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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나라없는 민족' 쿠르드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시작된 중동 전쟁이 미사일·드론전과 방공 무기체계의 요격전을 넘어 쿠르드족을 내세운 대리 지상전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다. 쿠르드족 참전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의 이란 공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가시화했다. 미 지상군 투입에 정치적·군사적 부담을 느낀 트럼프가 대리전에 동원하려는 쿠르드족은 과연 어떤 집단이고, 이들의 투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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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화학무기로 쿠르드족을 공격하면서 숨진 아버지와 자식의 모습.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적인 모습이다. /Public Domaim
인구 4000만 쿠르드족, 독자 바다신릴게임 국가 못 가진 4대 민족
쿠르드족은 중동의 튀르키예 동부와 이란·이라크·시리아 일부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유럽·미국 등에도 흩어져 사는 전체 인구 3640~4560만 명 규모의 민족이다. 프랑스에 있는 '파리 쿠르드 연구재단'에 따르면 이 민족은 튀르키예에 1500만~2000만(인구의 19~25%), 이란에 1000만 온라인야마토게임 ~1200만(13~17.5%), 이라크에 800만~850만(25~27%), 시리아에 300만~360만(12~12.5%)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확한 인구 규모에 대한 입장은 쿠르드족 거주국가별로 각각 다르다.
쿠르드족은 역사상 한 차례도 독자국가를 가진 적이 없는 민족이다. 인도·스리랑카·말레이시아 등에 거주하는 인구 7800만의 야마토게임장 타밀족, 파키스탄에 사는 인구 4000만 명의 신드,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3500만 명과 더불어 거대집단이면서도 독자 국가를 갖지 못한 4대 민족의 하나다. 사실 '민족국가' 개념은 유럽에서 근대 이후 비로소 나타나 19세기에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로 이어졌다. 쿠르드족 독립 문제가 복잡한 역사와 국제관계 속에서 숙의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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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물리친 살라딘과 이란 시위 촉발 아미니가 쿠르드족
시리아에 거주하는 쿠르드족 무장대원의 모습. 이들은 시리아 내전 와중에 자치지역을 확보해왔다. /로이터=뉴스1
쿠르드족은 유럽인·이란인·북부인도인 같은 인도유럽계다. 셈계인 아랍인과는 계통이 다르다. 언어는 아랍어와는 사뭇 다르고, 파르시(페르시아어)와는 일부 문법과 어휘가 비슷한 고유의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쿠르드어는 크게 튀르키예·시리아·북이라크 등에서 쓰는 쿠르만지와 이라크 동북부 자치지역과 이란 일부에서 사용하는 소라니, 이란 서부 케르만샤 지역과 일람 등의 페흘레와니의 3가지 사투리가 있는데 별도로 교육받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국가로 나뉘어 살면서 통일성·단일성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문자도 쿠르만지는 라틴문자를, 소라니는 아랍문자를, 페흘레와니는 이란에서 쓰는 변형 아랍문자를 각각 사용한다. 옛 소련권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키릴 문자를 쓴다.
종교는 무슬림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다른 종교도 있다. 이란 쿠르드족의 대다수는 이 나라의 공식 종교인 12이맘파 시아 이슬람을 따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12세기 십자군과 맞서 싸워 예루살렘을 차지했던 아이유브 왕조의 초대군주 살라딘(살라흐 앗딘 유스프)이 쿠르드족이다. 지난 2022년 9월 이란에서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하면서 '여성·삶·자유'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마흐사 아미니도 쿠르드족이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에 표적 암살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부친이 아제르바이잔족, 모친이 쿠르드족이다.
