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알리스로 시작하는 내일의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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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1-30 09:15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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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알리스로 시작하는 내일의 활력
인생의 질은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됩니다. 특히 중년 이후 남성에게 있어 지금의 선택은 내일의 활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많은 남성들이 말없이 감당하고 있는 발기부전 혹은 성기능 저하 문제는 단순한 생리적 변화가 아니라, 삶의 에너지와 정체성, 나아가 부부 관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부끄러움, 자책, 혹은 무관심 속에 외면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성기능 문제는 숨길 일이 아니라 관리할 건강 문제다라고. 그리고 그 해결의 중심에는 바로 시알리스Cialis가 있습니다.
시알리스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잘 알려져 있으며, PDE5 억제제 계열의 약물로 분류됩니다. 주성분인 타달라필Tadalafil은 음경 내 평활근을 이완시켜 혈류를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발기를 유도합니다. 이 약물의 가장 큰 장점은 작용 지속 시간이 무려 36시간에 이른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약효가 오래간다는 의미를 넘어, 심리적 여유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성관계를 특정 시간에 맞춰 준비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고 계획 없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사용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알리스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주말 약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선택해야 할까요? 성기능 문제는 단순히 방치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며 악화되거나, 관계에 미치는 정서적 거리감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남성의 발기력은 혈관 건강과 직결되어 있으며, 이는 곧 전신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실제로 발기부전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혈관 질환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따라서 시알리스를 단순한 성기능 개선제로 보지 않고, 전반적인 건강 관리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알리스는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저용량 요법도 가능합니다. 2.5mg 또는 5mg의 저용량을 매일 복용하면, 매번 약을 복용해야 하는 부담 없이 성기능이 항상 준비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부부 관계의 안정성과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더 나아가 시알리스는 전립선비대증으로 인한 배뇨 문제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달라필은 전립선과 방광의 평활근을 이완시켜 빈뇨, 야간뇨, 잔뇨감 등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성기능과 배뇨 기능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알리스는 중장년 남성에게 매우 효율적인 선택입니다.
실제 사용자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시알리스를 복용한 후 자신감이 회복되고, 관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며, 전반적인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예전처럼 당당해졌다,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등 다양한 긍정적인 변화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약물 작용이 아니라, 성기능 개선을 통해 얻는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자신감의 회복이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시알리스는 바로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물론, 시알리스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며,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한 용량과 복용 방법을 전문가와 상의한 후 결정해야 합니다. 특히 심혈관계 질환이나 간신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 혹은 질산염 성분이 포함된 약물을 복용 중인 경우에는 시알리스 사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알리스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과 상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약물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불필요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입니다.
또한 시알리스는 식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복용의 자유도가 높습니다. 어떤 식사를 하든지 약물의 흡수나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생활 패턴을 고려했을 때 매우 유용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용 후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효과는 최대 36시간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하루 중 어떤 시간에도 자연스럽게 성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성기능 저하를 감추거나 무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관리하고 회복해야 할 건강 문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내리는 선택은 단지 오늘 하루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내일과 그 이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시작점입니다. 시알리스는 그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안전한 파트너입니다. 부부 관계에 대한 불안, 남성으로서의 자신감 저하, 삶의 무기력함 등 다양한 고민의 중심에 발기력 저하가 자리하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당신이 오늘 시알리스를 선택하는 순간, 내일의 활력은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삶의 질은 관계에서 시작되고, 관계의 중심은 신뢰와 친밀감에서 비롯됩니다. 시알리스는 바로 그 친밀함을 회복하고, 당신의 관계를 다시 연결시키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는 단지 성생활의 회복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 자존감, 삶의 만족도를 함께 높여주는 변화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변화는 단 한 번의 결단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그 결단이 바로 당신이 오늘 내리는 선택, 시알리스와 함께하는 여정입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마십시오. 발기부전은 감추어야 할 병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건강입니다. 당신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활기차고 생기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첫걸음은 시알리스로부터 시작됩니다. 과학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선택만이 남아 있습니다.
