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노하우 ㎢ 에볼루션 카지노?이용방법 _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2-07 21:25조회0회 댓글0건
관련링크
-
http://12.rao532.top
0회 연결
-
http://28.rfc234.top
0회 연결
본문
온라인카지노사이트 ㎣ 넷텔러토토 ❡
릴게임끝판왕 바로가기 go !!
[오길영 기자]
오랫동안 문학비평에서 힘을 행사해 온 개념 중 하나가 문학예술을 현실의 충실한 반영(reflection) 혹은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한국문학사에서는 이런 태도를 리얼리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텍스트가 보여주는 가상현실은 실제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마치 영화의 가상 이미지가 현실의 반영이 아니듯이.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건의 반영이 아니라 상징적 해결 행위(symbolic act)이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문화적 산물들은 실제의 정치적, 사회적 모순에 대한 상징적 해결로 읽을 수 있다."(프레드릭 제임슨, <정 바다이야기릴게임2 치적 무의식>) 문학은 현실모순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문학은 상징적 행위이기에 힘이 없어 보이지만, 주어진 현실에서는 당장 눈에 띄지 않는 현실모순의 해결 가능성을 허구를 통해 모색한다. 상징적 해결은 두 가지 의미를 띤다. 한편으로 상징적이기에 그것은 실제 모순의 해결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해결의 방안을 상징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기에 그 황금성릴게임 것은 현실적 모순에 어떤 의미로는 관련된다. 문학예술 작품이 현실과 맺는 간단치 않은 관계이다.
이런 딱딱한 얘기를 하는 이유? 우리가 쉽게 접하는 대중문학, 대중영화가 바로 이런 상징적 해결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몇 년 전에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고 나도 재미있게 봤던 의학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 바다이야기온라인 에 나오는 의사들의 형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그런 의사를 현실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시청자는 그런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거나 심지어 감동할까? 그들의 모습이 현실을 반영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사라진 것, 하지만 현실에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숨은 욕망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화제를 오션릴게임 모았던 법정 드라마였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거기 나오는 인간적이고 진실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변호사가 현실에 얼마나 될까? 그런 변호사가 많지 않기에 오히려 우리는 그런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모순과 문제의 상징적 해결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낀다.
<이치케이의 사이다쿨접속방법 까마귀>, 진리와 양심을 지키려는 판사들
▲ 넷플릭스 드라마 <이치케이의 까마귀> 포스터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본 일본 법정 드라마 <이치케이의 까마귀>도 맥을 같이 한다. 판사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내용이 판타지라는 건 쉽게 지적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왜 우리가 판타지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가? 그 점이 따져볼 지점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치케이(一係)는 일본 법원에서 드라마에 나오는 형사합의부 안의 한 재판계(係)를 가리킨다. 드라마에도 나오는 법조 귀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판사들의 모습을 뜻한다. 일본 문화에서 까마귀는 시체 곁을 맴도는 새로서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존재이고 사람들이 외면하려는 진실을 들춰내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까마귀는 정의를 상징하는 법복 아래 숨은 불편한 현실을 쪼아서 드러내는 존재이고, 법원이라는 질서 속의 불온한 존재를 뜻한다.
<이치케이>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판사는 일본 지방재판소 형사합의부(3인의 판사가 심리하는 재판부)에서 일하는 판사 이루마 미치오(다케노우치 유타카)이다. 한국만큼이나 학벌주의가 힘을 행사하는 일본 법조계에서 미치오는 변변한 법대를 나오지도 못한, 전직 변호사라는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판사가 된 배경에는 과거의 어떤 사건이 있고, 그것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역할도 한다. <이치케이>에는 이루마와는 반대 유형의 판사로 사카마 치즈루(쿠로키 하루)가 나온다.
