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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2-27 19:14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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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갑남 기자]
박제된 영웅을 넘어 인간 이순신을 향해
충무공 이순신 하면 우리는 성웅 이순신이라 한다. 이순신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전쟁의 영웅으로 배웠다. 교과서와 광화문 광장의 동상, 그리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그는 언제나 범접할 수 없는 초인(超人)의 모습이었기에, 우리는 그를 위대한 전쟁 영웅으로 기억해 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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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 전시회의 홍보물. 전시회는 3월 3일까지 예정되었다.
ⓒ 전갑남
릴게임하는법 그러나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시는 나에게 조금 다른 말을 건넸다. 전시는 장군의 화려한 승전보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와 그가 겪었던 처절한 고독의 기록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나는 '성웅'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400여 년 전 이 땅에서 우리와 똑같이 아파하고 고뇌했던 한 사람의 진심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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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로 빚어낸 영웅 : 늦깎이 무관의 길
장군의 위대함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성이 아니었다. 전시를 통해 본 그의 청년기는 오히려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본래 문학을 공부하며 문과를 준비하던 그는 서른둘이라는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다. 첫 시험에서 말에서 떨어져 다 오션파라다이스예시 리가 부러지는 끔찍한 부상을 입고도 곁에 있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마쳤다는 일화는 그가 어떤 정신력을 가진 인물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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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의 영정 사진들. 장우성이 융복(군복)을 입고 한 손에 지휘봉을 표준영정을 그렸다. 이상범은 영의정으로 추증된 장군의 '성인(聖人)'에 가까운 인격적 면모를 부각하였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명한 푸른색 의복과 장군의 당당하고 용맹한 기개를 포착하여 그린 작품이 인상적이다.
ⓒ 전갑남
급제 이후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함경도의 변방을 돌며 말단 관직에서 실무를 익혔고, 정직하고 강직한 성품 탓에 상사와의 갈등을 겪으며 파직과 복직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 유물 속에 담긴 그의 행적들을 추적해 보면, 그 시련의 시간들이야말로 훗날 거대한 전란의 파도를 견뎌낼 단단한 뿌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화려한 등장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스스로를 단련시킨 준비된 영웅이었다.
신뢰와 견제 사이 : 유성룡, 선조 그리고 고독한 리더십
전시장 중반부에서 마주한 이순신의 대인관계는 한 편의 비극적인 서사시와 같았다.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정읍 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파격적인 발탁을 이끌어낸 서애 유성룡은 장군에게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서신과 <징비록>에 기록된 증언들은 시대의 지성들이 공유했던 구국 의지를 느끼게 한다.
▲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과정을 기록한 국보 132호 징비록. '징비(懲毖)'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는 뜻으로, 전쟁의 원인과 전황을 냉철하게 기록하여 후세에 교훈을 남기고자 한 뼈아픈 반성이 담긴 기록물이다.
ⓒ 전갑남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장군을 불신하고 견제했던 선조 임금이 있었다. 전란 중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영웅의 등장은 왕권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선조의 의심은 결국 장군을 고문과 파직이라는 낭떠러지로 몰아넣었다.
전시장 벽면에 배치된 당시 조정의 문서들을 보며 나는 장군이 느꼈을 심적 고통을 상상해 보았다. 적군인 왜군보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조국을 위해 칼을 들어야 했던 지휘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것은 어떤 신체적 고문보다 아팠을 것이다.
승리의 전율 뒤에 숨겨진 사투 : 3대 대첩의 재발견
전시관 한 편을 가득 채운 한산도, 명량, 노량의 3대 대첩에 관한 디지털 영상과 전술 지도들은 장군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학익진이라는 창의적인 전술로 적을 포위 섬멸한 한산도 대첩의 장엄함에 이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명량대첩의 기록이었다. 칠천량의 참패 이후 조선 수군이 사실상 궤멸한 상황에서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명에 장군은 결연히 답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마주하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외쳤던 그 비장한 선언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승리의 쾌감보다 그 승리를 위해 장군이 감내해야 했던 '준비의 과정'이었다.
거북선의 독창적인 설계, 판옥선의 구조적 이점 활용 그리고 조류 흐름을 읽기 위해 밤낮으로 지형을 살피던 장군의 치밀함이 유물 곳곳에 배어 있었다. 승리는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백성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장군의 처절한 사투가 빚어낸 눈물겨운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백의종군과 국보가 증언하는 장군의 위엄
모함과 불신으로 가득했던 정치적 소용돌이 끝에 찾아온 것이 바로 백의종군이었다. 모든 권한과 무관의 명예를 박탈당한 채 평복을 입고 사지로 향했던 장군의 뒷모습! 텅 빈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소박한 유물들을 비추는 조명은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지로 향하던 장군의 비장한 뒷모습을 투영하는 듯했다.
