시연과 수정의 작업 속에서 배우들을 연마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물들은 더러는 행간의 주인공이 되기도, 더러는 영원히 삭제되기도 한다. 로조프스키의 <비바, 파르퓸!>에서도 상황은 동일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비바, 파르퓸!>의 원작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이다. 하지만 무대화된 로조프스키의 작품은 완전한 별개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누가 뭐래도 로조프스키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이다. 또한 소극장인 니키트스키 극장의 뮤지컬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보다 <비바, 파르퓸!>이 발산하는 진한 향기를 통해 발산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인물과 창조된 대사, 원작과 상이한 환경, 무엇보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사건과 슈제트의 색다른 전개가 로조프스키의 <비바, 파르퓸!>을 완전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든다.
창작자로부터 전해진 자유로운 환상과 몽환적이면서도 냉혹한 극의 분위기는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비바, 파르퓸!>의 마력에 한순간에 빠져들게 한다. 동시에 ‘네카지스트이’(볼품없는, 흉한 몰골을 의미-필자 주)라 불리는 주인공 안드레이가 전하는 호소력 짙은 메시지 전달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이러한 특성은 러시아 사실주의의 전통과도 일맥(一脈)한다 볼 수 있다.
여기에 재즈 가수이자 작곡가인 알렉스가 직접 작곡한 노래들은 러시아적 전통에 브로드웨이의 가창법을 접목한 새로운 실험적 요소이다. 벌써 수해 전부터 TV쇼와 연단 무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알렉스는 러시아에 재즈를 정착시키는 인물 가운데 한명으로서, 로조프스키 감독과의 협업은 진지한 구상 속에 진행되었다 할 수 있다. 서구 연극과 공연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러시아 연극의 전통 사이에서 새로운 뮤지컬을 찾고자 고심하던 로조프스키 감독은 오랜 숙고 끝에 러시아 민요와 전통 춤에 재즈와 힙합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조심스레 행하였다. 그 결과 서구의 대극장 뮤지컬 형식에 러시아적 숨결이 녹아나는 <비바, 파르퓸!>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특히 여주인공인 뉴라가 죽음의 문턱에서 부르는 노래는 관객들을 더욱 애타게 만든다. 역을 맡은 테오나 돌리코바는 모스크바 뮤지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연되었던 <메트로 Metro>라는 작품에서 이미 가창력과 안무를 검증받았으며, 이들 외에 40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뚜렷한 개성을 지닌 실력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바, 파르퓸!>을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견인하는 가장 큰 역할은 노파 역의 중년 배우들이다. 정제된 음색과 지나치지 않은 동작, 여기에 신랄한 희극성과 고양된 비극성을 동시에 소화해 낼 수 있는 그들의
러시아 뮤지컬계의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음유시인이자 극작가로 잘 알려진 율리 김의 작품을 개작한 뮤지컬 <판판의 황금 튤립>을 초연해 10여 년간 꾸준한 인기 속에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몰리에르의 <돈 주앙>을 초연으로 상연하고 있음을 비롯해, 체호프의 <벚나무 밭>과 <바냐 외삼촌>, 톨스토이의 <산송장>, 이오네스코의 <코뿔소> 등 걸출한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거의 대부분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변용된 체호프의 연극보다는 고전적 정취 속에서 무대가 아니라 무대 너머에 있는, 다시 말해 체호프가 말하고자 하는 ‘일상’을 느끼게 하는 체호프 공연을 만날 수 있다. <바냐 외삼촌>에 등장하는 소냐와 보이니츠키의 삶의 아이러니도, 영지 매각이 임박한 순간에서조차 외부 세계로 맴도는 <벚나무 밭>의 가예프와 류보피 안드레예브나의 공허한 삶도, 이 극장에서는 관객의 삶에 침입한 듯 관객과 함께 공존한다. 무대와 객석이, 혹은 극 중 인물과 관객의 삶이 공존하기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니키트스키 극장은 동시대인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삶 자체의 극장’으로 관객에게 인식되고 있다. 작지만 독립적이며 고유의 무대 미학으로 가득한 이 극장이 한국 연극계에도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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