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복길 대중문화평론가가 화제의 방송을 깊게 들여다봅니다.




웹예능 '디바마을 퀸가비'. 유튜브 캡처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가 예능의 지형을 압도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그만한 파급력을 지닌, 이른바 ‘올해의 예능’을 꼽기가 어렵다. 탄핵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슈가 엔터테인먼트의 수요까지 흡수한 영향도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크라임씬 제로’ ‘피의 게 온라인릴게임 임 3’ ‘뿅뿅 지구오락실 3’ ‘흑백요리사 2’ 등 화제작 대부분이 기존 흥행작의 후속편에 집중되면서 새로운 지식재산(IP)의 발굴보다는 검증된 시리즈의 안착에 치중한 한 해였기 때문이다.



쿠팡플레이 예능 프로그램 '직장인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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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화제작은 없었지만 저마다의 성취를 이룬 작품들은 존재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유튜브 코미디를 통해 입증된 ‘상황극’에 대한 새로운 수요는 ‘킥킥킥킥’ ‘빌런의 나라’와 같은 전통적인 시트콤의 부활을 이끌었고, ‘한탕 프로젝트 마이턴’ ‘직장인들’처럼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게 비트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포맷의 인기로 이어 릴게임추천 졌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해 첫선을 보인 댄서 가비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디바마을 퀸가비’의 여전한 인기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상황극과 리얼리티가 혼재된 예능인 ‘디바마을 퀸가비’는 올해도 ‘퀸가비’만큼 시끄럽고 이상한 인물들을 자신의 세계로 끊임없이 흡수하고, ‘권또또’라는 캐릭터의 스핀오프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시청자들은 온라인릴게임 끊임없이 확장되는 세계관 속에서 캐릭터의 변화와 인물들의 관계를 주시하며 서사를 함께 쌓아나가는 유희를 즐기고, 가상의 공동체 안에서 능동적으로 서사의 일원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접속을 경험했다.
‘디바마을 퀸가비’처럼 현실에 특수한 설정을 적용하는 것이 유희가 될 수 있다면, 연애 리얼리티는 단연 최고의 코미디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바다신릴게임 를 통틀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연애 리얼리티는, ‘데이트’와 ‘구애’라는 평범한 도식 안에 특이한 설정을 대입하며 연애를 통한 인간적 성숙을 고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잘 빠지는 연애’ ‘진짜 괜찮은 사람’ ‘누난 내게 여자야’ 등 다양한 포맷의 변주 속에서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방송은 출연자가 ‘모솔’이라는 사실을 희화화하는 대신, ‘왜 연애하지 못했을까’라는 자학을 사람마다 다르게 갖고 있는 고유한 성향, 상처로 만들어진 관계의 트라우마, 미숙한 소통방식에 대한 성찰 등으로 전환하며, ‘연애하지 않는 사람은 비정상’이라는 시선에 저항하는 맥락을 만들어냈다.



넷플릭스 '피지컬: 아시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연애 리얼리티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미숙함과 결핍을 응시하게 했다면, 올해도 다양하게 쏟아진 스포츠 예능은 육체를 통해 자신을 경신하는 돌파의 순간을 포착했다. ‘피지컬 아시아’ ‘뛰어야 산다’ ‘무쇠소녀단 2’ 등은 특정 종목에서 벗어나 신체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실험하며 그 도전 정신에서 희열을 끌어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육체적 예능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지난 몇 년간의 흐름처럼 올해 역시 많은 스포츠 예능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성별에 따른 신체적 차이를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 여성 스포츠를 비췄다.
MBC ‘신인감독 김연경’은 한국 배구의 슈퍼스타인 김연경을 주인공으로 그가 이끌었던 여자배구 황금기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파악하며 미래를 그리게 했고, 채널A ‘야구여왕’은 박세리라는 걸출한 스포츠 스타를 필두로 유도, 수영, 핸드볼, 리듬체조, 조정 등 각자의 종목에서 이름을 남기고 은퇴한 여성 운동선수들을 ‘여자 야구’라는 미지의 개척지로 끌어들였다. 시스템의 부재를 딛고 후배와 함께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시 닦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스포츠의 매력이란 승부나 정복만이 아닌,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지 자체에 있음을 확인시키며, 젊음과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했다.



MBC '신인감독 김연경'에 출연한 '배구여제' 김연경. 연합뉴스


이 밖에도 2025년에 주목하고 싶은 예능의 흐름은 MZ세대와 알파세대를 아우르는 ‘록’ 음악의 약진이다. 김태원 김종서 김경호 박완규가 출연한 KBS2 ‘긴 머리 휘날리며’는 중년이 된 한국 대표 로커들의 입을 빌려 시대가 변해도 보존되는 ‘로큰롤 정신’이 무엇인지 고찰했고, ‘케이팝 숨듣명’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문명특급’ 제작진이 만든 웹예능 ‘낭정순 밴드’는 재재 권은비 최예나 이수현의 밴드 도전기를 다뤘으며, 가수 카더가든의 유튜브 채널 ‘카더정원’의 ‘스쿨오브락’은 유명 밴드와 함께 학교 밴드부를 찾아가 그들의 공연을 보고 조언을 나누는 형태의 ‘록 멘토링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이들은 그간 음악 예능을 지배해온 ‘서바이벌’과 ‘오디션’이라는 경쟁의 형식을 탈피하고, 나이, 성별, 직업과 관계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이들을 그 자체로 주목하는 대안을 만들었다.
여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던 시기, 우리는 불안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그것을 돌파하는 이야기에 감응하며 한해를 힘겹게 통과했다. 예능을 보며 내가 사는 세상을 느끼는 것은 제법 위험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는 늘 화면 앞에서 웃거나, 웃지 않는 훈련을 반복하며 나를 달래고 세상을 이해해 왔다. 지난주 7년의 여행을 끝으로 종영한 KBS2 ‘같이 삽시다’의 마지막 인사를 보면서, 내게 올해의 웃음은 절망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기도였음을 깨닫는다. 올해 당신이 지은 웃음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나.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다가올 새해의 희망이 되길 바라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