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으로 호감을 키우는 방법자신감을 되찾는 비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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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2-06 05:36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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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 호감을 키우는 방법
자신감을 되찾는 비맥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소통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진심어린 대화, 공감, 이해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자신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남성의 경우, 자신감은 성적 건강과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함께 개선되어야만 비로소 건강한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비맥스VIMAX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솔루션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온 뛰어난 약초와 처방을 선별하여 현대 과학으로 제조한 100 천연 성분 남성 강장제입니다. 비아그라나 시알리스와 같은 화학성분 제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성이 없고 안전하게 성기능을 개선하고 남성의 자신감을 높여줍니다.
1. 자신감의 시작성기능 개선
자신감을 키우는 첫 번째 단계는 성적 자신감입니다. 남성에게 성적인 능력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이는 대인 관계에서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성기능 저하나 발기력 문제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초래하고, 결국 연인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비맥스는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호르몬 균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로 인해 발기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며, 지속력 또한 강화됩니다. 비맥스의 효과적인 성분들이 신체 내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남성의 성기능을 자연스럽게 개선해 성적인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더 큰 소통을 가능하게 하여, 서로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 성기 확대외적인 자신감까지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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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맥스는 혈류량 증가와 성기 조직 확장을 도와 성기의 크기와 굵기에서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꾸준한 복용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며, 성적 기능뿐만 아니라 외적인 자신감도 함께 상승합니다. 성기의 크기 변화는 단순히 외모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고, 남성의 심리적 안정감과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연인과의 소통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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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맥스의 주요 성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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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손베리 심혈관 건강을 증진시키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인삼 피로 회복 및 체력 증진 효과가 뛰어나, 남성의 전반적인 활력과 면역력을 강화합니다.
이러한 성분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성적 건강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함께 증진시켜, 남성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연인과의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만들어 줍니다.
4. 복용 방법과 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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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맥스 복용 시 주의 사항
복용 후 과음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복용 중 불편함이 있을 경우, 전문가와 상담을 권장합니다.
5. 비맥스로 얻는 자신감과 소통의 변화
남성의 자신감은 단순히 신체적인 요소에서만 비롯되지 않습니다. 정신적 안정과 건강한 소통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비맥스는 신체적 건강을 돌보며, 정신적 안정감까지 함께 제공하여 남성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연인과의 관계에서 더 나은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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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맥스와 함께, 더 깊은 소통을 나누세요
소통의 핵심은 자신감입니다.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관리하고, 비맥스를 통해 성적 자신감을 회복한 남성은 연인과의 관계에서 더욱 깊은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비맥스는 단순히 성기능 개선을 넘어서, 자신감 있는 대화와 서로의 이해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비맥스를 통해 얻은 자신감은 연인과의 관계를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비맥스와 함께라면, 자신감 넘치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비맥스자연이 주는 자신감, 깊은 소통을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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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mega.info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인 이와테 현의 게이비케이(猊鼻溪) 협곡은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서 경치를 감상하는 빼어난 경관의 국가 명승이다. 경관도 경관이지만 옛 그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풍류를 느낄 수 있다.
미야기 현·이와테 현·야마가타 현(일본)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지난주 일본 미야기(宮城) 현의 ‘미야기 올레길’ 걷기 이야기가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여행으로 이어진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 이웃들과 교유하는 미시(微視)의 시선으로 미야기 올레를 말했다면, 새로 바다이야기게임 꺼낸 도호쿠 이야기는 바깥에서 자연의 전경(全景)과 풍류(風流)를 보는 거시(巨視)의 시선으로 본 여행 이야기다.
도호쿠의 중심이자 관문인 미야기 현의 센다이에서 시작해 경계를 잇대고 있는 이와테(岩手) 현과 야마가타(山形) 현의 이름난 곳을 돌아봤다.
미야기 현도 그렇지만, 이와테와 야마가타도 여행 명소가 적잖아서 꼽 바다이야기하는법 을 곳이 한 보따리인데, 그중 한 곳씩만 골라냈다. 선정 기준은 순전히 ‘미야기 현에서 가까운 곳’이다. 미야기 올레를 걷고 나서, 혹은 걷기 전에 들를 곳들에 대한 제안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이쯤이면 짐작하겠지만, 이번 도호쿠 여행의 중심도 결국 ‘미야기 올레’라는 얘기다.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주와 똑같은 단서를 다시 되풀이한다. 릴게임 ‘지금부터는 모든 논쟁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여행자, 또는 도보 여행자의 관점에서 본 도호쿠 지방의 여행 이야기다.’
# 센다이에서 맛보는 소 혀 구이
여행자 입장에서 보면 일본 도호쿠 지방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전혀 다른 곳이 됐다.
도호쿠의 명소는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바다이야기고래 사소한 호기심과 가벼운 흥분이 교차하는 여행지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즐거움’의 정반대쪽에는 ‘무거운 이야기’가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로 이어지는 재난의 기억이다. 땅에, 그리고 기억에 깊이 새겨진 상처가 14년이 지났다고 어찌 지워질 수 있을까.
