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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119sh.info황석영 소설의 소재가 된 군산 하제마을 600년 수령 팽나무. 참여자치군신시민연대 제공
기후위기는 더 이상 자연과학의 영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총체적 붕괴이며, 동시에 공동체가 자연을 관리, 보존, 소유해 온 방식의 위기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는 기후위기를 '환경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의 위기로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할매』는 당산숲과 당산나무가 지녀온 생태적, 사회적 기능을 직접적으로 릴게임골드몽 설명하지 않지만 문학 특히 환유(換喩)를 통해 이를 드러낸 수작이다.
이 소설에는 탄소 흡수량이나 수문 조절, 또는 생물 다양성 같은 과학적 용어, 기후 적응이나 회복력이라는 정책 언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당산나무-숲(이하 당산나무)'이 붕괴될 때 무엇이 함께 무너지는지를, 그 어떤 과학 보고서보다도 설득력 있게 바다신2게임 전달한다.
당산나무의 감각을 서사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할매'에서 당산나무는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다.
할매는 팽나무이고 서낭님이며 당산할머니이고 이 공간을 스쳐 간 이름도 빛도 없는 사람들이며 아니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의 집합이다. 마을이 사라지고 갯벌이 매립되고 공동체가 해체 바다이야기고래출현 된 이후에도 나무는 '처음부터 있던 그 자리에' 남아있다. 소설은 이 존재를 통해 묻는다. "너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신앙적 질문이기 이전에 기후위기 시대 인간의 위치를 묻는 윤리적 질문이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할매' 표지.
야마토연타
황석영의 장편소설 <할매>이 소설의 중심에 놓인 팽나무는 상징(symbol)의 차원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기능을 맡는다.
한 마을의 기억을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당산나무라는 민속적 존재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한국 근현대사, 크게는 조선 오백 년을 거슬러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 예컨대 정주, 공동체 무료릴게임 , 신앙, 식민, 개발 등을 하나의 장소와 하나의 물체로 응축하여 재구성한다.
소설을 관통하는 서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사라진 세계의 흔적을 더듬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인간의 기억이나 회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비인간 존재들의 눈높이, 정확히 말하면 철새들의 등장으로 세계를 열어 보인다.
인간 중심 서사가 아니라 생태적 시선에서 인간의 역사를 재배치하려는 서사 전략임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화자는 서해안 갯벌 위를 오가는 철새들의 움직임을 비교적 긴 호흡으로 묘사한다.
개똥지빠귀, 도요물떼새, 마도요, 황조롱이 등 구체적인 종명이 나열된다. 이 새들이 어디에서 날아와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도착하고 언제 떠나는지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새들이 '보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동이 일정한 리듬과 경로를 따른다는 점이다. 철새들은 아무르강과 시호테알린산맥을 오르고 내려 이곳으로 와서 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다시 먼 남쪽으로 또 북쪽으로 날아간다. 해마다 같은 때이고 같은 길이다.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철새는 기후와 지형, 물길과 계절이 만들어 낸 질서의 화신이다. 인간의 계획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자연은 이미 자신만의 시간표와 이동 경로를 가지고 있음을 이 장면은 분명히 한다. 철새의 등장은 정주 이전의 세계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인간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공간 그러나 이미 생태적 질서가 작동하고 있는 공간 말이다.
소설은 당초의 주인이었던 철새와 갯벌의 장소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문학에서 복선은 대개 인간 인물의 운명을 예고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철새는 인물의 운명을 예고하지 않는다. 철새는 장소의 운명, 이 소설이 끝내 다루게 될 상실의 구조를 미리 보여줄 뿐이다.
철새는 이동하는 존재다. 되돌아옴을 전제로 한 이동이다. 철새는 매년 같은 장소로 귀환한다. 이 귀환 가능성은 해당 장소가 여전히 살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철새가 떠난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귀환 조건의 붕괴를 암시한다. '할매'는 이 점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윽고 후반으로 갈수록 철새에 대한 언급은 점차 부재의 형태로 바뀐다. 새들이 더이상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이는 기후위기 서사의 전형적인 서술 방식과 맞닿아 있다. 철새가 머무는 공간은 언제나 강 하구와 갯벌이다. 갯벌은 인간의 노동 공간이기 이전에 생태적 결절점으로 제시된다.
대륙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물길,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공간, 수많은 생명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갯벌은 철새에게 필수적이다. 소설은 철새와 갯벌의 관계를 통해 인간 정주의 전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인간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공간이 이미 생태적으로 풍요로운 장소였기 때문이다. 즉, 정주는 인간의 개척 결과가 아니라 자연 질서에 대한 후행적 응답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어린 팽나무와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이다. 아니 숲이다. 소설은 이 팽나무를 처음부터 당산나무로 부르지 않는다. 그저 갯벌과 마을 언저리에 자라는 나무로 제시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당산나무가 신앙의 출발점이 아니고 존재의 거점도 아니며 다만 정주가 지속된 결과로 형성되는 존재임을 암시할 뿐이다.