같은 쿠르드족이라도 지역 따라 독립 온도 각각
이란 미사일이 이스라엘 상공에 도달하자 요격 체계가 작동하는 모습. 미사일과 드론 공방으로 이어지던 중동 전쟁이 쿠르드족의 지상전 참전으로 성격이 변할 전망이다. /로이터=뉴스1
문제는 쿠르드족이 튀르키예·이란·이라크·시리아에 나뉘어 살면서 독자 국가 설립에 대한 생각이 잡단별로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이란의 쿠르드족은 이란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함께한 데다 1979년 이슬람혁명과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민족운동을 탄압하면서 조직적인 활동이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미국이 지상전에 동원하려는 쿠르드족은 '이란 쿠르디스탄 자유당(PAK)' 등 이란신정 체제에 대항하다 박해을 받고 이웃 이라크 등으로 이주한 뒤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지원을 받으며 세력을 유지해온 무장집단으로 알려졌다.
2011년 이후 오랫동안 내전을 벌인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북부와 서북부 국경 지역을 장악하고 고도의 자치를 누리고 있다. 민주적이고 남녀 평등적이며 친환경적인 세속주의 신사회를 추구하는 '로하야 운동'을 벌이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권이 들어섰지만 복잡한 국내외 정세 때문에 쿠르드 지역의 분리는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튀르키에의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이 서로 합칠 경우 중동 지역에서 세력균형이 깨지고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장시간에 걸친 대화와 협상, 조정과 담판이 절실한 숙의의 시간을 맞고 있는 셈이다.
튀르키예의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독자적인 길을 요구하며 저항을 해왔다. 하지만 강경파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오랜 토벌로 저항의 구심점이던 쿠르드노동자당(PKK)이 항복하고 무기반납까지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이라크에 있는 이란 쿠르드족 무장단체 대원들이 훈련을 마치고 쿠르드 깃발을 펼쳐보이고 있다. /로이터=뉴스1
쿠르드족, 지난 100년간 강대국에게 8차례 배신 당해
문제는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이 지난 100년간 강대국으로부터 8차레나 '배신'을 당해왔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미국 대리 지상전 참전의 귀추가 가주목된다. 쿠르드족이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을 돕거나 믿다가 독립이나 고도자치 등 보상이 아니라 외려 뒤통수를 맞은 악연의 역사를 정리한다.
가장 최근 사건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기 행정부 때인 2019년 10월에 벌어졌다. 앞서 쿠르드족은 2014년부터 미국에 협력해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물리치는 데 앞장섰다. 당시 희생자만 1만1000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앞장서서 싸우면서 미국과 혈맹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맹국인 튀르키예는 시리아와 자국의 쿠르드족이 서로 손잡고 독립국가를 세울까 우려해 공격을 준비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시리아 동북부 주둔 미군의 철수를 명령했다.
미군이 떠나자 그동안 미국에 협력해왔던 시리아 쿠르드족은 보호막을 잃고 튀르키예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트럼프의 '배신'은 협력자 쿠르드족에 대한 살육전을 불렀다. 미국이 이라크·시리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현지 쿠르드족을 이용했다가 상황이 바뀌자 시리아에서 철군해 튀르키예에 공격로를 열어주고 탄압·공격·학살을 방치한 셈이다.
1차대전 직후부터 독립 약속 줄기차게 '취소'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해 1920년 세르브 조약으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해체하며 처음 제안됐던 독립국 쿠르디스탄의 위치. 오른쪽 사선 부분이다. /Public Domain
돌이켜보면 강대국의 첫 쿠르드족 배신은 1920년대에 벌어졌다. 16세기 이래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쿠르드족은 19세기 후반 민족주의가 확산하면서 독립을 꿈꿨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을 들었던 오스만 제국이 패전국이 됐고, 1920년 8월 20일 승전국과 맺은 세브르 조약으로 상당수 영토를 포기하면서 쿠르드족은 꿈에 부풀었다. 쿠르드족이 많이 사는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는 영국이, 시리아는 프랑스가 각각 차지했지만 지금의 튀르키예 동부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는 쿠르디스탄 건국을 위한 땅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오스만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한 케말 파샤의 터키 군부는 영국·미국 등 승전국과 재협상해 세브르 조약을 1922년 로잔 조약으로 바꾸고 아나톨리아 동부를 다시 차지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1919년 파리 강화회담에서 내세운 '민족자결주의'는 쿠르드족에겐 작동하지 않았다.
