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2025년 11월24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한겨레21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18살 때부터 스피드스케이팅 코치 이영만(가명)에게 성폭행과 폭행을 당했던 서윤지(가명)씨는 13년이 지난 2025년 9월16일 서울 노원구 태릉스케이트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에게 칼을 휘둘렀고 경찰에 체포됐다. 특수상해로 검찰에 송치된 서씨는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 사건은 성폭력 피해자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듬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 야마토게임 고 있다.
한겨레21은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에게 서씨가 범행에 이르게 된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돕고자 관련 자료(검찰 불기소 결정문 등) 중 일부를 제공했다. 자료를 살펴본 김 소장은 서씨가 엘리트 운동선수 시절 당했던 성착취가 전형적인 ‘위계에 의한 그루밍 성폭력’(피해자와 관계를 쌓아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적으로 가해 행위 알라딘게임 를 하는 폭력)에 해당한다고 봤다.
2025년 11월24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만난 김 소장은 34년 전 발생한 유사 사건을 언급하며 당시 살해 가해자를 향한 구명 운동이 펼쳐졌고, 이 구명 운동이 재판부의 판결에 영향을 줬다고 되짚었다. 그는 “정의가 지연되는 동안 서씨가 겪은 피해, 심리적 증상 문제를 사회 의제로 논의 바다이야기고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유도 배상도 없이 견딘 시간, 오롯이 느껴져
―이번 사건을 어떻게 봤나.
“1991년 발생했던 ‘김부남 사건’이 떠올랐다. 피해자 김부남은 어릴 때 성폭력을 당했지만,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다가 21년 만에 가해자를 찾아가 살해했다. 그 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 릴게임황금성 을 죽였다’는 김부남의 법정 진술이 공개되자, 그를 구명하려고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성폭행) 가해자를 칼로 찌르는 상황에 이를 정도로 오랜 기간 어떤 치유와 배상도 없이 견뎌왔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져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검찰은 이영만 코치의 주장대로 둘 사이가 연인 관계라고 봤다.
황금성릴게임사이트 “대학 입시를 앞둔 엘리트 운동선수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코치가 운영하는 팀에 합류한 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적 행위를 겪었다. 입시 결과가 학생과 코치의 진로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서씨는 폭행이 있을 때마다 외부에 말하지 않고 묵묵히 훈련했고, 이 코치는 선수 표정까지 길들이면서 때렸다. 이런 상황이면 위력의 가능성을 먼저 따진 뒤에 이 관계가 독립되고 자유로운 애정 관계였는지를 검찰에서 수사로 확인했어야 한다. 검찰은 참고인 2명의 진술(‘사귀는 사이였고 강간당했다는 말은 들은 적 없다’)을 받았는데, 폐쇄적인 공동체에 속한 이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가해자 편의적인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서씨가 이 코치에게 보냈던 ‘안녕히 주무세요. 꿈에서도 봐요♥’ 등 ‘♥’가 포함된 여러 문자메시지가 연인 관계의 증거라고 봤다.
“고소장을 보면 피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돼 3학년까지 1년 정도 있었는데, 불기소 결정문에 인용된 통화 내용과 문자메시지는 4개월이 채 안 된다. 서씨는 ‘하트를 찍지 않으면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폭행한 뒤 마지막에는 서씨에게 애정 표현을 하게 했다. 피해자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게 시키고 같은 표현을 반복해서 말하게 시키는 것은 그루밍 성폭력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행태다. 검찰은 초반을 제외하고 남은 기간 피해자가 괴로워했던 흔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둘 사이가 애정 관계라고 결론지었다.”
참아온 시간만큼 자기 신체에 많은 상처 새겨
―위계에 의한 관계가 사태를 악화한 원인일까.
“연극계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던 이윤택 극작가(징역 7년 확정)의 성폭력 사건은 사건 발생 20여 년이 지나 폭로됐다. 일부 피해자는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도 있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도 집안 모두가 쉬쉬하려는 공기를 깨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피해가 발생한 뒤 10년이 지나 상담하는 분이 많다. 폭력과 성폭력을 묵인하고 쉬쉬하는 조직에서는 개인이 피해를 말할 수 없다. 엘리트 스포츠팀은 오죽했겠나. 성적이라는 목표를 향해 새벽과 밤을 가리지 않고 훈련하는 엘리트 스포츠팀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가해자를 발본색원하기보다는 피해자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려 할 것이다.”
―서씨의 행위를 어떻게 보고 있나.
“외상후울분장애(PTED·심각한 모욕을 경험해 지속적으로 울분, 분노,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정신장애)가 떠올랐다. 욕먹고 맞고 강간당했는데, 신고하면 처벌될 것이라는 형사·사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따른 분노가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다보니 사회를 규범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는 경우도 많다. 현실 세계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거로 해소가 안 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가해자가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해소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때의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 때 제어되기 어려운 행동이 진행되는데, 많은 피해자가 자신을 해치고 있다.”
―서씨의 몸에도 자신을 해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피해자들은 본인이 겪은 고통을 상대화하려 한다. 신체에 더 큰 고통을 줘 ‘이만큼 아픈 것은 아니’라며 안도하는 순간이다. 서씨는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나 상실을 타투를 새기면서 느끼는 통증으로 대체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타투가 많은 만큼 고통의 시간도 많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선수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며 오랜 기간 인내하며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고통의 역치가 높다. 서씨 역시 대화나 상담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참아온 시간만큼 자기 신체에 많은 상처를 감내한 것으로 보인다.”
법·제도 있는데도 왜 과거를 답습하는가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나.
“수많은 성폭력은 인간을 향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범죄다. 그래서 이를 회복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들고 고통스럽다. 우리나라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조항이 있지만 실제 적용된 사례는 적다. 재판이든 수사든 위력이라는 힘을 헤아리는 역량이 사회적으로 더 쌓여야 한다. 위력이 작동할 만한 상황을 놓고선 면밀하고 명확하게 대응해 재발의 싹을 끊어놓는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정의가 지연되는 동안 피해자가 부담해야 하는 심리적 증상을 이제는 사회 의제로 논의해야 한다. 김부남 사건은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게 한 직접적 계기가 됐다. 법과 제도가 있는데 왜 과거와 같은 일이 답습되는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을 실행하지 못했는지를 짚어야 한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