▲ 이순신 장군의 기개와 정신을 상징하는 국보 156호 '이순신 장검'. 장군의 시구가 새겨있다. "삼척서천 산하동색 (三尺誓天 山河動色)"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떨고), "일휘소탕 혈염산하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 전갑남
▲ 보물 647호로 지정된 천자총통을 비롯한 조선 수군의 강력한 화기(화포와 탄환)들이 전시되었다.
ⓒ 전갑남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장군의 기개는 전시된 국보급 문화재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었다. 거대한 크기의 '이충무공 장검(국보)'을 마주했을 때는 전율까지 느껴졌다. 칼날에 새겨진 "삼도에 맹세하니 산천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는 명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그의 결연한 의지를 대변했다.
이번 전시의 정점은 단연 국보 <난중일기>였다. 나는 한참 동안 유리관 속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강철 같은 영웅이 아닌, 따뜻하고 섬세한 숨결을 가진 한 사람의 진면목이 물 흐르듯 교차하고 있었다.
▲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 7책. 당시의 전황, 해전의 상세한 기록, 거북선 건조 과정뿐만 아니라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와 내면세계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 전갑남
▲ 난중일기 친필본의 일부,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결단이 담긴 대목이다. 명량해전 전의 다짐인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와 같은 구절들이 포함되어 있다, 장군의 기개가 녹아있다.
ⓒ 전갑남
장군은 무적의 사령관이기 이전에 지병에 시달리고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쏟아지는 식은땀을 기록하며 고독한 사투를 고백하다가도, 시선은 어느새 고향의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향했다. 특히 멀리 있는 아내 방씨 부인의 병세를 걱정하는 대목과,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간이 뒤집히는 듯하다"며 통곡하던 장군의 모습은 성웅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인간 이순신'의 진심을 느끼게 했다.
전사한 아들 면(葂)을 향해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라며 절규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전시장을 가득 메운 침묵을 뚫고 내 가슴을 먹먹하게 적셨다. 전쟁의 성웅도 결국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최후의 순간과 우리에게 되새기는 이순신의 애국충정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노량 해전의 최후였다. 7년 전쟁의 끝을 알리는 그 새벽, 장군은 자욱한 포연 속에서 직접 북채를 잡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적 탄환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져올 혼란을 걱정했다.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그의 마지막 유언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이 땅의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바랐던 지고지순한 배려이자 집념이었다. 북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아들에게 갑옷을 입혀 북을 치게 하고 숨을 거둔 그의 최후는 전시장의 침묵 속에 깊은 비장함으로 남아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고, 가장 찬란한 조선의 노을이 되어 바다를 물들였다.
나는 장군이 보여준 애국충정(愛國忠情)의 의미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금 새겨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순신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역사를 추앙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군이 몸소 보여준 애국은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업적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과 책임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완수해내는 '직업적 소명 의식'과 '공동체를 향한 헌신'이었다.
우리 각자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이라는 전장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몫을 해내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이순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진정한 충심일 것이다. 억울함과 슬픔 속에서도 끝내 뒷걸음질 치지 않았던 그의 진심은 오늘날 무한 경쟁과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가장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 전장에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되었던 '승전고(勝戰鼓)'와 관련된 유물. 진격이나 후퇴, 전열 정비 등의 신호를 전달하는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을 것이다.
ⓒ 전갑남
이제 나에게 이순신은 박제된 신화 속 영웅이 아니다.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 언제든 꺼내 보고 싶은 든든한 스승이자, 나의 일상이라는 바다를 꿋꿋하게 헤쳐 나갈 힘을 주는 영원한 동반자로 남았다.
전시는 곧 끝나가지만, <우리들의 이순신>이 울린 북소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시개요- 전시명 : 우리들의 이순신- 기간 : 2025. 11. 28.(금) ~ 2026. 3. 3.(화)-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2- 전시품: 『난중일기』(친필본), <이순신 장검>, 『이순신 서간첩』 등 258건 369점
박제된 영웅을 넘어 인간 이순신을 향해
충무공 이순신 하면 우리는 성웅 이순신이라 한다. 이순신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전쟁의 영웅으로 배웠다. 교과서와 광화문 광장의 동상, 그리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그는 언제나 범접할 수 없는 초인(超人)의 모습이었기에, 우리는 그를 위대한 전쟁 영웅으로 기억해 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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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 전시회의 홍보물. 전시회는 3월 3일까지 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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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로 빚어낸 영웅 : 늦깎이 무관의 길
장군의 위대함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성이 아니었다. 전시를 통해 본 그의 청년기는 오히려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본래 문학을 공부하며 문과를 준비하던 그는 서른둘이라는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다. 첫 시험에서 말에서 떨어져 다 오션파라다이스예시 리가 부러지는 끔찍한 부상을 입고도 곁에 있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마쳤다는 일화는 그가 어떤 정신력을 가진 인물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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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과정을 기록한 국보 132호 징비록. '징비(懲毖)'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는 뜻으로, 전쟁의 원인과 전황을 냉철하게 기록하여 후세에 교훈을 남기고자 한 뼈아픈 반성이 담긴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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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장군을 불신하고 견제했던 선조 임금이 있었다. 전란 중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영웅의 등장은 왕권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선조의 의심은 결국 장군을 고문과 파직이라는 낭떠러지로 몰아넣었다.