이라크의 후세인, 이란의 팔라비, 미국의 키신저까지 '배반' 행렬에
다음 배신은 이라크에서 벌어졌다. 1932년 영국이 세운 이라크 왕국은 1958년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고 압둘카림 카심 장군이 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맡아 서방에 맞서며 철권통치를 했다. 미국은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지원해 반서방 성향의 중앙정부과 싸우게 했다. 하지만 1963년 미국 지원을 받은 바트주의(아랍민주주의에 일당제 독재를 혼합한 사상) 세력이 또 다른 쿠데타를 일으켜 카심을 제거하자 쿠르드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이라크의 새 군부정권은 미국이 보내준 네이팜탄 등으로 반발하는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쿠르드족은 도덕·신뢰·약속존중 대신 이익만 앞세운 미국 외교에 두 번째로 배신을 당했다.
세 번째는 1970년대 헨리 키신저와 이란 군주 팔라비에 의해 발생했다. 미국은 당시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군사정권이 친소련 성향으로 돌아서자 이라크 쿠르드족을 다시 무장시켜 중앙정부에 맞서게 했다.이를 위해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당시 친미 국가였던 이란을 통해 국경 너머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공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족이 중앙정부를 누르고 독립을 추진하면 자국의 쿠르드족도 동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당시 이란의 샤(군주)였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오히려 쿠르드족에게 무기 공급을 중단하는 협정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맺었다. 미국은 이를 수수방관했다. 후세인은 그 직후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를 공격해 수천 명을 살해했다. 미국은 동맹이자 대리자였던 쿠르드족의 절규에 귀를 막았다. 키신저는 의회에서 관련 질의를 받자 "은밀한 (공작) 활동을 (도덕을 앞세운) 선교 활동과 혼동해선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란 신정 체제의 박해를 받다 이라크로 이주한 크르드족이 결성한 무장조직 '이란 쿠르디스탄 자유'의 대원들이 이라크 에르빌 인근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로이터=뉴스1
후세인의 쿠르드 화학무기 공격에 침묵한 레이건
네 번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터졌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년 9월~1988년 8월)이 한창이던 1988년 3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이란 국경 근처 쿠르드 마을인 할라브자에 신경가스를 살포했다. 쿠르드족 3200~5000명이 숨지고 7000~1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국제사회가 금지한 화학무기로 쿠르드족을 대상으로 인종학살을 저지른 이라크를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무기를 대주며 지원했다. 후세인은 미국의 적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세인은 적의 적인 셈이다. 이란에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호메이니의 반미정권이 들어서 있었다.
다섯 번째는 1990~91년 걸프전 당시 벌어졌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습했다.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군대와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슬람 수니파 중심의 후세인 정권에 맞서온 남부 시아파와 북부 쿠르드족이 이에 호응해 봉기했다. 하지만 정작 이라크군이 진압에 나서자 미국은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쿠르드족과 이라크 시아파는 후세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강대국 힘을 빌려 독립 추구한 쿠르드족의 비극
이스라엘군의 메르카바 전차가 기동하는 모습. 미군을 대신한 쿠르드족의 이란 진입과 게릴라전,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 등 지상전 시나리오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로이터=뉴스1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여섯 번째 배신의 주인공이 됐다. 1990년대 클린턴은 나토 동맹국 튀르키예에 무기를 지원했다. 튀르키예는 이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동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보내 수만 명의 쿠르드족을 살해하고 수천 개의 마을을 불태웠다. 클린턴은 이를 보고만 있었다.
