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사생대회 수상 작품] 중고등부 - 박다은(힝슨 아카데미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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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03 19:42조회1,6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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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독립국가,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딸입니다.”
힝슨 아카데미
12학년 박다은
태어나서 지금의 열아홉 나이가 되기까지 러시아 땅에서 살아온 저는 한 번도 제가 한국인임을 잊거나 저의 조국, 대한민국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업 때문에 이곳에 정착한 부모님은 제가 어려서부터 한국유치원과 한국초등학교에서 공부하기를 바라셨고, 덕분에 저의 유년기는 오롯이 한국학교에서 모국어로 교육받으며 한국 역사와 문화를 마음껏 배울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 살면서 한국인의 뿌리를 알고 자기 나라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우리 조상들의 억눌렸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남의 나라로부터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과 수치인지 익히 들어오고 배워왔던 저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아베 정권과 일본 정부의 계속되는 우리나라에 대한 군사적, 역사적 도발 에 관한 기사만 접해도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자주 느껴오곤 했습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의 축구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밤잠을 설치며 목이 쉬도록 우리나라를 응원하는 저를 포함한 주변의 한국사람들을 보면서 '애국심이란 이것이구나’ 새삼 깨닫게 됩니다. 텔레비전이나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저는 누가 뭐래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틀림없습니다. 하물며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지 못하는 일본에 대해 미운 감정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한국인으로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된 지 70년도 훨씬 넘은 현재를 살고 있는 저도 이렇게 일본에 대해 예민하게 날을 세우는데, 하물며 100년 전 나라를 빼앗긴 억울함 속에서 짓눌리며 살아야 했던 우리 선조들의 비통함은 어떻겠습니까?
정확히 100년 전 우리의 힘없고 불쌍한 조선은 일제 침략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처절하게 나라의 주권을 짓밟히며 우리말로도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하노라!’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선의 식민지화와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내세우는 일본의 제국주의 아래 우리 조상은 이름과 언어마저 일본어로 바꿔 사용해야했고, 우리의 조선 땅 곳곳은 그 찬란했던 전통과 문화가 파괴되어 오늘날까지 일본의 침략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들었습니다.
세계와 이웃하고 문화와 민족의 우수성과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가졌음에도, 일제의 그늘 아래 제대로 날개 한 번 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싸울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선조들……. 그들의 비통함을 저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통받기를 어언 10년, 부끄럽고 치욕적인 역사의 유산을 후세들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각오로 독립 의지를 다진 민족대표 33인의 기미 독립선언서가 드디어 1919년 3월 1일 발표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독립선언서 중 하나라는 3.1절 기미 독립선언서는 독립을 말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선포하고 당시 선조들이 가져야 할 주권적 태도와 독립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자 만들었다고 합니다. 선언문을 읽는 동안 힘없이 아파했던 우리 선조들의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아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동시에 일본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힘차게 투쟁하자는 의지보다, 지금은 그런 잘잘못을 따질 겨를이 없다는 내용에서는 약한 모습이 느껴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남선과 손병희를 비롯한 33인의 지사들은 당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이 아니라 자기들만 아는 작은 식당에서 이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끝냈다는 뒷이야기를 찾아 읽고는 무서운 일본 앞에서 힘차게 외치지 못할 정도로 기가 꺾이고 나약해진 우리 조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비통함마저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칭 독립투사라는 사람들이 유혈사태를 피해 자기들끼리만 모여 이렇게 소극적인 모임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적잖이 실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랐던 일은, 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난 후, 서른세 명의 지사들 모두가 일본 순사들에게 순순히 자수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감옥에서 옥고를 당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간 사람도 있고 이후 독립운동으로 치열하게 투쟁하다 숨진 지사도 그 중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옥초를 당하고 싸울 바에야 당당하게 사람 많은 거리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우리 민족들의 자주 독립의지를 다지고 국민의 용기를 일으킬 수 있었다면 더 값지고 의미 있는 투쟁이며 죽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선언문과는 별개로 같은 날 탑골공원에서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용기 있는 애국지사들이 스스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일본 경찰의 총칼 앞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당당하게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다니 또 다르게 대조되는 선조들의 모습에 제 안에서는 희비가 교차하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속한 단체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은 식당에 모여 앉아 선언문을 읽어내려간 33인과 이름도 빛도 없이 거리의 광장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뒤로 하고 목청껏 나라의 독립을 외치던 무명의 열사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이건 마치 국회에 모여 앉아 자신이 속한 당의 이름을 내세우며 탁상공론하고 서로 대립하는 여야 정치인들과 2016년 10월 어느 날, 한마음 한뜻으로 광장에 모였던 우리 국민의 자발적인 촛불집회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비슷한 모습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두 모습이 모두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결실을 맺기 까지는 여러 힘든 과정들 속에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믿습니다.
기미년 삼일절! 그 날의 결단과 행동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 아래 당당히 맞설 수 있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날의 독립선언서, 또 그 날 탑골공원의 3.1 운동이 있었기에 이후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알릴 수 있었고, 지금 우리 후세들이 이 독립선언서를 읽고 그 날 조선의 참담함과 일제에 맞선 위대한 선조들의 항거를 배울 수 있음은 분명할 것입니다. 비폭력과 평화를 우선으로 했던 기미년의 독립선언서를 몇 번씩이나 읽고 또 읽으면서, 33인 민족열사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날 탑골공원에서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과 모두 같음을 깨닫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면서 또 생각해봅니다.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 안 되지만, 만약 혹시라도 우리에게 또다시 주권을 빼앗기는 날이 온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 후세들은 기미년 삼일절에 각자의 자리에서 비장하게 자주독립을 외치던 애국지사들처럼 나라의 독립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까?
‘나 또한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조국을 아끼고 더 사랑해야겠구나' 하고 다짐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조국! 감사합니다, 우리 선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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