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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기자]
▲ "노후자금 총액이 얼마냐가 아니라, 언제까지 '일과 쉼이 균형을 이루는 삶의 루트'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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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heile on Unsplash
지난 12월 27일, 광화문에서 한국보험신문 기자 두 분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연말 인사도 하고,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방향도 상의할 겸 잡은 자리였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다. 은퇴 이후에도 글과 강의를 이어가고 있는 내게 이런 만남은 '일'의 일부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세종문화회관 방향 지하도를 막 빠져나오던 순간 고등학교 동창과 마주쳤다. 얼추 40년 만이다. 점심시간이라 그는 동료들과 함께였고, 나도 약속 시간이 촉박해 연락처만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 그 친구 검증완료릴게임 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목소리로 안부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불쑥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너도 은퇴했지, 요즘은 뭐 하냐."
나는 그때 카페에서 한국보험신문 칼럼을 쓰는 중이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말했다.
"카페에서 글 쓰고 있지."
그러자 친구의 반응은 생각보다 직설적이었다. 릴게임5만
"다 늙어서 무슨 글이냐.""왜 늙으면 글 못 쓰냐?""글은 작가들이나 쓰는 거지."
그리고 그 다음 말이 결정적이었다.
"한량이네.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글이나 쓰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억울해서가 아니라, 그 문장이 너무 '익숙한 판정'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릴게임야마토 . 은퇴 이후 삶을 두고 "돈이 되냐, 안 되냐"로만 재단하는 판정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왜 쓰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내게 글은 일이면서 쉼이고, 결국 돈으로 이어지는 준비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글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일로 가는 통로'라고.
그제서야 친구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이더니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도 은퇴하고 처음엔 몇 달 쉬었다고 했다. "처음엔 좋았는데, 서너 달 지나니까 마음이 달라지더"란다. 사람이 '쉬기만' 해서는 하루를 버티는 게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건물관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월급제고, 주말은 쉰단다.
"현역 때처럼 주말은 쉬고, 평일은 일하고."
친구의 말이 담백하게 들렸다. 그의 은퇴는 '놀기'도 '몰아치기'도 아니었다. 월급제로 일하고 주말은 쉬는, 경계가 분명한 구조였다. 은퇴 전에는 너무 당연하게 보이던 방식이 은퇴 후에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일을 붙잡는 방식과 쉼을 확보하는 방식이 동시에 설계되어야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으면서, 그 친구가 내게 "한량이네"라고 말하던 순간의 오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말은 단지 놀림이 아니라, 은퇴 이후 시간을 버티는 방식에 대한 자기 기준에서 나온 판단일 수 있었다. 그에게 '일'은 월급으로 증명되는 형태였고, '쉼'은 주말처럼 경계가 확실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평일 오전 카페에서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일'로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돈으로 바로 찍히지 않는 시간은, 사회적으로도 쉽게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기서 은퇴준비의 질문이 바뀐다. 우리는 은퇴를 말할 때 숫자로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노후자금 얼마", "필요 생활비 얼마", "중복 보험 정리"…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니다. 건물로 비유하자면 연금과 현금 흐름, 의료비 대비, 주거는 은퇴 준비에서 기초에 해당하는 '바닥'이다. 그 바닥이 꺼지면 삶의 균형이 깨진다.
문제는 바닥을 튼튼하게 다졌다고 해서 건물이 완성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은퇴 후 어떤 일상을 만들어 갈 것인지", "내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같은 질문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우선순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측정이 어렵고, 숫자로 설명하기 까다로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 '돈이 더 급한 선순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쏠림은 개인의 성향만은 아니다. 사회적 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언론은 강력한 헤드라인 한 줄로 노년을 경고한다. 플랫폼은 클릭률이 높은 문장을 앞에 올려 시선을 붙잡는다. '노후 파산', '연금 고갈', '과로 노후', '은퇴 빈곤'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런 문장들은 빨리 퍼질 뿐 아니라, 과도한 불안을 부추긴다. 숫자는 은퇴준비의 기준값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교를 부르고 불안을 키우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반면 '관계'·'루틴'·'역할'처럼 서사가 필요한 주제는 "좋은 말"로 밀리기 십상이다. 효용을 설명하기 어렵고 숫자로 표현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재무 정보는 과잉 공급되고, 정작 은퇴 이후 하루를 보내는 기술은 백지로 남는다.
