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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으로만 자식[김상목 기자]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주)에무필름즈
'아디'와 '샤오얀'의 성대한 결혼식이 열린다. 이미 임신 중이지만, 길일을 택하다 지각 결혼하게 된 것. 하지만 피로연에 온 전 바다이야기사이트 여자친구 때문에 식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아디의 누나 '민민'과 남편 'NJ'도 당혹스럽다. 결혼식 난장판에 지친 노모는 일찍 집으로 귀가한 뒤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가 된다.
차도가 없어 집에서 투병하게 된 할머니를 가족이 돌보지만, 그간 가려진 각자의 문제가 사건을 계기로 분출한다. 모친이 쓰러진 뒤, 능력 있는 야마토릴게임 직장여성 민민은 공황에 빠져 절에서 요양한다. 엄마가 떠난 자리를 메워야 할 고등학생 딸 '팅팅'에겐 감춰둔 비밀이 있다. 할머니의 사고 관련 자신의 불찰이라는 죄책감이다. 더불어 이웃 친구 '릴리'와 불화가 생긴 그녀의 남자친구를 돕다 그와 첫사랑에 빠진다.
가족을 보듬어야 할 부담도 가중되는데, NJ 역시 위기에 처한다. 사업은 고비 바다이야기부활 에 놓이고, 하필 아디 결혼식장에서 30년 만에 첫사랑 '셰리'와 재회하며 흔들리게 된 것. 다른 가족들이 겪는 각자의 고민 속에 학교에서 놀림만 받으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막내 '양양'은 아빠에게 카메라를 선물로 받은 다음 자기만의 시선으로 궁금한 것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21세기 한국 독립예술영화들의 '레퍼런스' 오션파라다이스게임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오션파라다이스예시 ⓒ (주)에무필름즈
고 에드워드 양(1947~2007) 감독의 유작이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하나 그리고 둘>(2000)이 국내 3번째 개봉을 맞이했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일 만큼 동시기에 등장한 왕가위의 <화양연화>와 더불어 21세기 동아시아 영화를 언급할 때 여전히 첫손에 꼽히는 걸작이라는 데 별다른 이론이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동아시아 전역에 지대하다.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은 물론 한국과 일본까지 포괄한다. 이 영화는 일본 자본으로 제작되고, 일본 개봉 예고편은 당시 <러브레터>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로 절정을 구가하던 이와이 슌지가 맡았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재개봉을 거듭할 만큼 고정 관객층이 탄탄하다. 현대 타이베이 중산층의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사건을 연결한 본 작품이 왜 동아시아 전역에서 끊이지 않고 호명되며 예찬을 받는 걸까?
그만큼 역사적 앙금과 복잡한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담긴 고도성장 속 대도시 중산층의 삶이 다들 근사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작품에 녹아든 진한 대만 근현대사와 사회 현실, 언어의 장벽을 제외하면 인물들의 사고방식이나 일상생활에서 유사점이 더 많아진 것. 등장하는 인물들에 별 장벽 없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가능해진 걸 영화를 보고 있자면 어느새 체감할 수 있다. 그런 도회적 개성이 에드워드 양이 유독 사후에도 각광을 받는 핵심 이유일 테다.
예술영화 애호층의 변함없는 지지도 탄탄하지만, 특히 국내 독립영화 창작자들에게 <하나 그리고 둘>을 상징으로 삼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가 드리운 영향력은 거대할뿐더러, 요즘으로 접어들수록 빛이 바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점점 더 강력해진다. 도회적 감성과 함께 거대 담론이 후퇴한 공백을 채우는 '일상' 속 불안과 관계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인물 위주로 풀이하는 서사 구조는 상당 부분 에드워드 양의 작품세계에 빚을 진 셈이다. 국내 영화제 어딜 가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경향 아닌가.
현대 도시 중산층의 감춰진 불안, 현미경으로 탐구한 풍경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주)에무필름즈
영화는 마치 대하 역사소설의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 구성 축을 가족의 일상으로 압축해 재현하는 듯하다. 가족물이라 하면 쉽게 떠올릴 법한, '시트콤' 방식으로 이야기 내내 서로 뒤엉키고 부대끼는 게 아닌, 구성원 각자가 독자적인 서사 중심으로 병행해 이야기를 이끈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멀티' 주인공과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건 감독에겐 극한의 연출력을, 관객은 서사를 놓치지 않고 추적해야 하는 난이도를 부여한다.
