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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심하겠다는 얘기하면 있겠어. 무섭게 자신을 마음으로[윤성효 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산청간디학교를 설립하고, 현재 필리핀 두마게티(Dumaguete)에서 칼리카산교육센터(Kalikasan Education Center, Inc)를 운영하고 있는 양희규 선생.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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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에 가면 깜짝 놀란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어둡고 날이 서 있다. 한국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깔깔대며 웃는다. 한국은 아이 때부터 자연과 놀이를 빼앗겼다. 아이들한테 자연과 놀이를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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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산청간디학교를 설립하고, 현재 필리핀 오리지널바다이야기 두마게티(Dumaguete)에서 칼리카산교육센터(Kalikasan Education Center, Inc)를 설립·운영하는 양희규(66) 선생이 한 말이다. 대전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 이종태·여태전·이병곤·정유진·유은영 교수가 기획하고 대안교육연대 소속 교사와 학생 등 30여명이 참여해 지난 13~18일 사이 진행한 '한국-필리핀 우정과 환대의 한 릴게임온라인 마당' 국제문화교류에서 양희규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안교육 개척자 양희규 선생은 1997년 경남 산청 둔철산 자락에 중고 통합형(비인가) 간디학교를 개교했고, 책 <10대 너의 행복에 주인이 되어라>,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를 펴냈으며 포스코청암상(교육상)·도산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그는 2007년에 필리핀 두마게티 발렌시아(Valencia) 지역에 4000여평의 땅을 매입하여 캠퍼스를 조성해 칼리카산교육센터를 설립했고, 이후 산청·제천 등 간디학교 학생들의 해외이동학습 현장으로 활용했다. 2011년부터는 3년제 고교과정인 '필리핀간디국제학교'를 개교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까지 9년 동안 운영했다. 이제는 이곳에 아시아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1년, 또는 2년 과정의 '아시아창업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양 선생은 이 캠퍼스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다윈(Dauin) 지역에 3000여 평 규모로, 12가구의 집과 공연장, 전시실 등을 갖춘 예술마을(Art Villige)을 조성해 올해 말 완성 예정이다. 예술마을 인근에 3000여 평 규모의 자연농법농장을 두어 벌써 수확을 시작했다.
두마게티는 필리핀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치안이 잘 유지되는 지역이다. 바다와 산, 온천, 폭포 등 자연환경도 뛰어나고, 세계에서 은퇴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인구 15만 명의 도시인데 크고 작은 대학이 무려 9개나 있는 국제적인 교육도시다. 특히 1901년에 개교한 실리만대학교(Silliman University)는 도시 중심가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감사는 사람의 덕목 중에 으뜸"
문화교류 첫날 한국에서 간 대안교육자들을 만난 양 선생은 '철학'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계명대 철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철학 석사, 미국 산타바바라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든 사람은 철학이 필요하다. 필로스(philos)는 사랑이고, 소피아(sophia)는 지혜다. 반복되는 실패와 실수 속에 지혜가 생긴다. 살아가면서 불평할 일이 생기게 된다. 그때 화를 내면 되는데, 화를 내는 순간 감정이 앞서게 되고, 그러면 지혜가 작동하지 않고 어리석어진다. 화를 내되 5초만 내고 그만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때부터 문제 해결에 들어가면 머리가 좋아진다. 불평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감사는 사람의 덕목 중에 으뜸이다"라고 말한 양희규 선생은 요즘 음악 창작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털어놓았다. 열 살 무렵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만두었다고 한 그는 나이 60살에 다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기타로 하던 '즉흥곡'을 요즘은 피아노로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피아노 앞에 앉아 한국에서 온 '손님'들한테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여러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습관처럼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즉흥곡이 아니라 진짜 남에게 들려줄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여기 필리핀 간디학교에서 교사를 지낸 59세 여성이 암을 앓았다. 결혼도 하지 않아 혼자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진통 주사를 놓고 산소통을 가져다 놓고 수시로 사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했다. 그래서 어느 날 새벽에 그녀를 위해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곡을 만들었고, 그 뒤에 찾아가 이야기했더니 '영광'이라고 하더라.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 장례식에서 한 번 들려주었다."
