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슬롯 이라고도 불리우는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과 무슨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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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2-07 00:28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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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슬롯 이라고도 불리우는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과 무슨 차이일까대한민국 슬롯 게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바로 '바다이야기슬롯'입니다. 이 추억의 게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쿠아슬롯'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슬롯 시장에 다시 등장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면서 과연 이 오리지널 버전과 새롭게 선보이는 버전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이 궁금증을 명확하게 해결하고, 현명하게 슬롯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드리고자 합니다.
바다이야기슬롯과 아쿠아슬롯, 그 뿌리 깊은 연결고리
먼저 바다이야기슬롯과 아쿠아슬롯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다이야기슬롯은 한때 전국의 성인오락실을 뜨겁게 달구었던 전설적인 아케이드 게임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게임 플레이와 시원한 그래픽으로 수많은 플레이어를 매료시켰죠. 시간이 흘러 온라인슬롯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 바다이야기슬롯의 핵심적인 요소와 감성을 계승하여 온라인 플랫폼에 맞게 재해석된 것이 바로 아쿠아슬롯입니다. 따라서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초창기 아쿠아슬롯의 형태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바다이야기슬롯의 고유한 게임성과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버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아쿠아슬롯은 바다이야기슬롯의 정통성을 잇는 온라인슬롯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리지널 버전과 새로운 버전의 핵심적인 차이점
그렇다면 바다이야기슬롯의 정신을 계승한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과 현재 온라인에서 서비스되는 다양한 아쿠아슬롯, 혹은 그 이후에 개발된 프리미엄 슬롯 게임들 사이에는 어떤 구체적인 차이가 있을까요?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픽 및 사운드 개선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단연 그래픽과 사운드입니다. 초기 바다이야기슬롯과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은 당시 기술 수준에 맞는 그래픽과 사운드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최신 온라인슬롯 게임들은 고화질 그래픽, 다채로운 애니메이션 효과, 그리고 더욱 몰입감 넘치는 입체적인 사운드를 자랑합니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훨씬 풍부한 유저 경험을 제공하여 게임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것이죠. 모바일 슬롯 환경에 최적화된 부드러운 전환과 반응성도 큰 장점입니다.
게임 플레이 및 기능 추가
초기 바다이야기슬롯은 비교적 단순한 릴과 페이라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버전의 아쿠아슬롯 및 최신 슬롯 게임들은 '프리 스핀', '보너스 게임', '확장 와일드', '프로그레시브 잭팟' 등 더욱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능들을 추가하여 게임 플레이의 깊이를 더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기능들은 당첨의 기회를 늘리고, 예측 불가능한 재미를 선사하며 플레이어의 몰입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접근성 및 플랫폼 확장
바다이야기슬롯은 특정 장소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아케이드 게임이었고,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도 주로 PC 환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온라인슬롯은 PC는 물론 스마트폰, 태블릿 등 다양한 모바일 기기에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접속하여 즐길 수 있습니다. 완벽한 모바일 호환성을 제공하며,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또한 각 기기에 최적화되어 더욱 편리한 접근성을 제공합니다.
