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알리스로 되살리는 자신감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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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1-26 17:20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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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알리스로 되살리는 자신감과 사랑
마음까지 죽이는 발기부전, 시알리스로 되살리기
발기부전ED은 단순한 신체적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감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많은 남성들이 발기부전으로 인해 자신감을 잃고, 자존감에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남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파트너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기부전은 치료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발기부전은 단순히 성적인 문제를 넘어, 자신감을 상실하고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발기부전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활력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알리스입니다. 시알리스는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약물로, 신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이 글에서는 발기부전의 원인과 그로 인한 영향, 그리고 시알리스가 발기부전 해결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발기부전의 원인과 그 심각성
발기부전은 남성의 성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질환으로,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크게 신체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체적 원인
신체적 원인은 발기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인 변화로 인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혈관, 신경, 호르몬 등의 문제로 인해 발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만성 질환은 발기부전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도한 음주나 흡연, 비만 등의 생활 습관도 발기부전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 원인
발기부전은 신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등은 발기부전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과거의 성적 트라우마나 관계에서의 긴장감도 심리적인 부담을 증가시켜 발기부전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발기부전은 신체적,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발기부전이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
발기부전은 단순히 성적인 문제를 넘어 남성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신감 상실
성적인 자신감은 많은 남성에게 중요한 자아상의 일부분입니다. 발기부전은 성적인 자신감을 크게 떨어뜨리고, 이에 따라 자신감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는 직장이나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자아 존중감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미치는 영향
발기부전은 단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파트너에게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성적 불만족은 관계에서의 거리감을 만들고, 부부나 연인 간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감정적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관계가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과 불안
발기부전은 종종 우울증이나 불안을 동반합니다. 성적 기능 장애가 지속되면 남성은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느끼며, 우울증 증상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점차 심리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시알리스의 역할자신감을 되찾는 첫걸음
시알리스는 발기부전 치료에 있어 매우 효과적인 약물로, 그 성분인 타달라필은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발기기능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시알리스는 다른 발기부전 약물과 비교했을 때 지속 시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알리스는 36시간까지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보다 자유롭게 성적 활동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시알리스의 효과
자연스러운 발기 촉진
시알리스는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를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발기를 촉진합니다. 시알리스의 효과는 즉각적이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사용될 때 점차적인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장기간 지속되는 효과
시알리스의 가장 큰 특징은 최대 36시간까지 효과가 지속된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관계 전이나 일상생활 중에도 부담 없이 시알리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감
시알리스는 신체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신감을 회복하게 도와줍니다. 이는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되며, 발기부전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여줍니다.
시알리스 복용 방법
시알리스는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복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일반적인 복용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용 시기
시알리스는 관계 약 30분~1시간 전에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시알리스의 장점은 36시간까지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복용 용량
시알리스의 기본 용량은 10mg이며, 필요에 따라 20mg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처음 복용하는 경우 10mg을 권장하며, 추가적인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용량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의 사항
시알리스는 고혈압, 당뇨병, 심장 질환 등과 관련된 문제가 있는 경우 전문가와 상담 후 복용해야 합니다. 또한, 과도한 음주나 약물 복용은 피해야 합니다.
결론시알리스로 되살리는 자신감과 사랑
발기부전은 단순히 성적인 문제를 넘어, 심리적, 감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시알리스를 통해 발기부전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감을 되찾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시알리스는 신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심리적 안정을 도와줍니다.
발기부전은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닙니다. 시알리스와 함께라면, 사랑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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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gamemong.info
지난해 11월 말과 12월 초 모잠비크를 방문했다.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이 참여한 신규 천연가스 개발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기후 위기 가속화를 막으려면 더는 화석연료를 새로 개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국제적 권고다. 모잠비크에서의 가스 개발 문제는 더 깊고 거대했다. 현지에서 기후 위기를 질문했으나, 돌아온 답은 기후 정의였다. '기후 과학'만 보는 렌즈는 관찰자들의 여유로움이라고 했다. 현장은 황폐하고 참혹했다. 가스전은 자연과학의 문제를 벗어나, 개발 지역 300만 명 인구의 죽음에까지 영향을 주는 거대한 사회경제적 문제로 확장돼 있었다.
