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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2-28 08:24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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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지도사 심은이씨가 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소녀는 언니를 보고 자랍니다. 여기 선배가 된 언니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정표이자 버팀목이 되는 [여자, 언니, 선배들]의 일·커리어 이야기를 플랫이 전달합니다.
“좋아하는 일이고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면 주변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밀고 나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다 야마토게임방법 른 의례와 달리 장례에는 주인공이 참석하지 않는다. 장례를 치르는 건 유족과 조문객이고, 그 과정을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일은 장례지도사가 맡는다. 장례지도사는 장례 전 과정을 상담하고 진행하면서 사망진단서 확인, 염습·입관, 조문 예절 안내, 화장·매장 절차 관리 등을 총괄한다. 누구에게나 당황스러운 가족의 죽음 앞에서 고인을 무사히 보내드릴 수 있도록 유 바다이야기사이트 족을 안내하는 것이 장례지도사의 일이다.
죽음에 관한 언급을 꺼리는 문화 속에서 장례지도사란 직업에도 편견이 씌워졌다. 한국 전통 관념 속에서 상주를 비롯해 장례를 주도하는 존재가 남성이었던 탓에, 여성 장례지도사가 활발히 활동하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이다.
심은이 장례지도사(48)는 2001년 일을 시작한 이래 숱한 편 바다이야기고래출현 견을 겪었다고 했다. 장례지도사라고 직업을 밝히면 피하는 사람들, 그와 손이 닿는 것조차 꺼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럼에도 장례지도업을 계속한 이유로 ‘소명’을 꼽았다.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천직’이라는 것이다. 장례 문화를 고인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꿔야겠다는 책임감도 작동했다.
누구나 겪는 죽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릴게임사이트추천 마지막 의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 5일 서울 서초구에서 심은이 장례지도사를 만나 수많은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며 길어 올린 깨달음과 고민을 들었다. 그는 현재 평화누리에서 강사로 일하며 자신의 현장 경험을 미래의 장례지도사에게 전하고 있다. 심은이 장례지도사는 타인의 죽음과 슬픔에 빠진 유족을 마주하는 일이 사아다쿨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지만, 그들의 입장에 서보려는 마음과 개인적인 사별 경험을 통해 이해가 깊어졌다고 했다.
“지금 이 시간 자체를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즐겨야겠다.” 그의 깨달음은 단순하지만 깊었다.
뛰어들다: 장례지도사의 길, 나의 소명
여성1호 장례지도사 심은이씨가 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여성 1호 장례지도사로 알려져 계십니다. 어떤 계기로 이 일을 하게 됐나요?
“중환자실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할 때 사람들이 고인을 함부로 다루던 태도가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았습니다. 마침 장례지도학과가 처음 생긴다는 보도를 봤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지만 ‘최초’, ‘1기’라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자격증을 땄다뿐이지, 이전부터 성당에는 봉사하시는 (여성)분들이 계셨고 현업에도 꾸준히 하신 분들이 계시니까요.”
-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우려와 격려를 접했나요.
“아버지와 오빠가 특히 반대했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많았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다들 ‘미쳤냐’, ‘여자가 그 과를 왜 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제 인생 멘토는 어머니인데요. 어머니가 ‘너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응원해주셨고 성당 연령회(선종한 교우의 장례 절차를 돕는 성당 내 봉사 조직)에도 데려가 주셨어요. 일하면서도 상처를 많이 받았고 주변의 시선 자체가 쉽지 않았죠.”
- ‘여성 1호’라는 건, 반대로 유족으로서도 여성 장례지도사를 처음 만나봤다는 뜻이 되는데요. 유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 일할 때 좋은 시선으로 보진 않았죠. 상담하러 와서 남자 직원을 찾는다거나 하면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저한테 물어보시면 된다’고 했을 때 ‘다른 남자 직원 없냐고요’ 이렇게 나오기도 했고요. 제가 답변을 제대로 하니까 점점 저에게 다가오고 나중에는 찾게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여성 장례지도사를 원하는 분들도 꽤 있어요. 염습하거나 할 때 여성들이 좀 더 섬세하고, 이성에게 맨몸을 보이기 싫기 때문이지요. 여성 고인이 ‘남자가 손대지 않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합니다. 남성 고인도 마찬가지고요.”
[영상]우리가 장례식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
[영상]“남자 직원은 없어?” 이랬던 장례식장이 달라졌다
- 장례지도사에 관한 편견이 옛날에는 더 심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불편함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제 손을 두고 ‘결혼하면 그 손으로 시어머니 밥을 해줄 텐데….’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20대니까 상처받았죠. 한번은 (유족에게) 상복을 내드리는데, 자신의 엄마를 염해준 손인데도 제 손이 닿는 게 싫어서 상복을 떨어뜨렸던 기억도 있고요. 유족이 저에게 소금을 뿌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못한다는 걸 지나고 나서 알았습니다. 이 일이 저의 소명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죠.”
