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관계, 낯설어진 당신, 프릴리지로 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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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1-13 13:45조회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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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관계, 낯설어진 당신,
프릴리지로 돌릴 수 있을까
점점 멀어지는 당신, 프릴리지로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오랜 시간 함께한 관계일수록 안정감과 편안함이 커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관계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반대로 점차 낯설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연애 초기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사라지고, 익숙함 대신 거리감이 느껴질 때, 우리는 상대와 다시 가까워질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특히, 성적 관계에서 오는 단절감은 이 거리감을 더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생활의 만족도가 줄어들면서 대화와 감정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기고, 결국 서로에게 낯설고 멀어진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존재합니다. 바로, 조루증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조루증은 남성들 사이에서 흔한 문제이지만,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확실하고 전문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프릴리지Priligy입니다.
프릴리지란 무엇인가?
프릴리지는 조루증 치료를 위한 전문적인 약물로, 성생활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관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프릴리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치료제로, 조루 문제를 개선하여 남성과 그 파트너 모두가 더욱 만족스러운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프릴리지의 주성분은 다폭세틴Dapoxetine으로, 이는 조루증 치료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약물입니다. 다폭세틴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하여 사정 시간을 조절하고 연장하는 효과를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남성은 자신감을 되찾고, 파트너와의 성적 친밀감 또한 회복할 수 있습니다.
프릴리지의 장점
1. 빠른 작용 시간
프릴리지는 복용 후 약 1시간 내에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계획된 성적 활동 전에 복용하면, 즉각적인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안정적인 사정 시간 연장
임상 연구에 따르면, 프릴리지를 복용한 남성의 사정 시간이 복용 전보다 최대 3~4배 연장될 수 있습니다. 이는 성적 관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3. 파트너와의 친밀감 회복
프릴리지는 단순히 약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와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성적 만족도가 높아지면 정서적인 유대감도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4. 전문적인 안전성
프릴리지는 조루증 치료를 목적으로 설계된 전문 약물로, 철저한 임상 실험과 승인을 거쳐 안전성을 입증받았습니다. 전문가의 상담과 함께 복용하면 부작용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성적 자신감 회복의 중요성
성적 관계는 단순한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감정과 소통, 신뢰를 바탕으로 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조루증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이 이어지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쌓여 관계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프릴리지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을 줍니다. 조루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성적 자신감을 회복하고, 이로 인해 더 적극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관계가 회복되면 대화와 일상적인 교감 역시 자연스럽게 증가하며,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됩니다.
프릴리지의 복용법
1. 적절한 복용 시점
프릴리지는 성적 활동 약 1~3시간 전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공복 상태나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어 일상 속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2. 하루 한 번 복용 권장
프릴리지는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해야 하며, 과다복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한 복용량이 다를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3. 주의사항
심장 질환, 간 또는 신장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 복용 전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해야 합니다.
다른 약물을 복용 중인 경우 상호작용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에게 알리십시오.
프릴리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
1. 전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치료제
프릴리지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조루증 치료제로 승인받은 전문 의약품입니다. 이는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2. 즉각적이면서도 지속적인 효과
프릴리지는 복용 후 빠르게 효과를 발휘하면서도, 장기적인 관계 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단기적인 만족감뿐 아니라, 성생활 전반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3. 파트너와 함께하는 행복
성생활에서의 만족도는 단순히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파트너와의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서로 간의 신뢰와 애정 또한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프릴리지를 통해 더 많은 기쁨과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다시 가까워지는 관계, 프릴리지와 함께
낯설어진 관계를 다시 뜨겁고 친밀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관계는 다시 예전처럼 따뜻하고 의미 있는 순간들로 가득 채워질 수 있습니다.
프릴리지는 단순히 조루증을 해결하는 약물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더 이상 낯설어진 관계 속에서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프릴리지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소중한 사람과 다시 가까워지세요.
프릴리지로 평범한 날들을 특별하게, 멀어진 마음들을 가까이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먼저 변화를 시작할 차례입니다.
레비트라 과다복용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권장 용량을 준수해야 합니다. 레비트라 구매는 공인된 판매처나 약국에서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며, 정품 여부를 꼭 확인하세요. 레비트라 복용법은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 가능하지만,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알코올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레비트라 복제약은 저렴한 가격으로 유혹할 수 있으나, 효과와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으니 정품 사용을 추천드립니다. 안전한 복용을 위해 비아그라구매 사이트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세요.