피아노 연주를 마친 그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남긴 명언 이야기부터 했다. "밤하늘을 빛나게 하는 것은 별이고 인간을 빛나게 하는 것은 선한 의지다"라고. 양 선생은 "죄를 지어 잡혀가는 사람들은 학력이 낮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선한 의지가 부족해서다. 선한 의지를 닦지 않으면 인생은 유혹에 빠진다"라며 "사람은 누구나 유혹에 약하다. 가장 인간답게, 신처럼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선한 의지다. 두려움에 떨지 말고 욕심 내지 말고 선한 의지를 갖고 살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필리핀 간디학교를 소개한 그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만남이 가능하고 인간적으로 소통하도록 하는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영어를 못해도 된다. 영어는 사전을 꺼내서 보여주면 되니까. 우리 학교 출신 중에는 유엔, 아프리카에 가서 사는 아이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 오는 아이들은 맨날 안아주면서 사랑으로 대한다. 아마 한국에서 그렇게 하는 부모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고립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고 게임을 하면서 잘 사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고독이 있다. 아이들은 잘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공허함 때문에 어느 날 뛰어 내리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스킨십을 하면서 살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서 오는 아이들은 2주 정도 필리핀 가정에 보내 이곳 사람들과 함께 지내도록 한다. 변변찮은 취사도구 하나 없는 부엌에서 필리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같은 일을 하며 지낸다. 그렇게 지내다가 떠날 때가 되면 눈물을 펑펑 흘린다.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아서 잊을 수가 없다는 말을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졸업을 해도 연락한다."
'간디'라는 이름을 붙인 연유에 대해, 그는 "1996년에 산청간디학교 설립준비를 했다. 10여명이 간디농장에서 1년간 농사를 짓고 하면서 준비했다. 학교 이름은 10명이 투표를 해서 결정했다. 저는 처음에 반대했다. 개인적으로 간디는 추종하지만 청소년한테 간디는 너무 목표가 높다. 그때 저는 소식지 제목이었던 '숲속마을 작은학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들려주었다.
그는 교육에 있어 '자연'과 '자기발견'이 소중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만든 이곳 캠퍼스는 '작은 숲'처럼 느껴졌고, 자기발견을 찾으려거나 찾은 아이들이 이곳으로 한때 모여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여기 캠퍼스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지금은 제법 큰 덩치의 나무도 있어 숲이 됐다. 우리가 다 심은 나무들이다. 산에서 채집해서 좋은 흙에 이식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마음도 그렇다고 본다. 자연주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교육에서 자연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학생들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자연은 우리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나서 문명을 만들고 자연을 정복했다고 하지만, 인간은 결코 자연에서 벗어나 존립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과거 아이들이 산청 지리산 자락에 와서 몇 개월 생활하고 나면,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즐거워하고,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느끼게 되며 모두가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성장한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래서 변치 않는다. 아무리 기술이 진보하고 세상이 디지털 세상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에 속한 생명체이고, 그것을 벗어나 존립할 수는 없다."
▲ 대전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는 1월 13~18일 사이 필리핀에서 '한국-필리핀 우정과 환대의 한마당' 국제문화교류 활동을 벌였다.
ⓒ 윤성효
"한국 공교육에 확실한 메시지는 전달했다"
다음은 양희규 선생과 별도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내용.
- 왜 필리핀에 새 터를 잡았나?
"산청간디학교를 하면서 1999년부터 8년 동안 호주 버리즈번 근처에서 이동학습을 했다. 주로 고등학생들이 참여했는데 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벌어지면서 비용이 두 배로 올라가 힘들었다. 호주보다 필리핀은 한국에서 더 가깝고 비용도 적게 들 수 있어 택했다. 그리고 같은 영어권이다. 한국에서 호주는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필리핀은 4시간 정도면 된다. 아시아권이다 보니 영국계인 호주보다 좀 더 친숙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에 캠퍼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 대안교육 개척자인데.
"한국에서 대안교육을 시작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대안교육이 위기를 겪고 있지만 한국 공교육에 확실한 메시지는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존중해주는, 아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학생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전달했다. 아직 공교육에서 본질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학생의 권리, 학생인권 도입은 짧은 대안교육의 역사에서 업적이라 본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 대안교육은 위축되고 있다. 대안교육은 진화해야 한다는 말을 가끔 해왔다. 사실 그 말을 던지기는 했지만 미안하게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 말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필리핀에서 교육하는 게 하나의 진화한 모습이라 봤지만 많이 약하다.