도호쿠 지 바다이야기합법 방의 이름난 명소 정취는 여전히 근사하지만, 이제 그것만 볼 수는 없다. 도호쿠는 이제 재앙의 기억과 분리할 수 없는 여행지가 됐다. 도호쿠를 여행한다면 무거운 이야기도 보고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단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자. ‘먹는’ 이야기다. 센다이에는 ‘규탄야끼’가 있다. 숯불에 구운 소 혀 요리다. 규탄이란 일본어로 소고기를 뜻하는 ‘규(牛)’에다, 혀를 뜻하는 영어단어 ‘텅(Tongue)’을 이어붙여 만든 조어(造語). 칼집을 내고 살짝 간이 배도록 양념해서 숯불에 구워 먹는데 고소한 맛과 독특한 식감, 그리고 진한 숯불 향이 매력적이다.
센다이 규탄의 맛은 전적으로 재료를 다루는 솜씨와 숯불에 굽는 조리법에서 나온다. ‘센다이의 소’라고 해서 혀가 다를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얘기다.
# 레트로 뒷골목의 매력
센다이에 가거든 규탄야끼는 되도록 ‘요코초(橫丁)’에서 맛보길 권한다. 센다이에는 ‘뒷골목’쯤으로 번역되는 요코초가 여럿 있다. 요코초는 큰 거리에서 한두 블록 떨어진 곳에 허름한 술집과 식당이 모여 있는 좁은 골목이다. 대부분 테이블 두어 개가 고작이거나 예닐곱 명쯤 앉을 수 있는 바 형태다. 센다이의 요코초의 시작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음식 못잖게 골목과 식당의 레트로 느낌의 분위기도 좋다.
센다이 요코초 중에서 ‘분카요코초(文化橫丁)’와 ‘이나리고지(稻荷小路)’를 추천한다. 규탄요리를 처음 시작했다는 원조 식당이 이나리고지에 있다. ‘아지타스케(味太助)’다.
1948년 이곳에서 소금구이로 내놓은 게 규탄야끼의 시작이다. 워낙 유명한 식당이라 줄이 긴 편인데, 외국인 관광객으로 들끓는 다른 일본 도시의 유명식당보다는 사정이 한결 낫다. 점심보다 저녁이 덜 붐빈다. 규탄 1인분은 1600엔(약 1만5000원). 손바닥 3분의 1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고기 3장이 나온다. 양이 적긴 하지만 그다지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소 혀는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다.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잖다. 그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딱 한 번만 먹어보라’는 것이다. 도호쿠 지방으로 가는 여행을 소개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도 이와 비슷하다. 한번 가보시라.
센다이를 대표하는 무사 출신 인물인 다테 마사무네의 밀랍인형.
# 어디서나 보인다… 다테 마사무네
미야기 현과 센다이 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가 ‘규탄’이라면 두 번째는 ‘다테 마사무네’다. 다테 마사무네는 일본 센고쿠(戰國)시대 센다이를 다스렸던 첫 번째 영주였다. 무사였으나 정작 실전에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인물이나 풍채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어릴 적 앓았던 천연두로 한쪽 눈을 실명했고, 당시 기준으로는 작지 않은 것이라지만 키도 158㎝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다테 마사무네는 늘 ‘일본인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 순위의 상위권에 오른다. 뛰어난 협상가이자 처세에 능한 외교가였으며 운하정비, 농지개간, 상인·기술자 우대 등의 조치로 경제 성장을 이끄는 출중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외모나 치장에 신경을 썼고 요리 취미까지 가진 친근한 느낌의 현대적 인물이라는 점도 인기에 한몫한다.
센다이 관광의 대표 명소는 마사무네가 축성했다는 센다이 성이다. 천수각은 처음부터 지어지지 않았고, 다른 건물도 파괴되거나 불타서 사라져 터만 남았지만, 옛 성이 있던 자리는 도심을 내려다보는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성터에는 말을 탄 마사무네 동상이 있다. 반달 모양 장식을 단 투구를 쓴 400년 전의 마사무네가 고층건물이 가득한 현대적인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센다이에는 다테 마사무네의 묘 ‘즈이호덴(瑞鳳殿)’도 있다. 생전에 화려한 걸 좋아했던 성정 때문인지 묘 또한 현란하다. 묘소의 전각에는 갖가지 문양을 새기고 다양한 색을 칠했으며 마감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 금색으로 칠했다.
다테 마사무네의 자취가 이런 유적지에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다테 마사무네는 게임 속 캐릭터에도, 피규어에도 있다. 일본에서 화려하고 멋진 남자를 흔히 ‘다테모노(伊達者)’나 ‘다테오(伊達男)’라 부르는데, 이것도 ‘다테 마사무네 같은 남자’란 뜻이다.
