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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2-21 10:09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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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이'는 쏟아지는 아침 햇살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비비며 깬다. 아침밥 먹으라는 아빠, 하지만 어제 종업식을 마친 소녀는 간만의 늦잠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오늘부터 겨울방학인데 아빠는 바삐 출근했고, 엄마는 외할머니 간병 차 지방에 내려간 상황. 한편 '규리'는 도쿄에서 일하는 아빠와 만나러 와 호텔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미처 일처릴 끝내지 못한 아빠는 멀리서 방문한 딸을 돌볼 겨를이 없다. 서로는 알 턱 없지만 둘 다 할 일이 딱히 없다. 소녀들은 심심하다. 뭐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릴게임무료 .
소녀, 소녀를 만나다
▲ <레이의 겨울방학> 스틸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 영화사 삼순
부모들은 바쁘고 오랜만에 맞이한 방학이지만, 레이와 규리는 마땅히 할 게 없는 상태다. 냉기가 감도는 겨울이라 따스하고 안전한 방구석에서 안온하게 지내면 되련만, 두 소녀 바다이야기꽁머니 는 찬바람 씽씽 바깥으로 용감하게 외출한다. 그렇게 둘은 낯선 만남에 닿는다. 첫 만남은 뒷동산 초입에 자리한 노천 농구장이다. 레이가 가지고 온 농구공으로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상대가 궁금해진 그들은 벤치에서 손짓, 발짓 섞어가며 '콩글리시'로 의사소통에 도전한다.
대화에 애를 먹긴 해도 어떻게든 공통분모를 찾아 바다이야기비밀코드 가며 또래의 두 소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내내 까르르 웃고 떠든다. 무슨 과자를 선호하는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호구조사를 이어가던 중, 둘이 함께 좋아하는 농구 만화를 확인하고 기쁨의 비명을 지른다. 전화번호를 교환한 레이와 규리는 다음날도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두 번째 날, 재회한 소녀들은 공원을 산책하고 시내에서 단란한 시간을 릴게임바다이야기 함께 보낸다. 갑자기 내린 겨울비를 피해 규리의 숙소에서 젖은 옷과 머리를 말리면서도 서로를 발견한 우연한 행운을 만끽하는 듯하다. 세 번째 날엔 레이의 집으로 향한다. 텅 비어 있던 작은 아파트는 둘의 수다와 온기로 채워진다. 그리고 다음 날 둘은 같이 모험을 떠난다. 아주 특별한 겨울방학의 시간이 흐른다.
제대로 통할 턱 없는 불편한 의사소통에도 불구하고 엇비슷한 나이대의 둘은 몸짓 손짓으로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해 나간다. 첫 만남은 농구공을 통한 교감으로, 이틀째는 또래 여자애들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다음날에는 대충 어림짐작해 감정을 교환하고 자신이 풀지 못한 질문을 서로에게 던질 수 있을 정도다. 점점 더 그녀들은 눈빛만 봐도 명시적 대화가 불필요할 만큼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겨울방학 며칠 사이에 '가능한 변화'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극복과 도전
▲ <레이의 겨울방학> 스틸
ⓒ 영화사 삼순
<레이의 겨울방학>은 얼핏 지극히 소소한 일상 이야기다.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콩글리시'와 '한본어' 세례에 피식 웃다 보면 어느새 소녀들의 여정이 마무리로 향한다는 걸 문득 깨닫는 순간이 어느새 닥친다. 조금 더 실실 웃음 나오는 둘의 모험을 관전하고 싶지만, 화면 속 여운이 남을 때가 극장을 떠날 적기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우연히 만나 우정을 나누던 두 소녀는 뜻밖의 행운 덕분에 그저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뻔한 청춘의 소중한 순간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충분히 남는 장사다.
장성한 오빠는 독립해 나갔고 엄마는 한 달 동안 집을 비워야 한다. 늘 야근인 아빠가 중학생 레이를 돌보는 데엔 한계가 뻔하다. 누구나 그렇듯 오매불망 방학을 기다리지만, 막상 닥치면 뭘 할지 몰라 허둥대다 무익하게 시간을 날리기 일쑤다. 우리의 레이 역시 다를 바 없다. 아직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기엔 준비할 게 많지만, 그냥 부모님의 우산 아래 있기엔 쑥쑥 큰 상황. 잠들지 못하는 한밤에 장래에 뭘 할지 자문자답하는 레이의 모습은 국경을 넘어 그 연배 청소년이라면 친숙한 풍경일 테다.
