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바캉스보다 뜨거운 우리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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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1-26 10:57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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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 바캉스보다
뜨거운 우리 사랑을 위해
1. 바캉스, 그리고 뜨거운 사랑의 재발견
여름이면 바캉스를 떠나 새로운 경험과 휴식을 찾고,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캉스는 떠나기 전의 설렘과 돌아올 때의 행복감을 남겨주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은 무엇일까요? 바로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 더욱 깊어지는 사랑과 활력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캉스가 특별해도, 관계에 있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뜨겁고 활기찬 사랑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비아그라와 함께라면 바캉스보다 더 뜨겁고, 더 깊은 사랑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 사랑에 대한 고민, 당신만의 해답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적인 변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많은 남성들이 성욕 감소나 발기력 약화, 그리고 자신감 저하에 고민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정신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적 건강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챙겨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적인 활력은 단지 남성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부나 연인 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3. 비아그라의 역할활력과 자신감을 되찾다
비아그라는 남성의 성적 건강을 지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발기부전의 치료제라는 한정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비아그라는 남성의 전반적인 성적 활력을 되살리고, 자신감을 높여주는 중요한 약물입니다.
비아그라는 PDE5 억제제로 작용하여, 혈관을 이완시키고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성기의 발기를 돕습니다. 이 약물은 약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효과를 발휘하며, 그 효과는 평균적으로 4시간 정도 지속됩니다. 또한, 체내에 쌓인 불필요한 피로감을 줄여주어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게 해줍니다.
4. 왜 비아그라가 중요한가?
비아그라는 단순한 약물이 아닙니다. 이 약물이 중요한 이유는, 성적인 활력을 잃은 많은 남성들이 이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뜨거운 감정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아그라는 몸의 상태를 빠르게 회복시켜, 연인 혹은 부부와의 관계에서 훨씬 더 깊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신뢰 회복
성적인 불만족이나 갈등은 많은 커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에서의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정서적 안정
성적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정서적 안정도 함께 찾아옵니다. 성적 문제가 사라지면 그만큼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파트너와의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적극적인 사랑
비아그라는 성적 자신감을 회복시켜, 사랑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는 부부 사이 뿐만 아니라 연인 사이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게 됩니다.
5. 비아그라,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
비아그라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확하게 복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물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규칙을 따르는 것이 필수입니다.
복용 시간
비아그라는 성관계 예정 시간 최소 30분에서 1시간 전에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용 후에는 약 4시간 동안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복용 방법
비아그라는 물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가벼운 식사 후에도 복용이 가능하지만, 과식 후에는 흡수 속도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복용 주의사항
하루 한 번만 복용할 수 있으며, 24시간 이내에 두 번 이상 복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고혈압, 심혈관 질환 등의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복용 전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6. 바캉스와 비아그라더 뜨겁고, 더 즐겁게
바캉스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쌓고, 사랑을 다시 한 번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하지만 뜨겁고 활기찬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여행지나 환경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적인 활력과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관계의 품격을 높이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비아그라는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바캉스와 함께 비아그라를 사용하면,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7. 연인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진정성
비아그라는 단순히 발기부전 치료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감을 되찾고, 사랑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보세요.