미국산 비닉스 유통기한은 제품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구매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정품이 아닐 경우 효과가 떨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미국산 시알리스 팔팔은 강한 지속력으로 유명하며, 많은 남성이 선호하는 제품입니다. 또한, 미국산 시알리스 효과는 최대 36시간까지 지속될 수 있어 자연스러운 관계를 원하는 분들에게 적합합니다. 미약 디시에서도 다양한 후기를 찾아볼 수 있으며, 개인별 경험이 다르므로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안전한 사용으로 최상의 효과를 경험하세요. 하나약국 전문가와 상담해보세요.
기자 admin@slotmega.info
공바 피크 정상으로 향하는 아이스 구간.
"엘리트 운동선수, 특수부대 출신, 대학교 산악부…."
전 오지탐사대 대원들의 화려한 프로필을 봤을 때, 지원할 용기를 잃었다. 내 스펙은 한없이 초라했다. 전역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 온 뒤 대학교 산악부 활동을 조금 한 게 다였다. 2025년 오지탐사대 모집공고에선 단 10명만 뽑는다고 돼 있었다. 그 10명에 당연히 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2023 오지탐사대 대원이었던 정은 형은 "떨어지더라도 지원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릴게임사이트 "는 조언을 건네줬다.
며칠 고민하다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지원서를 던졌다. 심지어 합격자 발표일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합격 소식도 산악부 후배가 문자로 알려줬다. 믿기지 않아 얼떨떨했다. 일단 기분은 매우 좋았지만 동시에 앞으로 해내야 할 많은 일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국내 훈련 및 탐사 준비는 상상 이상으로 바빴다. 한국릴게임 금, 토, 일 3일간 이루어지는 훈련의 강도는 지금까지 산악회에서 했던 활동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평일에는 개인 일지 작성, 훈련 보고서 작성, 훈련 계획서 작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즈메이마을로 가는 트레킹 중 만난 룽다 앞에서 기도를 준비하고 바다이야기사이트 있다.
3차 종합훈련 이후로는 본격적인 탐사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정해진 탐사지에 몸만 가면 되는 줄 알았지만 탐사지 선정부터 항공권 발권, 현지 등반가이드 섭외 등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모두 계획하고 준비해야 했다.
눈 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발대식장에 서 바다이야기APK 있었다. 발대식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정말로 탐사를 떠난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렇게 중국 청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 후 3일간은 현지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가스와 무게 때문에 가져오지 못했던 식량 등을 구입하고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한 뒤 패킹을 마무리했다.
야마토게임연타
베이스캠프로 향하고 있는 탐사대원들.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된 4일차. 우리는 해발 2,500m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태어나서 가장 높이 올라가본 곳이 설악산 대청봉인데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로 간다니 겁이 났다. 2,000m가 넘어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분명 잘 잤는데…내 호흡곤란에 모두 비상
트레킹 시작점인 2,500m에 도착해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뒷목이 약간 뻐근한 것 이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2시간 정도 지나자 점점 머리가 아프면서 잠이 오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려 앉으면 바로 잠에 들었다. 걸으면서도 잠을 참을 수 없어 휘청거렸다. 그때마다 정윤 형이 자면 안 된다고 계속 옆에서 깨워 주었다.
노차마 피크 캠프1으로 등반하는 날. 날씨가 무척 맑았다.
목적지인 해발 3,200m 즈메이마을에 도착하자 안도감 때문인지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 모든 힘이 빠지고, 한기가 들면서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몰려왔다. 방으로 들어가 타이레놀 한 알을 복용하고 바로 쓰러졌다. 대장님과 정윤 형은 쓰러져 있는 나를 깨워 앉혀놓고 계속 물을 마시게 하고 말을 걸며 잠들지 못하게 했다. 고소적응을 위해선 그래야 한단다. 당장의 괴로움도 문제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무척 깊어갔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이 되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하게 일어났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베이스캠프로 출발. 저 멀리 공가산이 보인다. 목적지는 공가산의 위성봉인 노차마 피크(5,588m)와 공바 피크(5,564m)다. 공가산은 해발 7,556m로 등반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 현재까지 300여 명이 도전해 200여 명이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27명만이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한 가이드 그레이스 또한 공가산에 도전했지만, 등반 중 발목이 부러져 하산했고, 2027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할 것이라고 일러줬다.