마주치다: 수없이 목격한 ‘죽음’…‘마지막 순간’은 어때야 할까
이미지컷
- 여러모로 만만치 않은 일처럼 들립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20대 초반에는 가족 중에 돌아가신 분도 없었고 사회생활도 안 해봤으니까요. ‘내 가족이다’ 생각하면서 가족의 입장이 돼보려고 했지만 되게 어렵더라고요. 고인에게만 집중하던 시절을 지나 30대쯤 되니 고인의 가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연고자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고요. 처음에는 가족이 있는데 장례를 치러주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다양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직접 경험해 보면서 가족을 바라보는 시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19년 남편을 떠나보내고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으면서 유족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도 나는 (호스피스에서) 준비를 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유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유족들과 상담하면서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곤 했지만, 막상 의사가 제게 ‘준비하라’고 하니 상주 입장에서 준비한다는 건 정말 어렵구나 다시 한번 알게 됐습니다. 또 사별 후 다시 일하면서 (장례를) 진행하고 가족들을 대하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 고인의 죽음 앞에서 유족의 여러 가지 모습을 목격하셨는데요.
“유족 간 싸움이 재산 싸움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봤을 때 종교 싸움이 1위입니다. 예를 들어 고인은 가톨릭인데 유족은 개신교이거나, 고인은 무교인데 다른 가족들의 종교가 각각 개신교, 가톨릭, 불교면 각자의 종교로 장례를 진행하려는 마음은 똑같으니 싸움이 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시간대를 나누든지 해서 조정을 해줘야 해요.”
- 죽음을 둘러싼 여러 장면으로부터 깨달은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생 공부를 했다는 생각은 늘 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시던 분이 상가가 커져서 이제 자녀들한테 일 맡기고 놀러 다니기로 했는데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느낀 감정은 ‘진짜 부질없구나’. 언젠가 죽을 건데 너무 일에만 몰입하다 죽는 것, 아무 필요 없구나. 지금 자체를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이야기를 항상 합니다. 그러니 후회하면 안 된다고, 지금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요. 싸웠다가도 풀어야 된다고 이야기해줘요. 매일 ‘지금 이 시간 감사하게 잘 살아가자’ 메모를 써주고 나옵니다.”
- 예전에 ‘고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장례지도학과를 졸업하고 일하던 당시에는 용어 자체가 거슬리는 것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고인’이 아닌 ‘송장’, ‘시체’라고 한다든지요. 영구차에 ‘고인을 모신다’가 아니라 ‘관을 싣는다’고 하기도 했고요. 그런 부분은 계속 싸우고 말하면서 고쳤습니다. 고인을 존중하는 언어가 아니니까요. 또 예전에 장의업 하시던 분 중 일부는 고인의 현금을 가져가기도 했고, 입관하면서 유족에게 노잣돈을 반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도 없어져야 하는 게 맞죠. 20여 년 전을 돌아보면 조금씩 바뀌고는 있더라고요.”
깊어지다: 장례지도사의 윤리와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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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지도사의 소명의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소명은 천직이라는 말과 똑같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소명의식이라는 건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고인에게 집중하는 것이죠. 돈을 생각하면 고인에 대한 태도가 잘못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건, 모든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자기가 공부한 것을 가지고 살지 않잖아요. 내가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돈에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감사한 거죠.”
- 장례지도사로서 갖춰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요.
“안치, 입관, 발인 등 장례 절차에 관한 기술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고요. 단순히 기술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유족)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가족을 위로할 줄 알아야 되고, 가족의 입장이 돼봐야 합니다. 그래서 상담자, 조력자, 진행자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수강생들에게도 말하고 있어요. 다만 장례 상담 부분에서는 장례를 진행해야 하는 사람이 너무 감정이입이 돼버리면 안 된다고도 전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유족이 울면 같이 울고 진행을 못 했거든요. 또 중요한 것은 상황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녀상, 부모상이라고 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다 같지 않으니까요.”