비아그라와 함께라면, 바캉스보다 더 뜨겁고, 더 멋진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사랑을 다시 불붙이고,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8. 결론비아그라, 사랑을 재발견하는 방법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식는 것만큼 아쉬운 일도 없습니다. 비아그라는 사랑을 되살리고, 관계를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바캉스보다 뜨겁고, 그 어떤 경험보다 강렬한 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비아그라와 함께라면, 사랑을 다시 불태울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뜨거운 순간을 경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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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eastorygame.top
지난해 11월 말과 12월 초 모잠비크를 방문했다.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이 참여한 신규 천연가스 개발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기후 위기 가속화를 막으려면 더는 화석연료를 새로 개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국제적 권고다. 모잠비크에서의 가스 개발 문제는 더 깊고 거대했다. 현지에서 기후 위기를 질문했으나, 돌아온 답은 기후 정의였다. '기후 과학'만 보는 렌즈는 관찰자들의 여유로움이라고 했다. 현장은 황폐하고 참혹했다. 가스전은 자연과학의 문제를 벗어나, 개발 지역 300만 명 인구의 죽음에까지 영향을 주는 거대한 사회경제적 문제로 확장돼 있었다.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개발지역 카부델가두주는 9년 째 분쟁이 끝나지 않는다. 최소 6200여 명이 죽고 130만 명이 피난했으며, 가난은 더 심화했다. 분쟁과 가난은 가스전과 이어져 있고, 가스전에서 나올 돈은 한국과 이어져 있다. 기후 정의의 눈으로 본 모잠비크 가스전 현장을 9개 기사로 연재한다. 가장 먼저 분쟁의 모습부터 전한다. 편집자
마리아( 황금성게임다운로드 35)는 6년 전 그날을 아직 생생히 기억했다. 2019년 3월, 무장한 반군이 고향 마을 무코조(Mucojo)를 습격해 방화, 살상을 벌였다. 총성이 들리자 마리아는 마을 뒤 숲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내리 3일을 숲에 숨어 지냈다. 풀숲과 나무 기둥에 몸을 숨겼고, 밤이 되면 나무 아래에서 잤다. 물도, 밥도 없이 견뎠다.
마리아는 그날 릴게임5만 삼촌의 머리도 손수 땅에 묻었다. 습격자들은 삼촌의 머리를 잘랐다. 그러곤 잘린 머리를 그의 아내에게 줘 직접 들고 가게 했다. 마리아는 도망친 숲에서 가족들과 땅을 파고 삼촌의 머리를 묻어줬다. 삼촌 말고도 머리가 잘린 이웃들은 많았다.
3일 후, 마리아는 피난을 떠났다. 가족, 이웃 등 수십 명이 함께 였다. 대부분이 신발을 신을 새 손오공게임 없이 도망친 상태였다. 이들은 맨발로 꼬박 15시간 동안 45㎞(킬로미터) 숲길을 걸어 읍내 마코미아(Macomia)시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노인과 아이들 여럿이 죽었다. 마리아는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파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며 "우리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고 말했다.
피난민을 딱히 여긴 한 주민이 이들을 시우레(Chiu 검증완료릴게임 re)구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남쪽으로 150여㎞ 떨어진, 그때는 반군의 영향권 밖에 있었던 카부델가두(Cabo Delgado)주 최남단 지역이다. 마리아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6년째 이곳 시우레의 메가루마 강제실향민 마을(Megaruma IDPs center)에서 산다.
<프레시안>은 지난해 11월 29~30일 이틀간 메가루마 실향민 마을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만난 10명의 피난민이 가장 절박하게 얘기한 건 식량이다. 이들은 "너무 배가 고프다", "죄수처럼 살고 있다", "너무 오래 굶고 있다"라고 힘겹게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파울로(왼쪽)와 셀리마의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2015년 11월 29일 방문한 카부델가두주 메가루마 강제실향민 마을(Megaruma IDPs center). ⓒ프레시안(손가영)
가장 가난한 땅, 카부델가두
모잠비크 카부델가두는 분쟁지역이다. 2017년 10월부터 지금까지 9년째 반군과 정부군의 무력 충돌과 폭력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출국을 권고하는 적색경보를 발령 중이다.
반군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알샤바브(Al-Shabaab)', '안사르 알순나(Ansar al-Sunna)' 등 종교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단어부터 비국가 무장 단체 등이다. 지역 주민들은 알샤바브라고 흔히 부르고, 유엔(UN)은 비국가 무장 단체라고 표현한다. 이들이 등장한 맥락은 복합적이다. 종교, 민족, 빈곤, 불평등, 정부 부패, 자원 착취 등의 문제가 오래 누적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금까지 130만여 명 피난민이 발생했다. 주 전체 인구 대비 46.4%다. 이 중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 주민도 있고, 2번 이상 피난을 반복하는 주민도 있다. 실향민 마을은 주 전역에 98개(2024년 7월 기준)가 있다. 이곳 메가루마 실향민 마을은 2020년 만들어졌다. 지금은 5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초기 반군의 목표는 공무원과 경찰, 군인 등이었으나, 폭력 행위는 민간인 살상, 약탈, 방화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확산했다. 주민의 정체를 의심하는 군인과 경찰의 주민 살해와 약탈 문제도 심각하다. <프레시안>이 만난 실향민 10명 모두 "누구도 구원하지 않는 땅"이라고 비관했다.