교육 전반에 대해, 처음 학교 설립할 때나 지금이나 같은 심정이다. 아이들은 신이 만들어준 모습대로 키워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성공시키려고 한다거나 잘 키우려고 하는 게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돈으로 아이들을 망치는 것이다. 부모는 돈을 들여, 노력해서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아이들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봐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을 넘어서서 그 아이가 아이답게 살도록 해주는 게 부모든, 교육자들이 해야 할 임무다. 그런데 우리 토양이 그런 면에서 아직 부족하고 소신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학부모나 교사나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본질적인 전환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안타깝다.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불안함이나 강박관념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지 않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창의적인 교육이 안된다.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라는 걸 정확히 보고 알면 창의적인 교육이 된다. 그래야 교육다운 교육이 되고, 우리 사회가 저력을 갖게 되지 않겠나. 철학을 가진 시민, 철학을 가진 사회가 된다. 소신있게 아이를 키워야 미래가 있다. 한 명 한 명이 잘 역할을 해야 사회가 성장한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신의 뜻을 거스러는 것 같다."
- 한국사회의 현안 가운데 하나가 인구절벽에 학생수 감소와 학교 폐교인데.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다. 결혼 자체도 그렇고, 아이를 낳는 건 더 두려워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어느 정도 기가 안 죽을 정도로 키워야하기에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저는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저는 첫 아이를 한국에서 대학에 보내지 않았고, 여기 와서 실리만대학에 보냈다. 여기는 1년에 학비 100만 원 정도가 들어 갔다. 지금은 조금 더 올랐다고 한다. 한국보다 훨씬 적다. 아이는 그 정도 돈을 쓰고 졸업해서 지금은 '글로벌'하게 살고 있다. 한국처럼 아이를 위해 몇 억원을 쓴 적이 없다. 대안교육할 때는 아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키웠다.
그런 점에서 좀 미안하기도 한데, 그래도 지금 아이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뒤늦게 맞이한) 막내도 여기서 초등 6년을 다녔고 곧 졸업한다. 사교육비 한 푼 들어간 적 없고 학교에 한 푼도 낸 적 없다. 다 무료니까. 그렇게 키우면서 아이가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늘 걱정이 없다.
여기서 학교를 다니면 중·고등학교까지 무료이고 대학은 싸다. 첫 딸도 다른 아이들보다 7~8년 늦게 대학에 보냈다. 여기저기서 일하고, 많은 일을 시켰다. 왜냐하면 무엇을 잘하는 지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래서 준비가 되면 대학에 가자고 해서 거의 20대 후반에 갔다. 30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는데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큰 지장이 없었다. 여기 공립학교는 공부를 거의 안 시킨다. 학교에 가서 거의 노는 것 같다. 아이는 학교에 가는 걸 좋아한다. 아침 일찍 눈 뜨자마자 학교에 가고 점심 먹으러 와서도 5분 만에 바로 간다. 친구들하고 노는 게 좋은 거다. 학교에 가서 실컷 노는 거다.
지금 한국의 학교도 아이들을 많이 놀게 해준다면 보내겠다. 우리집 막내도 한국에 가서 딱 한 학기를 다녔다. 시골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여기는 골목에 나가면 친구들이 바로 다 있다. 그런데 한국은 부모가 태워주어서 어디를 가야 하고, 미리 약속해야 하고 해서 친구 만나기가 매우 까다롭다. 한국은 도시는 물론 시골도 마찬가지다. 학교 끝나면 아이들은 다 학원에 간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 아이는 그런 한국 아이들의 상황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고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던 것 같다.
주말에도 다른 집 아이들은 계획을 다 짜놓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집 아이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하더라. 한국에 아이 엄마가 있어도 한 학기만 다니고는 안 가겠다고 하더라. 아이는 필리핀에서 친구들과 언제나 뛰어 놀 수 있었다. 초등 때부터 공부할 필요가 있느냐. 저절로 있으면 알파벳 배울 수 있고, 기본적인 덧셈과 뺄셈 정도는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정도 학년이 되면 공부를 하게 된다."
- 아이들은 왜 놀아야 하는가.