안정성 및 보안, 그리고 라이선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바로 안정성과 보안, 그리고 라이선스 여부입니다. 바다이야기슬롯의 명성을 이용하여 사설 서버나 불법 사이트에서 운영되는 유사 게임들은 조작된 환수율(RTP)과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인해 금전적 손실이나 개인 정보 유출의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반면,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운영되는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과 같은 합법적인 온라인슬롯 플랫폼들은 철저한 보안 시스템과 공정한 게임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는 투명한 환수율 공개, 안정적인 서버 운영, 그리고 신속한 고객 지원으로 이어져 플레이어에게 신뢰할 수 있는 슬롯게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왜 정식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을 선택해야 하는가
수많은 온라인슬롯 게임 중에서 정식으로 서비스되는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 혹은 그 정통성을 이은 검증된 프리미엄 슬롯 게임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안전합니다. 불법 사이트의 먹튀나 조작으로부터 소중한 자산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둘째, 공정합니다.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환수율(RTP)을 보장하며, 모든 게임 결과가 무작위로 결정되어 누구에게나 공정한 당첨 기회가 주어집니다. 셋째, 편리하고 안정적인 유저 경험을 제공합니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플랫폼은 끊김 없는 게임 플레이와 쾌적한 환경을 보장합니다. 마지막으로, 문제 발생 시 전문적인 고객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안심하고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바다이야기슬롯의 추억과 아쿠아슬롯 오리지널버전의 감성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더욱 진화된 기술과 보안 속에서 온라인슬롯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정식 라이선스를 갖춘 검증된 플랫폼을 선택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불법 사이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현명하고 안전하게 프리미엄 슬롯 게임의 진정한 재미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기자 admin@119sh.info
김창열 작가의 1967년 작 아크릴그림 ‘제사’ 연작의 세부. 청년기 겪은 한국전쟁의 광풍 같은 기억들을 마구 쓸고 지나가는 붓질 흔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노형석 기자
폭격과 총격을 피해 도망치면서 작가는 목격했다. 주검에 뚫린 총알구멍이며, 진창이 된 마을 터와 피난길을 짓뭉개고 지나간 탱크와 장갑차의 섬뜩한 주행 흔적들을. 몸서리가 쳐지고 살아남은 자의 회한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그 기억을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평생 떨칠 수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8월부터 열리고 있는 바다이야기꽁머니 실향민 출신의 작고 작가 김창열(1929~2021)의 회고전(21일까지)은 트라우마처럼 달라붙은 전쟁기의 기억들이 ‘물방울’로 유명한 60년 회화 세계에서 어떻게 발현됐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평남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은 해방 뒤 홀로 월남해 미대를 다니다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그만둬야 했다. 전시는 작가가 전쟁 때 겪은 참혹한 전상의 무료릴게임 기억을 표상한 작품들로 시작한다. 6전시실 ‘상흔’의 들머리에 붙어 있는 1967년 작 ‘제사’는 유년기 삶을 휩쓸고 지나간 전란의 광풍 같은 기억을 물감을 잔뜩 묻힌 거친 붓질로 마구 쓸고 지나간 흔적처럼 표현했다. 그림 옆에는 짧은 회고 글이 붙어 있는데, 전시를 이해하는 단적인 실마리가 된다. ‘6·25 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온라인릴게임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
김창열 작가가 1965년 그린 유화 ‘제사’ 연작의 세부. 전쟁을 겪으며 작가가 무수히 목격한 총알의 구멍과 흔적들을 떠올리며 창작한 앵포르멜 화풍의 작품이다. 노형석 기자
바다이야기게임장
전시는 물방울 연작으로 대중적 명망을 얻은 추상미술 대가 김창열의 창작 여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대표작과 미공개 작품 31점을 포함해 1950년대 초기작부터 미국 뉴욕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별세할 때까지 그린 작품 120여점을 보여준다. 여기에 각종 서신, 사진, 문서, 영상 등의 아카이브를 온라인골드몽 처음 망라한 연대기 얼개를 씌워 대가의 화력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꾸려놓았다.
전시는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등록상표와 같은 작품인 ‘물방울’이 탄생하게 된 역사·정서적 배경과 이후 물방울 회화의 인문적 변천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미술사적으로 주목되는 건 총상의 상상력으로 집약되는 1부 ‘상흔’의 앵포르멜 연작들과 2부 1960년대 뉴욕 시기와 파리 시기 초창기 작업들. 깔아뭉갠 흔적이나 총알구멍을 연상케 하는 제사 연작이 전란의 비극적 상황을 추체험하게 한다.