이 방문한 IDP 마을과 LNG 개발지인 아푼지 지역을 표시했다. ⓒ프레시안(손가영)"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1/26/pressian/20260126071040496lqjg.png" data-org-width="640" dmcf-mid="ftWlOOjJ5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6/pressian/20260126071040496lqjg.png" width="658">
▲모잠비크 카부델가두주 위치(왼쪽)와 카부델가두 확대 지도. 분홍색 점은 인터뷰에 응한 피난민 10명의 고향이다. 노란색 점은 <프레시안>이 방문한 IDP 마을과 LNG 개발지인 아푼지 지역을 표시했다. ⓒ프레시안(손가영)
호아키나(61)는 2019년 가족 넷을 잃었다. 반군이 고향 마을을 습격했을 때, 그의 딸은 남편과 아이 2명과 함께 집 안에 있었다. 습격자들은 그 집에 불을 질렀다. 호아키나는 딸의 가족이 산 채로 불타는 것을 봤다. 그는 다른 가족들 5명과 함께 숲으로 도망쳤다.
"반군이 사람들을 참수했어요. 이웃들의 잘린 머리 사이로 도망쳤어요. 걷고, 걷고, 또 걸었어요. 계속 숲속에서 잤어요. 그렇게 계속 걸었더니 도로에 이르렀어요. 누군가의 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어요. 모두가 오진 못했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노인과 아이들이 먼저 죽어갔어요. 몇 명이 죽었냐고요? 그건 몰라요. 그러나 매우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건 알아요."(호아키나)
살해된 가족, 이웃을 땅에 손수 묻어준 피난민도 한둘이 아니다. 6년 전 이곳에 온 중년 남성 아싸니는 "머리가 잘린 삼촌과 조카의 시신을 직접 땅에 묻어 줬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첫 습격이 시작된 때 숲으로 도망쳐 3개월간 노숙했다. 3개월간 카사바(모잠비크 주식인 뿌리식물)와 물만 먹었다. 마을이 잠잠해진 때 다시 돌아갔으나, 무장 세력에게 내쫓겼다. 그는 "사냥하듯 숲까지 우릴 쫓아왔고, 사람들을 죽였다"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과정이 고통이었다. 지금도 고통밖엔 없다." 아싸니는 이리 말하며, 정주하지 못하는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마을에서 다시 추방된 후 인근 큰 마을로 도망가 그곳에서 다른 이의 농사를 대신해 주거나 임시직을 전전하며 돈을 모았고, 돈을 번 즉시 남쪽의 남풀라주까지 피신했다. 농부였던 그에게 생계는 곧 농사였다. 그러나 농지는 구할 수 없었고, 집세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곳 실향민 마을로 찾아오게 됐다.
▲실향민 마을의 집. 피난민들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한다. ⓒ프레시안(손가영)
▲인터뷰에 응한 아싸니의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군경도 주민 살상
어떤 여성들은 피난길에 출산했다. 파울로(53)가 2020년 2월 가족 9명과 함께 고향에서 도망쳤을 때, 그의 아내는 출산이 임박했다.
"아내와 아이들, 형제들을 데리고 도로가 보일 때까지 15㎞ 정도를 하염없이 걸었어요. 1시간 정도 기다리니 차가 지나갔고, 우릴 도와줬어요. 다음 날 다시 차를 빌려 타고 남쪽을 가는데 다리가 끊겨 있었어요. 강을 걸어서 건너야 했어요. 그렇게 또 길에서 차를 빌려 타고 또 타, 이곳까지 왔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첫 번째 실향민입니다."