일곱 번째 사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7년 12월 발생했다. 미국이 2003년 3월 이라크전을 개전하자 이라크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슈메르가(죽음에 맞서는 사람이라는 뜻)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미국이 승전하고 후세인이 몰락하자 쿠르드족은 독립의 꿈에 부풀었다. 그러자 이웃 튀르키예는 2007년 12월 국경을 넘어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폭격한 데 이어 지상군까지 파병했다. 당시 이라크를 점령 중이던 미국은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이라크 쿠르드족 폭격과 지상군 투입을 방관했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지난 100년간 '일관성 있게' 쿠르드족을 배신해왔다. 독립을 얻기 위해 강대국의 힘을 빌리려 했던 쿠르드족의 비극이다. 이번 지상전 참전이 어떤 일로 이어질지 국제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채인택 논설위원 tzschaeit@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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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화학무기로 쿠르드족을 공격하면서 숨진 아버지와 자식의 모습.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적인 모습이다. /Public Domaim
인구 4000만 쿠르드족, 독자 바다신릴게임 국가 못 가진 4대 민족
쿠르드족은 중동의 튀르키예 동부와 이란·이라크·시리아 일부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유럽·미국 등에도 흩어져 사는 전체 인구 3640~4560만 명 규모의 민족이다. 프랑스에 있는 '파리 쿠르드 연구재단'에 따르면 이 민족은 튀르키예에 1500만~2000만(인구의 19~25%), 이란에 1000만 온라인야마토게임 ~1200만(13~17.5%), 이라크에 800만~850만(25~27%), 시리아에 300만~360만(12~12.5%)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확한 인구 규모에 대한 입장은 쿠르드족 거주국가별로 각각 다르다.
쿠르드족은 역사상 한 차례도 독자국가를 가진 적이 없는 민족이다. 인도·스리랑카·말레이시아 등에 거주하는 인구 7800만의 야마토게임장 타밀족, 파키스탄에 사는 인구 4000만 명의 신드,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3500만 명과 더불어 거대집단이면서도 독자 국가를 갖지 못한 4대 민족의 하나다. 사실 '민족국가' 개념은 유럽에서 근대 이후 비로소 나타나 19세기에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로 이어졌다. 쿠르드족 독립 문제가 복잡한 역사와 국제관계 속에서 숙의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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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물리친 살라딘과 이란 시위 촉발 아미니가 쿠르드족
시리아에 거주하는 쿠르드족 무장대원의 모습. 이들은 시리아 내전 와중에 자치지역을 확보해왔다. /로이터=뉴스1
쿠르드족은 유럽인·이란인·북부인도인 같은 인도유럽계다. 셈계인 아랍인과는 계통이 다르다. 언어는 아랍어와는 사뭇 다르고, 파르시(페르시아어)와는 일부 문법과 어휘가 비슷한 고유의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쿠르드어는 크게 튀르키예·시리아·북이라크 등에서 쓰는 쿠르만지와 이라크 동북부 자치지역과 이란 일부에서 사용하는 소라니, 이란 서부 케르만샤 지역과 일람 등의 페흘레와니의 3가지 사투리가 있는데 별도로 교육받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국가로 나뉘어 살면서 통일성·단일성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문자도 쿠르만지는 라틴문자를, 소라니는 아랍문자를, 페흘레와니는 이란에서 쓰는 변형 아랍문자를 각각 사용한다. 옛 소련권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키릴 문자를 쓴다.
종교는 무슬림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다른 종교도 있다. 이란 쿠르드족의 대다수는 이 나라의 공식 종교인 12이맘파 시아 이슬람을 따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12세기 십자군과 맞서 싸워 예루살렘을 차지했던 아이유브 왕조의 초대군주 살라딘(살라흐 앗딘 유스프)이 쿠르드족이다. 지난 2022년 9월 이란에서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하면서 '여성·삶·자유'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마흐사 아미니도 쿠르드족이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에 표적 암살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부친이 아제르바이잔족, 모친이 쿠르드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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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미사일이 이스라엘 상공에 도달하자 요격 체계가 작동하는 모습. 미사일과 드론 공방으로 이어지던 중동 전쟁이 쿠르드족의 지상전 참전으로 성격이 변할 전망이다. /로이터=뉴스1
문제는 쿠르드족이 튀르키예·이란·이라크·시리아에 나뉘어 살면서 독자 국가 설립에 대한 생각이 잡단별로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이란의 쿠르드족은 이란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함께한 데다 1979년 이슬람혁명과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민족운동을 탄압하면서 조직적인 활동이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미국이 지상전에 동원하려는 쿠르드족은 '이란 쿠르디스탄 자유당(PAK)' 등 이란신정 체제에 대항하다 박해을 받고 이웃 이라크 등으로 이주한 뒤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지원을 받으며 세력을 유지해온 무장집단으로 알려졌다.