쉽게 예시를 들자면,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반지원정대가 각각 프로도와 샘 vs. 아라곤, 레골라스, 김리 vs. 피핀과 메리로 나뉘어 각개약진하며 고난을 겪지만, 서로 독자적인 활동반경을 갖는 구성과 유사하다. 셋으로 쪼개진 원정대원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수도, 각자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이 개별로 분투하다 보니 '큰 그림'이 완성되는 식이다. <하나 그리고 둘>에는 악의 제왕 사우론도, 암흑의 기사 나즈굴도 나올 리 없지만, 막내 양양부터 아빠 NJ까지 모두가 자기만의 사연과 감추고픈 비밀을 관객에게만 보여준다.
아니,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가족 전체의 사정을 파악한 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주인공인 할머니는 정작 눈을 떠 상대를 바라볼 수도, '대나무숲'처럼 은밀하게 치부를 가족이 고해성사 올리듯 고백해도 듣고 있는지 확인할 수조차 없다. 오히려 그 덕분에 속에 있는 이야기 다 꺼낼 수 있는 셈이다. 다른 가족은 그저 각자의 시선으로 단정하고 상상할 따름이다. 그러나 관객이 특권처럼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들의 속사정은 끝까지 다른 식구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비록 오랜 시간 가족의 보호막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할머니의 위중함이 작은 사건은 아니지만, 고령에 지병을 앓던 그녀의 병세는 어느 집이나 때가 되면 치르게 마련인,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다. NJ가 지인들과 동업하는 회사 경영이 위기를 맞긴 하지만, 가족이 누리는 중산층 지위가 흔들릴 기색은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가정불화에 시달려도 시동생 아디 역시 곡절은 겪긴 해도 파국까진 아니다, 양양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만, 한국 독립영화에 단골인 일진의 학교폭력 수준에는 한참 미달한다. 팅팅 역시 그녀가 겪는 정서적 고통을 제외하면 겉보기엔 성적 우수하고 품행 단정한 모범생의 삶을 유지하는 중이다.
그러나 감독의 카메라는 그렇게 피상적으론 그냥 흘러가는 듯 가족의 일상 속에 은폐된 위기를 차례로 끄집어내 관객에게 현미경 관찰하듯 제시한다. NJ는 상도의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동료들과 멀어지고, 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첫사랑과 만남을 고민한다. 민민은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양립하던 '능력자'에서 일순간에 추락해 내내 집을 떠나 요양하느라 이미 균열이 발생한 가족을 보살필 수 없다. 팅팅은 이웃이자 '절친'인 릴리의 남자친구와 가까워지며 도의적 갈등과 첫사랑의 설렘 사이에서 방황한다. 아직 어린 양양은 낯설고 신기한 학교 생활로 정신이 없다.
예리하되 차갑지만 않은 카메라의 통찰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주)에무필름즈
절정에 도달한 감독의 솜씨는 복잡하고 난해한 여러 갈래 줄거리를 그저 늘어지지 않게 이어붙이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평범한 가족의 역사를 경유해 Y2K 시절 대만(과 한국 포함 동아시아 전반) 사회상, 그리고 동서양을 초월한 인생사 공통의 숙제를 제시해 보는 이의 공감과 성찰을 이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대체 본격적인 사건은 언제쯤 일어나나 지루해하며 기다리던 관객은 감독이 쳐둔 그물에 천천히 감겨들 듯, 혹은 가마솥에 들어간 미꾸라지가 서서히 삶기듯 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
팅팅이 겪는 윤리와 욕망 사이의 감정, 그리고 '첫사랑'이 늘 맞이하는 운명은 아빠 NJ가 30년 만에 되돌아온 그것과 교묘하게 교차하기 시작한다. NJ는 우연히 되돌아온 연인에게 흔들리며 어쩌면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 것 아닌지 번민한다. 첫사랑 연인과 과거를 회상하며 나누는 둘의 사연이 언젠가부터 팅팅이 체험하는 감각과 겹쳐 보인다. 물론 단지 반복되는 게 아니라, 30년의 시차를 두고 더욱 극단적으로, 파괴적인 양상으로 치닫는다. 아마 팅팅은 소나기처럼 자신에게 닥친 사건을 평생 비밀로 간직하게 될 테다.
막내 양양은 어리기 때문에 그저 천진난만한 눈으로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는 걸까? 거장의 시선이 그렇게 안일할 리 없다. 아빠 NJ는 성인이 되기 직전인 딸에겐 자식이 독립하기 전 믿음과 함께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고, 아들에겐 부자 관계보다는 나이 차 많은 친구처럼 지내길 바란다. 어찌 보면 팅팅에겐 자신이 평생 짊어진 첫사랑 연인과의 상실감을, 양양에겐 아직 시행착오를 경험하기 전 순수하던 시절을 연상했을 테다.