습격은 두 번 세 번 되풀이되고 있다. 그의 마을도 2년 후 두 번째 습격을 받았다. 고향엔 피난을 떠나지 못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파울로는 "다시 마을에 방화, 살해가 이어졌고, 이번엔 37명이 참수됐다"고 전했다. 남은 이들은 해안에서 배를 구해 70㎞를 넘게 항해해 남부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임신한 그의 조카는 숲속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반군의 살상에 더해, 모잠비크 군경의 가혹행위도 주민들을 힘들게 한다. 살리모(45)의 고향 마을은 2019년 11월 반군의 습격으로 12명이 사망했다. 살리모는 "그러나 군대와 반군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대가 숲속에 있는 자들(반군)보다 더 나쁠 때가 있다"며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아 가기도 일쑤"라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 피난을 온 압달라(40)도 "반군, 군대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압달라는 2020년 이곳으로 처음 피난을 왔다가 2022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고향에서 군대가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다시 고향에서 도망쳤다. 그는 "주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주민을 '알샤바브'라 몰아세우며 죽이기 시작했다"며 "사람이 죽어가는 곳에 머물 수 없다. 우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근 도로 모잠비크 군대 차량. ⓒ프레시안(손가영)
▲셀리마가 두 살 난 아이를 안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땅은 사람 버리지 않아' 귀향 간절한 사람들
"너무 오래 굶고 있어요. 우리는 농부예요. 그런데 땅이 없어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돈을 벌 수 없고, 나를 먹일 수가 없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두 살 아이를 안은 채 인터뷰에 응한 셀리마(24)는 "죄수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카부델가두 주민들은 대다수가 농부, 어부다. 이들에게 피난은 생계의 붕괴다. 셀리마는 "음식을 구하려면 다른 이들의 농지에 가서 일을 해주고 카사바를 얻는 방법밖엔 없다"며 "그런데 주인들로부턴 부당대우를 받기 일쑤고, 우린 농지를 임대할 돈도 없다"고 말했다. 한 해 1000메티칼(약 2만 4000원) 임대료도 낼 형편이 안 돼, 농지 임대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교통비 100메티칼(약 2400원)조차 내지 못해,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 처지다.
그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싸니는 "땅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Land never reject anyone)"는 지역의 오랜 속담을 말했다. "농부들은 땅이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고향엔 그런 땅이 있었고, 우린 살아갈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하지만 여기선 그렇게 살 수가 없다"며 "고향에 꼭 돌아가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12명의 자녀를 둔 파울로는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서 농사와 기계수리를 하며 살았다. 피난 후, 고혈압 증세가 심해진 그는 그동안 여러 번 쓰러졌다. "병원에 갈 수는 있지만, 병원에 약이 없다. 약은 비싼 사립 약국에 있다"고 말했다. "멀리 북부에 사는 아들 하나가 캐슈너트를 팔아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옥수수를 사먹으면서 산다"고도 했다.
피난 초기 지원받았던 가재도구들, 이를테면 냄비, 바구니, 오두막집, 지붕으로 쓸 비닐 등은 지난해 초대형 사이클론으로 모두 잃었다. 모잠비크는 기후변화로 심각한 기상이변을 겪는 나라다. 파울로는 "모든 게 사라져 고향으로 돌아가려 해도 '알샤밥'이 여전히 그곳에 있어서 갈 수가 없다"고 말하며 덧붙였다.
"제가 이 이야기를 계속 하면, 밤이 될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그만하는 게 낫겠어요." (계속)
▲마을 한 편에 건축에 쓰기 위한 목재가 쌓여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기사의 모든 피난민의 이름은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썼습니다. 고향, 피난 시기 등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사에서 지역 구분 Province는 '주'로, 주 내의 행정구역 District는 '구'로 번역했습니다.
- 마리아 : 마코미아구 무코조 출신. 2019년 3월 무장단체의 마을 습격으로 피난.
- 호아키나 : 키상가구 출신. 2019년 피난.
- 살리모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19년 11월 피난.
- 아싸니 : 마코미아구 샤이 출신. 2020년 피난.
- 마을 대표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20년 피난.
- 파울로 : 키상가구 카젬베 출신. 2020년 2월 피난.
- 셀리마 : 마코미아구 샤이 출신. 2020년 여름 피난.
- 압달라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20년 10월, 2022년 두 번 피난.
- 라시드 : 시우레구 마제제 출신. 2023년 2월 피난.
- 우쎄네 : 시우레구 시우레벨류 출신. 2024년 3월 피난.
※ 용어 통일 : 카부델가두에서 무력 공격행위를 이어가는 무장 단체는 '반군'이라고 적었습니다. 일련의 폭력 사태와 무력 충돌은 '분쟁'이라고 적었습니다.