규리는 조금 더 심각하다. 아무리 한국과 일본 사이가 비행기 타면 순식간에 오갈 수 있다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 아빠만 의지해 당도한 소녀는 그 아빠가 자신에게 소홀한 것에 울분이 쌓여간다. 쓸쓸한 호텔 객실에서 지루해하거나, 괜히 홀로 거리를 산책하며 애써 한국의 친구들에게 허세를 섞어 자신의 근사한 해외여행을 자랑한다. 하지만 실제론 객지에서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는 신세다. 보고 싶던 아빠 전화에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린다. 답답하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적 차이를 넘어 지금 두 소녀는 권태롭다. 방학은 휴식과 기회의 가능성인 동시에 그들이 기대던 일상 관계의 단절로도 작동한다. 평소와 조금 다른 특별한 순간을 둘 다 주체하지 못한다. 방황은 변화와 위기를 동시에 제공하는 변수다. 집에 틀어박혀 낯선 시간을 외면할 것인가, 두렵지만 새로운 걸 찾는 모험에 나설까?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모험의 결과물
▲ <레이의 겨울방학> 스틸
ⓒ 영화사 삼순
부모라는 보호막이 일시적으로 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소녀가 겪는 허전함과 고독을 다른 국적과 배경을 가진 둘이 함께 반전의 계기로 일군다. 또래 소녀들이라면 응당 갖게 마련인 공통 관심사, 기호, 공감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에 어른들이 망친 배제와 차별, 혐오는 부정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대화의 불편은 극복할 과제에 불과하다.
오히려 기성 사회와 어른들이 구분한 장벽을 내재한 언어 사용이 원활하지 않은 덕분에 '인간' 대 '인간', 10대 여성으로 서로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레이와 규리는 전혀 의식한 적 없겠지만, 그녀들의 만남과 우정은 요즘 세계에서 횡행하는 오로지 차별과 배제를 목적으로 그어지는 '다름'이 실제론 아무 실체가 없음을 어떤 전문가 해설보다 강력하게 증명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사정'으로 포장된 혐오와 몰이해가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하다. 끼리끼리 웅크리고 틀어박혀 무지에 편견을 확대재생산만 한다면 불가능한 변화다.
모든 건 두 소녀가 울타리 바깥으로 이불을 떨치며 용감히 나왔고, 낯선 친구와 허물없이 부대끼는 도전을 감행한 결과다. 그녀들이 함께 떠나는 작은 여행은 원래라면 (영화 내내 자리를 비운) 엄마와 가려던 길이다. 이제 소녀들이 서툴게나마 친구와 떠나는 여정은 소리 없는 웅변으로 이상적인 '성장'을 구현한다. 별것 아닌 듯해도 상징하는 바가 작지 않은 대목이다. 그녀들의 '진화'를 잔소리 대신 흐뭇하게 지켜보던 카메라 너머 감독의 미소가 곧 관객에게 전이될 테다.
한국영화 위기의 시대, 대안적 실천의 작은 예시
여기까지만 보면 <레이의 겨울방학>은 치밀한 기획으로 자연스러움을 연출한 작업으로 오해되거나 혹은 유사 다큐멘터리 '혼종'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태도는 같은 듯 다르다. <들꽃> <스틸 플라워> <재꽃> '꽃' 3부작은 물론 <바람의 언덕>과 <샤인>으로 이어져 온 박석영 감독의 작업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작가주의 경향을 뚜렷하게 견지해 왔다. 상업자본 간섭과 정형화된 패턴에 얽매임을 줄이며 전하고픈 주제를 (감독이 제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장하는 '작은 영화' 형태로 감독은 연속성을 갖고 매진해 왔다.
신작은 감독의 일관된 경향에 익숙한 이들이 초반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수 있다. '작은 영화'란 점은 공유해도 기본 상황 설정만 배우와 공유한 다음 주어진 배경 안에서 소녀들에게 자유도를 부여해 관찰 기록으로 남기듯 촬영했다. 이전 작품과 차별화한 개성과 함께 '미니멀', 아니 '마이크로' 형태라 봐도 좋을 최소 제작 환경을 맘먹고 감행했다. 감독이 밝힌 바대로 '카메라 하나와 줌렌즈 하나, 빌린 삼각대, 녹음기'만 갖고 본인과 촬영감독만 대동한 작업으로 이룩한 과업이다.