그런 양양에게 아빠가 선물한 카메라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막판에 이르러 작품의 주제의식을 함축하는 장치로 진가를 드러낸다. 팅팅이 영화관에서 데이트 상대에게 듣던 '인생 영화'의 효능부터, 자신을 학대하는 교사에게 '예술가 나셨네?' 놀림감이 된 (양양이 촬영한) 무의미해 보이던 사진의 의미가 하나둘 결합해 소년의 진의를 전할 순간, 지금껏 다른 가족과 다르게 주변부를 맴돌던 막내의 동선은 다른 이들의 궤적을 종횡으로 결속하는 밑그림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타인의 뒷모습만 찍던 양양의 사진은 아이의 눈으로 응시한 어른들의 위선과 진실을 정확히 투시하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이 숙성으로 연결되는 명불허전 걸작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주)에무필름즈
가족 이야기가 주축이지만, 그러한 가족상을 형성한 토대인 현대 대만 사회상의 묘사 역시 출중하다. 경제성장에 매진하며 '졸부'가 된 도시 중산층의 풍요 속 공허와 불안은 작중 인물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일탈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리 못지않게 일본과 밀접하게 경제적으로 연결된 대만 기업문화, 아날로그와 디지털 전환 과도기의 사회 풍경, 개방과 타락이 뒤섞인 이성교제 풍속도, 여기에 선정적 보도로 논란을 낳던 당대 대만 형사사건 취재 풍자까지 사회적 접근도 흥미롭게 볼 구석이다.
조금 더 의미를 확장한다면, 영화 탄생 100주년이 갓 지난 때 등장한 <하나 그리고 둘>은 이 시기 다른 작가들도 수행했던, 자신의 작품에 인장처럼 새겨넣은 영화의 본질에 관한 탐구와도 통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렇게 거창한 해석을 붙이지 않더라도, 따스함과 냉정함, 사회와 개인을 잇는 정교함과 함께 지극히 당연한 윤리 문제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장대한 가족 드라마가 완결된다.
<작품정보>
하나 그리고 둘A One And A Two, Yi Yi2000|대만|드라마, 로맨스2025.12.31. (재)개봉|173분|12세 관람가감독 에드워드 양출연 오념진, 금연령, 켈리 리, 조나단 창, 이세이 오가타, 진희성수입/배급 (주)에무필름즈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주)에무필름즈
'아디'와 '샤오얀'의 성대한 결혼식이 열린다. 이미 임신 중이지만, 길일을 택하다 지각 결혼하게 된 것. 하지만 피로연에 온 전 바다이야기사이트 여자친구 때문에 식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아디의 누나 '민민'과 남편 'NJ'도 당혹스럽다. 결혼식 난장판에 지친 노모는 일찍 집으로 귀가한 뒤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가 된다.
차도가 없어 집에서 투병하게 된 할머니를 가족이 돌보지만, 그간 가려진 각자의 문제가 사건을 계기로 분출한다. 모친이 쓰러진 뒤, 능력 있는 야마토릴게임 직장여성 민민은 공황에 빠져 절에서 요양한다. 엄마가 떠난 자리를 메워야 할 고등학생 딸 '팅팅'에겐 감춰둔 비밀이 있다. 할머니의 사고 관련 자신의 불찰이라는 죄책감이다. 더불어 이웃 친구 '릴리'와 불화가 생긴 그녀의 남자친구를 돕다 그와 첫사랑에 빠진다.
가족을 보듬어야 할 부담도 가중되는데, NJ 역시 위기에 처한다. 사업은 고비 바다이야기부활 에 놓이고, 하필 아디 결혼식장에서 30년 만에 첫사랑 '셰리'와 재회하며 흔들리게 된 것. 다른 가족들이 겪는 각자의 고민 속에 학교에서 놀림만 받으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막내 '양양'은 아빠에게 카메라를 선물로 받은 다음 자기만의 시선으로 궁금한 것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21세기 한국 독립예술영화들의 '레퍼런스' 오션파라다이스게임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오션파라다이스예시 ⓒ (주)에무필름즈
고 에드워드 양(1947~2007) 감독의 유작이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하나 그리고 둘>(2000)이 국내 3번째 개봉을 맞이했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일 만큼 동시기에 등장한 왕가위의 <화양연화>와 더불어 21세기 동아시아 영화를 언급할 때 여전히 첫손에 꼽히는 걸작이라는 데 별다른 이론이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동아시아 전역에 지대하다.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은 물론 한국과 일본까지 포괄한다. 이 영화는 일본 자본으로 제작되고, 일본 개봉 예고편은 당시 <러브레터>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로 절정을 구가하던 이와이 슌지가 맡았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재개봉을 거듭할 만큼 고정 관객층이 탄탄하다. 현대 타이베이 중산층의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사건을 연결한 본 작품이 왜 동아시아 전역에서 끊이지 않고 호명되며 예찬을 받는 걸까?