여성 판사인 사카마는 남성 중심인 법조계에서 젊은 나이에 판사가 되었고, 이루마와는 달리 도쿄대 법학부 출신으로 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이다. 한국에서도 친숙한 엘리트 판사의 모습이다. 그녀는 사안의 진실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가리기보다는 판사의 역할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고, 자신이 새로 부임한 형사부에서 해야 할 일도 사건 처리 건수가 너무 적어 회사로 치면 파산 수준의 적자 상태인 이치케이를 회생시키는 것이라고 여긴다.
신속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카마에게 현장 검증을 여러 번 반복하며 사건의 진상을 차분히 파헤치는 이루마의 일하는 방식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도구적 합리성에 충실한 전형적인 법률 전문가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카마는 이루마와 일하면서 그런 도구적 합리성에 점차 물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임관 후 30년 넘게 형사 판사 한길만 걸어온 베테랑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유머가 넘치는 온화한 부장 판사인 코마자와 요시오(코히나타 후미요), 그리고 이들 판사를 지지하면서 법률 행정 업무를 성의껏 도와주는 직원들, 번거로운 현장조사를 마다하지 않고 따라가는 검사들이 있다. 역시 판타지이다.
그렇다면 이런 판타지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치케이>는 많이 봐왔던 검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판사의 시점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모습을 코믹하게, 때로는 비장하게 보여준다. 세 명의 판사는 서류로 판단하지 않고 직접 현장에 가고, 당사자를 만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소송의 형식적 절차, 신속성보다는 사건에 숨겨진 실질적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범인을 잡는 수사극도 아니고, 변론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드라마도 아니지만 그런 노력이 눈길을 끈다.
<이치케이>에 나오는 사건은 대개 명백한 악인과 선인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제도, 관행, 조직 논리 때문에 희생되는 평범한 사람들, 경찰과 검찰의 관행적 수사로 약자의 방어권이 무력화되는 상황 등을 부각한다. 이루마, 코마자와 등이 법관으로서 지키려고 하는 가치는 진리와 양심이다. 역시 권력과 돈만이 추앙받는 현실에서는 무시되는 것들이다. 그들은 승진이나 평판에 거의 관심이 없다. 이들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관료로서 수십 년 동안 오직 양지만을 찾다가 내란 중요 종사자로 얼마 전 중형을 받은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판결문도 아름다울 수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가 지난 1월 21일 오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건 선고공판에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꼈겠지만 나는 이진관 판사가 주재한 재판부가 내린 첫 번째 내란 판결을 보면서 문학예술에서 상징적으로만 해결되는 것이라고 느꼈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모습에서 뭉클함을 느꼈다. 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는 좋은 비평은 역사적 분석과 논리적 분석이 결합된 글이라고 했는데 이번 판결문이 그렇다. 좋은 글은 화려한 표현으로 치장하거나 레토릭이 돋보이는 글이 아니다.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글이 좋은 글이다. 꼭 문학예술이 아니더라도 정확한 글은 아름답다. 판결문도 아름다울 수 있다.
재판부는 불법 계엄을 명확하게 "12.3 내란", 그리고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내란은 이른바 친위쿠데타"라고 규정했다. 핵심을 명중하는 판단이다. 그리고 그런 규정을 하게 된 역사적 판단과 사례, 그런 내란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을 조목조목 밝힌다.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친위쿠데타는 많은 경우 성공하여 권력자는 독재자가 되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같은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되었으며, 국가의 경제와 외교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독재자의 권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내전과 같은 전쟁이나 정치 투쟁으로 국가와 사회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12.3 내란은 이러한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되는 점에서 그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판사도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라는 걸 확인하는 견해를 밝힌다.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되긴 하였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군인에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국민의 저항을 바탕으로 신속히 국회에 진입하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던 내란의 암울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더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이다.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판결은 엄청난 지식이나 기발한 생각, 독창적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니다. 민주공화국 헌법과 법률에 따른 상식적인 정신과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비롯한 많은 시민이 놀라움을 느끼고 깊이 감동하였다면, 그건 역설적으로 내란 이후 사법부가 보여준 모습, 지금도 되풀이 확인하는 모습이 민주공화국의 원리에서 멀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도 민주공화국의 정신에 더욱 걸맞도록 사법부를 개혁해야 한다.