"놀이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학자들은 12세까지는 놀이하는 인간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야 정서가 행복해진다. 놀이는 두 가지 큰 효과가 있다. 많이 놀면서 신체가 제대로 탄탄하게 형성되고, 정서적인 행복감이 생긴다. 아이들이 놀면서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
저도 어릴 때 친구들하고 기마전, 딱지치기 등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지냈다. 하루 종일 놀았다. 그래서 집에 가면 부모님께 엄청나게 욕을 들었지만, 그래도 행복감은 엄청났다. 지금도 아이들은 자라면서 놀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걱정이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놀아봐야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부모나 학교에서 짜주는 대로 학원이고 어디고 간에 배우는 데를 다니고만 한다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더라도 행복감을 갖기 어렵다.
부모들도 늘 긴장감 속에 산다. 부모들이 실컷 재미 있게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아이들의 행복을 모른다. 누구나 행복감이 중요하다. 평생 정서의 기초는 행복감에서 온다. 행복감은 대체로 유년시절에 형성된다. 9살 전에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다. 무의식이 불행한 사람은 바꾸지 못한다.
제가 가끔 한국에 가면 깜짝 놀란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어둡고 날이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사회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깔깔대며 웃는다. 한국은 어린이부터 자연과 놀이를 빼앗겼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놀이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숙제다."
- 여기서 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가령 이런 것이다. 오는 2월 중순에 한국에서 학생 4명이 온다. 모두 음악 밴드하는 아이들이다. 다른 거는 하지 않고 필리핀에서 밴드만 하려고 온다. 필리핀이 밴드로서는 세계 최고다. 그래서 제가 두마게티에서 최고의 밴드를 구해서 함께 하도록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하루 반나절씩 같이 할 것이다. 여기 국제학교의 특징은 배우겠다고 오는 아이들과 지역사회의 인재를 연결시키는 게 중요하다. 교사는 코디, 도와주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여기서 예술가들과 같이 공연하는 장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아이들과 이곳 예술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할 거다."
- 한국사회의 고민거리 하나가 수도권과 지역의 불균형이다. 그런데 두마게티는 대학이 많다. 지역 불균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결국은 돈 흐름이 대도시 중심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다 그렇다. 인구를 비롯해 교육, 문화 등 모든 게 대도시 중심이다. 시골은 자연 외에 좋은 게 별로 없다.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답이 없다. 결국은 자기가 먹고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대학 정도 나온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 오니까 일이 있는 것 같더라. 지방정부에서 고학력자가 없다 보니 대학 나온 사람들한테는 임시직이라도 주어서 주변에서 꽤 취직을 하는 거 같더라."
"학업 중시하며 영어·수학 가르치는 방식으로만 해서는 안된다"
- 한국의 교육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혁신학교도 일부는 잘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데는 껍데기만 혁신학교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관료주의가 심할수록 모든 게 껍데기만 있다. 미국은 학교 운영자한테 계획서를 내면 동의가 돼 지원을 해주는 방식인데, 한국 사회는 그런 게 없다. 돈을 줄 때는 엄청난 감독과 감시가 뒤따른다. 돈을 주고 알아서 혁신적으로 해보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안학교는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고 자율성 속에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그런 게 축적돼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게 좋은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공립학교는 전혀 그런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관료주의 때문이다. 이왕 혁신학교를 한다면 대폭적으로 지원하면서 간섭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교육부에서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 두 개 학교라도 창의적인 학교가 나올 것이라 본다."
"대안교육 진화방안, 한가지가 1년 학교, 자기발견에 완전히 집중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이런 데 와서 1년 3학기를 전문가와 작업을 하면 아이의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제학교를 하면서 3년 과정으로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3년까지 하지 않고 기간을 줄이더라도 가능할 것 같다."
- 한국 사회에서는 국제학교라 하면 부정적 시선이 있는데.
"제가 말하는 국제학교와 완전히 다르다. 저는 학업과 완전히 관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개인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자기발견을 위한 학교다. 여기서 배출한 졸업생 중에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자기의 길을 개척한 친구들이 꽤 나왔다. 1학기에 1시간 영어 발표를 시켰다. 졸업까지 12번 발표한다. 한 시간을 보지도 않고 영어로 발표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졸업하고 나더니 동시통역사가 될 정도였다. 여기 출신 중에는 대사관이나 유엔, 아프리카, 코트라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 한국 대안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반학교도 대안학교도 다 어렵다. 그래서 진화를 이야기 한다. 진화가 아니면 종말이다. 어느 나라든 어느 때든 마찬가지다. 진화할 것이냐 종말을 맞을 것이냐. 각 대안학교는 바쁜 일정 속에서 진화를 준비하기가 어렵다. 따로 준비해야 한다.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저가항공사를 세운 사람이 있다. 엄청난 사업가인데, 그 분이 대안학교 출신이다. 그 대안학교가 세계에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영국의 귀족이 그냥 세웠다. 거기는 수업이 없다. 중고등학교 정도 연령의 아이들이 학기마다 개인 비즈니스 계획을 내서 비즈니스를 실제 하도록 했다. 그분은 자동차와 자전거 고치는 가게를 했고 채소장사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업의 경험을 쌓았다.
