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레닌 정품은 비아그라구매 사이트에서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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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1-22 00:30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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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력과 자신감을 되찾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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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닌이란? 성분, 작용, 효과, 주의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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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활력을 높이는 생활습관
아드레닌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생활습관 관리가 중요합니다.
음식: 굴, 마늘, 석류, 아몬드, 호두 등은 남성 정력 강화에 도움을 줍니다.
운동: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혈류 개선과 체력 향상에 효과적입니다.
생활습관: 흡연과 과도한 음주를 줄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스트레스 관리: 취미 생활이나 명상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면 발기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전문가가 전하는 안전한 복용 팁
공복에 복용하면 흡수가 빠릅니다.
하루 1회 권장 용량만 복용하세요.
심장약이나 혈압약과 병용할 경우 전문가 상담이 필요합니다.
꾸준한 생활습관 개선과 병행하면 최대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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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정품과 신뢰를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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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eastorygame.top
내 인생 절반은 산과 관련이 깊다. 어쩌다 이렇게 깊이 와버렸는지 언젠가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날이 올 거라고 어렴풋이 기대했는데, 마감에 임박해 이런 식으로 급하게 할 줄은 예상 못했다(이달 등산시렁 소재를 찾지 못했다). 시작한 김에 해보자 마음먹었지만 키보드에서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건 분명 재미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듯 등산은 내가 처음 산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인기가 없는 종목이다. 어렸을 때부터 산에 다닌 나는 또래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했다. 친구 중 단 한 명도 산에 다니지 않았고, 덕분에 어떤 친구와도 산 바다이야기오락실 말고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이 무리와 점점 동떨어지는 과정을 담는다고 해야겠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었구나, 이런 이야기를 실어주는 월간<산>이라는 신기한 회사가 있구나, 월간<산>은 이런 사람을 잘도 받아주는구나! 이해하면서 보면 될 것 같다.
아웃도어 키드의 생애
바다이야기무료 #1
학교 도서관은 높은 곳에 있었다. 가는 길이 매우 가파르고 좁았다. 방과 후 야간 자율학습은 도서관에서 진행됐다. 그러니까 고3 전원은 모두 그 오르막을 매일 꼭 한 번 이상 올랐다. 친구들은 '야자'보다 도서관 가는 길을 더 싫어했다. 300명이 넘는 고3 전체 인원 중 딱 3명만 달랐다. 3명은 도서관 옆에 솟 바다이야기프로그램다운로드 아 있던 얇은 철판으로 이뤄진 '벽'의 존재를 알았다. 도서관으로 가다가 잠깐 옆길로 빠져 철판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은 이들 3명뿐이었다. 3명은 철판을 인공암벽이라고 불렀다. 인공암벽의 높이는 3m 정도였고, 매우 낡아 있었다. 벽이 무너질까봐 누구도 쉽게 근처에 가지 않았는데, 3명은 이따금 철판에 박힌 바위 모양을 본 뜬 손잡이를 붙잡고 꼭대기까지 올 릴짱 라갔다가 내려가곤 했다. 그 3명은 학교에서 아무도 존재를 모르는 산악부 회원이었고, 그중 하나가 나였다.
나는 공부에 관심이 얼마 없었다. 어떤 어른이 될 거라는 목표 같은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막막했다거나 꿈이 없는 것이 슬펐다거나 조급하지 않았다. 도서관 앞에 있던 벚나무가 처음엔 하얬다가 나중엔 앙상해지는 걸 보고 그런가보다 하면 릴게임사이트추천 서 지낼 뿐이었다.