전시장 벽면에 배치된 당시 조정의 문서들을 보며 나는 장군이 느꼈을 심적 고통을 상상해 보았다. 적군인 왜군보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조국을 위해 칼을 들어야 했던 지휘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것은 어떤 신체적 고문보다 아팠을 것이다.
승리의 전율 뒤에 숨겨진 사투 : 3대 대첩의 재발견
전시관 한 편을 가득 채운 한산도, 명량, 노량의 3대 대첩에 관한 디지털 영상과 전술 지도들은 장군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학익진이라는 창의적인 전술로 적을 포위 섬멸한 한산도 대첩의 장엄함에 이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명량대첩의 기록이었다. 칠천량의 참패 이후 조선 수군이 사실상 궤멸한 상황에서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명에 장군은 결연히 답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마주하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외쳤던 그 비장한 선언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승리의 쾌감보다 그 승리를 위해 장군이 감내해야 했던 '준비의 과정'이었다.
거북선의 독창적인 설계, 판옥선의 구조적 이점 활용 그리고 조류 흐름을 읽기 위해 밤낮으로 지형을 살피던 장군의 치밀함이 유물 곳곳에 배어 있었다. 승리는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백성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장군의 처절한 사투가 빚어낸 눈물겨운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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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647호로 지정된 천자총통을 비롯한 조선 수군의 강력한 화기(화포와 탄환)들이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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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장군의 기개는 전시된 국보급 문화재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었다. 거대한 크기의 '이충무공 장검(국보)'을 마주했을 때는 전율까지 느껴졌다. 칼날에 새겨진 "삼도에 맹세하니 산천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는 명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그의 결연한 의지를 대변했다.
이번 전시의 정점은 단연 국보 <난중일기>였다. 나는 한참 동안 유리관 속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강철 같은 영웅이 아닌, 따뜻하고 섬세한 숨결을 가진 한 사람의 진면목이 물 흐르듯 교차하고 있었다.
▲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 7책. 당시의 전황, 해전의 상세한 기록, 거북선 건조 과정뿐만 아니라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와 내면세계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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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은 무적의 사령관이기 이전에 지병에 시달리고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쏟아지는 식은땀을 기록하며 고독한 사투를 고백하다가도, 시선은 어느새 고향의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향했다. 특히 멀리 있는 아내 방씨 부인의 병세를 걱정하는 대목과,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간이 뒤집히는 듯하다"며 통곡하던 장군의 모습은 성웅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인간 이순신'의 진심을 느끼게 했다.
전사한 아들 면(葂)을 향해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라며 절규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전시장을 가득 메운 침묵을 뚫고 내 가슴을 먹먹하게 적셨다. 전쟁의 성웅도 결국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최후의 순간과 우리에게 되새기는 이순신의 애국충정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노량 해전의 최후였다. 7년 전쟁의 끝을 알리는 그 새벽, 장군은 자욱한 포연 속에서 직접 북채를 잡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적 탄환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져올 혼란을 걱정했다.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그의 마지막 유언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이 땅의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바랐던 지고지순한 배려이자 집념이었다. 북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아들에게 갑옷을 입혀 북을 치게 하고 숨을 거둔 그의 최후는 전시장의 침묵 속에 깊은 비장함으로 남아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고, 가장 찬란한 조선의 노을이 되어 바다를 물들였다.
나는 장군이 보여준 애국충정(愛國忠情)의 의미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금 새겨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순신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역사를 추앙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군이 몸소 보여준 애국은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업적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과 책임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완수해내는 '직업적 소명 의식'과 '공동체를 향한 헌신'이었다.
우리 각자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이라는 전장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몫을 해내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이순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진정한 충심일 것이다. 억울함과 슬픔 속에서도 끝내 뒷걸음질 치지 않았던 그의 진심은 오늘날 무한 경쟁과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가장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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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에게 이순신은 박제된 신화 속 영웅이 아니다.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 언제든 꺼내 보고 싶은 든든한 스승이자, 나의 일상이라는 바다를 꿋꿋하게 헤쳐 나갈 힘을 주는 영원한 동반자로 남았다.
전시는 곧 끝나가지만, <우리들의 이순신>이 울린 북소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시개요- 전시명 : 우리들의 이순신- 기간 : 2025. 11. 28.(금) ~ 2026. 3. 3.(화)-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2- 전시품: 『난중일기』(친필본), <이순신 장검>, 『이순신 서간첩』 등 258건 36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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