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로 다시 찾는 설렘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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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1-03 10:27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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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로 다시 찾는 설렘의 순간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이 조금씩 식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설렘, 손끝에서 느껴지던 떨림,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열정은 점차 일상에 묻혀 가기 마련입니다. 사랑은 깊어지지만, 그만큼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조금씩 둔화됩니다. 특히 성적인 친밀감은 부부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것이 사라지면 관계 자체에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x27처음처럼 설레는 만남x27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단순한 약물이 아니라, 사랑과 열정을 되살려주는 하나의 도약점입니다. 성기능 저하로 인한 불안감과 자신감 부족을 극복하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를 향한 설렘과 친밀감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 첫 만남의 설렘, 어떻게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 두 사람은 각자의 몸과 마음이 서로에게 열리고, 그 설렘은 점점 깊어지며 강한 유대감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설렘은 점차 일상적인 관계로 변해갑니다. 때로는 성적인 부분에서도 피로감이 쌓이고, 관계가 늘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렘은 언제든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아그라는 성기능을 회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교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성적 자극에 반응하여 발기가 이루어지게 해주는 비아그라는 남성의 성적 자신감을 회복시켜, 부부 간의 친밀감을 다시금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2. 비아그라의 작용 메커니즘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
비아그라는 주로 혈류를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음경의 발기를 촉진합니다. 성적 자극을 받았을 때, 혈관이 확장되어 혈액이 음경으로 충분히 공급됩니다. 이 과정에서 성적인 반응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며, 남성의 성적 자신감도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그러나 비아그라는 단순히 신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성적인 만족감은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에 비로소 완성됩니다. 비아그라는 성적인 기능을 회복시킴으로써, 부부가 다시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게 돕습니다.
3. 부부의 성적 친밀감 회복비아그라가 만들어주는 변화
성적인 친밀감은 감정적 친밀감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경험을 나누며,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비아그라는 이 감정적 교감을 다시금 깊어지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기능이 저하되면서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부부간의 대화나 신체적인 표현들이 다시금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비아그라를 통해 성적 자신감을 회복한 남성은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아내에게 다가가고, 그 결과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훨씬 더 깊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4. 아내의 입장에서사랑을 되찾는 과정
남편이 성기능 저하를 경험하게 되면, 아내는 종종 자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내가 매력이 없어진 걸까, 혹시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성기능 저하는 심리적, 생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결과일 뿐입니다. 부부 간의 사랑은 단지 성적 능력만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서로의 진심을 공유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며, 진정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아그라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아그라를 복용한 후, 남편은 다시 성적인 자신감을 되찾고, 아내에게 한층 더 다가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내는 다시 한 번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되며, 부부 간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 깊어지게 됩니다.
5. 비아그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사용법
비아그라는 단지 성기능을 회복시키는 약물일 뿐만 아니라, 자신감 회복과 관계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물의 복용 전에는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아그라는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는 적절한 복용 방법을 전문가와 함께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아그라의 효과를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스트레스 관리가 뒷받침될 때 비아그라는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6. 다시 시작하는 설렘, 비아그라와 함께
비아그라는 단순한 약물이 아닙니다. 설렘을 다시 느끼고, 사랑을 재발견하며, 부부 간의 친밀감을 회복하게 해주는 소중한 도약입니다. 첫 만남의 설렘, 연애 시절의 감정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와 함께라면, 그 설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처럼 설레는 만남, 그것은 단순히 성적인 부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의 깊은 소통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되새기는 순간입니다. 비아그라가 그 소중한 순간을 되살려줄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사랑을 다시 설레게 만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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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no1reelsite.com
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가 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를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도 살고 있다고. 당연히 당신은 할 수 있다고. 많은 분이 희망을 얻어 갑니다.”
진료실 문이 열리자 치과 도구를 집은 의사의 손가락에 투명한 플라스틱 보조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손의 움직임을 보완하는 장치다. 휠체어 사아다쿨 에 앉은 채 환자와 눈높이를 맞춘 의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진료를 이어간다.
26일 경기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규환(46)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2005년부터 이곳에서 치과의사로 근무 중이다. 꼼꼼하고 친절한 진료 덕분에 예약 스케줄은 촘촘히 잡혀있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환자들도 이제는 이 교수를 먼저 찾아온다.