기자 admin@slotmega.info
8년만에 상봉한 김 씨 부부와 맏딸 장류보브 씨 (남양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8년만에 상봉한 김순자(왼쪽) 할머니와 남편 김현선(오른쪽)옹, 딸 장류보브(가운데)씨가 기자의 요청에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5.11.1. phyeonsoo@yna.co.kr
(남양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초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스민 지난 1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한 영구임대아파트. 기자가 초인종을 누르자, 문 너머에서 환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김순자(80) 할머니와 남편 김현선(93) 옹, 딸 바다이야기부활 장류보브(59)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정부가 영주귀국한 사할린동포에게 제공한 비좁지도, 넓지도 않은 66㎡의 보금자리. 그러나 이 집은 누군가에게는 정착의 끝,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닿기 어려운 '조국'이다.
두 모녀는 지난 10월 30일 8년 만에 상봉했다. 장 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 할머니는 그 릴게임다운로드 자리에서 딸을 끌어안고 참아온 눈물을 터뜨렸다고 했다.
김 할머니에게 당시 심정을 묻자, "무슨 말이 필요해요. 마냥 좋기만 하죠"라며 해맑게 웃는 얼굴엔 소녀 같은 미소가 번졌고, 눈가엔 그리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식탁에는 한국과 사할린이 한 상에 담겼다. 김 할머니가 준비한 김치와 시금치, 떡갈 바다신릴게임 비 등 한국 음식과 딸이 러시아에서 가져온 연어알, 새우젓, 소시지가 함께 올랐다. 식탁에 둘러앉은 세 사람 사이로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오가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식사 후에는 러시아산 산딸기 차에 초콜릿과 과자가 디저트로 나왔다.
오찬에 앞서 기념 촬영한 김씨 가족 (남양 릴게임바다이야기 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오찬에 앞서 포즈를 취한 김 할머니 가족. 2025.11.1. phyeonsoo@yna.co.kr
장류보브씨를 비롯한 사할린동포 2·3세 40명이 재외동포청과 대한적십자사 초청으로 모국을 찾았다.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사할린 현지를 방문하기 어려운 영주귀국 1세대 부 무료릴게임 모와 조부모를 만나기 위해서다.
'사할린동포 2·3세 모국방문 지원사업'은 2017년 시작됐지만,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5년간 중단됐다가 5년만에 재개됐다.
그러나 직항이 사라진 길은 멀고도 험했다. 장씨는 사할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하이를 거쳐 하루 넘게 날아왔다. "예전엔 3시간이었는데…" 김 할머니는 "어서 직항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애틋하게 말했다.
사할린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로 이주당하거나 현지에서 태어난 한인 약 2만6천명이 살고 있다. 1905년 러일전쟁 후 일본이 석탄과 목재가 풍부한 사할린섬을 점령하고, 1938년 국가총동원령으로 젊은 조선인 남성들을 탄광과 벌목장으로 끌고 갔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사할린동포 2·3세 (서울=연합뉴스) 사할린 동포 2·3세들이 국내에 영주귀국한 조부모와 부모를 만나기 위해 10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재외동포청 제공]
김 할아버지의 가족도 강원도 삼척에서 일본 홋카이도로, 다시 사할린 탄광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에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1946년 미·소 협정에서 송환 대상을 '일본인'으로 한정하면서 한인들은 귀국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들은 평생을 '무국적자'로 살아야 했다.
"일본 사람들은 모두 떠났는데, 우리는 어디 갈 데가 없었어요."
김 할머니는 1968년 아버지를 잃었고, 조국은 기억 속 고향으로만 남았다.
1992년 대한적십자사 초청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아 아버지 고향인 충북 괴산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가족들은 괴산에 남겨둔 채 아버지만 사할린으로 떠났고, 김 할머니는 사할린에서 태어났다.
오빠·언니들과 속리산을 함께 다니며 애틋한 시간을 보냈지만, 2010년 다시 찾았을 때 언니들은 소식이 끊겼고, 오빠는 치매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살아서 다시 만났는데… 내가 누군지도 몰라보더라고요."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1992년부터 1세대 영주귀국이 허용됐지만 2·3세는 제외돼 가족들은 또다시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현재 사할린에는 1세대 동포 약 300명이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 3천여명이 영주귀국했다.
김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15년째 이곳에서 생활한다. 임대료는 대한적십자사가 전액 부담하고, 공과금은 할인이 적용된다.
"부부 각자 50만원씩 기초지원금을 받아 합계 100만원으로 생활해요. 의료보험 혜택으로 병원비와 약값을 거의 내지 않아요. 공원과 산책로도 잘 돼 있어 건강관리도 수월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장류보브 씨 (서울=연합뉴스) 장류보브(오른쪽)씨가 부모를 만나기 위해 10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재외동포청 제공]
김 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배웠고, 소련 점령 후 북한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한글 교육을 받았다. 이후 러시아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지진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대학 강의도 했다. 영주 귀국 후엔 서울대학교에서 지진과 쓰나미 관련 특강을 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첫 번째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사할린에서 소를 키우고, 양복점을 운영하며 어렵게 네 딸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자식들이 장성한 후 재혼했다.
