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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영 기자]
11월 29~30일, 그토록 기대했던 무주 금강마실길과 금산 적벽강을 6년 만에 걸었다. 금강은 상류에서 감입곡류하며 최고의 계곡미와 많은 육지 속 섬을 만들면서 흘러 적벽강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도보 국토종주길을 개척하던 6년 전 금강을 걸었을 때도 금강은 '환희' 자체였다. 말로만의 금강이 아니라 뛰어들어가 맘껏 뛰어놀수 있는 무공해 청정수가 오지의 빼어난 자연 속을 흐르는 모습을 경험하며 무한히 가슴 벅차 올랐었다. 그래서 다시 가는 금강과 적벽강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자연하천 금강의 신비 마주한 금강변 마실길
바다이야기모바일
29일은 진안 용담댐에서 출발해 용담면을 지나 무주로 들어서서 아름다운 금강변 마실길을 걸었다. 금강천리 물길은 용담댐을 지나고부터 심산궁곡의 상류에서 심하게 감입곡류하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무주에서 육지 속 섬마을인 도소마을, 잠두마을, 나루가 없인 닿을 수 없던 요대마을, 앞섬마을 등을 만들고, 물길이 만든 대문바위, 각 바다신2 다운로드 시바위, 감악바위들이 쉴 새 없이 감탄하게 한다.
▲ 금강 벼룻길 강 절벽에 난 길로 걷는 금강 야마토무료게임 벼룻길. 옛 시집살이의 애환을 전하는 각시바위를 만나고(상) 바위굴을 통과한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금강변을 따라 도소마을을 지나고 유평마을 앞에서 배고픈다리를 건너 부남강변을 걷는 바다이야기룰 데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6년 전 여름 이곳을 걷다가 청정 강물 속에 풍덩풍덩 뛰어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씩 사지를 잡아 머리까지 강물에 담그며 해남에서부터 걸어오며 쌓였던 한풀이를 했는데 마지막에 내가 걸리고야 말았다. 여지없이 물에 빠진 생쥐가 돼야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물길이다.
그때의 푸르디 푸르렀던 강물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푸른 강물은 강안을 메우며 넓은 품처럼 강을 꽉 채워 흘렀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다른 모습이다. 강이 제대로 안 보일 만큼 퇴적토와 수풀로 꽉 차 있다. 6년 전처럼 만약 지금이 여름이라도 강물에 들어갈 수 없다.
▲ 금강의 같은 장소 다른 모습 6년전 뛰어들어 놀았던 청정 금강의 모습과(상) 같은 위치에 옛 모습을 찾을 길 없이 퇴적토와 수풀이 꽉 들어찬 지금의 금강의 모습(하)
ⓒ (사)사람길걷기협회
서글프다. 처음 금강의 변화를 느꼈다. 산과 물이 많아 금수강산으로 불린 한국의 자연 생태는 강이 가장 먼저 반영해 보여준다. 그런데 그 금강이 최상류부터 심상치가 않다. 이곳저곳 강변을 개발하며 토사가 쌓이고 유속이 느려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애써 위안하며 걷는다. 강의 모습이 변한 것은 맞지만 좋은 변화인지, 나쁜 변화인지 확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부남면 금강식당에서 무주의 자랑 빠가어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그 뒤에 비경의 금강 벼룻길(벼랑길)을 지나고, 잠두마을 건너편의 강변 숲길을 휘도는 마실길 생태숲(옛 잠두길)을 지나고, 강선대 앞 무주남대천의 아름다운 해넘이를 보며 무주읍에 도착했다. 29일 약 30km를 걸었다.
▲ 금강변마실길 생태숲길 겨울철로 접어들고 있지만 따뜻함을 머금은 금강마실길 생태숲길(좌) 옆으로 아름다운 금강이 자연마을 잠두마을을 돌아흐르고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 무주남대천의 해넘이 무주읍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강선대 앞 무주남대천변의 차살앞들을 지나는데 강 서녘으로 해가 지고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적벽강의 정수 구간을 가는 기대감
무주읍에서 숙박 후 30일 아침 앞섬다리로 반딧불마을이자 복숭아마을인 앞섬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뒤쪽 부흥산의 암벽을 깎아낸 고개길을 넘어 금산에 들어섰다. 산들과 함께 흐르는 금강 주변 풍경은 말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감동을 준다. 적벽강에 가까워질수록 최고의 청정자연을 유지했던 적벽강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 사방이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나루 없이는 드나들 수 없었던 앞섬마을로 앞섬다리를 건너 들어가(상) 뒤를 막아선 부흥산의 암벽을 깎아서 낸 고개길을 넘어 금산으로 들어선다. (하)
ⓒ (사)사람길걷기협회
적벽강의 정수 구간은 부흥산이 금강을 막고, 금강은 금산 방우리를 갈라 놓아 적벽강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선 곳에 있다. 같은 방우리임에도 북쪽의 호목골로 양각산 정상(568m)까지 혀처럼 삐죽 뻗은 지대를 금강이 갈라 놓아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았던 숨겨진 장소였다.