이 바다이야기온라인 교수는 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시절, 다이빙 사고로 하루아침에 사지가 마비된 1급 최중증 장애인이 됐다. 사고 전 그의 삶은 그야말로 남 부러울 것 없이 순탄했다. 키 188㎝의 듬직한 체격에 반장과 회장을 도맡을 만큼 사교적이었고 공부와 운동 모두 곧잘 했다. “잘하는 공부로 잘 먹고 잘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듯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24시간 내내 비명과 울음이 끊이지 않던 중환자실에서 그는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당신은 죽는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포기도 해봤고, 분노도 해봤다. 끝내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이 교수는 “온몸이 움직이지 않다 보 야마토게임 니 배운 대로 혀밖에 깨물 수가 없었다”며 “하지만 영화처럼 쉽게 죽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결국 삶 자체를 포기하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몸은 굳어있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지옥 같던 중환자실에서 그는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긍정적인 책들부터 희망적인 기사들까지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여러 글을 읽어줬다”며 “다른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알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때 이 교수는 “반드시 치과의사가 되고 죽겠다”라는 일념 아래 남들보다 10배 더 공부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국가고시에 한 번에 합격했고 수많은 병원의 문을 두드린 끝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
인생의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다치기 전에는 몰랐다. 그가 나눔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이 교수는 “만약 다시 저를 살려주신다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살고 죽겠다고 수백만번 기도했다”며 “그 약속을 지키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눔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남을 돕는 일이 오히려 내가 복을 받는 일이더라”며 “전신마비가 된 나 같은 사람도 살아서 의사가 됐다고 말해주면 절망하던 사람들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귀인이 자신을 살렸다고 말한다. 다시 학교에 복학했을 땐 선후배 동기들이 휠체어를 옮겨주고 필기한 노트를 나눠줬다. 이 교수는 “휠체어에 계단 하나는 만리장성과도 같다”며 “무거운 전동휠체어를 다 같이 들어주고 닫혀있던 문도 활짝 열어줬다”고 말했다. 의사가 된 지금도 혼자가 아니다. 진료실에서는 동료들이 손발이 되어준다. 진료 기구를 손에 끼워주고 환자가 누울 의자도 펼쳐주며 돕는다.
이제 ‘나눔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20년이 넘은 복지관 기부부터 의료 봉사, 강연에 이르기까지 타인을 위해 사는 이유다.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활동은 멘토링이다. 단순 기부보다 충분한 대화가 희망을 주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고 느껴서다. 절망의 한가운데 있던 이들이 그에게 손을 내민다.
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가 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이 교수는 “가장 기억나는 아이 중 한 명은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초등학생”이라며 “당시 친구들의 놀림까지 받으며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기까지 했다”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제 삶을 보여주며 ‘너도 당연히 할 수 있다. 내가 뒤에서 밀어주고 노하우도 다 전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아이는 지금은 대학교에도 합격하고 공무원이 됐다.
해외에서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이 교수는 “중국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다’며 한국까지 찾아온 적이 있다”며 “장애가 있는 딸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는 부모의 부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 아이에게 “‘이런 사람도 세계 최초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며 “중국으로 돌아간 뒤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래 마음에 남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멘토링은 특별한 말보다 존재 그 자체에 가깝다. 휠체어를 타는 자신도 의사가 됐으니 버티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일부러 희망적인 말만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신 그는 “너무 힘들 거라고 인생은 만만치 않다. 장애인은 더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를 보라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버텼다고. 너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이 교수는 “멘토링을 하고 결혼한 사람도 있고 대학에 다니다 포기하고 나서 다시 복학해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라며 “후원금으로 부모님 건강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참 기분이 좋았다”라고 전했다.
지금은 ‘감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밝은 미소를 보이기까지 아픈 기억도 많았다.
이 교수는 “저를 보자마자 ‘병신이 진료하네’라고 화내며 나간 할아버지도 있었다”라며 “진료실 문도 열려있어 복도 밖까지 욕설이 울려 퍼졌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저한테 침을 뱉는 환자도 재수가 없다며 병원장에게 따지러 간 환자도 있었다”며 “너무 힘들었지만 그런 일 덕분에 더 열심히 하고 버틴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며 배웠다는 그는 “나와 같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선배로서 직접 겪으며 얻은 노하우를 꼭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 시절 사고를 당한 그는 욕창을 겪으며 엉덩잇살을 다 긁어낼 정도로 고통스럽게 공부했다. 침대 앞에 책을 끼워 넣은 채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며 버텨냈다. 공부 방법부터 대인 관계,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까지 삶 전반에 대한 경험은 나눌 수 있는 자산이 됐다.