산악부에 왜 들었을까? 가끔 생각하는 것이 당시 내가 하는 생각의 80%를 차지했다. 나는 이전에 영화 보는 걸 좋아했고 록 음악도 많이 들었다. 책도 꽤 읽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비디오 테이프를 찾으러 다녔다. 영화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주는 포스터를 모았다. 케이블티비 채널 27번 엠넷에서 목요일 새벽마다 틀어주는 타임 투 락을 즐겨봤다. 베이스 기타를 사달라고 아버지께 조르기도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 나오면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갔다. 등산? 암벽등반? 종주? 북한산? 설악산? 지리산? 그것들이 한국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미스터리였다. 나는 대체 왜 산악부에 가입했는가? 그때 나는 그것이 유일하게 궁금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난생 처음 텐트 안에 들어가 맡았던 냄새를 떠올렸다. 잘 마른 나일론 천 냄새였다. 그 냄새가 콧 속에 들어갔다가 나갈 때쯤 휘발유 냄새가 다시 코를 채웠다. 나보다 나이가 열 다섯살쯤 많은 졸업한 형이 옆에서 스토브를 잡고 펌프질을 해댔다. 이어서 밥 냄새, 라면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안에서 늘 조용했지만 낯선 냄새를 즐겼다. 그것이 무척 신선하다고 느꼈다. 결국 나는 신선한 공기에 중독돼 산악부에서 나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선한 공기에 확실히 매료됐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를 포함한 3명은 매주 수요일 저녁 무교동에 있는 사랑방 다방에 갔다. 다방에서 집회가 열렸다. 졸업한 형들도 일부 다방에 왔다. 방학을 일주일 정도 앞둔 어느날 형들이 하계를 가자고 했다.
"그게 뭐죠?"
"일주일 동안 산을 종주하는 거야."
졸업한 형 중 하나가 대답했다.
"일주일요? 그럼 씻는 건요?" "안 씻는 거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신기하고 무서웠다. 나를 포함한 3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산에 가는지 몰랐다. 나는 일주일 동안 씻을 수 없다는 말만 기억하고 며칠 후 머리를 밀었다. 일주일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하면 이가 생겨 피를 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삭발하고 교실에 나타난 나를 보고 친구들은 놀랐다. 누군가 "왜 그랬어?"라고 물었고 나는 "하계 가야 해"라고 대답했다. 친구들은 하계가 뭐냐고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50리터짜리 배낭을 선물로 줬다. 배낭 헤드에 'caravan'이라고 쓰여 있었다. 형들이 멘 써미트 배낭을 갖고 싶었는데 아버지에겐 더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방학이 됐다. 학교 앞에서 나를 포함한 3명과 졸업한 형들은 봉고차에 탔다. 봉고차에 caravan 배낭도 던져 넣었다.
몇 시간 뒤 형들이 내리자고 했다. 차 앞에 '구룡령'이라고 쓰인 큰 바위가 있었다. 배낭을 메고 앞서 가는 형들을 따라갔다. 형들은 곧 까만 숲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깡패들한테 끌려가는 분위기였다.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를 왜 말리지 않았지?' 머리를 밀어버린 내가 저 깡패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는 형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이후 3일간 산에서 걷고 밥을 먹고 계곡 물을 마셨다. 도중에 비가 많이 내려 축축하게 젖은 상태에서 4인용 텐트에 다섯 명이 웅크리고 자기도 했다. 우리는 마지막에 비를 맞으면서 점봉산을 넘었고 한계령휴게소와 이어진 도로로 데구르르 구르면서 튀어나왔다. 형들은 산에서 계속 웃었다. 누군가의 휘발유 묻은 발에 불이 붙어 다급하게 땅을 차는 걸 보고 "춤추냐?"라면서 키득댔다. 어떤 형은 휘발유가 물인 줄 알고 들이켰다가 "푸학!"하고 뱉었다. 그걸 보고 또 자지러졌다. 계곡에서 떠 온 물로 밤에 밥을 짓고 커피를 끓이고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 물이 아침에 보니 흙탕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또 미친듯이 웃어 제꼈다. 물론 나를 포함한 3명도 웃었다. 주변이 온통 낯설었어도 웃기긴 했다. 형들은 거침없이 방귀를 뀌었고 텐트에서 담배를 피워댔다. 볼일을 본 손을 제대로 닦지 않고 쌀을 씻었다. 숭늉에 믹스 커피를 타서 마셨다. 지독하고 이상한 냄새가 계속 났다. 옷과 양말은 3일 내내 젖어 있었고, 심지어 침낭은 손으로 살짝 비틀어 짜면 물이 주르륵 흘렀다. 겉모양은 거지꼴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도로를 타고 한계령휴게소로 올라갈 땐 기분이 더욱 고양됐다. 휴게소 근처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큰 배낭을 멘 우리를 쳐다봤다. 어떤 사람은 대체 어디서 온 거냐고 물었다. 형들을 비롯해 나를 포함한 3명은 모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무표정으로 계속 걸었다. 남들이 봤을 땐 내가 기분이 나빠보였을 수 있고 아니면 산에서 학대를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정반대였다. 짜릿했다. 나만 이렇게 느낀 건 아니고 나를 포함한 3명과 형들도 똑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페스티벌 무대에 선 유명한 록밴드였던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허리춤에 올려 힘든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았다.