2011년 이후 오랫동안 내전을 벌인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북부와 서북부 국경 지역을 장악하고 고도의 자치를 누리고 있다. 민주적이고 남녀 평등적이며 친환경적인 세속주의 신사회를 추구하는 '로하야 운동'을 벌이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권이 들어섰지만 복잡한 국내외 정세 때문에 쿠르드 지역의 분리는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튀르키에의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이 서로 합칠 경우 중동 지역에서 세력균형이 깨지고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장시간에 걸친 대화와 협상, 조정과 담판이 절실한 숙의의 시간을 맞고 있는 셈이다.
튀르키예의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독자적인 길을 요구하며 저항을 해왔다. 하지만 강경파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오랜 토벌로 저항의 구심점이던 쿠르드노동자당(PKK)이 항복하고 무기반납까지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이라크에 있는 이란 쿠르드족 무장단체 대원들이 훈련을 마치고 쿠르드 깃발을 펼쳐보이고 있다. /로이터=뉴스1
쿠르드족, 지난 100년간 강대국에게 8차례 배신 당해
문제는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이 지난 100년간 강대국으로부터 8차레나 '배신'을 당해왔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미국 대리 지상전 참전의 귀추가 가주목된다. 쿠르드족이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을 돕거나 믿다가 독립이나 고도자치 등 보상이 아니라 외려 뒤통수를 맞은 악연의 역사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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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떠나자 그동안 미국에 협력해왔던 시리아 쿠르드족은 보호막을 잃고 튀르키예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트럼프의 '배신'은 협력자 쿠르드족에 대한 살육전을 불렀다. 미국이 이라크·시리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현지 쿠르드족을 이용했다가 상황이 바뀌자 시리아에서 철군해 튀르키예에 공격로를 열어주고 탄압·공격·학살을 방치한 셈이다.
1차대전 직후부터 독립 약속 줄기차게 '취소'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해 1920년 세르브 조약으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해체하며 처음 제안됐던 독립국 쿠르디스탄의 위치. 오른쪽 사선 부분이다. /Public Domain
돌이켜보면 강대국의 첫 쿠르드족 배신은 1920년대에 벌어졌다. 16세기 이래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쿠르드족은 19세기 후반 민족주의가 확산하면서 독립을 꿈꿨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을 들었던 오스만 제국이 패전국이 됐고, 1920년 8월 20일 승전국과 맺은 세브르 조약으로 상당수 영토를 포기하면서 쿠르드족은 꿈에 부풀었다. 쿠르드족이 많이 사는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는 영국이, 시리아는 프랑스가 각각 차지했지만 지금의 튀르키예 동부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는 쿠르디스탄 건국을 위한 땅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오스만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한 케말 파샤의 터키 군부는 영국·미국 등 승전국과 재협상해 세브르 조약을 1922년 로잔 조약으로 바꾸고 아나톨리아 동부를 다시 차지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1919년 파리 강화회담에서 내세운 '민족자결주의'는 쿠르드족에겐 작동하지 않았다.