그런 식으로 대안학교가 완전히 진화해야 한다. 옛날처럼 학업을 중시하면서 영어, 수학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전국에 학업 잘하는 사람이 천지인데 대안학교에서까지 그것을 중심을 두면 안된다. 우리는 프로젝트 학교다. 우리 학교에 다녔던 한 아이는 '퓨전의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필리핀과 한국 고유 의상의 장점을 살려서 옷을 만들었다. 졸업하고 나서 그동안 해왔던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인정받아서 국제 의류회사에 들어갔다. 대학에 가지 않았는데도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수업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한다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 자기발견을 하고 난 뒤에 그 분야의 전문가를 붙어서 함께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면 최고의 미술가를 붙여주는 것이다. 몰두하고 몰입해서 하는 것이고, 이른바 야성을 살리는 것이다.
기억나는 아이가 있다. 3년간 여기에 와서 지냈다. 처음에는 진짜 뺀질이였다. 교사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 아이의 목표는 오로지 돈 버는 것 뿐이었고 다른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속으로 '저 이이는 인간이 안 될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게 목표였다.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광고가 나가면서 효과를 보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하더라. 자기가 온라인 회사를 만들어서 여기 협동조합에서 만든 액세서리를 한국에 팔고 하면서 돈을 벌더라. 번 돈을 누구한테 주고 싶지는 않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 기부를 한다고 하더라. 그게 놀랍더라.
그 일을 한번 하고 나서 아이가 변했다. 그 아이는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을 안해 왔는데, 이목이 두려워서 기부는 했지만, 한번의 행동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나중에 철이 들더라. 가면서 선생들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진심을 보이더라. 그 아이가 나중에 온라인 회사에 들어갔는데,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더라. 그 아이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여기서 3년 동안 개발했던 아이템으로 온라인 회사에 들어가서 승부를 건 것이다. 저는 그런 야성을 가진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학벌로 어떻게 승부하겠나. 어떻게 공부를 해서 아이들이 서울대, 하바드에 갈 수 있겠나.
전통적인 수업에는 관심이 없다. 중학교 1~2학년까지 수업하는 거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중3부터 고등학생이 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학문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학문을 하도록 해야 한다.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학문을 해야 한다며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안교육은 다중지능 이론에 맞춰야 한다. 기능이 다양하고 거기에 맞춰주는 게 대안교육이다."
- 필리핀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정했다고 하던데, 이곳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지난 10년 사이 한국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게 폭증했다. 어린애부터 어른까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젊은 애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 10년 전에 거리에 나가면 약간 적개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드라마와 한국 노래(케이팝)의 영향 때문이다. 한국시민으로 태어나고 싶어한다. 한국 음식도 엄청 좋아한다. 한국을 동경한다."
국제문화교류 참가자들은 필리핀에 있는 동안 공립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대)학생 50여 명을 초청해 한국 음식을 나누고 전통놀이, 민요 부르기, 태권도 시범 등을 함께 하기도 했다.
▲ 대전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는 1월 13~18일 사이 필리핀에서 '한국-필리핀 우정과 환대의 한마당' 국제문화교류 활동을 벌였다.
ⓒ 윤성효
▲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산청간디학교를 설립하고, 현재 필리핀 두마게티(Dumaguete)에서 칼리카산교육센터(Kalikasan Education Center, Inc)를 운영하고 있는 양희규 선생.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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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에 가면 깜짝 놀란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어둡고 날이 서 있다. 한국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깔깔대며 웃는다. 한국은 아이 때부터 자연과 놀이를 빼앗겼다. 아이들한테 자연과 놀이를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숙제다."