나는 이런 상태를 '절반짜리 은퇴준비'라고 부른다. 은퇴준비는 돈이 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비재무적 준비가 약하면 돈이 먼저 흔들린다. 일상의 루틴이 무너지면 몸이 먼저 흔들리고, 몸이 흔들리면 의료비가 늘어난다. 역할이 사라지면 관계가 줄고, 관계가 줄면 정보를 얻는 속도도 늦어진다. 결국 보이지 않는 손해가 쌓인다. 비재무적 준비는 감성의 영역이 아니라, 재무의 결과를 바꾸는 현실 변수다. 한 군데가 무너지면 뒤가 따라 무너지는, 도미노 같은 구조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은퇴준비의 핵심 과제를 이렇게 정의하곤 한다.
"노후자금 총액이 얼마냐가 아니라, 언제까지 '일과 쉼이 균형을 이루는 삶의 루트'를 만들 것인가."
삶의 루트는 '일과 쉼' 중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아니라, 둘을 어떻게 함께 굴릴 것인가를 묻는 방식 전체다. 내게 한 달은 크게 세 덩어리로 구성된다. 돈이 되는 일(강의·프로젝트), 다음을 만드는 일(정리·학습·글쓰기·교안화), 회복을 위한 쉼(운동·루틴·관계·여행)이 함께 들어 있는 구조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지속가능성이 깨진다. 일만 남으면 몸과 관계에 이상이 생기고, 쉼만 남으면 역할과 생활 리듬이 무너질 수 있다.
나의 노후는 쉼을 위한 은퇴도 아니고, 일하기 위한 은퇴도 아니다. 노년기의 생산적인 시간은 '빡빡한 노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운영'에 가깝다. 일은 삶을 붙잡는 기둥이고, 쉼은 그 기둥이 부러지지 않게 하는 보강재다. 그리고 그 둘이 함께 공존하는 일상이 은퇴 이후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 에너지라고 믿는다.
약 40년 만에 짧게 이어진 통화였지만, 노년과 일, 그리고 쉼에 대한 내 관점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은퇴 이후의 시간을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만 나눠서는 곤란하다. 중요한 건 일과 쉼이 함께 들어있는 균형의 구조다. 그 구조가 있을 때, 은퇴는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가는 시간'이 된다.
[이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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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7일, 광화문에서 한국보험신문 기자 두 분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연말 인사도 하고,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방향도 상의할 겸 잡은 자리였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다. 은퇴 이후에도 글과 강의를 이어가고 있는 내게 이런 만남은 '일'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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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은퇴했지, 요즘은 뭐 하냐."
나는 그때 카페에서 한국보험신문 칼럼을 쓰는 중이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말했다.
"카페에서 글 쓰고 있지."
그러자 친구의 반응은 생각보다 직설적이었다. 릴게임5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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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친구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이더니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도 은퇴하고 처음엔 몇 달 쉬었다고 했다. "처음엔 좋았는데, 서너 달 지나니까 마음이 달라지더"란다. 사람이 '쉬기만' 해서는 하루를 버티는 게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건물관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월급제고, 주말은 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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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루트는 '일과 쉼' 중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아니라, 둘을 어떻게 함께 굴릴 것인가를 묻는 방식 전체다. 내게 한 달은 크게 세 덩어리로 구성된다. 돈이 되는 일(강의·프로젝트), 다음을 만드는 일(정리·학습·글쓰기·교안화), 회복을 위한 쉼(운동·루틴·관계·여행)이 함께 들어 있는 구조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지속가능성이 깨진다. 일만 남으면 몸과 관계에 이상이 생기고, 쉼만 남으면 역할과 생활 리듬이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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