영화는 세련될 만큼 우리가 일본 배경 영화를 볼 때 감탄하는 아기자기하고 아련한 특유의 색감과 감성이 '손대면 톡 터질' 듯 농축된 상태다. 군더더기 없는 설정과 이야기가 담백하게 그려진다. 말로 일일이 표현하긴 쉽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의 삶 어느 한 조각과 맞춰볼 수 있는 교감을 창출한다. 규모는 소소해도 담긴 내용은 가볍지 않다. 예술영화라고 괜히 어깨에 힘 팍 주지 않고 고의적으로 경쾌하게 접근한 덕택에 가능한 작업이다.
어느새 기성 상업영화 시스템의 축소 모델화하는 길을 답습하던 한국 독립영화, 특히 극영화 경향이 덩달아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를 받는 작금 상황에서, 10여 년 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작가가 마치 한국영화 위기 담론에 관한 대답처럼 내놓은 이 영화는 그저 '소품'으로 한정할 수 없는 함의를 갖췄다. 외부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예술적 창작욕을 어떤 위기에도 꿋꿋하게 정진하는 창작자의 결단은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다.
21세기 작가주의 감독의 상징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표작 <인터스텔라>를 상징하는 대사처럼,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를 박석영 감독은 모두가 한국영화에 불어닥친 엄동설한에 두려워할 때 과감히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희망을 찾는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길고 고단한 여정에 맞게 가벼운 몸놀림으로 구현한 결실을 관객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내민다. 영화 속 레이와 규리가 그랬듯이, 감독과 관객이 만날 장면이 두근두근 기다려진다.
<작품정보>
레이의 겨울방학Rei's Winter Break2025 한국 드라마2026.02.25. 개봉 75분 전체관람가감독/각본 박석영출연 구로사키 키리카, 정주은, 쓰루타 고조, 오다 신이치로제작 영화사삼순×교류필름배급 영화사 삼순
2025 51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우수작품상, 넥스트링크상
▲ <레이의 겨울방학> 포스터
ⓒ 영화사 삼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이'는 쏟아지는 아침 햇살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비비며 깬다. 아침밥 먹으라는 아빠, 하지만 어제 종업식을 마친 소녀는 간만의 늦잠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오늘부터 겨울방학인데 아빠는 바삐 출근했고, 엄마는 외할머니 간병 차 지방에 내려간 상황. 한편 '규리'는 도쿄에서 일하는 아빠와 만나러 와 호텔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미처 일처릴 끝내지 못한 아빠는 멀리서 방문한 딸을 돌볼 겨를이 없다. 서로는 알 턱 없지만 둘 다 할 일이 딱히 없다. 소녀들은 심심하다. 뭐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릴게임무료 .
소녀, 소녀를 만나다
▲ <레이의 겨울방학> 스틸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 영화사 삼순
부모들은 바쁘고 오랜만에 맞이한 방학이지만, 레이와 규리는 마땅히 할 게 없는 상태다. 냉기가 감도는 겨울이라 따스하고 안전한 방구석에서 안온하게 지내면 되련만, 두 소녀 바다이야기꽁머니 는 찬바람 씽씽 바깥으로 용감하게 외출한다. 그렇게 둘은 낯선 만남에 닿는다. 첫 만남은 뒷동산 초입에 자리한 노천 농구장이다. 레이가 가지고 온 농구공으로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상대가 궁금해진 그들은 벤치에서 손짓, 발짓 섞어가며 '콩글리시'로 의사소통에 도전한다.
대화에 애를 먹긴 해도 어떻게든 공통분모를 찾아 바다이야기비밀코드 가며 또래의 두 소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내내 까르르 웃고 떠든다. 무슨 과자를 선호하는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호구조사를 이어가던 중, 둘이 함께 좋아하는 농구 만화를 확인하고 기쁨의 비명을 지른다. 전화번호를 교환한 레이와 규리는 다음날도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두 번째 날, 재회한 소녀들은 공원을 산책하고 시내에서 단란한 시간을 릴게임바다이야기 함께 보낸다. 갑자기 내린 겨울비를 피해 규리의 숙소에서 젖은 옷과 머리를 말리면서도 서로를 발견한 우연한 행운을 만끽하는 듯하다. 세 번째 날엔 레이의 집으로 향한다. 텅 비어 있던 작은 아파트는 둘의 수다와 온기로 채워진다. 그리고 다음 날 둘은 같이 모험을 떠난다. 아주 특별한 겨울방학의 시간이 흐른다.