- 죽음이 금기시되는 주제이다 보니 장례를 미리 알아보거나 준비하는 경험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사람들이 관심이 없거나 무서워해서 장례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나의 죽음, 가족의 죽음을 회피하려고 하잖아요. 영원할 거라고 생각할지만 알고는 있잖아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그래서 관심을 두고 준비하는 게 맞는구나 싶었어요. 장례라는 게 내 장례인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없잖아요. 고인의 생각을 반영하긴 하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취향대로 가는 거잖아요. 내 장례만큼은 그래도 내가 준비하고 가는 게 맞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런 쪽으로 변화를 줘야겠다고도 생각하고요. 지금은 조금씩 변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이 예전보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기억에 남는 장례도 있었는데요. 고인이 바라는 대로 그가 좋아했던 책으로 제단 장식을 꾸몄어요. 드레스를 입혀 달라고 유언을 남긴 분도 계셨습니다. 보통은 요청하시면 최대한 맞춰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 장례 문화도 가족 위주, 간소화 추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장례지도사의 역할은 어떻게 변하리라 생각하나요?
“이런 요구 사항과 관련된 것들을 어느 정도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하고, 또 요구가 있을 때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장례를 간소화해 이틀장으로 하고 싶다고 해도 법적으로 사망 시점에서 24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장례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걸 알고 진행해야죠. 또 2차 장지, 화장·매장 등 단시간에 그런 절차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봐야죠.”
빛나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신경 쓰지 말아라”
장례지도사 심은이씨가 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이 일을 하면서 나를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영적인 부분에서는 신앙입니다. 내 종교가 가톨릭이 아니었더라도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하거든요. 저에겐 신앙이라는 중심이 딱 있고요. 또 결혼 전에는 어머니, 결혼 후에는 남편이 지금까지 일을 하게 한 지지대였습니다. 장례지도사로서 중요한 것은, 감정 노동이 심한 직업이기 때문에 신앙이든 아니든 어딘가에 풀 데는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의 가족이 아니라 상을 당한 가족이기 때문에 어떻게 쏟아낼지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저는 자연을 좋아해서 예전에는 지리산에서 풀고 왔습니다. 이 안에 가득 찼던 고인과 가족에 관한 생각을 하나하나 풀면서 떠나보냈던 것 같아요. 산에서 비워내고, 채워지면 또 가고. 그렇게 나만의 해소법은 있어야 한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으신지요.
“유가족 상담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도 호스피스가 있는 병원은 사별 가족 상담을 하더라고요. 저도 남편을 떠나보내고 한 3~4년 정도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3년 동안의 기억이 별로 없어요. 단순하게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반대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더 힘들었고요. 그즈음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받으면서 많이 치유됐습니다. 그게 도움이 많이 됐기 때문에 유가족 사별 심리 상담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일이고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면 주변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제가 흔들렸더라면 끝까지 이 일을 하진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예전에 ‘장례지도사입니다’ 하면 사람들이 피하는 게 느껴졌는데, 이런 것들을 너무 생각하면서 일을 포기했더라면 지금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을 못 했을 것이니까요.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밀고 나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소녀는 언니를 보고 자랍니다. 여기 선배가 된 언니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정표이자 버팀목이 되는 [여자, 언니, 선배들]의 일·커리어 이야기를 플랫이 전달합니다.
“좋아하는 일이고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면 주변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밀고 나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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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언급을 꺼리는 문화 속에서 장례지도사란 직업에도 편견이 씌워졌다. 한국 전통 관념 속에서 상주를 비롯해 장례를 주도하는 존재가 남성이었던 탓에, 여성 장례지도사가 활발히 활동하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이다.
심은이 장례지도사(48)는 2001년 일을 시작한 이래 숱한 편 바다이야기고래출현 견을 겪었다고 했다. 장례지도사라고 직업을 밝히면 피하는 사람들, 그와 손이 닿는 것조차 꺼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럼에도 장례지도업을 계속한 이유로 ‘소명’을 꼽았다.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천직’이라는 것이다. 장례 문화를 고인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꿔야겠다는 책임감도 작동했다.
누구나 겪는 죽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릴게임사이트추천 마지막 의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 5일 서울 서초구에서 심은이 장례지도사를 만나 수많은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며 길어 올린 깨달음과 고민을 들었다. 그는 현재 평화누리에서 강사로 일하며 자신의 현장 경험을 미래의 장례지도사에게 전하고 있다. 심은이 장례지도사는 타인의 죽음과 슬픔에 빠진 유족을 마주하는 일이 사아다쿨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지만, 그들의 입장에 서보려는 마음과 개인적인 사별 경험을 통해 이해가 깊어졌다고 했다.
“지금 이 시간 자체를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즐겨야겠다.” 그의 깨달음은 단순하지만 깊었다.
뛰어들다: 장례지도사의 길, 나의 소명
여성1호 장례지도사 심은이씨가 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여성 1호 장례지도사로 알려져 계십니다. 어떤 계기로 이 일을 하게 됐나요?