# 일본이 꼽은 3곳 명승 중 하나
다른 얘기를 하다가, 뒤로 밀린 감이 없지 않다. 미야기 현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명소 ‘마쓰시마(松島)’ 얘기다.
마쓰시마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명승지 세 곳을 뜻하는 ‘일본 3경(日本三景)’ 중 하나다. 명승 세 곳을 정한 건 1643년 일본의 유학자인 하야시 라잔(林羅山)이다.
그는 마쓰시마와 함께 교토 북부 해안의 아마노 하시다테(天橋立)와 히로시마의 섬 이쓰쿠시마(嚴島)를 3경으로 뽑았다. 아마노 하시다테는 바다를 건너가는 방파제처럼 생긴 사주 해변의 솔숲이고, 이쓰쿠시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신사가 있는 섬이다. ‘미야지마’라고도 부른다.
따로 순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본 3경에서 늘 첫 번째로 꼽는 곳이 마쓰시마다. 마쓰시마의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송도(松島), 즉 ‘소나무 섬’이다. 마쓰시마는 소나무로 뒤덮인 260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군도(群島)다.
마쓰시마에는 기기묘묘한 형태의 섬들이 있다. 풍화와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석주(石柱)처럼 생긴 섬도 있고, 네댓 개의 구멍이 뚫린 섬도 있다.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이런 섬을 둘러본다. 선상 유람시간은 50분 남짓. 비수기에 적용하는 할인 요금이 1200엔이다. 행락철에는 줄이 길어 인터넷으로 사전구매하는 걸 권하지만, 겨울철에는 한적한 편이다.
마쓰시마 유람선은 자리가 중요하다. 보통 승선 티켓에는 좌석이 지정되지 않는데, 진행 방향으로 봤을 때 오른쪽 자리를 선점하는 게 요령. 배 왼쪽보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명승과 경관이 더 많고, 더 근사하다.
마쓰시마를 이룬 섬을 내려다보는 자리. 오타카모리(大高森) 산 정상이다. ‘사대관(四大觀)’이라 불리는 네 곳의 마쓰시마 전망대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곳이다. 미야기올레 오쿠마쓰시마 코스가 여기를 지나간다.
# 섬의 장관(壯觀)을 볼 수 있는 자리
마쓰시마에 ‘시다이칸(四大觀)’이 있다. 한자의 뜻을 해석하면 ‘4대 전망대’다. 마쓰시마 만(灣)의 섬을 조망할 수 있는 4곳의 조망 명소를 말한다.
4곳의 명소마다 거기서 보는 마쓰시마의 풍경이 다른데, 그 느낌에 따라 따로 이름을 붙였다.
‘위대한 경치’를 뜻하는 이칸(偉觀)과 ‘유려한 풍경’을 보여주는 유칸(幽觀), ‘고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레칸(麗觀), 마지막으로 ‘장관의 경치’를 보여주는 소칸(壯觀). 이렇게 네 곳이다.
보통의 여행자는 모든 곳을 하나하나 다 섭렵할 정도의 여유가 없을 테니, 이 중 한 곳만 골라서 간다. 넷 중 한 곳만 고르라면 당연히 마쓰시마의 ‘장관’을 보여주는 소칸이 아닐까.
소칸은 마쓰시마 동남쪽의 해발 105m의 작은 산 ‘오타카모리(大高森)’ 정상이다. 미야기올레의 두 번째 코스인 ‘오쿠마쓰시마’ 코스도 여길 지나간다.
마쓰시마 주위에는 산책으로 즐길 수 있는 해안의 명소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절집 ‘즈이간지(瑞巖寺)’다. 퇴락한 사찰을 다테 마사무네가 1609년 중건한 사찰이다. 그가 사찰 중건에 힘을 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겠다. 하나는 마사무네가 사찰 중건을 통해 스스로 이 지역의 정신적, 정치적, 문화적 의식의 계승자임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 마쓰시마의 경관과 풍류의 명소를 즐기기에 딱 좋은 자리에 거점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나름의 속셈도 있었으리라.
즈이간지 법당 내부는 장식과 구성, 그리고 그림으로 현란하다. 여기에도 ‘다테’류의 화려함이 있다. 벽과 복도에 그려진 크고 작은 161개의 장식 그림의 색채감이 뛰어나다.
잘 꾸며진 정원도 볼만하지만, 무엇보다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저택 마당의 대문 양옆에서 자라는 늙은 매화나무다. 이 매화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다테 마사무네가 우리 창덕궁에서 가져간 것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청에 마지못해 진주성전투에 참여했지만 전투에는 줄곧 소극적이었다. 임진왜란을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야마가타 현의 절집 릿샤쿠지(立石寺)의 법당 건물인 ‘가이산도(開山堂)’.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특급 전망대다.
# 무릉도원의 계곡과 천공의 절집
이제 미야기 현의 북쪽 이와테 현으로 건너간다. 이와테 현에는 ‘게이비케이(猊鼻溪)’가 있다. 높이 100m를 오르내리는 절벽 사이로 물길이 흐르는 협곡이다.