바다이야기APK 개발지역 카부델가두주는 9년 째 분쟁이 끝나지 않는다. 최소 6200여 명이 죽고 130만 명이 피난했으며, 가난은 더 심화했다. 분쟁과 가난은 가스전과 이어져 있고, 가스전에서 나올 돈은 한국과 이어져 있다. 기후 정의의 눈으로 본 모잠비크 가스전 현장을 9개 기사로 연재한다. 가장 먼저 분쟁의 모습부터 전한다. 편집자
마리아(35) 골드몽 는 6년 전 그날을 아직 생생히 기억했다. 2019년 3월, 무장한 반군이 고향 마을 무코조(Mucojo)를 습격해 방화, 살상을 벌였다. 총성이 들리자 마리아는 마을 뒤 숲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내리 3일을 숲에 숨어 지냈다. 풀숲과 나무 기둥에 몸을 숨겼고, 밤이 되면 나무 아래에서 잤다. 물도, 밥도 없이 견뎠다.
마리아는 그날 삼촌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의 머리도 손수 땅에 묻었다. 습격자들은 삼촌의 머리를 잘랐다. 그러곤 잘린 머리를 그의 아내에게 줘 직접 들고 가게 했다. 마리아는 도망친 숲에서 가족들과 땅을 파고 삼촌의 머리를 묻어줬다. 삼촌 말고도 머리가 잘린 이웃들은 많았다.
3일 후, 마리아는 피난을 떠났다. 가족, 이웃 등 수십 명이 함께 였다. 대부분이 신발을 신을 새 없이 바다이야기다운로드 도망친 상태였다. 이들은 맨발로 꼬박 15시간 동안 45㎞(킬로미터) 숲길을 걸어 읍내 마코미아(Macomia)시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노인과 아이들 여럿이 죽었다. 마리아는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파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며 "우리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고 말했다.
피난민을 딱히 여긴 한 주민이 이들을 시우레(Chiure) 온라인골드몽 구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남쪽으로 150여㎞ 떨어진, 그때는 반군의 영향권 밖에 있었던 카부델가두(Cabo Delgado)주 최남단 지역이다. 마리아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6년째 이곳 시우레의 메가루마 강제실향민 마을(Megaruma IDPs center)에서 산다.
<프레시안>은 지난해 11월 29~30일 이틀간 메가루마 실향민 마을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만난 10명의 피난민이 가장 절박하게 얘기한 건 식량이다. 이들은 "너무 배가 고프다", "죄수처럼 살고 있다", "너무 오래 굶고 있다"라고 힘겹게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파울로(왼쪽)와 셀리마의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2015년 11월 29일 방문한 카부델가두주 메가루마 강제실향민 마을(Megaruma IDPs center). ⓒ프레시안(손가영)
가장 가난한 땅, 카부델가두
모잠비크 카부델가두는 분쟁지역이다. 2017년 10월부터 지금까지 9년째 반군과 정부군의 무력 충돌과 폭력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출국을 권고하는 적색경보를 발령 중이다.
반군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알샤바브(Al-Shabaab)', '안사르 알순나(Ansar al-Sunna)' 등 종교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단어부터 비국가 무장 단체 등이다. 지역 주민들은 알샤바브라고 흔히 부르고, 유엔(UN)은 비국가 무장 단체라고 표현한다. 이들이 등장한 맥락은 복합적이다. 종교, 민족, 빈곤, 불평등, 정부 부패, 자원 착취 등의 문제가 오래 누적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금까지 130만여 명 피난민이 발생했다. 주 전체 인구 대비 46.4%다. 이 중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 주민도 있고, 2번 이상 피난을 반복하는 주민도 있다. 실향민 마을은 주 전역에 98개(2024년 7월 기준)가 있다. 이곳 메가루마 실향민 마을은 2020년 만들어졌다. 지금은 5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초기 반군의 목표는 공무원과 경찰, 군인 등이었으나, 폭력 행위는 민간인 살상, 약탈, 방화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확산했다. 주민의 정체를 의심하는 군인과 경찰의 주민 살해와 약탈 문제도 심각하다. <프레시안>이 만난 실향민 10명 모두 "누구도 구원하지 않는 땅"이라고 비관했다.