※ 이 기사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손가영 기자(bada@pressian.com)]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개발지역 카부델가두주는 9년 째 분쟁이 끝나지 않는다. 최소 6200여 명이 죽고 130만 명이 피난했으며, 가난은 더 심화했다. 분쟁과 가난은 가스전과 이어져 있고, 가스전에서 나올 돈은 한국과 이어져 있다. 기후 정의의 눈으로 본 모잠비크 가스전 현장을 9개 기사로 연재한다. 가장 먼저 분쟁의 모습부터 전한다. 편집자
마리아( 황금성게임다운로드 35)는 6년 전 그날을 아직 생생히 기억했다. 2019년 3월, 무장한 반군이 고향 마을 무코조(Mucojo)를 습격해 방화, 살상을 벌였다. 총성이 들리자 마리아는 마을 뒤 숲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내리 3일을 숲에 숨어 지냈다. 풀숲과 나무 기둥에 몸을 숨겼고, 밤이 되면 나무 아래에서 잤다. 물도, 밥도 없이 견뎠다.
마리아는 그날 릴게임5만 삼촌의 머리도 손수 땅에 묻었다. 습격자들은 삼촌의 머리를 잘랐다. 그러곤 잘린 머리를 그의 아내에게 줘 직접 들고 가게 했다. 마리아는 도망친 숲에서 가족들과 땅을 파고 삼촌의 머리를 묻어줬다. 삼촌 말고도 머리가 잘린 이웃들은 많았다.
3일 후, 마리아는 피난을 떠났다. 가족, 이웃 등 수십 명이 함께 였다. 대부분이 신발을 신을 새 손오공게임 없이 도망친 상태였다. 이들은 맨발로 꼬박 15시간 동안 45㎞(킬로미터) 숲길을 걸어 읍내 마코미아(Macomia)시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노인과 아이들 여럿이 죽었다. 마리아는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파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며 "우리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고 말했다.
피난민을 딱히 여긴 한 주민이 이들을 시우레(Chiu 검증완료릴게임 re)구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남쪽으로 150여㎞ 떨어진, 그때는 반군의 영향권 밖에 있었던 카부델가두(Cabo Delgado)주 최남단 지역이다. 마리아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6년째 이곳 시우레의 메가루마 강제실향민 마을(Megaruma IDPs center)에서 산다.
<프레시안>은 지난해 11월 29~30일 이틀간 메가루마 실향민 마을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만난 10명의 피난민이 가장 절박하게 얘기한 건 식량이다. 이들은 "너무 배가 고프다", "죄수처럼 살고 있다", "너무 오래 굶고 있다"라고 힘겹게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파울로(왼쪽)와 셀리마의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2015년 11월 29일 방문한 카부델가두주 메가루마 강제실향민 마을(Megaruma IDPs center). ⓒ프레시안(손가영)
가장 가난한 땅, 카부델가두
모잠비크 카부델가두는 분쟁지역이다. 2017년 10월부터 지금까지 9년째 반군과 정부군의 무력 충돌과 폭력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출국을 권고하는 적색경보를 발령 중이다.
반군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알샤바브(Al-Shabaab)', '안사르 알순나(Ansar al-Sunna)' 등 종교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단어부터 비국가 무장 단체 등이다. 지역 주민들은 알샤바브라고 흔히 부르고, 유엔(UN)은 비국가 무장 단체라고 표현한다. 이들이 등장한 맥락은 복합적이다. 종교, 민족, 빈곤, 불평등, 정부 부패, 자원 착취 등의 문제가 오래 누적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금까지 130만여 명 피난민이 발생했다. 주 전체 인구 대비 46.4%다. 이 중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 주민도 있고, 2번 이상 피난을 반복하는 주민도 있다. 실향민 마을은 주 전역에 98개(2024년 7월 기준)가 있다. 이곳 메가루마 실향민 마을은 2020년 만들어졌다. 지금은 5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초기 반군의 목표는 공무원과 경찰, 군인 등이었으나, 폭력 행위는 민간인 살상, 약탈, 방화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확산했다. 주민의 정체를 의심하는 군인과 경찰의 주민 살해와 약탈 문제도 심각하다. <프레시안>이 만난 실향민 10명 모두 "누구도 구원하지 않는 땅"이라고 비관했다.