오랫동안 문학비평에서 힘을 행사해 온 개념 중 하나가 문학예술을 현실의 충실한 반영(reflection) 혹은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한국문학사에서는 이런 태도를 리얼리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텍스트가 보여주는 가상현실은 실제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마치 영화의 가상 이미지가 현실의 반영이 아니듯이.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건의 반영이 아니라 상징적 해결 행위(symbolic act)이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문화적 산물들은 실제의 정치적, 사회적 모순에 대한 상징적 해결로 읽을 수 있다."(프레드릭 제임슨, <정 바다이야기릴게임2 치적 무의식>) 문학은 현실모순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문학은 상징적 행위이기에 힘이 없어 보이지만, 주어진 현실에서는 당장 눈에 띄지 않는 현실모순의 해결 가능성을 허구를 통해 모색한다. 상징적 해결은 두 가지 의미를 띤다. 한편으로 상징적이기에 그것은 실제 모순의 해결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해결의 방안을 상징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기에 그 황금성릴게임 것은 현실적 모순에 어떤 의미로는 관련된다. 문학예술 작품이 현실과 맺는 간단치 않은 관계이다.
이런 딱딱한 얘기를 하는 이유? 우리가 쉽게 접하는 대중문학, 대중영화가 바로 이런 상징적 해결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몇 년 전에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고 나도 재미있게 봤던 의학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 바다이야기온라인 에 나오는 의사들의 형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그런 의사를 현실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시청자는 그런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거나 심지어 감동할까? 그들의 모습이 현실을 반영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사라진 것, 하지만 현실에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숨은 욕망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화제를 오션릴게임 모았던 법정 드라마였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거기 나오는 인간적이고 진실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변호사가 현실에 얼마나 될까? 그런 변호사가 많지 않기에 오히려 우리는 그런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모순과 문제의 상징적 해결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낀다.
<이치케이의 사이다쿨접속방법 까마귀>, 진리와 양심을 지키려는 판사들
▲ 넷플릭스 드라마 <이치케이의 까마귀> 포스터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본 일본 법정 드라마 <이치케이의 까마귀>도 맥을 같이 한다. 판사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내용이 판타지라는 건 쉽게 지적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왜 우리가 판타지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가? 그 점이 따져볼 지점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치케이(一係)는 일본 법원에서 드라마에 나오는 형사합의부 안의 한 재판계(係)를 가리킨다. 드라마에도 나오는 법조 귀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판사들의 모습을 뜻한다. 일본 문화에서 까마귀는 시체 곁을 맴도는 새로서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존재이고 사람들이 외면하려는 진실을 들춰내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까마귀는 정의를 상징하는 법복 아래 숨은 불편한 현실을 쪼아서 드러내는 존재이고, 법원이라는 질서 속의 불온한 존재를 뜻한다.
<이치케이>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판사는 일본 지방재판소 형사합의부(3인의 판사가 심리하는 재판부)에서 일하는 판사 이루마 미치오(다케노우치 유타카)이다. 한국만큼이나 학벌주의가 힘을 행사하는 일본 법조계에서 미치오는 변변한 법대를 나오지도 못한, 전직 변호사라는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판사가 된 배경에는 과거의 어떤 사건이 있고, 그것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역할도 한다. <이치케이>에는 이루마와는 반대 유형의 판사로 사카마 치즈루(쿠로키 하루)가 나온다.
여성 판사인 사카마는 남성 중심인 법조계에서 젊은 나이에 판사가 되었고, 이루마와는 달리 도쿄대 법학부 출신으로 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이다. 한국에서도 친숙한 엘리트 판사의 모습이다. 그녀는 사안의 진실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가리기보다는 판사의 역할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고, 자신이 새로 부임한 형사부에서 해야 할 일도 사건 처리 건수가 너무 적어 회사로 치면 파산 수준의 적자 상태인 이치케이를 회생시키는 것이라고 여긴다.