백경게임랜드 "아이들은 신이 만들어준 모습대로 키워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성공시키려고 한다거나 잘 키우려고 하는 게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돈으로 아이들을 망치는 것이다. 부모는 돈을 들여, 노력해서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아이들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산청간디학교를 설립하고, 현재 필리핀 오리지널바다이야기 두마게티(Dumaguete)에서 칼리카산교육센터(Kalikasan Education Center, Inc)를 설립·운영하는 양희규(66) 선생이 한 말이다. 대전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 이종태·여태전·이병곤·정유진·유은영 교수가 기획하고 대안교육연대 소속 교사와 학생 등 30여명이 참여해 지난 13~18일 사이 진행한 '한국-필리핀 우정과 환대의 한 릴게임온라인 마당' 국제문화교류에서 양희규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안교육 개척자 양희규 선생은 1997년 경남 산청 둔철산 자락에 중고 통합형(비인가) 간디학교를 개교했고, 책 <10대 너의 행복에 주인이 되어라>,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를 펴냈으며 포스코청암상(교육상)·도산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그는 2007년에 필리핀 두마게티 발렌시아(Valencia) 지역에 4000여평의 땅을 매입하여 캠퍼스를 조성해 칼리카산교육센터를 설립했고, 이후 산청·제천 등 간디학교 학생들의 해외이동학습 현장으로 활용했다. 2011년부터는 3년제 고교과정인 '필리핀간디국제학교'를 개교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까지 9년 동안 운영했다. 이제는 이곳에 아시아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1년, 또는 2년 과정의 '아시아창업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양 선생은 이 캠퍼스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다윈(Dauin) 지역에 3000여 평 규모로, 12가구의 집과 공연장, 전시실 등을 갖춘 예술마을(Art Villige)을 조성해 올해 말 완성 예정이다. 예술마을 인근에 3000여 평 규모의 자연농법농장을 두어 벌써 수확을 시작했다.
두마게티는 필리핀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치안이 잘 유지되는 지역이다. 바다와 산, 온천, 폭포 등 자연환경도 뛰어나고, 세계에서 은퇴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인구 15만 명의 도시인데 크고 작은 대학이 무려 9개나 있는 국제적인 교육도시다. 특히 1901년에 개교한 실리만대학교(Silliman University)는 도시 중심가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감사는 사람의 덕목 중에 으뜸"
문화교류 첫날 한국에서 간 대안교육자들을 만난 양 선생은 '철학'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계명대 철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철학 석사, 미국 산타바바라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든 사람은 철학이 필요하다. 필로스(philos)는 사랑이고, 소피아(sophia)는 지혜다. 반복되는 실패와 실수 속에 지혜가 생긴다. 살아가면서 불평할 일이 생기게 된다. 그때 화를 내면 되는데, 화를 내는 순간 감정이 앞서게 되고, 그러면 지혜가 작동하지 않고 어리석어진다. 화를 내되 5초만 내고 그만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때부터 문제 해결에 들어가면 머리가 좋아진다. 불평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감사는 사람의 덕목 중에 으뜸이다"라고 말한 양희규 선생은 요즘 음악 창작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털어놓았다. 열 살 무렵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만두었다고 한 그는 나이 60살에 다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기타로 하던 '즉흥곡'을 요즘은 피아노로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피아노 앞에 앉아 한국에서 온 '손님'들한테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여러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습관처럼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즉흥곡이 아니라 진짜 남에게 들려줄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여기 필리핀 간디학교에서 교사를 지낸 59세 여성이 암을 앓았다. 결혼도 하지 않아 혼자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진통 주사를 놓고 산소통을 가져다 놓고 수시로 사용하면서 죽음을 준비했다. 그래서 어느 날 새벽에 그녀를 위해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곡을 만들었고, 그 뒤에 찾아가 이야기했더니 '영광'이라고 하더라.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 장례식에서 한 번 들려주었다."