노차마 피크 아이스 구간에서 안자일렌을 시작한 후 운행하고 있다.
베이스캠프의 해발고도는 4,000m. 고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잠을 자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랐다. 적응이 되긴 하는 것인가 의문을 가질 때쯤 벌써 노차마 정상 공격일이 다가왔다.
원래 계획은 캠프1에서 하루 더 머물고 정상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아 바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원들의 고소적응이 덜 됐다는 것. 고소적응을 위해 시간을 보내면 날씨가 악화되고, 바로 가기엔 몸 상태들이 안 좋았다.
오랜 시간 토론 끝에 캠프1에서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캠프1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도를 800m가량 올려야 했고, 모두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나는 멀어져가는 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캠프1을 향해 올라갔다. 운행을 시작하고 8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저 멀리 펄럭이는 룽다와 함께 먼저 올라간 정윤 형과 종윤이가 보였다.
노차마 피크 등정 후 하산.
건강상태를 체크했는데 별 이상이 느껴지지 않아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정윤 형은 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고, 종윤이는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다른 텐트로 가서 산소통을 가져왔고, 대장님과 청경이 또한 일어나 있었다. 그들은 나의 호흡이 굉장히 불안정해 그 소리에 깨어나 보니 내 입술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잘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이었다니 덜컥 겁이 났다.
하산할 힘까지 쏟아 부어 정상으로
따뜻한 물을 계속 마시며 심호흡을 하니 다행히 산소포화도는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그래서 새벽 2시로 예정된 출발시간을 1시로 앞당겨 빠르게 정상 공격을 하고 내려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출발시간이 정해지자 아팠던 머리는 말끔히 호전됐다. 바로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 먹고 출발 준비를 했다.
공바 피크 캠프1으로 오르는 날 찍은 단체 사진.
그렇게 8월 1일 1시, 앞사람의 발걸음, 옅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정상공격이 시작되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에 쉬고 싶었지만 조금만 지체해도 앞사람과 멀어지기에 그러지 못했다. 너덜지대에서 횡으로 이동해 멀리 보이는 헤드랜턴 불빛 쪽으로 갔다. 이어 등반을 해야 하는 조금 긴 구간이 나왔다. 별도의 앵커나 볼트가 없기에 순전히 손과 발만을 믿고 올라야 하는 지형이었다. 떨어지는 무수한 낙석 탓에 한 명씩 조심히 올라갔다.
쉴 때면 종윤이는 고소도 안 오는지 별이 아름답다고 하늘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청경이는 계속 꾸벅꾸벅 졸아서 종윤이에게 혼이 났다. 혼나는 청경이를 보며 나도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보았다.
공바 피크 너덜지대 통과 중 너무 힘들어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너덜지대를 계속 걷다 보니 드디어 빙벽 구간. 이곳에서 크램폰을 착용하고 두 그룹으로 나눠 안자일렌을 했다. 크램폰을 신고 조금 올라가니 종윤이의 크램폰이 벗겨졌다. 크램폰 착용을 마치고 다시 운행을 시작하고 또 몇 걸음 안 가서 이번에는 내 크램폰과 종윤이의 크램폰이 둘 다 벗겨졌다. 분명 출발 전에 꼼꼼히 맞췄는데도 계속 벗겨졌다. 이렇게 가다 계속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그냥 왼발의 크램폰을 벗고 오른발에 최대한 집중해서 올랐다. 생각보다 얼음이 꽝꽝 얼어 있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해발고도는 5,000m가 넘었다. 정말 힘들었다. 선두로 가던 그레이스는 주기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나와 종윤이의 상태를 체크한다. 정신을 잃지 않도록 이름이나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후에 그레이스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질문에 대답하는 나와 종윤이의 모습이 정말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다.
열 걸음 가고 한 번 쉬기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해 갔는데 아뿔싸 그곳은 가짜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조금 다운 클라이밍을 한 뒤 그 뒤에 있는 언덕을 올라야지 진짜 정상이었다. 짧은 좌절을 뒤로 한 채 마저 가니 선두 그룹이 설치한 고정로프가 있다. 이를 통해 편하게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공가산과 함께 해가 떠오른다. 감탄도 잠시 먼저 올라온 팀이 우리를 기다리느라 정상에 30분이나 있었기에 체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사진을 찍고 서둘러 하산했다.