이 방문한 IDP 마을과 LNG 개발지인 아푼지 지역을 표시했다. ⓒ프레시안(손가영)"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1/26/pressian/20260126071040496lqjg.png" data-org-width="640" dmcf-mid="ftWlOOjJ5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6/pressian/20260126071040496lqjg.png" width="658">
▲모잠비크 카부델가두주 위치(왼쪽)와 카부델가두 확대 지도. 분홍색 점은 인터뷰에 응한 피난민 10명의 고향이다. 노란색 점은 <프레시안>이 방문한 IDP 마을과 LNG 개발지인 아푼지 지역을 표시했다. ⓒ프레시안(손가영)
호아키나(61)는 2019년 가족 넷을 잃었다. 반군이 고향 마을을 습격했을 때, 그의 딸은 남편과 아이 2명과 함께 집 안에 있었다. 습격자들은 그 집에 불을 질렀다. 호아키나는 딸의 가족이 산 채로 불타는 것을 봤다. 그는 다른 가족들 5명과 함께 숲으로 도망쳤다.
"반군이 사람들을 참수했어요. 이웃들의 잘린 머리 사이로 도망쳤어요. 걷고, 걷고, 또 걸었어요. 계속 숲속에서 잤어요. 그렇게 계속 걸었더니 도로에 이르렀어요. 누군가의 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어요. 모두가 오진 못했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노인과 아이들이 먼저 죽어갔어요. 몇 명이 죽었냐고요? 그건 몰라요. 그러나 매우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건 알아요."(호아키나)
살해된 가족, 이웃을 땅에 손수 묻어준 피난민도 한둘이 아니다. 6년 전 이곳에 온 중년 남성 아싸니는 "머리가 잘린 삼촌과 조카의 시신을 직접 땅에 묻어 줬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첫 습격이 시작된 때 숲으로 도망쳐 3개월간 노숙했다. 3개월간 카사바(모잠비크 주식인 뿌리식물)와 물만 먹었다. 마을이 잠잠해진 때 다시 돌아갔으나, 무장 세력에게 내쫓겼다. 그는 "사냥하듯 숲까지 우릴 쫓아왔고, 사람들을 죽였다"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과정이 고통이었다. 지금도 고통밖엔 없다." 아싸니는 이리 말하며, 정주하지 못하는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마을에서 다시 추방된 후 인근 큰 마을로 도망가 그곳에서 다른 이의 농사를 대신해 주거나 임시직을 전전하며 돈을 모았고, 돈을 번 즉시 남쪽의 남풀라주까지 피신했다. 농부였던 그에게 생계는 곧 농사였다. 그러나 농지는 구할 수 없었고, 집세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곳 실향민 마을로 찾아오게 됐다.
▲실향민 마을의 집. 피난민들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한다. ⓒ프레시안(손가영)
▲인터뷰에 응한 아싸니의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군경도 주민 살상
어떤 여성들은 피난길에 출산했다. 파울로(53)가 2020년 2월 가족 9명과 함께 고향에서 도망쳤을 때, 그의 아내는 출산이 임박했다.
"아내와 아이들, 형제들을 데리고 도로가 보일 때까지 15㎞ 정도를 하염없이 걸었어요. 1시간 정도 기다리니 차가 지나갔고, 우릴 도와줬어요. 다음 날 다시 차를 빌려 타고 남쪽을 가는데 다리가 끊겨 있었어요. 강을 걸어서 건너야 했어요. 그렇게 또 길에서 차를 빌려 타고 또 타, 이곳까지 왔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첫 번째 실향민입니다."