첫 하계는 즐거웠다. 한계령에서 우리는 장수대로 내려갔고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쉬었다. 다음날 나이 많은 형들은 서울로 갔고 나를 포함한 3명과 젊은 형 한 명은 설악산 대승령을 향해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무척 귀찮아진 우리는 다시 산에서 내려와 속초 바닷가로 가서 놀았다. 부모님 말고 다른 사람들과 휴가를 보낸 건 최초였다. 모든 것이 팔딱팔딱 신선했다.
방학이 끝나고 나를 포함한 3명과 형들은 계속 만났다. 주말에는 이따금 북한산 인수봉이나 백운대로 가서 암벽등반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일반 등산객과 다른 부류에 속한다는 걸 알았고, 이것을 어떤 특권처럼 여겼다. 그 특권으로 누군가에게 명령을 하거나 누군가가 나를 특별하게 대우하지는 않았는데 그들과는 다른 지점에서 다른 걸 보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산악부가 아닌 친구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 중 누군가는 갑자기 성적이 올라갔다. 누구는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어떤 애는 나에게 밴드를 하자고도 했다. 어떤 애는 변함 없이 조용했고, 누구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어떤 애는 나를 보고 "산악인이다!"라고 소리지르면서 놀렸다. 어떤 친구들은 '무풍지대'라는 클럽을 만들어 3:3 길거리 농구 시합에 출전하기도 했다. 또 어떤 애는 무풍지대에 가입하고 싶어 농구 연습을 무지하게 많이 했다.
나는 산에 더 자주 갔다. 서점에서 소설책이나 영화잡지나 음악잡지를 더 이상 사지 않았고 대신 <사람과 산>이나 월간<산>을 샀다. 무교동 사랑방 다방 근처에 있던 파타고니아 매장에 비치된 등반사진이 잔뜩 실린 카탈로그를 정기적으로 얻어갔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이 최근 히말라야 어디를 올랐는지 궁금해했다. '박영석 대장을 따라 동국대학교 산악부에 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탈레이사가르에서 직등 루트를 뚫다가 추락해 사망한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을 마음속에 품었다. 리복이나 나이키 말고 노스페이스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괴롭히기도 했다.
가을에는 축제가 열렸다. 문예부와 사진부, 보이스카우트에 속한 애들은 뭔가를 준비했다. 선배들이 부른다면서 우르르 교실에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가 부산스러웠다. 나를 포함한 3명 중 하나가 우리도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인공암벽 근처에서 장비 전시회를 하자!"
그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나와 나머지 1명은 "좋다"고 했다. 다음 집회 때 형들에게 계획을 알렸고 며칠 뒤 장비를 빌렸다. 두꺼운 침낭 몇 개, 하네스 몇 개, 코플라치 빙벽화 몇 켤레, 아이스 바일 몇 개 등등 등반장비가 가득 든 더플백을 메고 학교로 갔다. 축제날이 되어 인공암벽 앞에 책상을 이어 붙인 다음 장비들을 깔았다. '여기까지 누가 올라올까?' 싶었는데 다른 학교 애들이 드문드문 오갔다. 우리는 장비가 깔린 책상 뒤쪽에 멀뚱히 서 있다가 궁금해서 다가오는 애들한테 달라붙어 이것들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설명했다. 그들 중 여자애도 있었다. 나는 여자애에게 설명했다.
"어, 음. 이건 침낭이라는 거야. 바깥에서 텐트치고 잘 때 여기에 들어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가지 못하게 다른 장비를 들어올리면서 설명했다.