피아노 연주를 마친 그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남긴 명언 이야기부터 했다. "밤하늘을 빛나게 하는 것은 별이고 인간을 빛나게 하는 것은 선한 의지다"라고. 양 선생은 "죄를 지어 잡혀가는 사람들은 학력이 낮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선한 의지가 부족해서다. 선한 의지를 닦지 않으면 인생은 유혹에 빠진다"라며 "사람은 누구나 유혹에 약하다. 가장 인간답게, 신처럼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선한 의지다. 두려움에 떨지 말고 욕심 내지 말고 선한 의지를 갖고 살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필리핀 간디학교를 소개한 그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만남이 가능하고 인간적으로 소통하도록 하는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영어를 못해도 된다. 영어는 사전을 꺼내서 보여주면 되니까. 우리 학교 출신 중에는 유엔, 아프리카에 가서 사는 아이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 오는 아이들은 맨날 안아주면서 사랑으로 대한다. 아마 한국에서 그렇게 하는 부모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고립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고 게임을 하면서 잘 사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고독이 있다. 아이들은 잘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공허함 때문에 어느 날 뛰어 내리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스킨십을 하면서 살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서 오는 아이들은 2주 정도 필리핀 가정에 보내 이곳 사람들과 함께 지내도록 한다. 변변찮은 취사도구 하나 없는 부엌에서 필리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같은 일을 하며 지낸다. 그렇게 지내다가 떠날 때가 되면 눈물을 펑펑 흘린다.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아서 잊을 수가 없다는 말을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졸업을 해도 연락한다."
'간디'라는 이름을 붙인 연유에 대해, 그는 "1996년에 산청간디학교 설립준비를 했다. 10여명이 간디농장에서 1년간 농사를 짓고 하면서 준비했다. 학교 이름은 10명이 투표를 해서 결정했다. 저는 처음에 반대했다. 개인적으로 간디는 추종하지만 청소년한테 간디는 너무 목표가 높다. 그때 저는 소식지 제목이었던 '숲속마을 작은학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들려주었다.
그는 교육에 있어 '자연'과 '자기발견'이 소중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만든 이곳 캠퍼스는 '작은 숲'처럼 느껴졌고, 자기발견을 찾으려거나 찾은 아이들이 이곳으로 한때 모여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여기 캠퍼스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지금은 제법 큰 덩치의 나무도 있어 숲이 됐다. 우리가 다 심은 나무들이다. 산에서 채집해서 좋은 흙에 이식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마음도 그렇다고 본다. 자연주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교육에서 자연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학생들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자연은 우리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나서 문명을 만들고 자연을 정복했다고 하지만, 인간은 결코 자연에서 벗어나 존립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과거 아이들이 산청 지리산 자락에 와서 몇 개월 생활하고 나면,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즐거워하고,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느끼게 되며 모두가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성장한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래서 변치 않는다. 아무리 기술이 진보하고 세상이 디지털 세상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자연에 속한 생명체이고, 그것을 벗어나 존립할 수는 없다."
▲ 대전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는 1월 13~18일 사이 필리핀에서 '한국-필리핀 우정과 환대의 한마당' 국제문화교류 활동을 벌였다.
ⓒ 윤성효
"한국 공교육에 확실한 메시지는 전달했다"
다음은 양희규 선생과 별도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내용.
- 왜 필리핀에 새 터를 잡았나?
"산청간디학교를 하면서 1999년부터 8년 동안 호주 버리즈번 근처에서 이동학습을 했다. 주로 고등학생들이 참여했는데 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벌어지면서 비용이 두 배로 올라가 힘들었다. 호주보다 필리핀은 한국에서 더 가깝고 비용도 적게 들 수 있어 택했다. 그리고 같은 영어권이다. 한국에서 호주는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필리핀은 4시간 정도면 된다. 아시아권이다 보니 영국계인 호주보다 좀 더 친숙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에 캠퍼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 대안교육 개척자인데.
"한국에서 대안교육을 시작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대안교육이 위기를 겪고 있지만 한국 공교육에 확실한 메시지는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존중해주는, 아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학생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전달했다. 아직 공교육에서 본질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학생의 권리, 학생인권 도입은 짧은 대안교육의 역사에서 업적이라 본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 대안교육은 위축되고 있다. 대안교육은 진화해야 한다는 말을 가끔 해왔다. 사실 그 말을 던지기는 했지만 미안하게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 말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필리핀에서 교육하는 게 하나의 진화한 모습이라 봤지만 많이 약하다.
교육 전반에 대해, 처음 학교 설립할 때나 지금이나 같은 심정이다. 아이들은 신이 만들어준 모습대로 키워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성공시키려고 한다거나 잘 키우려고 하는 게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돈으로 아이들을 망치는 것이다. 부모는 돈을 들여, 노력해서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아이들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봐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을 넘어서서 그 아이가 아이답게 살도록 해주는 게 부모든, 교육자들이 해야 할 임무다. 그런데 우리 토양이 그런 면에서 아직 부족하고 소신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학부모나 교사나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본질적인 전환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안타깝다.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불안함이나 강박관념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지 않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창의적인 교육이 안된다.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라는 걸 정확히 보고 알면 창의적인 교육이 된다. 그래야 교육다운 교육이 되고, 우리 사회가 저력을 갖게 되지 않겠나. 철학을 가진 시민, 철학을 가진 사회가 된다. 소신있게 아이를 키워야 미래가 있다. 한 명 한 명이 잘 역할을 해야 사회가 성장한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신의 뜻을 거스러는 것 같다."