철새가 돌아오고 갯벌이 생산을 지속하며 인간이 그 질서에 맞추어 살아가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무-숲은 중심이 된다. 즉, 소설에서 당산나무는 신앙의 원인이 아니라 생태적 공존의 결과물이다.
철새가 귀환하지 않음으로써 장소의 죽음을 선언하는 맥락이 의미심장하다. 철새의 서사는 이후 당산나무의 형성과 붕괴, 천주교 박해, 식민지 비행장, 새만금 개발로 이어지며 점차 비극적 현실성을 탑재해 나간다. 이상은 소설 할매에 대한 서론부의 평론이다. 자세한 내용은 팁에 부기하는 내 발표문에서 제시할 예정이다.
남도인문학팁
기후위기 시대의 당산 할매, 소설이 말하는 것들오는 12월 26일 나주읍성마을관리사회적조합 주관으로 학술대회가 열린다. 주제는 '나주읍성 당산제 복원을 위한 학술대회'이다.
나는 "기후위기 시대 당산숲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다. 부제가 황석영의 소설 '할매'에 나타난 당산나무의 환유와 공공성이다. 여기에 발표의 일부를 간추렸다.
나경수 교수의 '전남지역 마을 제의의 형태와 특징', 윤종호 감독의 '나주읍성 당산제 고찰'이 본격적인 학술 내용이며 나는 황작가의 소설을 통해 보론적인 발표를 하는 셈이다. '할매'가 제시하는 답은 명확하다. 당산나무-숲은 더 이상 과거의 신앙 공간도 생태 복원의 기술적 대상도 아니다.
기후위기 이전 사회가 가졌던 공공성의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를 상고하고, 개발과 효율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는 기준점을 제시하며, 인간 중심 문명을 넘어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을 사유하게 만드는 사유의 공간이란 점을 드러낸다. 당산나무-숲은 민속학의 범주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공공철학의 핵심 개념이 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할매나무는 말한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과거로 돌아가라는 요구가 아니다. 지금의 위치를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개발의 시간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생태의 시간을 다시 배울 지점에 서 있는가. 이러한 서사 구조는 기후위기의 성격과 깊이 맞닿아 있다. 기후위기는 단기간에 인식되기 어려운 장기적 위기이며, 개인적 삶의 단위에서는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
'할매'의 당산나무는 인간의 생애를 훨씬 초과하는 시간대에 서 있음으로써 인간에게는 단절된 사건들 예컨대 기근, 전쟁, 개발, 생태 파괴 등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묶어 보여준다. 문학을 떠나 민속학적으로도 역작이다. 기후위기처럼 느리게 진행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성찰하게 만드는 서사적 쾌거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기후위기는 더 이상 자연과학의 영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총체적 붕괴이며, 동시에 공동체가 자연을 관리, 보존, 소유해 온 방식의 위기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는 기후위기를 '환경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의 위기로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할매』는 당산숲과 당산나무가 지녀온 생태적, 사회적 기능을 직접적으로 릴게임골드몽 설명하지 않지만 문학 특히 환유(換喩)를 통해 이를 드러낸 수작이다.
이 소설에는 탄소 흡수량이나 수문 조절, 또는 생물 다양성 같은 과학적 용어, 기후 적응이나 회복력이라는 정책 언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당산나무-숲(이하 당산나무)'이 붕괴될 때 무엇이 함께 무너지는지를, 그 어떤 과학 보고서보다도 설득력 있게 바다신2게임 전달한다.
당산나무의 감각을 서사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할매'에서 당산나무는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다.
할매는 팽나무이고 서낭님이며 당산할머니이고 이 공간을 스쳐 간 이름도 빛도 없는 사람들이며 아니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의 집합이다. 마을이 사라지고 갯벌이 매립되고 공동체가 해체 바다이야기고래출현 된 이후에도 나무는 '처음부터 있던 그 자리에' 남아있다. 소설은 이 존재를 통해 묻는다. "너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신앙적 질문이기 이전에 기후위기 시대 인간의 위치를 묻는 윤리적 질문이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할매' 표지.
야마토연타
황석영의 장편소설 <할매>이 소설의 중심에 놓인 팽나무는 상징(symbol)의 차원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기능을 맡는다.
한 마을의 기억을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당산나무라는 민속적 존재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한국 근현대사, 크게는 조선 오백 년을 거슬러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 예컨대 정주, 공동체 무료릴게임 , 신앙, 식민, 개발 등을 하나의 장소와 하나의 물체로 응축하여 재구성한다.
소설을 관통하는 서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사라진 세계의 흔적을 더듬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인간의 기억이나 회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비인간 존재들의 눈높이, 정확히 말하면 철새들의 등장으로 세계를 열어 보인다.
인간 중심 서사가 아니라 생태적 시선에서 인간의 역사를 재배치하려는 서사 전략임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화자는 서해안 갯벌 위를 오가는 철새들의 움직임을 비교적 긴 호흡으로 묘사한다.