공바 피크 등반을 위해 이동 중 휴식. 고소적응이 된 탓에 모두 쾌조의 컨디션이다.
하산하는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얼음 위에선 긴장을 조금만 풀면 추락할 수도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이스 구간이 끝나자 긴장은 조금 풀렸는데 그와 동시에 엄청난 피로가 몰려들었다. 다시 끝없이 펼쳐진 너덜지대 저 멀리 캠프1이 보이지만 도통 가까워지지 않는다. 해가 떠서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목적지가 뻔히 눈앞에 보이니 새벽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보다 더 죽을 맛이다. 하산할 힘을 남겨두라고 했는데 정상에 올라가면서 100% 다 써버린 것 같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한 발씩 내딛으니 캠프1. 곧바로 베이스캠프로 서둘러 하산했다. 어제 올랐던 끊임없는 오르막이 오늘은 끝없는 내리막이다. 노차마를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인사를 건네며 그들이 정상에 가길 기원했다.
베이스캠프로 하산 후 총평의 시간을 가졌다. 다들 너무 힘들어서 내심 포기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래도 잘 해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등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겨지는 노차마가 이 정도인데 다음 목표인 공바 피크를 오를 수 있을까.
공바 피크 정상 직전. 선두에서 등반하다가 지친 나머지 그대로 쓰러져 쉬고 있는 종윤이와 대장님.
논의했다. 모두 회의적이다. 아예 안 가는 방안도 도마에 올랐다. 일단 내일 휴식을 취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우리는 늦잠이 허락된 탓에 새벽 동안 달무티 게임을 하며 공바 피크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엔 다들 못 하겠다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대", "안 되면 내려오면 되지", "안 하면 후회할 것" 등 한마디씩 얹어지자 점점 의기가 투합됐다.
개인에서 팀으로, 하나가 되다
다음날 굳게 다짐했다. 공바 피크 한국 초등을 꼭 해내고 말겠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 공바 피크 캠프1으로 가는 길은 불어난 빙하수 계곡 때문에 앞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돌다리가 많이 유실됐다. 초반에는 그래도 몇 개 있었지만 후반에는 아예 없어서 가이드가 들어가서 하나씩 만들어 주었다.
계곡을 지나니 공가산과 함께 꽃이 핀 푸르른 들판이 나왔다. 정말 아름다웠다. 빨리 캠프1에 도착해 휴식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맘 놓고 풍경을 감상했다. 한국에 있을 때 공바 피크는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팀과 함께 꼭 오르고 싶어 운행 중 돌탑이나 룽다가 보이면 앞에 서서 기도를 드렸다.
공바 피크 정상.
공바 피크 캠프1도 해발 4,800m에 있다. 고도를 많이 올려야 했기에 조금 힘들었다. 설상가상 비구름까지 몰려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고도가 높아 우박으로 쏟아져서 옷이 많이 젖지는 않았다. 캠프1은 쓰레기도 많고 바위들이 많아 바닥이 고르지 못했다.
밥을 먹고 간단히 정리한 뒤 장비를 준비했다. 공바는 등반 난이도가 높아 스크루와 스노바 등 많은 장비들이 필요했다. 자일도 반으로 잘라 무게를 줄였다. 대기시간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보온 의류도 넉넉하게 챙겼다. 자연스레 많은 장비들이 하네스와 배낭으로 와서 노차마 때와 달리 배낭이 엄청 무거웠다.
어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노차마를 다녀온 가이드에 의하면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정상을 오른 팀이 한 팀도 없다고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어제가 정상 공격이었지만 하루 먼저 오른 우리의 결정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노차마에 한 번 다녀와서인지 고소 때문에 크게 힘들어하는 대원은 없었다. 체감상 눈을 감자마자 기상 시간이 되었다. 출발하자마자 아주 가파른 너덜지대를 올라가야 했다.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이니 그럭저럭 올라갈 만했다.