길이 끊긴 맹지여서 누구라도 이곳에 어렵사리 왔다가도 적벽강을 보지 못하고 다시 돌아나가야 했다. 수직 적벽을 보려면 예외 없이 도보 도강을 해야 했다. 다행히 당시만 해도 강 폭이 넓고 물이 얕았다. 여름철엔 시원하게 물놀이하듯 건널 수 있었다.
2019년에 사람길 종주 루트를 개척하던 우리도 도보 도강을 결정했다. 때마침 여름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온 후여서 물이 불어 있었다. 노란 황토물이 흘렀다. 난감했다. 용감한 몇몇이 깊이를 재느라 먼저 들어갔다. 가장 얕은 부분을 물길 삼아 다른 단원들도 따라 들어갔다.
신발을 메고 스틱을 짚고 천천히 전진해갔다. 다행히 깊지 않았고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래도 도보 도강은 수심이 낮기로 유명한 남한강의 비내섬에 들어갈 때 이후 처음이었다. 평생 남을 익스트림 스포츠의 현장이었다.
▲ 6년 전 평상시의 방우리 적벽강에 다리는 없었지만 강의 수심이 얕아 물놀이하듯 걸어서 도강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상) 6년전 국토종주길 개척 당시 일행이 건널 때는 장마로 물이 불어나 있었지만 건널 수 있었고 여전히 물놀이객들이 있었다.(하)
ⓒ 나한영
더 큰 문제는 강을 건넌 후였다. 반대편으로 계속 전진해야 했지만 강과 수직 절벽에 막혀 더 갈 수 없었다. 양각산을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호목골로 들어가 재넘어골을 넘어 수통리 쪽의 수통대교 쪽으로 내려와야 했다.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 중 오지였던 이곳에 2년 전인 2023년에 다리가 놓였다. 우리가 걸어서 건넌 바로 그 자리에 세월2교가 세워졌다. 반대편에 나올 길이 없던 곳엔 절벽을 깎고 강을 메워 도로가 개설되고 세월1교가 준공돼 수통리와 연결됐다.
▲ 같은 장소 다른 모습 1. 세월1교가 생기기 전과 후 양쪽 절벽 사이를 꽉 메우고 흐르던 6년 전 금강의 모습과(상) 절벽을 깎고 강을 메워 2년 전 완공된 강변길과 세월2교로 방우리 적벽강에 차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이젠 편하게 들어가고 나올 수 있게 된 곳에 쉽게 가서 예전의 감흥만 느끼면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예상 못한 적벽강의 모습을 보기 전까진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칠 정도로 흥분과 기대로 채웠다.
드디어 적벽강 앞에 섰는데
드디어 적벽강으로 들어가는 세월2교를 처음 만났다. 그토록 기다렸던 곳이라 한참을 다리 위에 서서 사방이 아름다운 자연으로 넘실대는 오지의 청정자연과 적막강산의 모습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 같은 장소 다른 모습 2. 세월2교가 생기기 전과 후 적벽강을 보기 위해 6년 전 걸어서 도강하던 바로 그곳에(상) 2년전에 세월2교가 놓여졌다.(하)
ⓒ 나한영
다리를 건너니 '방우리 세월2교 자연발생유원지 금강물길 안내지도' 간판이 세워져 있다. '물놀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이므로 구명조끼 착용을 의무화해 주시기 바란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모래톱 안쪽이 깊은 수렁처럼 패여 깊은 곳은 수심이 3m 이상 됐고 사고 위험도 높아졌다.
"이곳이 왜?" 순간 놀랍고 한편으로 의문이 든다. 6년 전엔 수심이랄 것도 없었다. 깨끗한 강물이 얕고 넓게 흘러 강 속에 들어가 놀기 좋은 자연발생유원지를 형성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접근조차 못하게 할 만큼 위험 지역이 된 것일까.