습격은 두 번 세 번 되풀이되고 있다. 그의 마을도 2년 후 두 번째 습격을 받았다. 고향엔 피난을 떠나지 못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파울로는 "다시 마을에 방화, 살해가 이어졌고, 이번엔 37명이 참수됐다"고 전했다. 남은 이들은 해안에서 배를 구해 70㎞를 넘게 항해해 남부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임신한 그의 조카는 숲속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반군의 살상에 더해, 모잠비크 군경의 가혹행위도 주민들을 힘들게 한다. 살리모(45)의 고향 마을은 2019년 11월 반군의 습격으로 12명이 사망했다. 살리모는 "그러나 군대와 반군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대가 숲속에 있는 자들(반군)보다 더 나쁠 때가 있다"며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아 가기도 일쑤"라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 피난을 온 압달라(40)도 "반군, 군대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압달라는 2020년 이곳으로 처음 피난을 왔다가 2022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고향에서 군대가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다시 고향에서 도망쳤다. 그는 "주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주민을 '알샤바브'라 몰아세우며 죽이기 시작했다"며 "사람이 죽어가는 곳에 머물 수 없다. 우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근 도로 모잠비크 군대 차량. ⓒ프레시안(손가영)
▲셀리마가 두 살 난 아이를 안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땅은 사람 버리지 않아' 귀향 간절한 사람들
"너무 오래 굶고 있어요. 우리는 농부예요. 그런데 땅이 없어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돈을 벌 수 없고, 나를 먹일 수가 없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두 살 아이를 안은 채 인터뷰에 응한 셀리마(24)는 "죄수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카부델가두 주민들은 대다수가 농부, 어부다. 이들에게 피난은 생계의 붕괴다. 셀리마는 "음식을 구하려면 다른 이들의 농지에 가서 일을 해주고 카사바를 얻는 방법밖엔 없다"며 "그런데 주인들로부턴 부당대우를 받기 일쑤고, 우린 농지를 임대할 돈도 없다"고 말했다. 한 해 1000메티칼(약 2만 4000원) 임대료도 낼 형편이 안 돼, 농지 임대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교통비 100메티칼(약 2400원)조차 내지 못해,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 처지다.
그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싸니는 "땅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Land never reject anyone)"는 지역의 오랜 속담을 말했다. "농부들은 땅이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고향엔 그런 땅이 있었고, 우린 살아갈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하지만 여기선 그렇게 살 수가 없다"며 "고향에 꼭 돌아가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12명의 자녀를 둔 파울로는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서 농사와 기계수리를 하며 살았다. 피난 후, 고혈압 증세가 심해진 그는 그동안 여러 번 쓰러졌다. "병원에 갈 수는 있지만, 병원에 약이 없다. 약은 비싼 사립 약국에 있다"고 말했다. "멀리 북부에 사는 아들 하나가 캐슈너트를 팔아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옥수수를 사먹으면서 산다"고도 했다.
피난 초기 지원받았던 가재도구들, 이를테면 냄비, 바구니, 오두막집, 지붕으로 쓸 비닐 등은 지난해 초대형 사이클론으로 모두 잃었다. 모잠비크는 기후변화로 심각한 기상이변을 겪는 나라다. 파울로는 "모든 게 사라져 고향으로 돌아가려 해도 '알샤밥'이 여전히 그곳에 있어서 갈 수가 없다"고 말하며 덧붙였다.
"제가 이 이야기를 계속 하면, 밤이 될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그만하는 게 낫겠어요." (계속)
▲마을 한 편에 건축에 쓰기 위한 목재가 쌓여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기사의 모든 피난민의 이름은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썼습니다. 고향, 피난 시기 등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사에서 지역 구분 Province는 '주'로, 주 내의 행정구역 District는 '구'로 번역했습니다.
- 마리아 : 마코미아구 무코조 출신. 2019년 3월 무장단체의 마을 습격으로 피난.
- 호아키나 : 키상가구 출신. 2019년 피난.
- 살리모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19년 11월 피난.
- 아싸니 : 마코미아구 샤이 출신. 2020년 피난.
- 마을 대표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20년 피난.
- 파울로 : 키상가구 카젬베 출신. 2020년 2월 피난.
- 셀리마 : 마코미아구 샤이 출신. 2020년 여름 피난.
- 압달라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20년 10월, 2022년 두 번 피난.
- 라시드 : 시우레구 마제제 출신. 2023년 2월 피난.
- 우쎄네 : 시우레구 시우레벨류 출신. 2024년 3월 피난.
※ 용어 통일 : 카부델가두에서 무력 공격행위를 이어가는 무장 단체는 '반군'이라고 적었습니다. 일련의 폭력 사태와 무력 충돌은 '분쟁'이라고 적었습니다.
※ 이 기사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손가영 기자(bad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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