무사히 너덜지대를 지나고 본격적인 운행이 시작되었다. 분명 전체 중 아이스 구간이 70%라고 봤는데 계속 걸어도 도통 얼음은 나오지 않고 계속 너덜지대다. 첫 언덕을 온 힘을 다해 오른 탓일까 계속 뒤쳐졌다. 쉬지 않고 가고 있는데 선두그룹은 왜 이렇게 빠른 것일까? 도통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힘이 푹푹 빠진다.
모든 등반을 마친 후 베이스캠프에 장비를 정리해 뒀다.
지옥 같은 너덜에서 오른발, 왼발을 반복하니 드디어 아이스 구간이 나왔다. 가이드는 크램폰 없이 올라갈 수 있다고 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모두 크램폰을 체결했다. 두 번의 어센딩 후 대장님께서 구간이 완만하다고 판단해 장비를 모두 회수하고 다시 걸어서 운행했다. 크램폰을 뺄 수 없어서 그냥 신고 올라가니 금속부위가 다 갈렸다. 저 멀리 한국에서 크램폰 아까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덜을 오르니 정말 설산 같은 곳이 나왔다. 대장님이 그곳에서 배낭을 놔두고 가자고 해서 행동식과 에너지 음료만 하나 마시고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올라갔다. 고정 로프가 깔려 있었는데 눈에 파묻혀서 한 발 가고 로프를 뜯어 올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이어 크레바스가 곳곳에 있어 이 구간은 또 어떻게 갈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정상에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대장님이 먼저 발을 깊게 밟고 올라가면 우리는 계단처럼 그곳을 밟고 올라가는 식으로 운행하기로 했다. 대장님과 종윤이, 청경이가 차례대로 정상 직전까지 올라갔다.
그때 모두 정상에 같이 올라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리는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정윤 형을 기다렸다. 밑에서 힘겹게 바일 한 번 발 한 번을 반복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정윤 형은 이번 탐사에 오기 전 아콩카과에서 정상공격을 하다 중간에 하산을 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그저 그의 사투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듣기로는 검은 선글라스로 감췄지만 울면서 올라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윤 형까지 올라오고 나서 우리는 다 같이 손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렇게 개인에서 팀으로 하나가 되어 간다."
대장님의 말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여 낯설던 얼굴이 어느새 동료의 얼굴로 바뀌었다.
복학 후 졸업과 취업이 가까워질수록 길은 막막해졌다. 결국 휴학을 선택하며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 오지탐사대에 지원했다. 무사히 탐사를 마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고민과 불안이 참 무색하다.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할 뿐.
탐사대에서 웃고 울며 함께했던 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굳이 서둘러 답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지 탐사에서의 경험은 마음속에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로 바꿔 주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엘리트 운동선수, 특수부대 출신, 대학교 산악부…."
전 오지탐사대 대원들의 화려한 프로필을 봤을 때, 지원할 용기를 잃었다. 내 스펙은 한없이 초라했다. 전역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 온 뒤 대학교 산악부 활동을 조금 한 게 다였다. 2025년 오지탐사대 모집공고에선 단 10명만 뽑는다고 돼 있었다. 그 10명에 당연히 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2023 오지탐사대 대원이었던 정은 형은 "떨어지더라도 지원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릴게임사이트 "는 조언을 건네줬다.
며칠 고민하다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지원서를 던졌다. 심지어 합격자 발표일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합격 소식도 산악부 후배가 문자로 알려줬다. 믿기지 않아 얼떨떨했다. 일단 기분은 매우 좋았지만 동시에 앞으로 해내야 할 많은 일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국내 훈련 및 탐사 준비는 상상 이상으로 바빴다. 한국릴게임 금, 토, 일 3일간 이루어지는 훈련의 강도는 지금까지 산악회에서 했던 활동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평일에는 개인 일지 작성, 훈련 보고서 작성, 훈련 계획서 작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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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종합훈련 이후로는 본격적인 탐사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정해진 탐사지에 몸만 가면 되는 줄 알았지만 탐사지 선정부터 항공권 발권, 현지 등반가이드 섭외 등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모두 계획하고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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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로 향하고 있는 탐사대원들.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된 4일차. 우리는 해발 2,500m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태어나서 가장 높이 올라가본 곳이 설악산 대청봉인데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로 간다니 겁이 났다. 2,000m가 넘어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분명 잘 잤는데…내 호흡곤란에 모두 비상
트레킹 시작점인 2,500m에 도착해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뒷목이 약간 뻐근한 것 이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2시간 정도 지나자 점점 머리가 아프면서 잠이 오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려 앉으면 바로 잠에 들었다. 걸으면서도 잠을 참을 수 없어 휘청거렸다. 그때마다 정윤 형이 자면 안 된다고 계속 옆에서 깨워 주었다.