개똥지빠귀, 도요물떼새, 마도요, 황조롱이 등 구체적인 종명이 나열된다. 이 새들이 어디에서 날아와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도착하고 언제 떠나는지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새들이 '보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동이 일정한 리듬과 경로를 따른다는 점이다. 철새들은 아무르강과 시호테알린산맥을 오르고 내려 이곳으로 와서 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다시 먼 남쪽으로 또 북쪽으로 날아간다. 해마다 같은 때이고 같은 길이다.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철새는 기후와 지형, 물길과 계절이 만들어 낸 질서의 화신이다. 인간의 계획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자연은 이미 자신만의 시간표와 이동 경로를 가지고 있음을 이 장면은 분명히 한다. 철새의 등장은 정주 이전의 세계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인간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공간 그러나 이미 생태적 질서가 작동하고 있는 공간 말이다.
소설은 당초의 주인이었던 철새와 갯벌의 장소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문학에서 복선은 대개 인간 인물의 운명을 예고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철새는 인물의 운명을 예고하지 않는다. 철새는 장소의 운명, 이 소설이 끝내 다루게 될 상실의 구조를 미리 보여줄 뿐이다.
철새는 이동하는 존재다. 되돌아옴을 전제로 한 이동이다. 철새는 매년 같은 장소로 귀환한다. 이 귀환 가능성은 해당 장소가 여전히 살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철새가 떠난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귀환 조건의 붕괴를 암시한다. '할매'는 이 점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윽고 후반으로 갈수록 철새에 대한 언급은 점차 부재의 형태로 바뀐다. 새들이 더이상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이는 기후위기 서사의 전형적인 서술 방식과 맞닿아 있다. 철새가 머무는 공간은 언제나 강 하구와 갯벌이다. 갯벌은 인간의 노동 공간이기 이전에 생태적 결절점으로 제시된다.
대륙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물길,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공간, 수많은 생명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갯벌은 철새에게 필수적이다. 소설은 철새와 갯벌의 관계를 통해 인간 정주의 전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인간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공간이 이미 생태적으로 풍요로운 장소였기 때문이다. 즉, 정주는 인간의 개척 결과가 아니라 자연 질서에 대한 후행적 응답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어린 팽나무와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이다. 아니 숲이다. 소설은 이 팽나무를 처음부터 당산나무로 부르지 않는다. 그저 갯벌과 마을 언저리에 자라는 나무로 제시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당산나무가 신앙의 출발점이 아니고 존재의 거점도 아니며 다만 정주가 지속된 결과로 형성되는 존재임을 암시할 뿐이다.
철새가 돌아오고 갯벌이 생산을 지속하며 인간이 그 질서에 맞추어 살아가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무-숲은 중심이 된다. 즉, 소설에서 당산나무는 신앙의 원인이 아니라 생태적 공존의 결과물이다.
철새가 귀환하지 않음으로써 장소의 죽음을 선언하는 맥락이 의미심장하다. 철새의 서사는 이후 당산나무의 형성과 붕괴, 천주교 박해, 식민지 비행장, 새만금 개발로 이어지며 점차 비극적 현실성을 탑재해 나간다. 이상은 소설 할매에 대한 서론부의 평론이다. 자세한 내용은 팁에 부기하는 내 발표문에서 제시할 예정이다.
남도인문학팁
기후위기 시대의 당산 할매, 소설이 말하는 것들오는 12월 26일 나주읍성마을관리사회적조합 주관으로 학술대회가 열린다. 주제는 '나주읍성 당산제 복원을 위한 학술대회'이다.
나는 "기후위기 시대 당산숲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다. 부제가 황석영의 소설 '할매'에 나타난 당산나무의 환유와 공공성이다. 여기에 발표의 일부를 간추렸다.
나경수 교수의 '전남지역 마을 제의의 형태와 특징', 윤종호 감독의 '나주읍성 당산제 고찰'이 본격적인 학술 내용이며 나는 황작가의 소설을 통해 보론적인 발표를 하는 셈이다. '할매'가 제시하는 답은 명확하다. 당산나무-숲은 더 이상 과거의 신앙 공간도 생태 복원의 기술적 대상도 아니다.
기후위기 이전 사회가 가졌던 공공성의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를 상고하고, 개발과 효율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는 기준점을 제시하며, 인간 중심 문명을 넘어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을 사유하게 만드는 사유의 공간이란 점을 드러낸다. 당산나무-숲은 민속학의 범주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공공철학의 핵심 개념이 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할매나무는 말한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과거로 돌아가라는 요구가 아니다. 지금의 위치를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개발의 시간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생태의 시간을 다시 배울 지점에 서 있는가. 이러한 서사 구조는 기후위기의 성격과 깊이 맞닿아 있다. 기후위기는 단기간에 인식되기 어려운 장기적 위기이며, 개인적 삶의 단위에서는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
'할매'의 당산나무는 인간의 생애를 훨씬 초과하는 시간대에 서 있음으로써 인간에게는 단절된 사건들 예컨대 기근, 전쟁, 개발, 생태 파괴 등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묶어 보여준다. 문학을 떠나 민속학적으로도 역작이다. 기후위기처럼 느리게 진행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성찰하게 만드는 서사적 쾌거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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