7전시실 들머리의 1960년대 미국 뉴욕 시절 작업들을 펼쳐놓은 공간. 오른쪽 옆에 그가 1968년 작업했던 플렉시글라스 설치 조형물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6전시실에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면 7전시실 들머리에 뉴욕 시절 작업을 펼쳐놓은 공간이 나타난다. 전쟁의 상흔을 표상했던 음울한 색조와 형상이 사라지고 밝고 평면적인 화면 위에 둥근 덩어리들과 기의 흐름을 묘사한 듯한 도상들이 도열하듯 양쪽 벽에 내걸려 있다. 오른쪽 옆에 1968년 작업했던 플렉시글라스 설치 조형물이 보이는데, 이어진 유기적 형태의 파리 시절 초기 작업들과 연계되면서 1970년대 초반 등장하는 물방울의 전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7전시실 중반부와 가장 깊은 쪽에서 ‘물방울’ 회화의 전개 과정이 펼쳐진다. 1971년 작가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물방울’은 습작 성격으로 그린 가로세로 50㎝ 정도의 소품이다. 같은 해 노란색 바탕에 실제 실을 붙여 실험적으로 작업한 비슷한 크기의 다른 물방울 소품도 짝처럼 남아 내걸렸다. 작가는 생전에 공식적인 최초의 물방울 작품을 1972년 전시로 선보였던 ‘밤에 일어난 일’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두 작품은 그보다 제작 시기가 앞선 물방울 그림이다. 미술관 쪽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가 내보이지 않았던 두 소품을 파리 화실에서 유족 협조로 처음 발굴했다는 의미가 크다.
1971년 작가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물방울’. 습작 성격으로 그린 가로 세로 50㎝ 정도의 소품이다. 같은 해 노란색 바탕에 실제 실을 붙여 실험적으로 작업한 비슷한 크기의 다른 물방울 소품도 짝처럼 남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가 공식적으로 내보이지 않았던 두 소품을 유족들의 협조로 발굴했다. 노형석 기자
1970년대 물방울 회화를 한창 그리던 장년의 김창열 작가. 그의 아들 김오안 감독이 2022년 제작한 김창열의 다큐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 나오는 사진이다. 노형석 기자
7전시실의 들머리를 지나면 그의 물방울 화폭들을 뒷모습만 보인 채 쌓아놓은 작품 공간이 펼쳐진다. 이 공간을 배경으로 작가가 물방울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상영돼 발길을 멈춰 세우고 있다. 이어지는 가장 깊숙한 안쪽 공간에서 전시의 고갱이로 꼽히는 김창열의 1987년 역작 ‘SH87032’(서울미술관 소장)이 어둠 속에 빛난다. 우둘투둘한 한지 표면 위에 소슬하게 칠한 물방울 모양이 부처상이 손가락을 뻗어 자비의 염력을 보내는 수인처럼 와닿는다. 화폭의 물성과 붓질한 물방울 도상의 정신성이 고고하게 어울린 합일의 경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번 전시의 고갱이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김창열의 1987년 작 ‘SH87032’의 세부. 우둘투둘한 한지 표면 위에 소슬하게 칠한 물방울 모양이 부처상이 손가락을 뻗어 자비심을 발산하는 수인처럼 와닿는다. 서울미술관 소장품으로 지하 7전시실 가장 깊숙한 안쪽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미술관에서 가장 깊은 지하에 있는 7전시실 들머리를 지나면 그의 물방울 화폭들을 뒷모습만 보인 채 쌓아놓은 공간이 펼쳐진다. 이 공간을 배경으로 작가가 물방울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전시는 이후 분리된 다른 7전시장 공간에서 1980년대 이후 본격화한 천자문 등의 고문서 이미지와 물방울의 만남, 2층 8전시실에서 ‘별책부록’이라고 미술관이 명명한, 작가의 사진과 서신, 영상, 미공개 자료, 소품 등의 아카이브 공간을 잇따라 내보여준다. 전란의 기억에서 출발해 미국과 프랑스에서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전후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정련된 물방울 회화를 창안하고 이런 작업 흐름이 1990년대 이후 문자 텍스트와 본격적으로 만나 매너리즘으로 흐르는 양상까지 일목요연하게 잡아내 전시에 담았다.
1960년대 중반 뉴욕 시절의 구체적 작업 행적이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고, 지하 본전시 공간과 2층 공간이 단절돼 말미 전시를 못본 채 나가버리는 상황이 일어난다는 미술관 동선의 구조적 한계는 맹점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이번 회고전은 물방울 작가로만 여겨졌던 김창열을 연약한 인간의 몸과 정신을 역사적으로 성찰한 휴머니스트 예술가로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만하다.