제대로 통할 턱 없는 불편한 의사소통에도 불구하고 엇비슷한 나이대의 둘은 몸짓 손짓으로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해 나간다. 첫 만남은 농구공을 통한 교감으로, 이틀째는 또래 여자애들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다음날에는 대충 어림짐작해 감정을 교환하고 자신이 풀지 못한 질문을 서로에게 던질 수 있을 정도다. 점점 더 그녀들은 눈빛만 봐도 명시적 대화가 불필요할 만큼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겨울방학 며칠 사이에 '가능한 변화'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극복과 도전
▲ <레이의 겨울방학> 스틸
ⓒ 영화사 삼순
<레이의 겨울방학>은 얼핏 지극히 소소한 일상 이야기다.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콩글리시'와 '한본어' 세례에 피식 웃다 보면 어느새 소녀들의 여정이 마무리로 향한다는 걸 문득 깨닫는 순간이 어느새 닥친다. 조금 더 실실 웃음 나오는 둘의 모험을 관전하고 싶지만, 화면 속 여운이 남을 때가 극장을 떠날 적기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우연히 만나 우정을 나누던 두 소녀는 뜻밖의 행운 덕분에 그저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뻔한 청춘의 소중한 순간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충분히 남는 장사다.
장성한 오빠는 독립해 나갔고 엄마는 한 달 동안 집을 비워야 한다. 늘 야근인 아빠가 중학생 레이를 돌보는 데엔 한계가 뻔하다. 누구나 그렇듯 오매불망 방학을 기다리지만, 막상 닥치면 뭘 할지 몰라 허둥대다 무익하게 시간을 날리기 일쑤다. 우리의 레이 역시 다를 바 없다. 아직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기엔 준비할 게 많지만, 그냥 부모님의 우산 아래 있기엔 쑥쑥 큰 상황. 잠들지 못하는 한밤에 장래에 뭘 할지 자문자답하는 레이의 모습은 국경을 넘어 그 연배 청소년이라면 친숙한 풍경일 테다.
규리는 조금 더 심각하다. 아무리 한국과 일본 사이가 비행기 타면 순식간에 오갈 수 있다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 아빠만 의지해 당도한 소녀는 그 아빠가 자신에게 소홀한 것에 울분이 쌓여간다. 쓸쓸한 호텔 객실에서 지루해하거나, 괜히 홀로 거리를 산책하며 애써 한국의 친구들에게 허세를 섞어 자신의 근사한 해외여행을 자랑한다. 하지만 실제론 객지에서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는 신세다. 보고 싶던 아빠 전화에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린다. 답답하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적 차이를 넘어 지금 두 소녀는 권태롭다. 방학은 휴식과 기회의 가능성인 동시에 그들이 기대던 일상 관계의 단절로도 작동한다. 평소와 조금 다른 특별한 순간을 둘 다 주체하지 못한다. 방황은 변화와 위기를 동시에 제공하는 변수다. 집에 틀어박혀 낯선 시간을 외면할 것인가, 두렵지만 새로운 걸 찾는 모험에 나설까?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모험의 결과물
▲ <레이의 겨울방학> 스틸
ⓒ 영화사 삼순
부모라는 보호막이 일시적으로 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소녀가 겪는 허전함과 고독을 다른 국적과 배경을 가진 둘이 함께 반전의 계기로 일군다. 또래 소녀들이라면 응당 갖게 마련인 공통 관심사, 기호, 공감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에 어른들이 망친 배제와 차별, 혐오는 부정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대화의 불편은 극복할 과제에 불과하다.
오히려 기성 사회와 어른들이 구분한 장벽을 내재한 언어 사용이 원활하지 않은 덕분에 '인간' 대 '인간', 10대 여성으로 서로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레이와 규리는 전혀 의식한 적 없겠지만, 그녀들의 만남과 우정은 요즘 세계에서 횡행하는 오로지 차별과 배제를 목적으로 그어지는 '다름'이 실제론 아무 실체가 없음을 어떤 전문가 해설보다 강력하게 증명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사정'으로 포장된 혐오와 몰이해가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하다. 끼리끼리 웅크리고 틀어박혀 무지에 편견을 확대재생산만 한다면 불가능한 변화다.