"제대로 공부시켜야 '머저리'가 되지 않아요. 큰딸과 둘째 딸은 사범대학을 나와 영어를 가르치고, 막내딸은 휴대전화 회사에 취직했어요."
특히 손주 넷을 둔 할머니가 된 장씨는 과거 한국 식당에서 일할 때 무시와 차별을 겪고 사할린으로 돌아간 쓰라린 상처가 있다. 그래도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가 됐으니 뿌듯하다"며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류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냉장고에는 김 할머니 손녀 결혼식 사진이 붙어 있었다.
"제 결혼기념일이기도 한 지난 10월 10일 손녀가 결혼했는데, 가보지도 못하고 사진으로만 봤어요."
장 씨는 "명절 때 부모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며 "연세가 많아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어머니랑 여기서 살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어에 서툰 그가 한국에 정착하기엔 언어와 적응의 장벽이 높다. 게다가 러시아에 사는 자녀들과 손주들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김 할머니도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러시아 학교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어요. 한국에 와서 사는 것이 고생스럽기도 하죠."
젊은 시절 찍은 김 할머니 사진과 태극기 (남양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거실 한쪽에 60년 전 찍은 김 할머니 사진과 8년전 제주도에서 찍은 부부 사진이 태극기, 러시아 국기와 함께 진열돼 있다. 2025. 11.1. phyeonsoo@yna.co.kr
오는 12일 러시아로 귀국할 때까지 2주간, 모녀는 함께 시장도 가고 산책도 하며 떨어져 있던 시간을 채울 예정이다.
김 할머니는 딸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자주 보자. 이제 늙어서 만날 날도 얼마 안 남았어."
거실 한쪽에는 60년 전 사진과 함께 태극기와 러시아 국기가 나란히 있어 눈에 띄었다.
"열아홉에 농장서 한 달 일해서 산 옷 입고 찍은 거예요."
또 8년 전 제주도에서 조랑말을 타고 찍은 부부 사진도 진열돼 있었다. 늙어가는 걸 아쉬워하면서도,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눈빛이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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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초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스민 지난 1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한 영구임대아파트. 기자가 초인종을 누르자, 문 너머에서 환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김순자(80) 할머니와 남편 김현선(93) 옹, 딸 바다이야기부활 장류보브(59)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정부가 영주귀국한 사할린동포에게 제공한 비좁지도, 넓지도 않은 66㎡의 보금자리. 그러나 이 집은 누군가에게는 정착의 끝,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닿기 어려운 '조국'이다.
두 모녀는 지난 10월 30일 8년 만에 상봉했다. 장 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 할머니는 그 릴게임다운로드 자리에서 딸을 끌어안고 참아온 눈물을 터뜨렸다고 했다.
김 할머니에게 당시 심정을 묻자, "무슨 말이 필요해요. 마냥 좋기만 하죠"라며 해맑게 웃는 얼굴엔 소녀 같은 미소가 번졌고, 눈가엔 그리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식탁에는 한국과 사할린이 한 상에 담겼다. 김 할머니가 준비한 김치와 시금치, 떡갈 바다신릴게임 비 등 한국 음식과 딸이 러시아에서 가져온 연어알, 새우젓, 소시지가 함께 올랐다. 식탁에 둘러앉은 세 사람 사이로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오가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식사 후에는 러시아산 산딸기 차에 초콜릿과 과자가 디저트로 나왔다.
오찬에 앞서 기념 촬영한 김씨 가족 (남양 릴게임바다이야기 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오찬에 앞서 포즈를 취한 김 할머니 가족. 2025.11.1. phyeonsoo@yna.co.kr
장류보브씨를 비롯한 사할린동포 2·3세 40명이 재외동포청과 대한적십자사 초청으로 모국을 찾았다.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사할린 현지를 방문하기 어려운 영주귀국 1세대 부 무료릴게임 모와 조부모를 만나기 위해서다.
'사할린동포 2·3세 모국방문 지원사업'은 2017년 시작됐지만,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5년간 중단됐다가 5년만에 재개됐다.
그러나 직항이 사라진 길은 멀고도 험했다. 장씨는 사할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하이를 거쳐 하루 넘게 날아왔다. "예전엔 3시간이었는데…" 김 할머니는 "어서 직항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애틋하게 말했다.