<식물생태보감>의 저자 김종원 교수(계명대 생물학과)는 4대강 사업의 병폐로 '건너지 못하는 강'으로의 변모를 말한다(2017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참고). 평균 강 수심이 6m로 깊어져 강을 맘껏 건너다녔던 야생동물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돼 서식처가 반토막 났다는 것이다.
이곳은 대청호를 지난 높은 상류 쪽으로 그보다는 주변 개발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다리를 놓고 도로를 설치하고 축대를 쌓으며 강이 큰 변화를 맞았다. 강물의 유속이 센 곳에 보나 다리를 놓으면 압력 흐름이 커져 주변이 패이는 세굴 현상이 생긴다.
미국의 경우 교량 파괴의 60%가 세굴에 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 4대강 사업의 경우도 함안보, 고령보, 강천보, 금강의 공주보 등에서 세굴 피해가 발생했다. 물놀이하던 자연유원지이던 이곳이 수렁처럼 하천 바닥이 패인 정확한 원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적벽강의 정수 구간을 가는 기대감
그래도 청정자연이 유지된다면 괜찮다고 위안하며 적벽강 앞으로 걸어간다. 적벽강의 수직 암벽이 점점 위용을 드러낸다. 가슴이 벅차다. 단원들이 감탄을 연발한다. 잊을 수 없던 경관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강가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청정 수역이라고 하기엔 뜻밖의 모습이 보인다. 강변이 뻘로 덮여 지저분하고 비닐 쓰레기들도 누런 뻘 옷을 입고 나뒹굴고 있다. 강물 속은 이끼로 쌓였고 겨울철이어서일까 물고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사람의 때를 타지 않아 가장 청정한 수역을 뽐내던 적벽강이다. 지금도 가장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춘 곳이다. 다리가 놓인 후 자연경관 관광지가 돼야 할 곳이다.
▲ 6년 전과 지금의 적벽강 6년 전 다리가 없어 걸어서 도강해 들어가 촬영한 적벽강의 모습(상)과 2년 전 다리가 생긴 후 세월2교를 건너 들어가 촬영한 현재의 적벽강의 모습(하)
ⓒ 나한영
금강 상류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4대강 사업은 2012년에 마쳤다. 그때 금강 중하류에 3개의 보가 설치됐다. 2014년 4대강 조사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보 설치 후 초속 50~100m로 흐르던 보 주변 유속은 30분의 1로 줄어 거의 흐르지 않는 호수처럼 변했다. 강 바닥의 뻘 비율이 4대강 사업 이전엔 10% 미만이었지만 2014년에 금강의 뻘 바닥이 54.75%나 차지할 만큼 변했다. 녹조가 늘었고 녹조를 먹이로 삼는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했다. 강 바닥에 산소가 통하지 않게 된 강의 생태가 망가졌고 강의 생물들과 물고기가 사라졌다.
2021년 초, 문재인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금강 유역의 3개 보 중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 해체, 백제보 상시 개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현재 해체된 보는 없다. 4대강의 생태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금강천리의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상류 쪽마저 강이 변하고 있다. 대청호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금강 상류의 바닥은 지금 미끈미끈한 뻘과 이끼로 차 있다. 생명이 멈추고 들어갈 수 없는 강으로 변하고 있다.
▲ 적벽강은 금강 상류임에도 강물 속이 뻘과 이끼로 뒤덮여 있다. 11월 30일 촬영한 적벽강의 물속 모습
ⓒ (사)사람길걷기협회
그나마 세종보가 유일하게 2018년부터 5년 이상 상시 개방해 생태 복원의 증거와 희망을 잠시 보여주었었다. 강은 다시 청정 자연의 모습을 회복해 갔다. 그러나 보 해체도 아닌 개방마저 말이 많다가 다시 멈췄다. 보가 있는 한, 보의 상시 개방도 부분적 해소일 뿐이다. 4대강 재자연화를 환경 분야 제1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 정부에 다시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강이 살아야 금수강산 한국의 자연이 산다. 강은 문명을 만들었고 생명을 살찌웠다. 상관 없는 듯 보이는 지금의 도시 문명도 기실은 강에 의존하고 있다. 적벽강은 천내강으로 흘러 백마강을 이루며 공주, 부여 등 백제 도읍지의 배경이 되었고, 다시 금강으로 호남평야의 쌀 집산지로 군산 항구도시를 발전시켰다. 대전분지와 청주분지 옆을 흐르며 중부 대도시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고, 최근까지 세종행정도시를 낳는 기반이 되었다.