이 방문한 IDP 마을과 LNG 개발지인 아푼지 지역을 표시했다. ⓒ프레시안(손가영)"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1/26/pressian/20260126071040496lqjg.png" data-org-width="640" dmcf-mid="ftWlOOjJ5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6/pressian/20260126071040496lqjg.png" width="658">
▲모잠비크 카부델가두주 위치(왼쪽)와 카부델가두 확대 지도. 분홍색 점은 인터뷰에 응한 피난민 10명의 고향이다. 노란색 점은 <프레시안>이 방문한 IDP 마을과 LNG 개발지인 아푼지 지역을 표시했다. ⓒ프레시안(손가영)
호아키나(61)는 2019년 가족 넷을 잃었다. 반군이 고향 마을을 습격했을 때, 그의 딸은 남편과 아이 2명과 함께 집 안에 있었다. 습격자들은 그 집에 불을 질렀다. 호아키나는 딸의 가족이 산 채로 불타는 것을 봤다. 그는 다른 가족들 5명과 함께 숲으로 도망쳤다.
"반군이 사람들을 참수했어요. 이웃들의 잘린 머리 사이로 도망쳤어요. 걷고, 걷고, 또 걸었어요. 계속 숲속에서 잤어요. 그렇게 계속 걸었더니 도로에 이르렀어요. 누군가의 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어요. 모두가 오진 못했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노인과 아이들이 먼저 죽어갔어요. 몇 명이 죽었냐고요? 그건 몰라요. 그러나 매우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건 알아요."(호아키나)
살해된 가족, 이웃을 땅에 손수 묻어준 피난민도 한둘이 아니다. 6년 전 이곳에 온 중년 남성 아싸니는 "머리가 잘린 삼촌과 조카의 시신을 직접 땅에 묻어 줬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첫 습격이 시작된 때 숲으로 도망쳐 3개월간 노숙했다. 3개월간 카사바(모잠비크 주식인 뿌리식물)와 물만 먹었다. 마을이 잠잠해진 때 다시 돌아갔으나, 무장 세력에게 내쫓겼다. 그는 "사냥하듯 숲까지 우릴 쫓아왔고, 사람들을 죽였다"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과정이 고통이었다. 지금도 고통밖엔 없다." 아싸니는 이리 말하며, 정주하지 못하는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마을에서 다시 추방된 후 인근 큰 마을로 도망가 그곳에서 다른 이의 농사를 대신해 주거나 임시직을 전전하며 돈을 모았고, 돈을 번 즉시 남쪽의 남풀라주까지 피신했다. 농부였던 그에게 생계는 곧 농사였다. 그러나 농지는 구할 수 없었고, 집세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곳 실향민 마을로 찾아오게 됐다.
▲실향민 마을의 집. 피난민들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한다. ⓒ프레시안(손가영)
▲인터뷰에 응한 아싸니의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군경도 주민 살상
어떤 여성들은 피난길에 출산했다. 파울로(53)가 2020년 2월 가족 9명과 함께 고향에서 도망쳤을 때, 그의 아내는 출산이 임박했다.
"아내와 아이들, 형제들을 데리고 도로가 보일 때까지 15㎞ 정도를 하염없이 걸었어요. 1시간 정도 기다리니 차가 지나갔고, 우릴 도와줬어요. 다음 날 다시 차를 빌려 타고 남쪽을 가는데 다리가 끊겨 있었어요. 강을 걸어서 건너야 했어요. 그렇게 또 길에서 차를 빌려 타고 또 타, 이곳까지 왔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첫 번째 실향민입니다."