“중환자실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할 때 사람들이 고인을 함부로 다루던 태도가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았습니다. 마침 장례지도학과가 처음 생긴다는 보도를 봤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지만 ‘최초’, ‘1기’라는 표현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자격증을 땄다뿐이지, 이전부터 성당에는 봉사하시는 (여성)분들이 계셨고 현업에도 꾸준히 하신 분들이 계시니까요.”
-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우려와 격려를 접했나요.
“아버지와 오빠가 특히 반대했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대하는 부모님들이 많았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다들 ‘미쳤냐’, ‘여자가 그 과를 왜 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제 인생 멘토는 어머니인데요. 어머니가 ‘너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응원해주셨고 성당 연령회(선종한 교우의 장례 절차를 돕는 성당 내 봉사 조직)에도 데려가 주셨어요. 일하면서도 상처를 많이 받았고 주변의 시선 자체가 쉽지 않았죠.”
- ‘여성 1호’라는 건, 반대로 유족으로서도 여성 장례지도사를 처음 만나봤다는 뜻이 되는데요. 유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 일할 때 좋은 시선으로 보진 않았죠. 상담하러 와서 남자 직원을 찾는다거나 하면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저한테 물어보시면 된다’고 했을 때 ‘다른 남자 직원 없냐고요’ 이렇게 나오기도 했고요. 제가 답변을 제대로 하니까 점점 저에게 다가오고 나중에는 찾게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여성 장례지도사를 원하는 분들도 꽤 있어요. 염습하거나 할 때 여성들이 좀 더 섬세하고, 이성에게 맨몸을 보이기 싫기 때문이지요. 여성 고인이 ‘남자가 손대지 않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합니다. 남성 고인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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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지도사에 관한 편견이 옛날에는 더 심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불편함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제 손을 두고 ‘결혼하면 그 손으로 시어머니 밥을 해줄 텐데….’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20대니까 상처받았죠. 한번은 (유족에게) 상복을 내드리는데, 자신의 엄마를 염해준 손인데도 제 손이 닿는 게 싫어서 상복을 떨어뜨렸던 기억도 있고요. 유족이 저에게 소금을 뿌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못한다는 걸 지나고 나서 알았습니다. 이 일이 저의 소명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죠.”
마주치다: 수없이 목격한 ‘죽음’…‘마지막 순간’은 어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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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모로 만만치 않은 일처럼 들립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20대 초반에는 가족 중에 돌아가신 분도 없었고 사회생활도 안 해봤으니까요. ‘내 가족이다’ 생각하면서 가족의 입장이 돼보려고 했지만 되게 어렵더라고요. 고인에게만 집중하던 시절을 지나 30대쯤 되니 고인의 가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연고자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고요. 처음에는 가족이 있는데 장례를 치러주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다양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직접 경험해 보면서 가족을 바라보는 시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19년 남편을 떠나보내고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으면서 유족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도 나는 (호스피스에서) 준비를 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유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유족들과 상담하면서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곤 했지만, 막상 의사가 제게 ‘준비하라’고 하니 상주 입장에서 준비한다는 건 정말 어렵구나 다시 한번 알게 됐습니다. 또 사별 후 다시 일하면서 (장례를) 진행하고 가족들을 대하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 고인의 죽음 앞에서 유족의 여러 가지 모습을 목격하셨는데요.
“유족 간 싸움이 재산 싸움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봤을 때 종교 싸움이 1위입니다. 예를 들어 고인은 가톨릭인데 유족은 개신교이거나, 고인은 무교인데 다른 가족들의 종교가 각각 개신교, 가톨릭, 불교면 각자의 종교로 장례를 진행하려는 마음은 똑같으니 싸움이 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시간대를 나누든지 해서 조정을 해줘야 해요.”
- 죽음을 둘러싼 여러 장면으로부터 깨달은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생 공부를 했다는 생각은 늘 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시던 분이 상가가 커져서 이제 자녀들한테 일 맡기고 놀러 다니기로 했는데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느낀 감정은 ‘진짜 부질없구나’. 언젠가 죽을 건데 너무 일에만 몰입하다 죽는 것, 아무 필요 없구나. 지금 자체를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이야기를 항상 합니다. 그러니 후회하면 안 된다고, 지금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요. 싸웠다가도 풀어야 된다고 이야기해줘요. 매일 ‘지금 이 시간 감사하게 잘 살아가자’ 메모를 써주고 나옵니다.”