일본 말로 ‘게이’로 읽는 한자는 ‘사자 예(猊)’자. 이어 ‘코 비(鼻)’자를 쓰니 ‘사자 코 계곡’이란 뜻이다. 석회암 지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협곡 안쪽 수직 절벽의 형상이 사자 코를 닮았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게이비케이 계곡은 1925년 10월 국가 명승으로 지정됐고, 2년 뒤인 1927년에는 마이니치(每日)신문사가 주최한 ‘일본 100경(景)’에 선정됐다.
본래 변방에 숨겨져 있던 이름없는 오지 계곡을 세상에 알린 건 교육자 출신의 사토 히로시(佐藤衡)다. 교육자 출신의 마을 이장쯤 되는 인물인데, 경관보존과 관광개발에 팔을 걷어붙여서 이곳을 내로라하는 관광지로 만들었다.
계곡의 경관은 배를 타고 본다. 사공이 긴 삿대 하나로 밀고 가는 나룻배를 타고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 상류에서 내려 산책을 즐기다가 다시 배를 타고 되돌아 나오는 코스다. 산책 시간을 포함하면 왕복 1시간 30분쯤이다. 요금은 1800엔. 아름답기로는 신록의 봄과 단풍의 가을이 최고라지만, 여름철 녹음과 겨울철 수묵화 풍경도 근사하다.
계곡 안쪽 경관은 ‘선경(仙境)’이라 할 만큼 근사하다. 수묵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경치가 펼쳐져 마치 다른 세상으로 빠져들어 간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 미야기 현과 동서로 경계를 두고 있는 야마가타 현으로 간다. 야마가타 현 북서쪽에 절집 ‘야마데라(山寺)’가 있다. 우리식으로 한자를 읽으면 ‘산사’, 즉 ‘산에 있는 절’이다. 보통명사를 제 이름처럼 쓰고 있는데, 정확한 사찰 이름은 ‘릿샤쿠지(立石寺)’다. 입석이란 한자 이름처럼 사찰은 돌계단 참배 길이 올라가는 바위 산 위에 있다.
릿샤쿠지를 대표하는 건 정상 능선의 바위 끝 올라앉은 전각 ‘가이산도(開山堂)’다. 그곳을 찍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여행자들을 매혹한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을 두고 ‘북일본 최고의 경치 중 하나’라고도 하는데, 후하게 쳐준다 해도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만 협곡과 벼랑에 들어앉아 있는 법당 모습은 견줄 만한 곳을 쉽게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근사하다.
쓰나미 피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가도노와키(門脇)초등학교 건물. 폐교된 학교 건물이 재난현장을 보존한 전시관이 됐다.
# 비극과 슬픔을 담아내는 공간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대비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그런 일.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일. 14년 전 도호쿠 지방 주민들이 겪은 사상 최악의 참사 ‘동일본대지진’이 바로 그랬다.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곳이 미야기 현이다. 전국적으로 1만9729명이 희생됐는데, 이 중 1만566명이 미야기 현 주민이었다. 전체 사망자의 절반이 넘는다. 사망자로 집계되지 않은 행방불명 주민 1219명도 있다.
미야기 현에 속한 도시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지자체는 수산업의 중심이었던 이시노마키(石卷) 시다. 인구 13만 명으로 센다이에 이은 미야기 현의 제 2도시.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었던 데다 인구가 밀집 어항(漁港)이었으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쓰나미 이후 큰불까지 나면서 마을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가 3552명에 달한다.
이시노마키에는 위령비도 있고, 공원도 있고, 기억을 보존한 전승관(傳承館)도 있다. 미증유의 재난이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담아낸 슬픔의 공간이라고 짐작했지만, 가서 보니 눈물과 애도보다는 미래세대로 당시의 경험을 전달하는 쪽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추모관이 아니라 ‘전승관(傳承館)’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인 듯했다.
가도노와키초등학교 건물 내부에 전시해놓은 책상과 빈 의자.
# 교유와 공감, 그리고 선의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지름 40m 원통형의 전승관 건물은 외벽을 투명유리로 마감해 모든 방향을 바라다볼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높은 북쪽의 지붕 높이는 6.9m. 이 지역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차오른 바닷물의 높이다.
전시관에는 당시의 피해 상황과 교훈을 소개하는 영상을 상영했는데, 상영관 입구에 ‘쓰나미 장면이 나온다’는 주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될 만큼 쓰나미는 처참한 기억이었다.
전승관 인근에는 폐교가 된 가도노와키(門脇) 초등학교 교사(校舍)가 있다. 마을을 쓸어버린 쓰나미를 이 학교 건물이 온몸으로 받아냈다. 쓰나미 당시 학교에는 화재까지 나면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학교는 전시관이 됐다.
그을리고 무너진 학교 건물도 그랬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폐교 건물 주변과 운동장을 가득 채운 묘비였다. 숫자와 통계로는 짐작할 수 없었던 죽음의 실재적 숫자를 실감했다.