습격은 두 번 세 번 되풀이되고 있다. 그의 마을도 2년 후 두 번째 습격을 받았다. 고향엔 피난을 떠나지 못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파울로는 "다시 마을에 방화, 살해가 이어졌고, 이번엔 37명이 참수됐다"고 전했다. 남은 이들은 해안에서 배를 구해 70㎞를 넘게 항해해 남부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임신한 그의 조카는 숲속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반군의 살상에 더해, 모잠비크 군경의 가혹행위도 주민들을 힘들게 한다. 살리모(45)의 고향 마을은 2019년 11월 반군의 습격으로 12명이 사망했다. 살리모는 "그러나 군대와 반군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대가 숲속에 있는 자들(반군)보다 더 나쁠 때가 있다"며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아 가기도 일쑤"라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 피난을 온 압달라(40)도 "반군, 군대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압달라는 2020년 이곳으로 처음 피난을 왔다가 2022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고향에서 군대가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다시 고향에서 도망쳤다. 그는 "주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주민을 '알샤바브'라 몰아세우며 죽이기 시작했다"며 "사람이 죽어가는 곳에 머물 수 없다. 우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근 도로 모잠비크 군대 차량. ⓒ프레시안(손가영)
▲셀리마가 두 살 난 아이를 안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땅은 사람 버리지 않아' 귀향 간절한 사람들
"너무 오래 굶고 있어요. 우리는 농부예요. 그런데 땅이 없어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돈을 벌 수 없고, 나를 먹일 수가 없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두 살 아이를 안은 채 인터뷰에 응한 셀리마(24)는 "죄수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카부델가두 주민들은 대다수가 농부, 어부다. 이들에게 피난은 생계의 붕괴다. 셀리마는 "음식을 구하려면 다른 이들의 농지에 가서 일을 해주고 카사바를 얻는 방법밖엔 없다"며 "그런데 주인들로부턴 부당대우를 받기 일쑤고, 우린 농지를 임대할 돈도 없다"고 말했다. 한 해 1000메티칼(약 2만 4000원) 임대료도 낼 형편이 안 돼, 농지 임대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교통비 100메티칼(약 2400원)조차 내지 못해,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 처지다.
그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싸니는 "땅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Land never reject anyone)"는 지역의 오랜 속담을 말했다. "농부들은 땅이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고향엔 그런 땅이 있었고, 우린 살아갈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하지만 여기선 그렇게 살 수가 없다"며 "고향에 꼭 돌아가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12명의 자녀를 둔 파울로는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서 농사와 기계수리를 하며 살았다. 피난 후, 고혈압 증세가 심해진 그는 그동안 여러 번 쓰러졌다. "병원에 갈 수는 있지만, 병원에 약이 없다. 약은 비싼 사립 약국에 있다"고 말했다. "멀리 북부에 사는 아들 하나가 캐슈너트를 팔아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옥수수를 사먹으면서 산다"고도 했다.
피난 초기 지원받았던 가재도구들, 이를테면 냄비, 바구니, 오두막집, 지붕으로 쓸 비닐 등은 지난해 초대형 사이클론으로 모두 잃었다. 모잠비크는 기후변화로 심각한 기상이변을 겪는 나라다. 파울로는 "모든 게 사라져 고향으로 돌아가려 해도 '알샤밥'이 여전히 그곳에 있어서 갈 수가 없다"고 말하며 덧붙였다.
"제가 이 이야기를 계속 하면, 밤이 될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그만하는 게 낫겠어요." (계속)
▲마을 한 편에 건축에 쓰기 위한 목재가 쌓여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기사의 모든 피난민의 이름은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썼습니다. 고향, 피난 시기 등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사에서 지역 구분 Province는 '주'로, 주 내의 행정구역 District는 '구'로 번역했습니다.
- 마리아 : 마코미아구 무코조 출신. 2019년 3월 무장단체의 마을 습격으로 피난.
- 호아키나 : 키상가구 출신. 2019년 피난.
- 살리모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19년 11월 피난.
- 아싸니 : 마코미아구 샤이 출신. 2020년 피난.
- 마을 대표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20년 피난.
- 파울로 : 키상가구 카젬베 출신. 2020년 2월 피난.
- 셀리마 : 마코미아구 샤이 출신. 2020년 여름 피난.
- 압달라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20년 10월, 2022년 두 번 피난.
- 라시드 : 시우레구 마제제 출신. 2023년 2월 피난.
- 우쎄네 : 시우레구 시우레벨류 출신. 2024년 3월 피난.
※ 용어 통일 : 카부델가두에서 무력 공격행위를 이어가는 무장 단체는 '반군'이라고 적었습니다. 일련의 폭력 사태와 무력 충돌은 '분쟁'이라고 적었습니다.