"이건 아이스 바일이야. 얼음에 찍는 거고. 이거는 코플라치라고 불러. 빙벽등반을 할 때 신는 거야. 100% 방수야!"
여자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웃지도 않았다. 나는 뭐가 잘못됐나? 생각했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는 바람에 장비를 내려놓고 설명을 그만뒀다. 여자애는 가버렸다. 몇 명 더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고 나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애들은 빠르게 흥미를 잃고 가버렸다. 나는 뭣 때문에 여기서 이런 설명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겨드랑이를 축축하게 적셨다. 한두 명이 관심을 갖긴 했는데,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같이 산에 갈래?"
축축하게 늘어진 나를 뒤로 하고 멀어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앞으로 좀 고독하게 살 거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 고독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란 것도 살짝 느꼈다. 쉽게 말해 인생이 꼬이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어느 날, 산에 갔다가 내려와 우이동에서 8번 버스를 탔다. 몇 정거장 지나 커다란 배낭을 멘 젊은 무리가 버스에 우르르 탔다. 대학생처럼 보였다. 모두 피부가 그을린 상태였고, 단단해 보였다. 무리 중에 여자도 보였다. 여자는 키가 작았지만 마찬가지로 새까맸다. 수유역에 도착하자 그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뒷문이 열리자 그중 한 명이 맨 몸으로 먼저 내렸고 다른 한 명이 먼저 내린 일행을 향해 출입문 앞에 수북하게 쌓인 커다란 배낭을 차례차례 던졌다. "척척" 바깥으로 내던져지는 배낭과 우람한 다리와 굵은 팔뚝들이 보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제기랄!"이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었다. 배낭이 버스에서 모두 사라지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 다시 커다란 배낭을 멨다. 멋있었다.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나는 저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겨울방학이 됐다. 곧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사랑방 다방에서 만난 형 중 한 명이 말했다.
"이제 산에 오지마."
나는 물었다. "왜요?"
형이 대답했다.
"공부해야지 임마."
고3은 산에 가지 않고, 형들도 산에 가자고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산에 오면 쫓아낸다고 했다. 산악부 전통이라고 했다. 계속 산에 가도 성적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거나 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내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3명은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다방에서 빠져나와 걸었다. 3명 중 공부를 잘했던 1명이 말했다.
"나는 의대를 갈 거야. 그러니까 산에 가면 안 돼. 아쉽지만 우리 각자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산에서 만나자."
나는 별로 아쉽지 않았다. 벚나무에 하얗게 꽃이 피고 또 가지가 앙상해지는 걸 멀리서 바라보듯 그런가보다 하면서 말했다.
"그래, 잘 가."
나는 3명 중 공부를 가장 못했던 남은 1명과 집으로 돌아갔다.
(반응이 있다면 다음화에 계속)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아웃도어 키드의 생애
바다이야기무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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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나는 난생 처음 텐트 안에 들어가 맡았던 냄새를 떠올렸다. 잘 마른 나일론 천 냄새였다. 그 냄새가 콧 속에 들어갔다가 나갈 때쯤 휘발유 냄새가 다시 코를 채웠다. 나보다 나이가 열 다섯살쯤 많은 졸업한 형이 옆에서 스토브를 잡고 펌프질을 해댔다. 이어서 밥 냄새, 라면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안에서 늘 조용했지만 낯선 냄새를 즐겼다. 그것이 무척 신선하다고 느꼈다. 결국 나는 신선한 공기에 중독돼 산악부에서 나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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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죠?"
"일주일 동안 산을 종주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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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방학이 됐다. 학교 앞에서 나를 포함한 3명과 졸업한 형들은 봉고차에 탔다. 봉고차에 caravan 배낭도 던져 넣었다.