폐허가 된 학교에는, 전승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꼭꼭 숨겨뒀던 슬픔과 눈물이 있었다. 처참하게 구겨진 소방차와 폭격을 맞은 듯한 교실. 덩그러니 주인 잃은 책상과 의자 하나를 미술품처럼 전시해놓기도 했고, 재해 지역에서 새싹을 틔운 식물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주민들이 쓰나미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적은 글을 받아 걸어놓은 복도도 있다. 폐허의 학교가 보여주는 비통함과 슬픔은, 거기 가서 봐야만 느끼거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꼭 여기가 아니어도 좋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마을마다 비슷한 곳들이 많다. 도호쿠 지역을 여행한다면 대지진과 쓰나미를 기억하는 공간을 꼭 들러보시길. 여행이란 모름지기 이곳과 저곳을 잇는 교유가 바탕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믿음이 여행을, 나아가서는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는 생각. 그래서 여행이 종래에 ‘사람을 선하게 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 계곡에서 운수 시험하기
게이비케이(猊鼻溪) 협곡 나룻배를 타면, 계곡 안쪽의 선착장에서 내려서 물 건너편으로 사자 코 모양의 바위를 볼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갈 수 있다. 사자 코 바위가 있는 수직 벼랑 중간쯤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나 있는데, 돌을 던져 그 안에 넣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마을 주민들이 흙으로 구워 만든 작은 돌을 사서 구멍에 던져 운수를 시험해볼 수 있다.
박경일 기자
미야기 현·이와테 현·야마가타 현(일본)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지난주 일본 미야기(宮城) 현의 ‘미야기 올레길’ 걷기 이야기가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여행으로 이어진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 이웃들과 교유하는 미시(微視)의 시선으로 미야기 올레를 말했다면, 새로 바다이야기게임 꺼낸 도호쿠 이야기는 바깥에서 자연의 전경(全景)과 풍류(風流)를 보는 거시(巨視)의 시선으로 본 여행 이야기다.
도호쿠의 중심이자 관문인 미야기 현의 센다이에서 시작해 경계를 잇대고 있는 이와테(岩手) 현과 야마가타(山形) 현의 이름난 곳을 돌아봤다.
미야기 현도 그렇지만, 이와테와 야마가타도 여행 명소가 적잖아서 꼽 바다이야기하는법 을 곳이 한 보따리인데, 그중 한 곳씩만 골라냈다. 선정 기준은 순전히 ‘미야기 현에서 가까운 곳’이다. 미야기 올레를 걷고 나서, 혹은 걷기 전에 들를 곳들에 대한 제안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이쯤이면 짐작하겠지만, 이번 도호쿠 여행의 중심도 결국 ‘미야기 올레’라는 얘기다.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주와 똑같은 단서를 다시 되풀이한다. 릴게임 ‘지금부터는 모든 논쟁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여행자, 또는 도보 여행자의 관점에서 본 도호쿠 지방의 여행 이야기다.’
# 센다이에서 맛보는 소 혀 구이
여행자 입장에서 보면 일본 도호쿠 지방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전혀 다른 곳이 됐다.
도호쿠의 명소는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바다이야기고래 사소한 호기심과 가벼운 흥분이 교차하는 여행지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즐거움’의 정반대쪽에는 ‘무거운 이야기’가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로 이어지는 재난의 기억이다. 땅에, 그리고 기억에 깊이 새겨진 상처가 14년이 지났다고 어찌 지워질 수 있을까.
도호쿠 지 바다이야기합법 방의 이름난 명소 정취는 여전히 근사하지만, 이제 그것만 볼 수는 없다. 도호쿠는 이제 재앙의 기억과 분리할 수 없는 여행지가 됐다. 도호쿠를 여행한다면 무거운 이야기도 보고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단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자. ‘먹는’ 이야기다. 센다이에는 ‘규탄야끼’가 있다. 숯불에 구운 소 혀 요리다. 규탄이란 일본어로 소고기를 뜻하는 ‘규(牛)’에다, 혀를 뜻하는 영어단어 ‘텅(Tongue)’을 이어붙여 만든 조어(造語). 칼집을 내고 살짝 간이 배도록 양념해서 숯불에 구워 먹는데 고소한 맛과 독특한 식감, 그리고 진한 숯불 향이 매력적이다.
센다이 규탄의 맛은 전적으로 재료를 다루는 솜씨와 숯불에 굽는 조리법에서 나온다. ‘센다이의 소’라고 해서 혀가 다를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얘기다.
# 레트로 뒷골목의 매력
센다이에 가거든 규탄야끼는 되도록 ‘요코초(橫丁)’에서 맛보길 권한다. 센다이에는 ‘뒷골목’쯤으로 번역되는 요코초가 여럿 있다. 요코초는 큰 거리에서 한두 블록 떨어진 곳에 허름한 술집과 식당이 모여 있는 좁은 골목이다. 대부분 테이블 두어 개가 고작이거나 예닐곱 명쯤 앉을 수 있는 바 형태다. 센다이의 요코초의 시작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음식 못잖게 골목과 식당의 레트로 느낌의 분위기도 좋다.