※ 이 기사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손가영 기자(bada@pressian.com)]
바다이야기APK 개발지역 카부델가두주는 9년 째 분쟁이 끝나지 않는다. 최소 6200여 명이 죽고 130만 명이 피난했으며, 가난은 더 심화했다. 분쟁과 가난은 가스전과 이어져 있고, 가스전에서 나올 돈은 한국과 이어져 있다. 기후 정의의 눈으로 본 모잠비크 가스전 현장을 9개 기사로 연재한다. 가장 먼저 분쟁의 모습부터 전한다. 편집자
마리아(35) 골드몽 는 6년 전 그날을 아직 생생히 기억했다. 2019년 3월, 무장한 반군이 고향 마을 무코조(Mucojo)를 습격해 방화, 살상을 벌였다. 총성이 들리자 마리아는 마을 뒤 숲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내리 3일을 숲에 숨어 지냈다. 풀숲과 나무 기둥에 몸을 숨겼고, 밤이 되면 나무 아래에서 잤다. 물도, 밥도 없이 견뎠다.
마리아는 그날 삼촌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의 머리도 손수 땅에 묻었다. 습격자들은 삼촌의 머리를 잘랐다. 그러곤 잘린 머리를 그의 아내에게 줘 직접 들고 가게 했다. 마리아는 도망친 숲에서 가족들과 땅을 파고 삼촌의 머리를 묻어줬다. 삼촌 말고도 머리가 잘린 이웃들은 많았다.
3일 후, 마리아는 피난을 떠났다. 가족, 이웃 등 수십 명이 함께 였다. 대부분이 신발을 신을 새 없이 바다이야기다운로드 도망친 상태였다. 이들은 맨발로 꼬박 15시간 동안 45㎞(킬로미터) 숲길을 걸어 읍내 마코미아(Macomia)시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노인과 아이들 여럿이 죽었다. 마리아는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파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며 "우리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고 말했다.
피난민을 딱히 여긴 한 주민이 이들을 시우레(Chiure) 온라인골드몽 구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남쪽으로 150여㎞ 떨어진, 그때는 반군의 영향권 밖에 있었던 카부델가두(Cabo Delgado)주 최남단 지역이다. 마리아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6년째 이곳 시우레의 메가루마 강제실향민 마을(Megaruma IDPs center)에서 산다.
<프레시안>은 지난해 11월 29~30일 이틀간 메가루마 실향민 마을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만난 10명의 피난민이 가장 절박하게 얘기한 건 식량이다. 이들은 "너무 배가 고프다", "죄수처럼 살고 있다", "너무 오래 굶고 있다"라고 힘겹게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파울로(왼쪽)와 셀리마의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2015년 11월 29일 방문한 카부델가두주 메가루마 강제실향민 마을(Megaruma IDPs center). ⓒ프레시안(손가영)
가장 가난한 땅, 카부델가두
모잠비크 카부델가두는 분쟁지역이다. 2017년 10월부터 지금까지 9년째 반군과 정부군의 무력 충돌과 폭력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출국을 권고하는 적색경보를 발령 중이다.
반군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알샤바브(Al-Shabaab)', '안사르 알순나(Ansar al-Sunna)' 등 종교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단어부터 비국가 무장 단체 등이다. 지역 주민들은 알샤바브라고 흔히 부르고, 유엔(UN)은 비국가 무장 단체라고 표현한다. 이들이 등장한 맥락은 복합적이다. 종교, 민족, 빈곤, 불평등, 정부 부패, 자원 착취 등의 문제가 오래 누적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금까지 130만여 명 피난민이 발생했다. 주 전체 인구 대비 46.4%다. 이 중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 주민도 있고, 2번 이상 피난을 반복하는 주민도 있다. 실향민 마을은 주 전역에 98개(2024년 7월 기준)가 있다. 이곳 메가루마 실향민 마을은 2020년 만들어졌다. 지금은 5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초기 반군의 목표는 공무원과 경찰, 군인 등이었으나, 폭력 행위는 민간인 살상, 약탈, 방화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확산했다. 주민의 정체를 의심하는 군인과 경찰의 주민 살해와 약탈 문제도 심각하다. <프레시안>이 만난 실향민 10명 모두 "누구도 구원하지 않는 땅"이라고 비관했다.