그들 도시 사이를 유유히,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흐르는 금강으로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다시 국토순례길을 재촉한다.
11월 29~30일, 그토록 기대했던 무주 금강마실길과 금산 적벽강을 6년 만에 걸었다. 금강은 상류에서 감입곡류하며 최고의 계곡미와 많은 육지 속 섬을 만들면서 흘러 적벽강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도보 국토종주길을 개척하던 6년 전 금강을 걸었을 때도 금강은 '환희' 자체였다. 말로만의 금강이 아니라 뛰어들어가 맘껏 뛰어놀수 있는 무공해 청정수가 오지의 빼어난 자연 속을 흐르는 모습을 경험하며 무한히 가슴 벅차 올랐었다. 그래서 다시 가는 금강과 적벽강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자연하천 금강의 신비 마주한 금강변 마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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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은 진안 용담댐에서 출발해 용담면을 지나 무주로 들어서서 아름다운 금강변 마실길을 걸었다. 금강천리 물길은 용담댐을 지나고부터 심산궁곡의 상류에서 심하게 감입곡류하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무주에서 육지 속 섬마을인 도소마을, 잠두마을, 나루가 없인 닿을 수 없던 요대마을, 앞섬마을 등을 만들고, 물길이 만든 대문바위, 각 바다신2 다운로드 시바위, 감악바위들이 쉴 새 없이 감탄하게 한다.
▲ 금강 벼룻길 강 절벽에 난 길로 걷는 금강 야마토무료게임 벼룻길. 옛 시집살이의 애환을 전하는 각시바위를 만나고(상) 바위굴을 통과한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금강변을 따라 도소마을을 지나고 유평마을 앞에서 배고픈다리를 건너 부남강변을 걷는 바다이야기룰 데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6년 전 여름 이곳을 걷다가 청정 강물 속에 풍덩풍덩 뛰어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씩 사지를 잡아 머리까지 강물에 담그며 해남에서부터 걸어오며 쌓였던 한풀이를 했는데 마지막에 내가 걸리고야 말았다. 여지없이 물에 빠진 생쥐가 돼야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물길이다.
그때의 푸르디 푸르렀던 강물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푸른 강물은 강안을 메우며 넓은 품처럼 강을 꽉 채워 흘렀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다른 모습이다. 강이 제대로 안 보일 만큼 퇴적토와 수풀로 꽉 차 있다. 6년 전처럼 만약 지금이 여름이라도 강물에 들어갈 수 없다.
▲ 금강의 같은 장소 다른 모습 6년전 뛰어들어 놀았던 청정 금강의 모습과(상) 같은 위치에 옛 모습을 찾을 길 없이 퇴적토와 수풀이 꽉 들어찬 지금의 금강의 모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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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다. 처음 금강의 변화를 느꼈다. 산과 물이 많아 금수강산으로 불린 한국의 자연 생태는 강이 가장 먼저 반영해 보여준다. 그런데 그 금강이 최상류부터 심상치가 않다. 이곳저곳 강변을 개발하며 토사가 쌓이고 유속이 느려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애써 위안하며 걷는다. 강의 모습이 변한 것은 맞지만 좋은 변화인지, 나쁜 변화인지 확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부남면 금강식당에서 무주의 자랑 빠가어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그 뒤에 비경의 금강 벼룻길(벼랑길)을 지나고, 잠두마을 건너편의 강변 숲길을 휘도는 마실길 생태숲(옛 잠두길)을 지나고, 강선대 앞 무주남대천의 아름다운 해넘이를 보며 무주읍에 도착했다. 29일 약 30km를 걸었다.