노차마 피크 캠프1으로 등반하는 날. 날씨가 무척 맑았다.
목적지인 해발 3,200m 즈메이마을에 도착하자 안도감 때문인지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 모든 힘이 빠지고, 한기가 들면서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몰려왔다. 방으로 들어가 타이레놀 한 알을 복용하고 바로 쓰러졌다. 대장님과 정윤 형은 쓰러져 있는 나를 깨워 앉혀놓고 계속 물을 마시게 하고 말을 걸며 잠들지 못하게 했다. 고소적응을 위해선 그래야 한단다. 당장의 괴로움도 문제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무척 깊어갔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이 되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하게 일어났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베이스캠프로 출발. 저 멀리 공가산이 보인다. 목적지는 공가산의 위성봉인 노차마 피크(5,588m)와 공바 피크(5,564m)다. 공가산은 해발 7,556m로 등반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 현재까지 300여 명이 도전해 200여 명이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27명만이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한 가이드 그레이스 또한 공가산에 도전했지만, 등반 중 발목이 부러져 하산했고, 2027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할 것이라고 일러줬다.
노차마 피크 아이스 구간에서 안자일렌을 시작한 후 운행하고 있다.
베이스캠프의 해발고도는 4,000m. 고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잠을 자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랐다. 적응이 되긴 하는 것인가 의문을 가질 때쯤 벌써 노차마 정상 공격일이 다가왔다.
원래 계획은 캠프1에서 하루 더 머물고 정상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아 바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원들의 고소적응이 덜 됐다는 것. 고소적응을 위해 시간을 보내면 날씨가 악화되고, 바로 가기엔 몸 상태들이 안 좋았다.
오랜 시간 토론 끝에 캠프1에서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캠프1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도를 800m가량 올려야 했고, 모두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나는 멀어져가는 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캠프1을 향해 올라갔다. 운행을 시작하고 8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저 멀리 펄럭이는 룽다와 함께 먼저 올라간 정윤 형과 종윤이가 보였다.
노차마 피크 등정 후 하산.
건강상태를 체크했는데 별 이상이 느껴지지 않아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정윤 형은 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고, 종윤이는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다른 텐트로 가서 산소통을 가져왔고, 대장님과 청경이 또한 일어나 있었다. 그들은 나의 호흡이 굉장히 불안정해 그 소리에 깨어나 보니 내 입술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잘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이었다니 덜컥 겁이 났다.
하산할 힘까지 쏟아 부어 정상으로
따뜻한 물을 계속 마시며 심호흡을 하니 다행히 산소포화도는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그래서 새벽 2시로 예정된 출발시간을 1시로 앞당겨 빠르게 정상 공격을 하고 내려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출발시간이 정해지자 아팠던 머리는 말끔히 호전됐다. 바로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 먹고 출발 준비를 했다.
공바 피크 캠프1으로 오르는 날 찍은 단체 사진.
그렇게 8월 1일 1시, 앞사람의 발걸음, 옅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정상공격이 시작되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에 쉬고 싶었지만 조금만 지체해도 앞사람과 멀어지기에 그러지 못했다. 너덜지대에서 횡으로 이동해 멀리 보이는 헤드랜턴 불빛 쪽으로 갔다. 이어 등반을 해야 하는 조금 긴 구간이 나왔다. 별도의 앵커나 볼트가 없기에 순전히 손과 발만을 믿고 올라야 하는 지형이었다. 떨어지는 무수한 낙석 탓에 한 명씩 조심히 올라갔다.
쉴 때면 종윤이는 고소도 안 오는지 별이 아름답다고 하늘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청경이는 계속 꾸벅꾸벅 졸아서 종윤이에게 혼이 났다. 혼나는 청경이를 보며 나도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보았다.