이 방문한 IDP 마을과 LNG 개발지인 아푼지 지역을 표시했다. ⓒ프레시안(손가영)"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1/26/pressian/20260126071040496lqjg.png" data-org-width="640" dmcf-mid="ftWlOOjJ5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6/pressian/20260126071040496lqjg.png" width="658">
▲모잠비크 카부델가두주 위치(왼쪽)와 카부델가두 확대 지도. 분홍색 점은 인터뷰에 응한 피난민 10명의 고향이다. 노란색 점은 <프레시안>이 방문한 IDP 마을과 LNG 개발지인 아푼지 지역을 표시했다. ⓒ프레시안(손가영)
호아키나(61)는 2019년 가족 넷을 잃었다. 반군이 고향 마을을 습격했을 때, 그의 딸은 남편과 아이 2명과 함께 집 안에 있었다. 습격자들은 그 집에 불을 질렀다. 호아키나는 딸의 가족이 산 채로 불타는 것을 봤다. 그는 다른 가족들 5명과 함께 숲으로 도망쳤다.
"반군이 사람들을 참수했어요. 이웃들의 잘린 머리 사이로 도망쳤어요. 걷고, 걷고, 또 걸었어요. 계속 숲속에서 잤어요. 그렇게 계속 걸었더니 도로에 이르렀어요. 누군가의 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어요. 모두가 오진 못했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노인과 아이들이 먼저 죽어갔어요. 몇 명이 죽었냐고요? 그건 몰라요. 그러나 매우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건 알아요."(호아키나)
살해된 가족, 이웃을 땅에 손수 묻어준 피난민도 한둘이 아니다. 6년 전 이곳에 온 중년 남성 아싸니는 "머리가 잘린 삼촌과 조카의 시신을 직접 땅에 묻어 줬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첫 습격이 시작된 때 숲으로 도망쳐 3개월간 노숙했다. 3개월간 카사바(모잠비크 주식인 뿌리식물)와 물만 먹었다. 마을이 잠잠해진 때 다시 돌아갔으나, 무장 세력에게 내쫓겼다. 그는 "사냥하듯 숲까지 우릴 쫓아왔고, 사람들을 죽였다"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과정이 고통이었다. 지금도 고통밖엔 없다." 아싸니는 이리 말하며, 정주하지 못하는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마을에서 다시 추방된 후 인근 큰 마을로 도망가 그곳에서 다른 이의 농사를 대신해 주거나 임시직을 전전하며 돈을 모았고, 돈을 번 즉시 남쪽의 남풀라주까지 피신했다. 농부였던 그에게 생계는 곧 농사였다. 그러나 농지는 구할 수 없었고, 집세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곳 실향민 마을로 찾아오게 됐다.
▲실향민 마을의 집. 피난민들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한다. ⓒ프레시안(손가영)
▲인터뷰에 응한 아싸니의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군경도 주민 살상
어떤 여성들은 피난길에 출산했다. 파울로(53)가 2020년 2월 가족 9명과 함께 고향에서 도망쳤을 때, 그의 아내는 출산이 임박했다.
"아내와 아이들, 형제들을 데리고 도로가 보일 때까지 15㎞ 정도를 하염없이 걸었어요. 1시간 정도 기다리니 차가 지나갔고, 우릴 도와줬어요. 다음 날 다시 차를 빌려 타고 남쪽을 가는데 다리가 끊겨 있었어요. 강을 걸어서 건너야 했어요. 그렇게 또 길에서 차를 빌려 타고 또 타, 이곳까지 왔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첫 번째 실향민입니다."