그만큼 역사적 앙금과 복잡한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담긴 고도성장 속 대도시 중산층의 삶이 다들 근사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작품에 녹아든 진한 대만 근현대사와 사회 현실, 언어의 장벽을 제외하면 인물들의 사고방식이나 일상생활에서 유사점이 더 많아진 것. 등장하는 인물들에 별 장벽 없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가능해진 걸 영화를 보고 있자면 어느새 체감할 수 있다. 그런 도회적 개성이 에드워드 양이 유독 사후에도 각광을 받는 핵심 이유일 테다.
예술영화 애호층의 변함없는 지지도 탄탄하지만, 특히 국내 독립영화 창작자들에게 <하나 그리고 둘>을 상징으로 삼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가 드리운 영향력은 거대할뿐더러, 요즘으로 접어들수록 빛이 바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점점 더 강력해진다. 도회적 감성과 함께 거대 담론이 후퇴한 공백을 채우는 '일상' 속 불안과 관계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인물 위주로 풀이하는 서사 구조는 상당 부분 에드워드 양의 작품세계에 빚을 진 셈이다. 국내 영화제 어딜 가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경향 아닌가.
현대 도시 중산층의 감춰진 불안, 현미경으로 탐구한 풍경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주)에무필름즈
영화는 마치 대하 역사소설의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 구성 축을 가족의 일상으로 압축해 재현하는 듯하다. 가족물이라 하면 쉽게 떠올릴 법한, '시트콤' 방식으로 이야기 내내 서로 뒤엉키고 부대끼는 게 아닌, 구성원 각자가 독자적인 서사 중심으로 병행해 이야기를 이끈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멀티' 주인공과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건 감독에겐 극한의 연출력을, 관객은 서사를 놓치지 않고 추적해야 하는 난이도를 부여한다.
쉽게 예시를 들자면,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반지원정대가 각각 프로도와 샘 vs. 아라곤, 레골라스, 김리 vs. 피핀과 메리로 나뉘어 각개약진하며 고난을 겪지만, 서로 독자적인 활동반경을 갖는 구성과 유사하다. 셋으로 쪼개진 원정대원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수도, 각자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이 개별로 분투하다 보니 '큰 그림'이 완성되는 식이다. <하나 그리고 둘>에는 악의 제왕 사우론도, 암흑의 기사 나즈굴도 나올 리 없지만, 막내 양양부터 아빠 NJ까지 모두가 자기만의 사연과 감추고픈 비밀을 관객에게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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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오랜 시간 가족의 보호막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할머니의 위중함이 작은 사건은 아니지만, 고령에 지병을 앓던 그녀의 병세는 어느 집이나 때가 되면 치르게 마련인,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다. NJ가 지인들과 동업하는 회사 경영이 위기를 맞긴 하지만, 가족이 누리는 중산층 지위가 흔들릴 기색은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가정불화에 시달려도 시동생 아디 역시 곡절은 겪긴 해도 파국까진 아니다, 양양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만, 한국 독립영화에 단골인 일진의 학교폭력 수준에는 한참 미달한다. 팅팅 역시 그녀가 겪는 정서적 고통을 제외하면 겉보기엔 성적 우수하고 품행 단정한 모범생의 삶을 유지하는 중이다.
그러나 감독의 카메라는 그렇게 피상적으론 그냥 흘러가는 듯 가족의 일상 속에 은폐된 위기를 차례로 끄집어내 관객에게 현미경 관찰하듯 제시한다. NJ는 상도의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동료들과 멀어지고, 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첫사랑과 만남을 고민한다. 민민은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양립하던 '능력자'에서 일순간에 추락해 내내 집을 떠나 요양하느라 이미 균열이 발생한 가족을 보살필 수 없다. 팅팅은 이웃이자 '절친'인 릴리의 남자친구와 가까워지며 도의적 갈등과 첫사랑의 설렘 사이에서 방황한다. 아직 어린 양양은 낯설고 신기한 학교 생활로 정신이 없다.