2013년 김창열 작가가 뉴욕 시절 지인의 딸에게 보낸 물방울 그림 연하장. 8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김창열 작가의 1994년 작 ‘회귀’의 세부. 노형석 기자
8전시장에는 2003년 뉴욕 지인의 딸에게 손수 작은 마포화폭을 붙여 그려 보낸 물방울 연하장이 내걸려 있다. 연하장 속 그림 옆에 김창열은 인생에서 느낀 깨달음을 또박또박 자필로 적어놓았다. ‘두 아기 데리고 쩔쩔 매고 때로는 짜증도 내고 - 그것이 행복이니라’.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폭격과 총격을 피해 도망치면서 작가는 목격했다. 주검에 뚫린 총알구멍이며, 진창이 된 마을 터와 피난길을 짓뭉개고 지나간 탱크와 장갑차의 섬뜩한 주행 흔적들을. 몸서리가 쳐지고 살아남은 자의 회한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그 기억을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평생 떨칠 수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8월부터 열리고 있는 바다이야기꽁머니 실향민 출신의 작고 작가 김창열(1929~2021)의 회고전(21일까지)은 트라우마처럼 달라붙은 전쟁기의 기억들이 ‘물방울’로 유명한 60년 회화 세계에서 어떻게 발현됐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평남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은 해방 뒤 홀로 월남해 미대를 다니다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그만둬야 했다. 전시는 작가가 전쟁 때 겪은 참혹한 전상의 무료릴게임 기억을 표상한 작품들로 시작한다. 6전시실 ‘상흔’의 들머리에 붙어 있는 1967년 작 ‘제사’는 유년기 삶을 휩쓸고 지나간 전란의 광풍 같은 기억을 물감을 잔뜩 묻힌 거친 붓질로 마구 쓸고 지나간 흔적처럼 표현했다. 그림 옆에는 짧은 회고 글이 붙어 있는데, 전시를 이해하는 단적인 실마리가 된다. ‘6·25 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온라인릴게임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
김창열 작가가 1965년 그린 유화 ‘제사’ 연작의 세부. 전쟁을 겪으며 작가가 무수히 목격한 총알의 구멍과 흔적들을 떠올리며 창작한 앵포르멜 화풍의 작품이다. 노형석 기자
바다이야기게임장
전시는 물방울 연작으로 대중적 명망을 얻은 추상미술 대가 김창열의 창작 여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대표작과 미공개 작품 31점을 포함해 1950년대 초기작부터 미국 뉴욕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별세할 때까지 그린 작품 120여점을 보여준다. 여기에 각종 서신, 사진, 문서, 영상 등의 아카이브를 온라인골드몽 처음 망라한 연대기 얼개를 씌워 대가의 화력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꾸려놓았다.
전시는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등록상표와 같은 작품인 ‘물방울’이 탄생하게 된 역사·정서적 배경과 이후 물방울 회화의 인문적 변천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미술사적으로 주목되는 건 총상의 상상력으로 집약되는 1부 ‘상흔’의 앵포르멜 연작들과 2부 1960년대 뉴욕 시기와 파리 시기 초창기 작업들. 깔아뭉갠 흔적이나 총알구멍을 연상케 하는 제사 연작이 전란의 비극적 상황을 추체험하게 한다.
7전시실 들머리의 1960년대 미국 뉴욕 시절 작업들을 펼쳐놓은 공간. 오른쪽 옆에 그가 1968년 작업했던 플렉시글라스 설치 조형물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6전시실에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면 7전시실 들머리에 뉴욕 시절 작업을 펼쳐놓은 공간이 나타난다. 전쟁의 상흔을 표상했던 음울한 색조와 형상이 사라지고 밝고 평면적인 화면 위에 둥근 덩어리들과 기의 흐름을 묘사한 듯한 도상들이 도열하듯 양쪽 벽에 내걸려 있다. 오른쪽 옆에 1968년 작업했던 플렉시글라스 설치 조형물이 보이는데, 이어진 유기적 형태의 파리 시절 초기 작업들과 연계되면서 1970년대 초반 등장하는 물방울의 전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7전시실 중반부와 가장 깊은 쪽에서 ‘물방울’ 회화의 전개 과정이 펼쳐진다. 1971년 작가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물방울’은 습작 성격으로 그린 가로세로 50㎝ 정도의 소품이다. 같은 해 노란색 바탕에 실제 실을 붙여 실험적으로 작업한 비슷한 크기의 다른 물방울 소품도 짝처럼 남아 내걸렸다. 작가는 생전에 공식적인 최초의 물방울 작품을 1972년 전시로 선보였던 ‘밤에 일어난 일’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두 작품은 그보다 제작 시기가 앞선 물방울 그림이다. 미술관 쪽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가 내보이지 않았던 두 소품을 파리 화실에서 유족 협조로 처음 발굴했다는 의미가 크다.
