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3일 대만 남부 가오슝시의 징링학원에서 2025 에프티오(FtO)의 개막식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전세계 9개국에서 142명의 디지털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참여했다.





지난 13일 오전 9시 대만 남부 제2의 도시인 가오슝시 징링(정령)학원. ‘2025 에프티오(FtO)’ 행사에 전세계 9개국에서 ‘디지털 숙의(참여) 민주주의’ 운동가 142명이 모였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해커와 시민기술단체 회원들이다. 행사 내내 박수와 웃음이 끊이지 않아 이들 간의 긴밀한 연대와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에프티오는 한국·일본·대만 등 같은 바다를 보고 있는 동2011주식전망
아시아 3국이 2019년부터 매년 돌아가며 개최하는 국제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 행사로, 올해가 다섯번째다.
대만, AI 기술로 소통·토론·정책화
그 어느 때보다 전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과거에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협했다면, 요즘은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로 집권한 정치권력국제엘렉트릭 주식
이 민주주의를 흔드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국민의 권리를 정치인에게 위임하는 간접(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직접 민주주의를 접목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대만은 글로벌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숙의 민주주의 모델국가로 손꼽힌다. 에프티오 행사에 세번째 참여한 ‘코드포코리아’의 이은수 기획자는 “대만은 글로벌 사회에 널리 알려주식설명회
졌지만 한국은 실제 활동보다 덜 알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에프티오의 한국 쪽 공동주최 기관인 코드포코리아는 2020년 코로나 공적 마스크 공동대응 활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시민기술 커뮤니티다.
지난해 대만 정부는 국민 25만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스엔에스) 플랫폼에 인공하안가
지능(AI)을 악용한 사기 광고 사이트가 범람하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응답자 가운데 남녀, 나이, 출신 지역을 골고루 안배해서 450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45개의 인터넷 토론방에서 10명씩 나뉘어 석달간 해법을 논의했다. 토론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분석해서, 80% 이상이 찬성하는 방안을 정리했다. 그 결과 인터넷 광고 실주식서적
명제 도입을 포함한 사기범죄피해방지 특별법 제정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오드리 탕 전 디지털부 장관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서 인공지능 사기 피해를 막은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7~8월 대만에서는 시민 주도로 야당인 국민당 의원 31명에 대한 주민소환(파면) 투표가 시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고, 국가 안보를 약화한다는 이유였다. 투표결과 모든 선거구에서 파면 기준에 미달했지만, 디지털 민주주의가 소환 투표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성과로 꼽힌다. 민간 주도 공론화 플랫폼인 브이타이완(vTaiwan)의 피터 추이 변호사는 “시민들 스스로 라인 등 에스엔에스를 이용해 주민소환 투표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확산시켰다”고 말했다.



운동가 커뮤니티 ‘거브제로’ 큰몫
2015년 타이베이 인근 유원지에서 폭죽놀이를 하다가 여러명이 화상을 당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환자들을 병원으로 신속히 이송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디지털 민주주의 운동가들의 커뮤니티인 ‘거브제로’(g0v) 회원들이 사용하는 메신저 ‘슬랙’이 위력을 발휘했다. 병실이 남아 있는 병원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알리는 통로가 된 것이다. 거브제로에서 국제교류를 맡은 우포민은 “어떤 프로젝트보다 슬랙이 더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만 국민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스며 있는 디지털 민주주의 운동은 2012년 거브제로의 창설로 본격화했다. 거브제로는 대만 디지털 민주주의의 거점이자, 핵심 활동가들을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대만의 디지털 민주주의는 ‘시민(시빅)해커’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시민과 해커의 합성어인 시민해커는 디지털 민주주의 운동에 헌신하는 활동가를 가리킨다. 직업적 운동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각자의 생업이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원래 직업은 컴퓨터 관련자뿐만 아니라 교육자, 기자, 변호사 등 다양하다. 오드리 탕 전 장관은 해커, 우포민은 수학박사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피터 추이는 변호사 출신이다.
2014년 해바라기운동은 디지털 민주주의가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기폭제이자 대전환점이 됐다. 국민당 정부가 중국과 불평등 서비스무역협정을 맺는 것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입법원(국회)을 점거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거브제로와 시민해커들은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점거 현장 모습, 학생과 시민들의 주장과 토론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를 계기로 국민당 정권은 ‘열린 정부’를 표방하며 정부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또 브이타이완도 이 때 창설됐다. 특정 의제를 놓고 정부 부처, 전문가, 찬반 시민이 모여서 토론하는 모습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우버택시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그런 방식으로 해결했다. 2016년에는 시민 주도 팩트체크 플랫폼인 ‘코팩츠’가 출범했다. 시민들이 에스엔에스에 돌아다니는 의심 메시지를 챗봇에 전달하면, 허위정보 여부를 즉각 알려준다.