공바 피크 너덜지대 통과 중 너무 힘들어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너덜지대를 계속 걷다 보니 드디어 빙벽 구간. 이곳에서 크램폰을 착용하고 두 그룹으로 나눠 안자일렌을 했다. 크램폰을 신고 조금 올라가니 종윤이의 크램폰이 벗겨졌다. 크램폰 착용을 마치고 다시 운행을 시작하고 또 몇 걸음 안 가서 이번에는 내 크램폰과 종윤이의 크램폰이 둘 다 벗겨졌다. 분명 출발 전에 꼼꼼히 맞췄는데도 계속 벗겨졌다. 이렇게 가다 계속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그냥 왼발의 크램폰을 벗고 오른발에 최대한 집중해서 올랐다. 생각보다 얼음이 꽝꽝 얼어 있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해발고도는 5,000m가 넘었다. 정말 힘들었다. 선두로 가던 그레이스는 주기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나와 종윤이의 상태를 체크한다. 정신을 잃지 않도록 이름이나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후에 그레이스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질문에 대답하는 나와 종윤이의 모습이 정말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다.
열 걸음 가고 한 번 쉬기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해 갔는데 아뿔싸 그곳은 가짜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조금 다운 클라이밍을 한 뒤 그 뒤에 있는 언덕을 올라야지 진짜 정상이었다. 짧은 좌절을 뒤로 한 채 마저 가니 선두 그룹이 설치한 고정로프가 있다. 이를 통해 편하게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공가산과 함께 해가 떠오른다. 감탄도 잠시 먼저 올라온 팀이 우리를 기다리느라 정상에 30분이나 있었기에 체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사진을 찍고 서둘러 하산했다.
공바 피크 등반을 위해 이동 중 휴식. 고소적응이 된 탓에 모두 쾌조의 컨디션이다.
하산하는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얼음 위에선 긴장을 조금만 풀면 추락할 수도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이스 구간이 끝나자 긴장은 조금 풀렸는데 그와 동시에 엄청난 피로가 몰려들었다. 다시 끝없이 펼쳐진 너덜지대 저 멀리 캠프1이 보이지만 도통 가까워지지 않는다. 해가 떠서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목적지가 뻔히 눈앞에 보이니 새벽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보다 더 죽을 맛이다. 하산할 힘을 남겨두라고 했는데 정상에 올라가면서 100% 다 써버린 것 같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한 발씩 내딛으니 캠프1. 곧바로 베이스캠프로 서둘러 하산했다. 어제 올랐던 끊임없는 오르막이 오늘은 끝없는 내리막이다. 노차마를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인사를 건네며 그들이 정상에 가길 기원했다.
베이스캠프로 하산 후 총평의 시간을 가졌다. 다들 너무 힘들어서 내심 포기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래도 잘 해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등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겨지는 노차마가 이 정도인데 다음 목표인 공바 피크를 오를 수 있을까.
공바 피크 정상 직전. 선두에서 등반하다가 지친 나머지 그대로 쓰러져 쉬고 있는 종윤이와 대장님.
논의했다. 모두 회의적이다. 아예 안 가는 방안도 도마에 올랐다. 일단 내일 휴식을 취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우리는 늦잠이 허락된 탓에 새벽 동안 달무티 게임을 하며 공바 피크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엔 다들 못 하겠다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대", "안 되면 내려오면 되지", "안 하면 후회할 것" 등 한마디씩 얹어지자 점점 의기가 투합됐다.
개인에서 팀으로, 하나가 되다
다음날 굳게 다짐했다. 공바 피크 한국 초등을 꼭 해내고 말겠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 공바 피크 캠프1으로 가는 길은 불어난 빙하수 계곡 때문에 앞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돌다리가 많이 유실됐다. 초반에는 그래도 몇 개 있었지만 후반에는 아예 없어서 가이드가 들어가서 하나씩 만들어 주었다.
계곡을 지나니 공가산과 함께 꽃이 핀 푸르른 들판이 나왔다. 정말 아름다웠다. 빨리 캠프1에 도착해 휴식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맘 놓고 풍경을 감상했다. 한국에 있을 때 공바 피크는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팀과 함께 꼭 오르고 싶어 운행 중 돌탑이나 룽다가 보이면 앞에 서서 기도를 드렸다.