▲ 금강변마실길 생태숲길 겨울철로 접어들고 있지만 따뜻함을 머금은 금강마실길 생태숲길(좌) 옆으로 아름다운 금강이 자연마을 잠두마을을 돌아흐르고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 무주남대천의 해넘이 무주읍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강선대 앞 무주남대천변의 차살앞들을 지나는데 강 서녘으로 해가 지고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적벽강의 정수 구간을 가는 기대감
무주읍에서 숙박 후 30일 아침 앞섬다리로 반딧불마을이자 복숭아마을인 앞섬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뒤쪽 부흥산의 암벽을 깎아낸 고개길을 넘어 금산에 들어섰다. 산들과 함께 흐르는 금강 주변 풍경은 말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감동을 준다. 적벽강에 가까워질수록 최고의 청정자연을 유지했던 적벽강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 사방이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나루 없이는 드나들 수 없었던 앞섬마을로 앞섬다리를 건너 들어가(상) 뒤를 막아선 부흥산의 암벽을 깎아서 낸 고개길을 넘어 금산으로 들어선다. (하)
ⓒ (사)사람길걷기협회
적벽강의 정수 구간은 부흥산이 금강을 막고, 금강은 금산 방우리를 갈라 놓아 적벽강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선 곳에 있다. 같은 방우리임에도 북쪽의 호목골로 양각산 정상(568m)까지 혀처럼 삐죽 뻗은 지대를 금강이 갈라 놓아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았던 숨겨진 장소였다.
길이 끊긴 맹지여서 누구라도 이곳에 어렵사리 왔다가도 적벽강을 보지 못하고 다시 돌아나가야 했다. 수직 적벽을 보려면 예외 없이 도보 도강을 해야 했다. 다행히 당시만 해도 강 폭이 넓고 물이 얕았다. 여름철엔 시원하게 물놀이하듯 건널 수 있었다.
2019년에 사람길 종주 루트를 개척하던 우리도 도보 도강을 결정했다. 때마침 여름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온 후여서 물이 불어 있었다. 노란 황토물이 흘렀다. 난감했다. 용감한 몇몇이 깊이를 재느라 먼저 들어갔다. 가장 얕은 부분을 물길 삼아 다른 단원들도 따라 들어갔다.
신발을 메고 스틱을 짚고 천천히 전진해갔다. 다행히 깊지 않았고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래도 도보 도강은 수심이 낮기로 유명한 남한강의 비내섬에 들어갈 때 이후 처음이었다. 평생 남을 익스트림 스포츠의 현장이었다.
▲ 6년 전 평상시의 방우리 적벽강에 다리는 없었지만 강의 수심이 얕아 물놀이하듯 걸어서 도강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상) 6년전 국토종주길 개척 당시 일행이 건널 때는 장마로 물이 불어나 있었지만 건널 수 있었고 여전히 물놀이객들이 있었다.(하)
ⓒ 나한영
더 큰 문제는 강을 건넌 후였다. 반대편으로 계속 전진해야 했지만 강과 수직 절벽에 막혀 더 갈 수 없었다. 양각산을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호목골로 들어가 재넘어골을 넘어 수통리 쪽의 수통대교 쪽으로 내려와야 했다.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 중 오지였던 이곳에 2년 전인 2023년에 다리가 놓였다. 우리가 걸어서 건넌 바로 그 자리에 세월2교가 세워졌다. 반대편에 나올 길이 없던 곳엔 절벽을 깎고 강을 메워 도로가 개설되고 세월1교가 준공돼 수통리와 연결됐다.
▲ 같은 장소 다른 모습 1. 세월1교가 생기기 전과 후 양쪽 절벽 사이를 꽉 메우고 흐르던 6년 전 금강의 모습과(상) 절벽을 깎고 강을 메워 2년 전 완공된 강변길과 세월2교로 방우리 적벽강에 차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이젠 편하게 들어가고 나올 수 있게 된 곳에 쉽게 가서 예전의 감흥만 느끼면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예상 못한 적벽강의 모습을 보기 전까진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칠 정도로 흥분과 기대로 채웠다.
드디어 적벽강 앞에 섰는데
드디어 적벽강으로 들어가는 세월2교를 처음 만났다. 그토록 기다렸던 곳이라 한참을 다리 위에 서서 사방이 아름다운 자연으로 넘실대는 오지의 청정자연과 적막강산의 모습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 같은 장소 다른 모습 2. 세월2교가 생기기 전과 후 적벽강을 보기 위해 6년 전 걸어서 도강하던 바로 그곳에(상) 2년전에 세월2교가 놓여졌다.(하)
ⓒ 나한영
다리를 건너니 '방우리 세월2교 자연발생유원지 금강물길 안내지도' 간판이 세워져 있다. '물놀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이므로 구명조끼 착용을 의무화해 주시기 바란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모래톱 안쪽이 깊은 수렁처럼 패여 깊은 곳은 수심이 3m 이상 됐고 사고 위험도 높아졌다.