사할린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로 이주당하거나 현지에서 태어난 한인 약 2만6천명이 살고 있다. 1905년 러일전쟁 후 일본이 석탄과 목재가 풍부한 사할린섬을 점령하고, 1938년 국가총동원령으로 젊은 조선인 남성들을 탄광과 벌목장으로 끌고 갔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사할린동포 2·3세 (서울=연합뉴스) 사할린 동포 2·3세들이 국내에 영주귀국한 조부모와 부모를 만나기 위해 10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재외동포청 제공]
김 할아버지의 가족도 강원도 삼척에서 일본 홋카이도로, 다시 사할린 탄광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에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1946년 미·소 협정에서 송환 대상을 '일본인'으로 한정하면서 한인들은 귀국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들은 평생을 '무국적자'로 살아야 했다.
"일본 사람들은 모두 떠났는데, 우리는 어디 갈 데가 없었어요."
김 할머니는 1968년 아버지를 잃었고, 조국은 기억 속 고향으로만 남았다.
1992년 대한적십자사 초청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아 아버지 고향인 충북 괴산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가족들은 괴산에 남겨둔 채 아버지만 사할린으로 떠났고, 김 할머니는 사할린에서 태어났다.
오빠·언니들과 속리산을 함께 다니며 애틋한 시간을 보냈지만, 2010년 다시 찾았을 때 언니들은 소식이 끊겼고, 오빠는 치매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살아서 다시 만났는데… 내가 누군지도 몰라보더라고요."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1992년부터 1세대 영주귀국이 허용됐지만 2·3세는 제외돼 가족들은 또다시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현재 사할린에는 1세대 동포 약 300명이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 3천여명이 영주귀국했다.
김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15년째 이곳에서 생활한다. 임대료는 대한적십자사가 전액 부담하고, 공과금은 할인이 적용된다.
"부부 각자 50만원씩 기초지원금을 받아 합계 100만원으로 생활해요. 의료보험 혜택으로 병원비와 약값을 거의 내지 않아요. 공원과 산책로도 잘 돼 있어 건강관리도 수월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장류보브 씨 (서울=연합뉴스) 장류보브(오른쪽)씨가 부모를 만나기 위해 10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재외동포청 제공]
김 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배웠고, 소련 점령 후 북한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한글 교육을 받았다. 이후 러시아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지진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대학 강의도 했다. 영주 귀국 후엔 서울대학교에서 지진과 쓰나미 관련 특강을 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첫 번째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사할린에서 소를 키우고, 양복점을 운영하며 어렵게 네 딸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자식들이 장성한 후 재혼했다.
"제대로 공부시켜야 '머저리'가 되지 않아요. 큰딸과 둘째 딸은 사범대학을 나와 영어를 가르치고, 막내딸은 휴대전화 회사에 취직했어요."
특히 손주 넷을 둔 할머니가 된 장씨는 과거 한국 식당에서 일할 때 무시와 차별을 겪고 사할린으로 돌아간 쓰라린 상처가 있다. 그래도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가 됐으니 뿌듯하다"며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류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냉장고에는 김 할머니 손녀 결혼식 사진이 붙어 있었다.
"제 결혼기념일이기도 한 지난 10월 10일 손녀가 결혼했는데, 가보지도 못하고 사진으로만 봤어요."
장 씨는 "명절 때 부모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며 "연세가 많아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어머니랑 여기서 살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어에 서툰 그가 한국에 정착하기엔 언어와 적응의 장벽이 높다. 게다가 러시아에 사는 자녀들과 손주들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김 할머니도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러시아 학교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어요. 한국에 와서 사는 것이 고생스럽기도 하죠."
젊은 시절 찍은 김 할머니 사진과 태극기 (남양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거실 한쪽에 60년 전 찍은 김 할머니 사진과 8년전 제주도에서 찍은 부부 사진이 태극기, 러시아 국기와 함께 진열돼 있다. 2025. 11.1. phyeonsoo@yna.co.kr
오는 12일 러시아로 귀국할 때까지 2주간, 모녀는 함께 시장도 가고 산책도 하며 떨어져 있던 시간을 채울 예정이다.
김 할머니는 딸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자주 보자. 이제 늙어서 만날 날도 얼마 안 남았어."
거실 한쪽에는 60년 전 사진과 함께 태극기와 러시아 국기가 나란히 있어 눈에 띄었다.
"열아홉에 농장서 한 달 일해서 산 옷 입고 찍은 거예요."
또 8년 전 제주도에서 조랑말을 타고 찍은 부부 사진도 진열돼 있었다. 늙어가는 걸 아쉬워하면서도,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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