2025 에프티오 행사가 열린 대만 가오슝시의 징링학원 전경.


시민토론 생중계 하며 해법 도출
2016년 집권한 민진당의 자원 정책은 디지털 민주주의에 자양분이 됐다. 정부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높여서, 시민의 정책 참여와 소통을 강화하고 이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정부는 시민해커인 오드리 탕을 장관급인 정무위원으로 발탁했다. 탕의 주도로 정부 주도 공론화 플랫폼인 ‘조인’이 활성화했다. 시민이 플랫폼을 통해 정책을 제안하고, 5천명 이상이 찬성하면, 관련 부처가 공식 의제로 채택한다. 이후 일반 시민, 정부, 기업,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심층토론을 통해 정책 채택이나 법개정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인공지능 등 사기범죄피해방지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도 그 진가가 발휘됐다. 한국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디지털 민주주의 운동을 탄압하거나,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과 대비된다. 윤석열 정부 시절 방송통신위원회가 부당한 표적감사를 통해 시민 주도의 ‘팩트체크넷’에 거액의 제재금을 부과한 것은 에프티오 행사에서 국제적인 공분을 샀다.
2020년 코로나 위기 때 시민해커들의 제안과 정부의 협조가 어우러져 나온 ‘마스크 지도 앱’은 두번째 기폭제 역할을 했다. 마스크 사재기를 막은 것은 물론 대만이 봉쇄 없이 위기를 신속히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이저벨 허우 대만 디지털부 차관은 “디지털 민주주의가 발전한 사회의 특징은 △민주주의 토대 △기본적인 디지털과 인터넷 인프라 구축 △핵심 활동가들의 헌신 △사회 구성원의 단합을 이끌어내는 외부 위협요인 등 네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의 위협요인으로 중국과, 지진 등의 자연재해를 꼽았다.
“양날의 칼 AI, 공적 가치로 활용을”
대만 디지털 민주주의의 도전 과제로는 인공지능이 꼽힌다. 인공지능은 두개의 얼굴을 지녔다. 잘 활용하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만, 잘못하면 가짜뉴스, 딥페이크 등으로 인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허우 차관은 “인공지능은 양날의 칼과 같아, 정부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잘 인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탕 전 장관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훈련할 것인지, 어떤 룰을 적용할 것인지가 큰 과제”라며 “인공지능이 (단순히 효율적 기능 수행을 넘어서 시민사회의 공적 가치를 중심으로 설계·운영되어) 모든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시민케어’(Civic Care)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이베이·가오슝/글·사진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갈등과 분열, 불신과 혐오로 흔들리는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다시 시민의 신뢰 속에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한겨레는 오는 10월23일 열리는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의 주제인 ‘민주주의의 미래’를 탐구하려, 미국·유럽·대만 등 세계 곳곳의 민주주의 혁신 현장을 찾았다. 순위투표제와 초당적 협력, 반극우·반차별 시민운동, 디지털 공론장, 시민의회 등 다양한 시도는 민주주의를 되살리고 확장하려는 전선이다. 각국의 실험을 살펴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와 과제를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