몇 시간 뒤 형들이 내리자고 했다. 차 앞에 '구룡령'이라고 쓰인 큰 바위가 있었다. 배낭을 메고 앞서 가는 형들을 따라갔다. 형들은 곧 까만 숲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깡패들한테 끌려가는 분위기였다.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를 왜 말리지 않았지?' 머리를 밀어버린 내가 저 깡패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는 형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이후 3일간 산에서 걷고 밥을 먹고 계곡 물을 마셨다. 도중에 비가 많이 내려 축축하게 젖은 상태에서 4인용 텐트에 다섯 명이 웅크리고 자기도 했다. 우리는 마지막에 비를 맞으면서 점봉산을 넘었고 한계령휴게소와 이어진 도로로 데구르르 구르면서 튀어나왔다. 형들은 산에서 계속 웃었다. 누군가의 휘발유 묻은 발에 불이 붙어 다급하게 땅을 차는 걸 보고 "춤추냐?"라면서 키득댔다. 어떤 형은 휘발유가 물인 줄 알고 들이켰다가 "푸학!"하고 뱉었다. 그걸 보고 또 자지러졌다. 계곡에서 떠 온 물로 밤에 밥을 짓고 커피를 끓이고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 물이 아침에 보니 흙탕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또 미친듯이 웃어 제꼈다. 물론 나를 포함한 3명도 웃었다. 주변이 온통 낯설었어도 웃기긴 했다. 형들은 거침없이 방귀를 뀌었고 텐트에서 담배를 피워댔다. 볼일을 본 손을 제대로 닦지 않고 쌀을 씻었다. 숭늉에 믹스 커피를 타서 마셨다. 지독하고 이상한 냄새가 계속 났다. 옷과 양말은 3일 내내 젖어 있었고, 심지어 침낭은 손으로 살짝 비틀어 짜면 물이 주르륵 흘렀다. 겉모양은 거지꼴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도로를 타고 한계령휴게소로 올라갈 땐 기분이 더욱 고양됐다. 휴게소 근처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큰 배낭을 멘 우리를 쳐다봤다. 어떤 사람은 대체 어디서 온 거냐고 물었다. 형들을 비롯해 나를 포함한 3명은 모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무표정으로 계속 걸었다. 남들이 봤을 땐 내가 기분이 나빠보였을 수 있고 아니면 산에서 학대를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정반대였다. 짜릿했다. 나만 이렇게 느낀 건 아니고 나를 포함한 3명과 형들도 똑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페스티벌 무대에 선 유명한 록밴드였던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허리춤에 올려 힘든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았다.
첫 하계는 즐거웠다. 한계령에서 우리는 장수대로 내려갔고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쉬었다. 다음날 나이 많은 형들은 서울로 갔고 나를 포함한 3명과 젊은 형 한 명은 설악산 대승령을 향해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무척 귀찮아진 우리는 다시 산에서 내려와 속초 바닷가로 가서 놀았다. 부모님 말고 다른 사람들과 휴가를 보낸 건 최초였다. 모든 것이 팔딱팔딱 신선했다.
방학이 끝나고 나를 포함한 3명과 형들은 계속 만났다. 주말에는 이따금 북한산 인수봉이나 백운대로 가서 암벽등반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일반 등산객과 다른 부류에 속한다는 걸 알았고, 이것을 어떤 특권처럼 여겼다. 그 특권으로 누군가에게 명령을 하거나 누군가가 나를 특별하게 대우하지는 않았는데 그들과는 다른 지점에서 다른 걸 보고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산악부가 아닌 친구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 중 누군가는 갑자기 성적이 올라갔다. 누구는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어떤 애는 나에게 밴드를 하자고도 했다. 어떤 애는 변함 없이 조용했고, 누구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어떤 애는 나를 보고 "산악인이다!"라고 소리지르면서 놀렸다. 어떤 친구들은 '무풍지대'라는 클럽을 만들어 3:3 길거리 농구 시합에 출전하기도 했다. 또 어떤 애는 무풍지대에 가입하고 싶어 농구 연습을 무지하게 많이 했다.
나는 산에 더 자주 갔다. 서점에서 소설책이나 영화잡지나 음악잡지를 더 이상 사지 않았고 대신 <사람과 산>이나 월간<산>을 샀다. 무교동 사랑방 다방 근처에 있던 파타고니아 매장에 비치된 등반사진이 잔뜩 실린 카탈로그를 정기적으로 얻어갔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이 최근 히말라야 어디를 올랐는지 궁금해했다. '박영석 대장을 따라 동국대학교 산악부에 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탈레이사가르에서 직등 루트를 뚫다가 추락해 사망한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을 마음속에 품었다. 리복이나 나이키 말고 노스페이스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괴롭히기도 했다.