모든 건 두 소녀가 울타리 바깥으로 이불을 떨치며 용감히 나왔고, 낯선 친구와 허물없이 부대끼는 도전을 감행한 결과다. 그녀들이 함께 떠나는 작은 여행은 원래라면 (영화 내내 자리를 비운) 엄마와 가려던 길이다. 이제 소녀들이 서툴게나마 친구와 떠나는 여정은 소리 없는 웅변으로 이상적인 '성장'을 구현한다. 별것 아닌 듯해도 상징하는 바가 작지 않은 대목이다. 그녀들의 '진화'를 잔소리 대신 흐뭇하게 지켜보던 카메라 너머 감독의 미소가 곧 관객에게 전이될 테다.
한국영화 위기의 시대, 대안적 실천의 작은 예시
여기까지만 보면 <레이의 겨울방학>은 치밀한 기획으로 자연스러움을 연출한 작업으로 오해되거나 혹은 유사 다큐멘터리 '혼종'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태도는 같은 듯 다르다. <들꽃> <스틸 플라워> <재꽃> '꽃' 3부작은 물론 <바람의 언덕>과 <샤인>으로 이어져 온 박석영 감독의 작업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작가주의 경향을 뚜렷하게 견지해 왔다. 상업자본 간섭과 정형화된 패턴에 얽매임을 줄이며 전하고픈 주제를 (감독이 제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장하는 '작은 영화' 형태로 감독은 연속성을 갖고 매진해 왔다.
신작은 감독의 일관된 경향에 익숙한 이들이 초반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수 있다. '작은 영화'란 점은 공유해도 기본 상황 설정만 배우와 공유한 다음 주어진 배경 안에서 소녀들에게 자유도를 부여해 관찰 기록으로 남기듯 촬영했다. 이전 작품과 차별화한 개성과 함께 '미니멀', 아니 '마이크로' 형태라 봐도 좋을 최소 제작 환경을 맘먹고 감행했다. 감독이 밝힌 바대로 '카메라 하나와 줌렌즈 하나, 빌린 삼각대, 녹음기'만 갖고 본인과 촬영감독만 대동한 작업으로 이룩한 과업이다.
영화는 세련될 만큼 우리가 일본 배경 영화를 볼 때 감탄하는 아기자기하고 아련한 특유의 색감과 감성이 '손대면 톡 터질' 듯 농축된 상태다. 군더더기 없는 설정과 이야기가 담백하게 그려진다. 말로 일일이 표현하긴 쉽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의 삶 어느 한 조각과 맞춰볼 수 있는 교감을 창출한다. 규모는 소소해도 담긴 내용은 가볍지 않다. 예술영화라고 괜히 어깨에 힘 팍 주지 않고 고의적으로 경쾌하게 접근한 덕택에 가능한 작업이다.
어느새 기성 상업영화 시스템의 축소 모델화하는 길을 답습하던 한국 독립영화, 특히 극영화 경향이 덩달아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를 받는 작금 상황에서, 10여 년 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작가가 마치 한국영화 위기 담론에 관한 대답처럼 내놓은 이 영화는 그저 '소품'으로 한정할 수 없는 함의를 갖췄다. 외부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예술적 창작욕을 어떤 위기에도 꿋꿋하게 정진하는 창작자의 결단은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다.
21세기 작가주의 감독의 상징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표작 <인터스텔라>를 상징하는 대사처럼,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를 박석영 감독은 모두가 한국영화에 불어닥친 엄동설한에 두려워할 때 과감히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희망을 찾는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길고 고단한 여정에 맞게 가벼운 몸놀림으로 구현한 결실을 관객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내민다. 영화 속 레이와 규리가 그랬듯이, 감독과 관객이 만날 장면이 두근두근 기다려진다.
<작품정보>
레이의 겨울방학Rei's Winter Break2025 한국 드라마2026.02.25. 개봉 75분 전체관람가감독/각본 박석영출연 구로사키 키리카, 정주은, 쓰루타 고조, 오다 신이치로제작 영화사삼순×교류필름배급 영화사 삼순
2025 51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우수작품상, 넥스트링크상
▲ <레이의 겨울방학> 포스터
ⓒ 영화사 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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