신속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카마에게 현장 검증을 여러 번 반복하며 사건의 진상을 차분히 파헤치는 이루마의 일하는 방식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도구적 합리성에 충실한 전형적인 법률 전문가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카마는 이루마와 일하면서 그런 도구적 합리성에 점차 물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임관 후 30년 넘게 형사 판사 한길만 걸어온 베테랑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유머가 넘치는 온화한 부장 판사인 코마자와 요시오(코히나타 후미요), 그리고 이들 판사를 지지하면서 법률 행정 업무를 성의껏 도와주는 직원들, 번거로운 현장조사를 마다하지 않고 따라가는 검사들이 있다. 역시 판타지이다.
그렇다면 이런 판타지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치케이>는 많이 봐왔던 검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판사의 시점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모습을 코믹하게, 때로는 비장하게 보여준다. 세 명의 판사는 서류로 판단하지 않고 직접 현장에 가고, 당사자를 만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소송의 형식적 절차, 신속성보다는 사건에 숨겨진 실질적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범인을 잡는 수사극도 아니고, 변론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드라마도 아니지만 그런 노력이 눈길을 끈다.
<이치케이>에 나오는 사건은 대개 명백한 악인과 선인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제도, 관행, 조직 논리 때문에 희생되는 평범한 사람들, 경찰과 검찰의 관행적 수사로 약자의 방어권이 무력화되는 상황 등을 부각한다. 이루마, 코마자와 등이 법관으로서 지키려고 하는 가치는 진리와 양심이다. 역시 권력과 돈만이 추앙받는 현실에서는 무시되는 것들이다. 그들은 승진이나 평판에 거의 관심이 없다. 이들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관료로서 수십 년 동안 오직 양지만을 찾다가 내란 중요 종사자로 얼마 전 중형을 받은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판결문도 아름다울 수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가 지난 1월 21일 오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건 선고공판에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꼈겠지만 나는 이진관 판사가 주재한 재판부가 내린 첫 번째 내란 판결을 보면서 문학예술에서 상징적으로만 해결되는 것이라고 느꼈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모습에서 뭉클함을 느꼈다. 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는 좋은 비평은 역사적 분석과 논리적 분석이 결합된 글이라고 했는데 이번 판결문이 그렇다. 좋은 글은 화려한 표현으로 치장하거나 레토릭이 돋보이는 글이 아니다.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글이 좋은 글이다. 꼭 문학예술이 아니더라도 정확한 글은 아름답다. 판결문도 아름다울 수 있다.
재판부는 불법 계엄을 명확하게 "12.3 내란", 그리고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내란은 이른바 친위쿠데타"라고 규정했다. 핵심을 명중하는 판단이다. 그리고 그런 규정을 하게 된 역사적 판단과 사례, 그런 내란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을 조목조목 밝힌다.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친위쿠데타는 많은 경우 성공하여 권력자는 독재자가 되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같은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되었으며, 국가의 경제와 외교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독재자의 권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내전과 같은 전쟁이나 정치 투쟁으로 국가와 사회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12.3 내란은 이러한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되는 점에서 그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판사도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라는 걸 확인하는 견해를 밝힌다.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되긴 하였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군인에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국민의 저항을 바탕으로 신속히 국회에 진입하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던 내란의 암울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더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이다.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판결은 엄청난 지식이나 기발한 생각, 독창적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니다. 민주공화국 헌법과 법률에 따른 상식적인 정신과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비롯한 많은 시민이 놀라움을 느끼고 깊이 감동하였다면, 그건 역설적으로 내란 이후 사법부가 보여준 모습, 지금도 되풀이 확인하는 모습이 민주공화국의 원리에서 멀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도 민주공화국의 정신에 더욱 걸맞도록 사법부를 개혁해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