센다이 요코초 중에서 ‘분카요코초(文化橫丁)’와 ‘이나리고지(稻荷小路)’를 추천한다. 규탄요리를 처음 시작했다는 원조 식당이 이나리고지에 있다. ‘아지타스케(味太助)’다.
1948년 이곳에서 소금구이로 내놓은 게 규탄야끼의 시작이다. 워낙 유명한 식당이라 줄이 긴 편인데, 외국인 관광객으로 들끓는 다른 일본 도시의 유명식당보다는 사정이 한결 낫다. 점심보다 저녁이 덜 붐빈다. 규탄 1인분은 1600엔(약 1만5000원). 손바닥 3분의 1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고기 3장이 나온다. 양이 적긴 하지만 그다지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소 혀는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다.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잖다. 그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딱 한 번만 먹어보라’는 것이다. 도호쿠 지방으로 가는 여행을 소개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도 이와 비슷하다. 한번 가보시라.
센다이를 대표하는 무사 출신 인물인 다테 마사무네의 밀랍인형.
# 어디서나 보인다… 다테 마사무네
미야기 현과 센다이 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가 ‘규탄’이라면 두 번째는 ‘다테 마사무네’다. 다테 마사무네는 일본 센고쿠(戰國)시대 센다이를 다스렸던 첫 번째 영주였다. 무사였으나 정작 실전에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인물이나 풍채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어릴 적 앓았던 천연두로 한쪽 눈을 실명했고, 당시 기준으로는 작지 않은 것이라지만 키도 158㎝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다테 마사무네는 늘 ‘일본인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 순위의 상위권에 오른다. 뛰어난 협상가이자 처세에 능한 외교가였으며 운하정비, 농지개간, 상인·기술자 우대 등의 조치로 경제 성장을 이끄는 출중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외모나 치장에 신경을 썼고 요리 취미까지 가진 친근한 느낌의 현대적 인물이라는 점도 인기에 한몫한다.
센다이 관광의 대표 명소는 마사무네가 축성했다는 센다이 성이다. 천수각은 처음부터 지어지지 않았고, 다른 건물도 파괴되거나 불타서 사라져 터만 남았지만, 옛 성이 있던 자리는 도심을 내려다보는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성터에는 말을 탄 마사무네 동상이 있다. 반달 모양 장식을 단 투구를 쓴 400년 전의 마사무네가 고층건물이 가득한 현대적인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센다이에는 다테 마사무네의 묘 ‘즈이호덴(瑞鳳殿)’도 있다. 생전에 화려한 걸 좋아했던 성정 때문인지 묘 또한 현란하다. 묘소의 전각에는 갖가지 문양을 새기고 다양한 색을 칠했으며 마감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 금색으로 칠했다.
다테 마사무네의 자취가 이런 유적지에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다테 마사무네는 게임 속 캐릭터에도, 피규어에도 있다. 일본에서 화려하고 멋진 남자를 흔히 ‘다테모노(伊達者)’나 ‘다테오(伊達男)’라 부르는데, 이것도 ‘다테 마사무네 같은 남자’란 뜻이다.
# 일본이 꼽은 3곳 명승 중 하나
다른 얘기를 하다가, 뒤로 밀린 감이 없지 않다. 미야기 현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명소 ‘마쓰시마(松島)’ 얘기다.
마쓰시마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명승지 세 곳을 뜻하는 ‘일본 3경(日本三景)’ 중 하나다. 명승 세 곳을 정한 건 1643년 일본의 유학자인 하야시 라잔(林羅山)이다.
그는 마쓰시마와 함께 교토 북부 해안의 아마노 하시다테(天橋立)와 히로시마의 섬 이쓰쿠시마(嚴島)를 3경으로 뽑았다. 아마노 하시다테는 바다를 건너가는 방파제처럼 생긴 사주 해변의 솔숲이고, 이쓰쿠시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신사가 있는 섬이다. ‘미야지마’라고도 부른다.
따로 순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본 3경에서 늘 첫 번째로 꼽는 곳이 마쓰시마다. 마쓰시마의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송도(松島), 즉 ‘소나무 섬’이다. 마쓰시마는 소나무로 뒤덮인 260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군도(群島)다.
마쓰시마에는 기기묘묘한 형태의 섬들이 있다. 풍화와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석주(石柱)처럼 생긴 섬도 있고, 네댓 개의 구멍이 뚫린 섬도 있다.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이런 섬을 둘러본다. 선상 유람시간은 50분 남짓. 비수기에 적용하는 할인 요금이 1200엔이다. 행락철에는 줄이 길어 인터넷으로 사전구매하는 걸 권하지만, 겨울철에는 한적한 편이다.