예리하되 차갑지만 않은 카메라의 통찰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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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에 도달한 감독의 솜씨는 복잡하고 난해한 여러 갈래 줄거리를 그저 늘어지지 않게 이어붙이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평범한 가족의 역사를 경유해 Y2K 시절 대만(과 한국 포함 동아시아 전반) 사회상, 그리고 동서양을 초월한 인생사 공통의 숙제를 제시해 보는 이의 공감과 성찰을 이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대체 본격적인 사건은 언제쯤 일어나나 지루해하며 기다리던 관객은 감독이 쳐둔 그물에 천천히 감겨들 듯, 혹은 가마솥에 들어간 미꾸라지가 서서히 삶기듯 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
팅팅이 겪는 윤리와 욕망 사이의 감정, 그리고 '첫사랑'이 늘 맞이하는 운명은 아빠 NJ가 30년 만에 되돌아온 그것과 교묘하게 교차하기 시작한다. NJ는 우연히 되돌아온 연인에게 흔들리며 어쩌면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 것 아닌지 번민한다. 첫사랑 연인과 과거를 회상하며 나누는 둘의 사연이 언젠가부터 팅팅이 체험하는 감각과 겹쳐 보인다. 물론 단지 반복되는 게 아니라, 30년의 시차를 두고 더욱 극단적으로, 파괴적인 양상으로 치닫는다. 아마 팅팅은 소나기처럼 자신에게 닥친 사건을 평생 비밀로 간직하게 될 테다.
막내 양양은 어리기 때문에 그저 천진난만한 눈으로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는 걸까? 거장의 시선이 그렇게 안일할 리 없다. 아빠 NJ는 성인이 되기 직전인 딸에겐 자식이 독립하기 전 믿음과 함께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고, 아들에겐 부자 관계보다는 나이 차 많은 친구처럼 지내길 바란다. 어찌 보면 팅팅에겐 자신이 평생 짊어진 첫사랑 연인과의 상실감을, 양양에겐 아직 시행착오를 경험하기 전 순수하던 시절을 연상했을 테다.
그런 양양에게 아빠가 선물한 카메라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막판에 이르러 작품의 주제의식을 함축하는 장치로 진가를 드러낸다. 팅팅이 영화관에서 데이트 상대에게 듣던 '인생 영화'의 효능부터, 자신을 학대하는 교사에게 '예술가 나셨네?' 놀림감이 된 (양양이 촬영한) 무의미해 보이던 사진의 의미가 하나둘 결합해 소년의 진의를 전할 순간, 지금껏 다른 가족과 다르게 주변부를 맴돌던 막내의 동선은 다른 이들의 궤적을 종횡으로 결속하는 밑그림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타인의 뒷모습만 찍던 양양의 사진은 아이의 눈으로 응시한 어른들의 위선과 진실을 정확히 투시하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이 숙성으로 연결되는 명불허전 걸작
▲ <하나 그리고 둘> 스틸
ⓒ (주)에무필름즈
가족 이야기가 주축이지만, 그러한 가족상을 형성한 토대인 현대 대만 사회상의 묘사 역시 출중하다. 경제성장에 매진하며 '졸부'가 된 도시 중산층의 풍요 속 공허와 불안은 작중 인물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일탈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리 못지않게 일본과 밀접하게 경제적으로 연결된 대만 기업문화, 아날로그와 디지털 전환 과도기의 사회 풍경, 개방과 타락이 뒤섞인 이성교제 풍속도, 여기에 선정적 보도로 논란을 낳던 당대 대만 형사사건 취재 풍자까지 사회적 접근도 흥미롭게 볼 구석이다.
조금 더 의미를 확장한다면, 영화 탄생 100주년이 갓 지난 때 등장한 <하나 그리고 둘>은 이 시기 다른 작가들도 수행했던, 자신의 작품에 인장처럼 새겨넣은 영화의 본질에 관한 탐구와도 통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렇게 거창한 해석을 붙이지 않더라도, 따스함과 냉정함, 사회와 개인을 잇는 정교함과 함께 지극히 당연한 윤리 문제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장대한 가족 드라마가 완결된다.
<작품정보>
하나 그리고 둘A One And A Two, Yi Yi2000|대만|드라마, 로맨스2025.12.31. (재)개봉|173분|12세 관람가감독 에드워드 양출연 오념진, 금연령, 켈리 리, 조나단 창, 이세이 오가타, 진희성수입/배급 (주)에무필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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