이 교수는 “저도 무식하게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며 “설령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죽을 만큼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정해서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너무 힘들 거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순간을 그냥 버텨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수술 경험과 여러 차례 기절했던 기억까지 숨김없이 들려준다. “너는 손이 움직이지 않느냐, 감각이 있지 않느냐, 걸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사람이지만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해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부르고 있다. 그의 활동을 지켜본 치과의사들과 일반인들도 함께 하겠다고 앞다퉈 연락이 온다. 이 교수는 “나눔은 대단할 필요가 없다”며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후원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취약계층이 적절한 진료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 방안도 준비 중이다. 그는 “치과 진료만큼은 자기 입안 상태와 치료 방법에 대해 편하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안전하고 올바른 진료나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교수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문장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자’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도, 일을 할 때도 그 기준으로 생각한다”라며 “내일 죽어도 괜찮으니까 오늘 하루만큼은 정말 열심히 따뜻한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이 교수는 2024년 보건복지부 ‘나눔국민대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지난 2004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장애인복합복지관, 노인종합복지관, 장애인협회 등 다양한 기관에서 장애인의 구강건강 증진과 재활을 위해 세밀한 검사와 상담을 제공하고 치료와 연계해 왔다.
또 수십 차례의 교육과 강연 후원을 통해 장애인 구강건강을 향상하기 위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앞서 2019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상 및 제8회 윤광열치과의료봉사상, 2023년엔 제3회 김우중 의료인상을 수상했다.
전새날 기자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를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도 살고 있다고. 당연히 당신은 할 수 있다고. 많은 분이 희망을 얻어 갑니다.”
진료실 문이 열리자 치과 도구를 집은 의사의 손가락에 투명한 플라스틱 보조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손의 움직임을 보완하는 장치다. 휠체어 사아다쿨 에 앉은 채 환자와 눈높이를 맞춘 의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진료를 이어간다.
26일 경기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규환(46)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2005년부터 이곳에서 치과의사로 근무 중이다. 꼼꼼하고 친절한 진료 덕분에 예약 스케줄은 촘촘히 잡혀있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환자들도 이제는 이 교수를 먼저 찾아온다.
이 바다이야기온라인 교수는 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시절, 다이빙 사고로 하루아침에 사지가 마비된 1급 최중증 장애인이 됐다. 사고 전 그의 삶은 그야말로 남 부러울 것 없이 순탄했다. 키 188㎝의 듬직한 체격에 반장과 회장을 도맡을 만큼 사교적이었고 공부와 운동 모두 곧잘 했다. “잘하는 공부로 잘 먹고 잘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듯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24시간 내내 비명과 울음이 끊이지 않던 중환자실에서 그는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당신은 죽는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포기도 해봤고, 분노도 해봤다. 끝내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이 교수는 “온몸이 움직이지 않다 보 야마토게임 니 배운 대로 혀밖에 깨물 수가 없었다”며 “하지만 영화처럼 쉽게 죽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결국 삶 자체를 포기하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몸은 굳어있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지옥 같던 중환자실에서 그는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긍정적인 책들부터 희망적인 기사들까지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여러 글을 읽어줬다”며 “다른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알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때 이 교수는 “반드시 치과의사가 되고 죽겠다”라는 일념 아래 남들보다 10배 더 공부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국가고시에 한 번에 합격했고 수많은 병원의 문을 두드린 끝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
인생의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다치기 전에는 몰랐다. 그가 나눔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이 교수는 “만약 다시 저를 살려주신다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살고 죽겠다고 수백만번 기도했다”며 “그 약속을 지키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눔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남을 돕는 일이 오히려 내가 복을 받는 일이더라”며 “전신마비가 된 나 같은 사람도 살아서 의사가 됐다고 말해주면 절망하던 사람들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귀인이 자신을 살렸다고 말한다. 다시 학교에 복학했을 땐 선후배 동기들이 휠체어를 옮겨주고 필기한 노트를 나눠줬다. 이 교수는 “휠체어에 계단 하나는 만리장성과도 같다”며 “무거운 전동휠체어를 다 같이 들어주고 닫혀있던 문도 활짝 열어줬다”고 말했다. 의사가 된 지금도 혼자가 아니다. 진료실에서는 동료들이 손발이 되어준다. 진료 기구를 손에 끼워주고 환자가 누울 의자도 펼쳐주며 돕는다.