마쓰시마 유람선은 자리가 중요하다. 보통 승선 티켓에는 좌석이 지정되지 않는데, 진행 방향으로 봤을 때 오른쪽 자리를 선점하는 게 요령. 배 왼쪽보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명승과 경관이 더 많고, 더 근사하다.
마쓰시마를 이룬 섬을 내려다보는 자리. 오타카모리(大高森) 산 정상이다. ‘사대관(四大觀)’이라 불리는 네 곳의 마쓰시마 전망대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곳이다. 미야기올레 오쿠마쓰시마 코스가 여기를 지나간다.
# 섬의 장관(壯觀)을 볼 수 있는 자리
마쓰시마에 ‘시다이칸(四大觀)’이 있다. 한자의 뜻을 해석하면 ‘4대 전망대’다. 마쓰시마 만(灣)의 섬을 조망할 수 있는 4곳의 조망 명소를 말한다.
4곳의 명소마다 거기서 보는 마쓰시마의 풍경이 다른데, 그 느낌에 따라 따로 이름을 붙였다.
‘위대한 경치’를 뜻하는 이칸(偉觀)과 ‘유려한 풍경’을 보여주는 유칸(幽觀), ‘고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레칸(麗觀), 마지막으로 ‘장관의 경치’를 보여주는 소칸(壯觀). 이렇게 네 곳이다.
보통의 여행자는 모든 곳을 하나하나 다 섭렵할 정도의 여유가 없을 테니, 이 중 한 곳만 골라서 간다. 넷 중 한 곳만 고르라면 당연히 마쓰시마의 ‘장관’을 보여주는 소칸이 아닐까.
소칸은 마쓰시마 동남쪽의 해발 105m의 작은 산 ‘오타카모리(大高森)’ 정상이다. 미야기올레의 두 번째 코스인 ‘오쿠마쓰시마’ 코스도 여길 지나간다.
마쓰시마 주위에는 산책으로 즐길 수 있는 해안의 명소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절집 ‘즈이간지(瑞巖寺)’다. 퇴락한 사찰을 다테 마사무네가 1609년 중건한 사찰이다. 그가 사찰 중건에 힘을 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겠다. 하나는 마사무네가 사찰 중건을 통해 스스로 이 지역의 정신적, 정치적, 문화적 의식의 계승자임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 마쓰시마의 경관과 풍류의 명소를 즐기기에 딱 좋은 자리에 거점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나름의 속셈도 있었으리라.
즈이간지 법당 내부는 장식과 구성, 그리고 그림으로 현란하다. 여기에도 ‘다테’류의 화려함이 있다. 벽과 복도에 그려진 크고 작은 161개의 장식 그림의 색채감이 뛰어나다.
잘 꾸며진 정원도 볼만하지만, 무엇보다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저택 마당의 대문 양옆에서 자라는 늙은 매화나무다. 이 매화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다테 마사무네가 우리 창덕궁에서 가져간 것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청에 마지못해 진주성전투에 참여했지만 전투에는 줄곧 소극적이었다. 임진왜란을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야마가타 현의 절집 릿샤쿠지(立石寺)의 법당 건물인 ‘가이산도(開山堂)’.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특급 전망대다.
# 무릉도원의 계곡과 천공의 절집
이제 미야기 현의 북쪽 이와테 현으로 건너간다. 이와테 현에는 ‘게이비케이(猊鼻溪)’가 있다. 높이 100m를 오르내리는 절벽 사이로 물길이 흐르는 협곡이다.
일본 말로 ‘게이’로 읽는 한자는 ‘사자 예(猊)’자. 이어 ‘코 비(鼻)’자를 쓰니 ‘사자 코 계곡’이란 뜻이다. 석회암 지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협곡 안쪽 수직 절벽의 형상이 사자 코를 닮았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게이비케이 계곡은 1925년 10월 국가 명승으로 지정됐고, 2년 뒤인 1927년에는 마이니치(每日)신문사가 주최한 ‘일본 100경(景)’에 선정됐다.
본래 변방에 숨겨져 있던 이름없는 오지 계곡을 세상에 알린 건 교육자 출신의 사토 히로시(佐藤衡)다. 교육자 출신의 마을 이장쯤 되는 인물인데, 경관보존과 관광개발에 팔을 걷어붙여서 이곳을 내로라하는 관광지로 만들었다.
계곡의 경관은 배를 타고 본다. 사공이 긴 삿대 하나로 밀고 가는 나룻배를 타고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 상류에서 내려 산책을 즐기다가 다시 배를 타고 되돌아 나오는 코스다. 산책 시간을 포함하면 왕복 1시간 30분쯤이다. 요금은 1800엔. 아름답기로는 신록의 봄과 단풍의 가을이 최고라지만, 여름철 녹음과 겨울철 수묵화 풍경도 근사하다.