가을에는 축제가 열렸다. 문예부와 사진부, 보이스카우트에 속한 애들은 뭔가를 준비했다. 선배들이 부른다면서 우르르 교실에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가 부산스러웠다. 나를 포함한 3명 중 하나가 우리도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인공암벽 근처에서 장비 전시회를 하자!"
그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나와 나머지 1명은 "좋다"고 했다. 다음 집회 때 형들에게 계획을 알렸고 며칠 뒤 장비를 빌렸다. 두꺼운 침낭 몇 개, 하네스 몇 개, 코플라치 빙벽화 몇 켤레, 아이스 바일 몇 개 등등 등반장비가 가득 든 더플백을 메고 학교로 갔다. 축제날이 되어 인공암벽 앞에 책상을 이어 붙인 다음 장비들을 깔았다. '여기까지 누가 올라올까?' 싶었는데 다른 학교 애들이 드문드문 오갔다. 우리는 장비가 깔린 책상 뒤쪽에 멀뚱히 서 있다가 궁금해서 다가오는 애들한테 달라붙어 이것들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설명했다. 그들 중 여자애도 있었다. 나는 여자애에게 설명했다.
"어, 음. 이건 침낭이라는 거야. 바깥에서 텐트치고 잘 때 여기에 들어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가지 못하게 다른 장비를 들어올리면서 설명했다.
"이건 아이스 바일이야. 얼음에 찍는 거고. 이거는 코플라치라고 불러. 빙벽등반을 할 때 신는 거야. 100% 방수야!"
여자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웃지도 않았다. 나는 뭐가 잘못됐나? 생각했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는 바람에 장비를 내려놓고 설명을 그만뒀다. 여자애는 가버렸다. 몇 명 더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고 나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애들은 빠르게 흥미를 잃고 가버렸다. 나는 뭣 때문에 여기서 이런 설명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겨드랑이를 축축하게 적셨다. 한두 명이 관심을 갖긴 했는데,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같이 산에 갈래?"
축축하게 늘어진 나를 뒤로 하고 멀어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앞으로 좀 고독하게 살 거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 고독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란 것도 살짝 느꼈다. 쉽게 말해 인생이 꼬이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어느 날, 산에 갔다가 내려와 우이동에서 8번 버스를 탔다. 몇 정거장 지나 커다란 배낭을 멘 젊은 무리가 버스에 우르르 탔다. 대학생처럼 보였다. 모두 피부가 그을린 상태였고, 단단해 보였다. 무리 중에 여자도 보였다. 여자는 키가 작았지만 마찬가지로 새까맸다. 수유역에 도착하자 그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뒷문이 열리자 그중 한 명이 맨 몸으로 먼저 내렸고 다른 한 명이 먼저 내린 일행을 향해 출입문 앞에 수북하게 쌓인 커다란 배낭을 차례차례 던졌다. "척척" 바깥으로 내던져지는 배낭과 우람한 다리와 굵은 팔뚝들이 보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제기랄!"이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었다. 배낭이 버스에서 모두 사라지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 다시 커다란 배낭을 멨다. 멋있었다.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나는 저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겨울방학이 됐다. 곧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사랑방 다방에서 만난 형 중 한 명이 말했다.
"이제 산에 오지마."
나는 물었다. "왜요?"
형이 대답했다.
"공부해야지 임마."
고3은 산에 가지 않고, 형들도 산에 가자고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산에 오면 쫓아낸다고 했다. 산악부 전통이라고 했다. 계속 산에 가도 성적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거나 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내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3명은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다방에서 빠져나와 걸었다. 3명 중 공부를 잘했던 1명이 말했다.
"나는 의대를 갈 거야. 그러니까 산에 가면 안 돼. 아쉽지만 우리 각자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산에서 만나자."
나는 별로 아쉽지 않았다. 벚나무에 하얗게 꽃이 피고 또 가지가 앙상해지는 걸 멀리서 바라보듯 그런가보다 하면서 말했다.
"그래, 잘 가."
나는 3명 중 공부를 가장 못했던 남은 1명과 집으로 돌아갔다.
(반응이 있다면 다음화에 계속)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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