- 예전에 ‘고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장례지도학과를 졸업하고 일하던 당시에는 용어 자체가 거슬리는 것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고인’이 아닌 ‘송장’, ‘시체’라고 한다든지요. 영구차에 ‘고인을 모신다’가 아니라 ‘관을 싣는다’고 하기도 했고요. 그런 부분은 계속 싸우고 말하면서 고쳤습니다. 고인을 존중하는 언어가 아니니까요. 또 예전에 장의업 하시던 분 중 일부는 고인의 현금을 가져가기도 했고, 입관하면서 유족에게 노잣돈을 반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도 없어져야 하는 게 맞죠. 20여 년 전을 돌아보면 조금씩 바뀌고는 있더라고요.”
깊어지다: 장례지도사의 윤리와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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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지도사의 소명의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소명은 천직이라는 말과 똑같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소명의식이라는 건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고인에게 집중하는 것이죠. 돈을 생각하면 고인에 대한 태도가 잘못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건, 모든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자기가 공부한 것을 가지고 살지 않잖아요. 내가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돈에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감사한 거죠.”
- 장례지도사로서 갖춰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요.
“안치, 입관, 발인 등 장례 절차에 관한 기술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고요. 단순히 기술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유족)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가족을 위로할 줄 알아야 되고, 가족의 입장이 돼봐야 합니다. 그래서 상담자, 조력자, 진행자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수강생들에게도 말하고 있어요. 다만 장례 상담 부분에서는 장례를 진행해야 하는 사람이 너무 감정이입이 돼버리면 안 된다고도 전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유족이 울면 같이 울고 진행을 못 했거든요. 또 중요한 것은 상황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녀상, 부모상이라고 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다 같지 않으니까요.”
- 죽음이 금기시되는 주제이다 보니 장례를 미리 알아보거나 준비하는 경험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사람들이 관심이 없거나 무서워해서 장례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나의 죽음, 가족의 죽음을 회피하려고 하잖아요. 영원할 거라고 생각할지만 알고는 있잖아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그래서 관심을 두고 준비하는 게 맞는구나 싶었어요. 장례라는 게 내 장례인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없잖아요. 고인의 생각을 반영하긴 하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취향대로 가는 거잖아요. 내 장례만큼은 그래도 내가 준비하고 가는 게 맞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런 쪽으로 변화를 줘야겠다고도 생각하고요. 지금은 조금씩 변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이 예전보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기억에 남는 장례도 있었는데요. 고인이 바라는 대로 그가 좋아했던 책으로 제단 장식을 꾸몄어요. 드레스를 입혀 달라고 유언을 남긴 분도 계셨습니다. 보통은 요청하시면 최대한 맞춰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 장례 문화도 가족 위주, 간소화 추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장례지도사의 역할은 어떻게 변하리라 생각하나요?
“이런 요구 사항과 관련된 것들을 어느 정도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하고, 또 요구가 있을 때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장례를 간소화해 이틀장으로 하고 싶다고 해도 법적으로 사망 시점에서 24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장례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걸 알고 진행해야죠. 또 2차 장지, 화장·매장 등 단시간에 그런 절차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봐야죠.”
빛나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신경 쓰지 말아라”
장례지도사 심은이씨가 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이 일을 하면서 나를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영적인 부분에서는 신앙입니다. 내 종교가 가톨릭이 아니었더라도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하거든요. 저에겐 신앙이라는 중심이 딱 있고요. 또 결혼 전에는 어머니, 결혼 후에는 남편이 지금까지 일을 하게 한 지지대였습니다. 장례지도사로서 중요한 것은, 감정 노동이 심한 직업이기 때문에 신앙이든 아니든 어딘가에 풀 데는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의 가족이 아니라 상을 당한 가족이기 때문에 어떻게 쏟아낼지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저는 자연을 좋아해서 예전에는 지리산에서 풀고 왔습니다. 이 안에 가득 찼던 고인과 가족에 관한 생각을 하나하나 풀면서 떠나보냈던 것 같아요. 산에서 비워내고, 채워지면 또 가고. 그렇게 나만의 해소법은 있어야 한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으신지요.
“유가족 상담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도 호스피스가 있는 병원은 사별 가족 상담을 하더라고요. 저도 남편을 떠나보내고 한 3~4년 정도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3년 동안의 기억이 별로 없어요. 단순하게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반대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더 힘들었고요. 그즈음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받으면서 많이 치유됐습니다. 그게 도움이 많이 됐기 때문에 유가족 사별 심리 상담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일이고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면 주변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제가 흔들렸더라면 끝까지 이 일을 하진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예전에 ‘장례지도사입니다’ 하면 사람들이 피하는 게 느껴졌는데, 이런 것들을 너무 생각하면서 일을 포기했더라면 지금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을 못 했을 것이니까요.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밀고 나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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