"이곳이 왜?" 순간 놀랍고 한편으로 의문이 든다. 6년 전엔 수심이랄 것도 없었다. 깨끗한 강물이 얕고 넓게 흘러 강 속에 들어가 놀기 좋은 자연발생유원지를 형성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접근조차 못하게 할 만큼 위험 지역이 된 것일까.
<식물생태보감>의 저자 김종원 교수(계명대 생물학과)는 4대강 사업의 병폐로 '건너지 못하는 강'으로의 변모를 말한다(2017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참고). 평균 강 수심이 6m로 깊어져 강을 맘껏 건너다녔던 야생동물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돼 서식처가 반토막 났다는 것이다.
이곳은 대청호를 지난 높은 상류 쪽으로 그보다는 주변 개발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다리를 놓고 도로를 설치하고 축대를 쌓으며 강이 큰 변화를 맞았다. 강물의 유속이 센 곳에 보나 다리를 놓으면 압력 흐름이 커져 주변이 패이는 세굴 현상이 생긴다.
미국의 경우 교량 파괴의 60%가 세굴에 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 4대강 사업의 경우도 함안보, 고령보, 강천보, 금강의 공주보 등에서 세굴 피해가 발생했다. 물놀이하던 자연유원지이던 이곳이 수렁처럼 하천 바닥이 패인 정확한 원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적벽강의 정수 구간을 가는 기대감
그래도 청정자연이 유지된다면 괜찮다고 위안하며 적벽강 앞으로 걸어간다. 적벽강의 수직 암벽이 점점 위용을 드러낸다. 가슴이 벅차다. 단원들이 감탄을 연발한다. 잊을 수 없던 경관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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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전과 지금의 적벽강 6년 전 다리가 없어 걸어서 도강해 들어가 촬영한 적벽강의 모습(상)과 2년 전 다리가 생긴 후 세월2교를 건너 들어가 촬영한 현재의 적벽강의 모습(하)
ⓒ 나한영
금강 상류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4대강 사업은 2012년에 마쳤다. 그때 금강 중하류에 3개의 보가 설치됐다. 2014년 4대강 조사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보 설치 후 초속 50~100m로 흐르던 보 주변 유속은 30분의 1로 줄어 거의 흐르지 않는 호수처럼 변했다. 강 바닥의 뻘 비율이 4대강 사업 이전엔 10% 미만이었지만 2014년에 금강의 뻘 바닥이 54.75%나 차지할 만큼 변했다. 녹조가 늘었고 녹조를 먹이로 삼는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했다. 강 바닥에 산소가 통하지 않게 된 강의 생태가 망가졌고 강의 생물들과 물고기가 사라졌다.
2021년 초, 문재인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금강 유역의 3개 보 중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 해체, 백제보 상시 개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현재 해체된 보는 없다. 4대강의 생태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금강천리의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상류 쪽마저 강이 변하고 있다. 대청호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금강 상류의 바닥은 지금 미끈미끈한 뻘과 이끼로 차 있다. 생명이 멈추고 들어갈 수 없는 강으로 변하고 있다.
▲ 적벽강은 금강 상류임에도 강물 속이 뻘과 이끼로 뒤덮여 있다. 11월 30일 촬영한 적벽강의 물속 모습
ⓒ (사)사람길걷기협회
그나마 세종보가 유일하게 2018년부터 5년 이상 상시 개방해 생태 복원의 증거와 희망을 잠시 보여주었었다. 강은 다시 청정 자연의 모습을 회복해 갔다. 그러나 보 해체도 아닌 개방마저 말이 많다가 다시 멈췄다. 보가 있는 한, 보의 상시 개방도 부분적 해소일 뿐이다. 4대강 재자연화를 환경 분야 제1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 정부에 다시 기대를 거는 이유이다.
강이 살아야 금수강산 한국의 자연이 산다. 강은 문명을 만들었고 생명을 살찌웠다. 상관 없는 듯 보이는 지금의 도시 문명도 기실은 강에 의존하고 있다. 적벽강은 천내강으로 흘러 백마강을 이루며 공주, 부여 등 백제 도읍지의 배경이 되었고, 다시 금강으로 호남평야의 쌀 집산지로 군산 항구도시를 발전시켰다. 대전분지와 청주분지 옆을 흐르며 중부 대도시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고, 최근까지 세종행정도시를 낳는 기반이 되었다.
그들 도시 사이를 유유히,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흐르는 금강으로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다시 국토순례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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