이제 ‘나눔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20년이 넘은 복지관 기부부터 의료 봉사, 강연에 이르기까지 타인을 위해 사는 이유다.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활동은 멘토링이다. 단순 기부보다 충분한 대화가 희망을 주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고 느껴서다. 절망의 한가운데 있던 이들이 그에게 손을 내민다.
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가 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이 교수는 “가장 기억나는 아이 중 한 명은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초등학생”이라며 “당시 친구들의 놀림까지 받으며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기까지 했다”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제 삶을 보여주며 ‘너도 당연히 할 수 있다. 내가 뒤에서 밀어주고 노하우도 다 전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아이는 지금은 대학교에도 합격하고 공무원이 됐다.
해외에서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이 교수는 “중국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다’며 한국까지 찾아온 적이 있다”며 “장애가 있는 딸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는 부모의 부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 아이에게 “‘이런 사람도 세계 최초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며 “중국으로 돌아간 뒤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래 마음에 남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멘토링은 특별한 말보다 존재 그 자체에 가깝다. 휠체어를 타는 자신도 의사가 됐으니 버티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일부러 희망적인 말만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신 그는 “너무 힘들 거라고 인생은 만만치 않다. 장애인은 더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를 보라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버텼다고. 너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이 교수는 “멘토링을 하고 결혼한 사람도 있고 대학에 다니다 포기하고 나서 다시 복학해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라며 “후원금으로 부모님 건강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참 기분이 좋았다”라고 전했다.
지금은 ‘감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밝은 미소를 보이기까지 아픈 기억도 많았다.
이 교수는 “저를 보자마자 ‘병신이 진료하네’라고 화내며 나간 할아버지도 있었다”라며 “진료실 문도 열려있어 복도 밖까지 욕설이 울려 퍼졌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저한테 침을 뱉는 환자도 재수가 없다며 병원장에게 따지러 간 환자도 있었다”며 “너무 힘들었지만 그런 일 덕분에 더 열심히 하고 버틴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며 배웠다는 그는 “나와 같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선배로서 직접 겪으며 얻은 노하우를 꼭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 시절 사고를 당한 그는 욕창을 겪으며 엉덩잇살을 다 긁어낼 정도로 고통스럽게 공부했다. 침대 앞에 책을 끼워 넣은 채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며 버텨냈다. 공부 방법부터 대인 관계,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까지 삶 전반에 대한 경험은 나눌 수 있는 자산이 됐다.
이 교수는 “저도 무식하게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며 “설령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죽을 만큼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정해서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너무 힘들 거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순간을 그냥 버텨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수술 경험과 여러 차례 기절했던 기억까지 숨김없이 들려준다. “너는 손이 움직이지 않느냐, 감각이 있지 않느냐, 걸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사람이지만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해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부르고 있다. 그의 활동을 지켜본 치과의사들과 일반인들도 함께 하겠다고 앞다퉈 연락이 온다. 이 교수는 “나눔은 대단할 필요가 없다”며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후원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취약계층이 적절한 진료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 방안도 준비 중이다. 그는 “치과 진료만큼은 자기 입안 상태와 치료 방법에 대해 편하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안전하고 올바른 진료나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교수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문장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자’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도, 일을 할 때도 그 기준으로 생각한다”라며 “내일 죽어도 괜찮으니까 오늘 하루만큼은 정말 열심히 따뜻한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이 교수는 2024년 보건복지부 ‘나눔국민대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지난 2004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장애인복합복지관, 노인종합복지관, 장애인협회 등 다양한 기관에서 장애인의 구강건강 증진과 재활을 위해 세밀한 검사와 상담을 제공하고 치료와 연계해 왔다.
또 수십 차례의 교육과 강연 후원을 통해 장애인 구강건강을 향상하기 위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앞서 2019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상 및 제8회 윤광열치과의료봉사상, 2023년엔 제3회 김우중 의료인상을 수상했다.
전새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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