습격은 두 번 세 번 되풀이되고 있다. 그의 마을도 2년 후 두 번째 습격을 받았다. 고향엔 피난을 떠나지 못한 이들이 남아 있었다. 파울로는 "다시 마을에 방화, 살해가 이어졌고, 이번엔 37명이 참수됐다"고 전했다. 남은 이들은 해안에서 배를 구해 70㎞를 넘게 항해해 남부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임신한 그의 조카는 숲속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반군의 살상에 더해, 모잠비크 군경의 가혹행위도 주민들을 힘들게 한다. 살리모(45)의 고향 마을은 2019년 11월 반군의 습격으로 12명이 사망했다. 살리모는 "그러나 군대와 반군을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대가 숲속에 있는 자들(반군)보다 더 나쁠 때가 있다"며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아 가기도 일쑤"라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 피난을 온 압달라(40)도 "반군, 군대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압달라는 2020년 이곳으로 처음 피난을 왔다가 2022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고향에서 군대가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다시 고향에서 도망쳤다. 그는 "주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주민을 '알샤바브'라 몰아세우며 죽이기 시작했다"며 "사람이 죽어가는 곳에 머물 수 없다. 우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근 도로 모잠비크 군대 차량. ⓒ프레시안(손가영)
▲셀리마가 두 살 난 아이를 안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땅은 사람 버리지 않아' 귀향 간절한 사람들
"너무 오래 굶고 있어요. 우리는 농부예요. 그런데 땅이 없어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돈을 벌 수 없고, 나를 먹일 수가 없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두 살 아이를 안은 채 인터뷰에 응한 셀리마(24)는 "죄수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카부델가두 주민들은 대다수가 농부, 어부다. 이들에게 피난은 생계의 붕괴다. 셀리마는 "음식을 구하려면 다른 이들의 농지에 가서 일을 해주고 카사바를 얻는 방법밖엔 없다"며 "그런데 주인들로부턴 부당대우를 받기 일쑤고, 우린 농지를 임대할 돈도 없다"고 말했다. 한 해 1000메티칼(약 2만 4000원) 임대료도 낼 형편이 안 돼, 농지 임대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교통비 100메티칼(약 2400원)조차 내지 못해,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 처지다.
그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싸니는 "땅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Land never reject anyone)"는 지역의 오랜 속담을 말했다. "농부들은 땅이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고향엔 그런 땅이 있었고, 우린 살아갈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하지만 여기선 그렇게 살 수가 없다"며 "고향에 꼭 돌아가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12명의 자녀를 둔 파울로는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서 농사와 기계수리를 하며 살았다. 피난 후, 고혈압 증세가 심해진 그는 그동안 여러 번 쓰러졌다. "병원에 갈 수는 있지만, 병원에 약이 없다. 약은 비싼 사립 약국에 있다"고 말했다. "멀리 북부에 사는 아들 하나가 캐슈너트를 팔아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옥수수를 사먹으면서 산다"고도 했다.
피난 초기 지원받았던 가재도구들, 이를테면 냄비, 바구니, 오두막집, 지붕으로 쓸 비닐 등은 지난해 초대형 사이클론으로 모두 잃었다. 모잠비크는 기후변화로 심각한 기상이변을 겪는 나라다. 파울로는 "모든 게 사라져 고향으로 돌아가려 해도 '알샤밥'이 여전히 그곳에 있어서 갈 수가 없다"고 말하며 덧붙였다.
"제가 이 이야기를 계속 하면, 밤이 될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그만하는 게 낫겠어요." (계속)
▲마을 한 편에 건축에 쓰기 위한 목재가 쌓여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기사의 모든 피난민의 이름은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썼습니다. 고향, 피난 시기 등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사에서 지역 구분 Province는 '주'로, 주 내의 행정구역 District는 '구'로 번역했습니다.
- 마리아 : 마코미아구 무코조 출신. 2019년 3월 무장단체의 마을 습격으로 피난.
- 호아키나 : 키상가구 출신. 2019년 피난.
- 살리모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19년 11월 피난.
- 아싸니 : 마코미아구 샤이 출신. 2020년 피난.
- 마을 대표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20년 피난.
- 파울로 : 키상가구 카젬베 출신. 2020년 2월 피난.
- 셀리마 : 마코미아구 샤이 출신. 2020년 여름 피난.
- 압달라 :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 출신. 2020년 10월, 2022년 두 번 피난.
- 라시드 : 시우레구 마제제 출신. 2023년 2월 피난.
- 우쎄네 : 시우레구 시우레벨류 출신. 2024년 3월 피난.
※ 용어 통일 : 카부델가두에서 무력 공격행위를 이어가는 무장 단체는 '반군'이라고 적었습니다. 일련의 폭력 사태와 무력 충돌은 '분쟁'이라고 적었습니다.
※ 이 기사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손가영 기자(bad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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