계곡 안쪽 경관은 ‘선경(仙境)’이라 할 만큼 근사하다. 수묵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경치가 펼쳐져 마치 다른 세상으로 빠져들어 간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 미야기 현과 동서로 경계를 두고 있는 야마가타 현으로 간다. 야마가타 현 북서쪽에 절집 ‘야마데라(山寺)’가 있다. 우리식으로 한자를 읽으면 ‘산사’, 즉 ‘산에 있는 절’이다. 보통명사를 제 이름처럼 쓰고 있는데, 정확한 사찰 이름은 ‘릿샤쿠지(立石寺)’다. 입석이란 한자 이름처럼 사찰은 돌계단 참배 길이 올라가는 바위 산 위에 있다.
릿샤쿠지를 대표하는 건 정상 능선의 바위 끝 올라앉은 전각 ‘가이산도(開山堂)’다. 그곳을 찍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여행자들을 매혹한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을 두고 ‘북일본 최고의 경치 중 하나’라고도 하는데, 후하게 쳐준다 해도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만 협곡과 벼랑에 들어앉아 있는 법당 모습은 견줄 만한 곳을 쉽게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근사하다.
쓰나미 피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가도노와키(門脇)초등학교 건물. 폐교된 학교 건물이 재난현장을 보존한 전시관이 됐다.
# 비극과 슬픔을 담아내는 공간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대비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그런 일.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일. 14년 전 도호쿠 지방 주민들이 겪은 사상 최악의 참사 ‘동일본대지진’이 바로 그랬다.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곳이 미야기 현이다. 전국적으로 1만9729명이 희생됐는데, 이 중 1만566명이 미야기 현 주민이었다. 전체 사망자의 절반이 넘는다. 사망자로 집계되지 않은 행방불명 주민 1219명도 있다.
미야기 현에 속한 도시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지자체는 수산업의 중심이었던 이시노마키(石卷) 시다. 인구 13만 명으로 센다이에 이은 미야기 현의 제 2도시.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었던 데다 인구가 밀집 어항(漁港)이었으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쓰나미 이후 큰불까지 나면서 마을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가 3552명에 달한다.
이시노마키에는 위령비도 있고, 공원도 있고, 기억을 보존한 전승관(傳承館)도 있다. 미증유의 재난이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담아낸 슬픔의 공간이라고 짐작했지만, 가서 보니 눈물과 애도보다는 미래세대로 당시의 경험을 전달하는 쪽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추모관이 아니라 ‘전승관(傳承館)’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인 듯했다.
가도노와키초등학교 건물 내부에 전시해놓은 책상과 빈 의자.
# 교유와 공감, 그리고 선의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지름 40m 원통형의 전승관 건물은 외벽을 투명유리로 마감해 모든 방향을 바라다볼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높은 북쪽의 지붕 높이는 6.9m. 이 지역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차오른 바닷물의 높이다.
전시관에는 당시의 피해 상황과 교훈을 소개하는 영상을 상영했는데, 상영관 입구에 ‘쓰나미 장면이 나온다’는 주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될 만큼 쓰나미는 처참한 기억이었다.
전승관 인근에는 폐교가 된 가도노와키(門脇) 초등학교 교사(校舍)가 있다. 마을을 쓸어버린 쓰나미를 이 학교 건물이 온몸으로 받아냈다. 쓰나미 당시 학교에는 화재까지 나면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학교는 전시관이 됐다.
그을리고 무너진 학교 건물도 그랬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폐교 건물 주변과 운동장을 가득 채운 묘비였다. 숫자와 통계로는 짐작할 수 없었던 죽음의 실재적 숫자를 실감했다.
폐허가 된 학교에는, 전승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꼭꼭 숨겨뒀던 슬픔과 눈물이 있었다. 처참하게 구겨진 소방차와 폭격을 맞은 듯한 교실. 덩그러니 주인 잃은 책상과 의자 하나를 미술품처럼 전시해놓기도 했고, 재해 지역에서 새싹을 틔운 식물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주민들이 쓰나미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적은 글을 받아 걸어놓은 복도도 있다. 폐허의 학교가 보여주는 비통함과 슬픔은, 거기 가서 봐야만 느끼거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꼭 여기가 아니어도 좋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마을마다 비슷한 곳들이 많다. 도호쿠 지역을 여행한다면 대지진과 쓰나미를 기억하는 공간을 꼭 들러보시길. 여행이란 모름지기 이곳과 저곳을 잇는 교유가 바탕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믿음이 여행을, 나아가서는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는 생각. 그래서 여행이 종래에 ‘사람을 선하게 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 계곡에서 운수 시험하기
게이비케이(猊鼻溪) 협곡 나룻배를 타면, 계곡 안쪽의 선착장에서 내려서 물 건너편으로 사자 코 모양의 바위를 볼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갈 수 있다. 사자 코 바위가 있는 수직 벼랑 중간쯤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나 있는데, 돌을 던져 그 안에 넣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마을 주민들이 흙으로 구워 만든 작은 돌을 사서 구멍에 던져 운수를 시험해볼 수 있다.
박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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