이라크의 후세인, 이란의 팔라비, 미국의 키신저까지 '배반' 행렬에
다음 배신은 이라크에서 벌어졌다. 1932년 영국이 세운 이라크 왕국은 1958년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고 압둘카림 카심 장군이 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맡아 서방에 맞서며 철권통치를 했다. 미국은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지원해 반서방 성향의 중앙정부과 싸우게 했다. 하지만 1963년 미국 지원을 받은 바트주의(아랍민주주의에 일당제 독재를 혼합한 사상) 세력이 또 다른 쿠데타를 일으켜 카심을 제거하자 쿠르드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이라크의 새 군부정권은 미국이 보내준 네이팜탄 등으로 반발하는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쿠르드족은 도덕·신뢰·약속존중 대신 이익만 앞세운 미국 외교에 두 번째로 배신을 당했다.
세 번째는 1970년대 헨리 키신저와 이란 군주 팔라비에 의해 발생했다. 미국은 당시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군사정권이 친소련 성향으로 돌아서자 이라크 쿠르드족을 다시 무장시켜 중앙정부에 맞서게 했다.이를 위해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당시 친미 국가였던 이란을 통해 국경 너머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공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족이 중앙정부를 누르고 독립을 추진하면 자국의 쿠르드족도 동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당시 이란의 샤(군주)였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오히려 쿠르드족에게 무기 공급을 중단하는 협정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맺었다. 미국은 이를 수수방관했다. 후세인은 그 직후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를 공격해 수천 명을 살해했다. 미국은 동맹이자 대리자였던 쿠르드족의 절규에 귀를 막았다. 키신저는 의회에서 관련 질의를 받자 "은밀한 (공작) 활동을 (도덕을 앞세운) 선교 활동과 혼동해선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란 신정 체제의 박해를 받다 이라크로 이주한 크르드족이 결성한 무장조직 '이란 쿠르디스탄 자유'의 대원들이 이라크 에르빌 인근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로이터=뉴스1
후세인의 쿠르드 화학무기 공격에 침묵한 레이건
네 번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터졌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년 9월~1988년 8월)이 한창이던 1988년 3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이란 국경 근처 쿠르드 마을인 할라브자에 신경가스를 살포했다. 쿠르드족 3200~5000명이 숨지고 7000~1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국제사회가 금지한 화학무기로 쿠르드족을 대상으로 인종학살을 저지른 이라크를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무기를 대주며 지원했다. 후세인은 미국의 적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세인은 적의 적인 셈이다. 이란에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호메이니의 반미정권이 들어서 있었다.
다섯 번째는 1990~91년 걸프전 당시 벌어졌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습했다.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군대와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슬람 수니파 중심의 후세인 정권에 맞서온 남부 시아파와 북부 쿠르드족이 이에 호응해 봉기했다. 하지만 정작 이라크군이 진압에 나서자 미국은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쿠르드족과 이라크 시아파는 후세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강대국 힘을 빌려 독립 추구한 쿠르드족의 비극
이스라엘군의 메르카바 전차가 기동하는 모습. 미군을 대신한 쿠르드족의 이란 진입과 게릴라전,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 등 지상전 시나리오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로이터=뉴스1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여섯 번째 배신의 주인공이 됐다. 1990년대 클린턴은 나토 동맹국 튀르키예에 무기를 지원했다. 튀르키예는 이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동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보내 수만 명의 쿠르드족을 살해하고 수천 개의 마을을 불태웠다. 클린턴은 이를 보고만 있었다.
일곱 번째 사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7년 12월 발생했다. 미국이 2003년 3월 이라크전을 개전하자 이라크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슈메르가(죽음에 맞서는 사람이라는 뜻)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미국이 승전하고 후세인이 몰락하자 쿠르드족은 독립의 꿈에 부풀었다. 그러자 이웃 튀르키예는 2007년 12월 국경을 넘어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폭격한 데 이어 지상군까지 파병했다. 당시 이라크를 점령 중이던 미국은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이라크 쿠르드족 폭격과 지상군 투입을 방관했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지난 100년간 '일관성 있게' 쿠르드족을 배신해왔다. 독립을 얻기 위해 강대국의 힘을 빌리려 했던 쿠르드족의 비극이다. 이번 지상전 참전이 어떤 일로 이어질지 국제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채인택 논설위원 tzschaeit@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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