공바 피크 정상.
공바 피크 캠프1도 해발 4,800m에 있다. 고도를 많이 올려야 했기에 조금 힘들었다. 설상가상 비구름까지 몰려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고도가 높아 우박으로 쏟아져서 옷이 많이 젖지는 않았다. 캠프1은 쓰레기도 많고 바위들이 많아 바닥이 고르지 못했다.
밥을 먹고 간단히 정리한 뒤 장비를 준비했다. 공바는 등반 난이도가 높아 스크루와 스노바 등 많은 장비들이 필요했다. 자일도 반으로 잘라 무게를 줄였다. 대기시간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보온 의류도 넉넉하게 챙겼다. 자연스레 많은 장비들이 하네스와 배낭으로 와서 노차마 때와 달리 배낭이 엄청 무거웠다.
어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노차마를 다녀온 가이드에 의하면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정상을 오른 팀이 한 팀도 없다고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어제가 정상 공격이었지만 하루 먼저 오른 우리의 결정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노차마에 한 번 다녀와서인지 고소 때문에 크게 힘들어하는 대원은 없었다. 체감상 눈을 감자마자 기상 시간이 되었다. 출발하자마자 아주 가파른 너덜지대를 올라가야 했다.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이니 그럭저럭 올라갈 만했다.
무사히 너덜지대를 지나고 본격적인 운행이 시작되었다. 분명 전체 중 아이스 구간이 70%라고 봤는데 계속 걸어도 도통 얼음은 나오지 않고 계속 너덜지대다. 첫 언덕을 온 힘을 다해 오른 탓일까 계속 뒤쳐졌다. 쉬지 않고 가고 있는데 선두그룹은 왜 이렇게 빠른 것일까? 도통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힘이 푹푹 빠진다.
모든 등반을 마친 후 베이스캠프에 장비를 정리해 뒀다.
지옥 같은 너덜에서 오른발, 왼발을 반복하니 드디어 아이스 구간이 나왔다. 가이드는 크램폰 없이 올라갈 수 있다고 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모두 크램폰을 체결했다. 두 번의 어센딩 후 대장님께서 구간이 완만하다고 판단해 장비를 모두 회수하고 다시 걸어서 운행했다. 크램폰을 뺄 수 없어서 그냥 신고 올라가니 금속부위가 다 갈렸다. 저 멀리 한국에서 크램폰 아까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덜을 오르니 정말 설산 같은 곳이 나왔다. 대장님이 그곳에서 배낭을 놔두고 가자고 해서 행동식과 에너지 음료만 하나 마시고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올라갔다. 고정 로프가 깔려 있었는데 눈에 파묻혀서 한 발 가고 로프를 뜯어 올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이어 크레바스가 곳곳에 있어 이 구간은 또 어떻게 갈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정상에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대장님이 먼저 발을 깊게 밟고 올라가면 우리는 계단처럼 그곳을 밟고 올라가는 식으로 운행하기로 했다. 대장님과 종윤이, 청경이가 차례대로 정상 직전까지 올라갔다.
그때 모두 정상에 같이 올라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리는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정윤 형을 기다렸다. 밑에서 힘겹게 바일 한 번 발 한 번을 반복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정윤 형은 이번 탐사에 오기 전 아콩카과에서 정상공격을 하다 중간에 하산을 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그저 그의 사투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듣기로는 검은 선글라스로 감췄지만 울면서 올라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윤 형까지 올라오고 나서 우리는 다 같이 손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렇게 개인에서 팀으로 하나가 되어 간다."
대장님의 말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여 낯설던 얼굴이 어느새 동료의 얼굴로 바뀌었다.
복학 후 졸업과 취업이 가까워질수록 길은 막막해졌다. 결국 휴학을 선택하며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 오지탐사대에 지원했다. 무사히 탐사를 마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고민과 불안이 참 무색하다.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할 뿐.
탐사대에서 웃고 울며 함께했던 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굳이 서둘러 답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지 탐사에서의 경험은 마음속에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로 바꿔 주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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