1971년 작가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물방울’. 습작 성격으로 그린 가로 세로 50㎝ 정도의 소품이다. 같은 해 노란색 바탕에 실제 실을 붙여 실험적으로 작업한 비슷한 크기의 다른 물방울 소품도 짝처럼 남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가 공식적으로 내보이지 않았던 두 소품을 유족들의 협조로 발굴했다. 노형석 기자
1970년대 물방울 회화를 한창 그리던 장년의 김창열 작가. 그의 아들 김오안 감독이 2022년 제작한 김창열의 다큐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 나오는 사진이다. 노형석 기자
7전시실의 들머리를 지나면 그의 물방울 화폭들을 뒷모습만 보인 채 쌓아놓은 작품 공간이 펼쳐진다. 이 공간을 배경으로 작가가 물방울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상영돼 발길을 멈춰 세우고 있다. 이어지는 가장 깊숙한 안쪽 공간에서 전시의 고갱이로 꼽히는 김창열의 1987년 역작 ‘SH87032’(서울미술관 소장)이 어둠 속에 빛난다. 우둘투둘한 한지 표면 위에 소슬하게 칠한 물방울 모양이 부처상이 손가락을 뻗어 자비의 염력을 보내는 수인처럼 와닿는다. 화폭의 물성과 붓질한 물방울 도상의 정신성이 고고하게 어울린 합일의 경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번 전시의 고갱이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김창열의 1987년 작 ‘SH87032’의 세부. 우둘투둘한 한지 표면 위에 소슬하게 칠한 물방울 모양이 부처상이 손가락을 뻗어 자비심을 발산하는 수인처럼 와닿는다. 서울미술관 소장품으로 지하 7전시실 가장 깊숙한 안쪽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미술관에서 가장 깊은 지하에 있는 7전시실 들머리를 지나면 그의 물방울 화폭들을 뒷모습만 보인 채 쌓아놓은 공간이 펼쳐진다. 이 공간을 배경으로 작가가 물방울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전시는 이후 분리된 다른 7전시장 공간에서 1980년대 이후 본격화한 천자문 등의 고문서 이미지와 물방울의 만남, 2층 8전시실에서 ‘별책부록’이라고 미술관이 명명한, 작가의 사진과 서신, 영상, 미공개 자료, 소품 등의 아카이브 공간을 잇따라 내보여준다. 전란의 기억에서 출발해 미국과 프랑스에서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전후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정련된 물방울 회화를 창안하고 이런 작업 흐름이 1990년대 이후 문자 텍스트와 본격적으로 만나 매너리즘으로 흐르는 양상까지 일목요연하게 잡아내 전시에 담았다.
1960년대 중반 뉴욕 시절의 구체적 작업 행적이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고, 지하 본전시 공간과 2층 공간이 단절돼 말미 전시를 못본 채 나가버리는 상황이 일어난다는 미술관 동선의 구조적 한계는 맹점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이번 회고전은 물방울 작가로만 여겨졌던 김창열을 연약한 인간의 몸과 정신을 역사적으로 성찰한 휴머니스트 예술가로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만하다.
2013년 김창열 작가가 뉴욕 시절 지인의 딸에게 보낸 물방울 그림 연하장. 8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김창열 작가의 1994년 작 ‘회귀’의 세부. 노형석 기자
8전시장에는 2003년 뉴욕 지인의 딸에게 손수 작은 마포화폭을 붙여 그려 보낸 물방울 연하장이 내걸려 있다. 연하장 속 그림 옆에 김창열은 인생에서 느낀 깨달음을 또박또박 자필로 적어놓았다. ‘두 아기 데리고 쩔쩔 매고 때로는 짜증도 내고 - 그것이 행복이니라’.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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