- 한국사회의 현안 가운데 하나가 인구절벽에 학생수 감소와 학교 폐교인데.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다. 결혼 자체도 그렇고, 아이를 낳는 건 더 두려워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어느 정도 기가 안 죽을 정도로 키워야하기에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저는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저는 첫 아이를 한국에서 대학에 보내지 않았고, 여기 와서 실리만대학에 보냈다. 여기는 1년에 학비 100만 원 정도가 들어 갔다. 지금은 조금 더 올랐다고 한다. 한국보다 훨씬 적다. 아이는 그 정도 돈을 쓰고 졸업해서 지금은 '글로벌'하게 살고 있다. 한국처럼 아이를 위해 몇 억원을 쓴 적이 없다. 대안교육할 때는 아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키웠다.
그런 점에서 좀 미안하기도 한데, 그래도 지금 아이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뒤늦게 맞이한) 막내도 여기서 초등 6년을 다녔고 곧 졸업한다. 사교육비 한 푼 들어간 적 없고 학교에 한 푼도 낸 적 없다. 다 무료니까. 그렇게 키우면서 아이가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늘 걱정이 없다.
여기서 학교를 다니면 중·고등학교까지 무료이고 대학은 싸다. 첫 딸도 다른 아이들보다 7~8년 늦게 대학에 보냈다. 여기저기서 일하고, 많은 일을 시켰다. 왜냐하면 무엇을 잘하는 지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래서 준비가 되면 대학에 가자고 해서 거의 20대 후반에 갔다. 30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는데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 큰 지장이 없었다. 여기 공립학교는 공부를 거의 안 시킨다. 학교에 가서 거의 노는 것 같다. 아이는 학교에 가는 걸 좋아한다. 아침 일찍 눈 뜨자마자 학교에 가고 점심 먹으러 와서도 5분 만에 바로 간다. 친구들하고 노는 게 좋은 거다. 학교에 가서 실컷 노는 거다.
지금 한국의 학교도 아이들을 많이 놀게 해준다면 보내겠다. 우리집 막내도 한국에 가서 딱 한 학기를 다녔다. 시골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여기는 골목에 나가면 친구들이 바로 다 있다. 그런데 한국은 부모가 태워주어서 어디를 가야 하고, 미리 약속해야 하고 해서 친구 만나기가 매우 까다롭다. 한국은 도시는 물론 시골도 마찬가지다. 학교 끝나면 아이들은 다 학원에 간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 아이는 그런 한국 아이들의 상황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고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던 것 같다.
주말에도 다른 집 아이들은 계획을 다 짜놓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집 아이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하더라. 한국에 아이 엄마가 있어도 한 학기만 다니고는 안 가겠다고 하더라. 아이는 필리핀에서 친구들과 언제나 뛰어 놀 수 있었다. 초등 때부터 공부할 필요가 있느냐. 저절로 있으면 알파벳 배울 수 있고, 기본적인 덧셈과 뺄셈 정도는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정도 학년이 되면 공부를 하게 된다."
- 아이들은 왜 놀아야 하는가.
"놀이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학자들은 12세까지는 놀이하는 인간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야 정서가 행복해진다. 놀이는 두 가지 큰 효과가 있다. 많이 놀면서 신체가 제대로 탄탄하게 형성되고, 정서적인 행복감이 생긴다. 아이들이 놀면서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
저도 어릴 때 친구들하고 기마전, 딱지치기 등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지냈다. 하루 종일 놀았다. 그래서 집에 가면 부모님께 엄청나게 욕을 들었지만, 그래도 행복감은 엄청났다. 지금도 아이들은 자라면서 놀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걱정이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놀아봐야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부모나 학교에서 짜주는 대로 학원이고 어디고 간에 배우는 데를 다니고만 한다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더라도 행복감을 갖기 어렵다.
부모들도 늘 긴장감 속에 산다. 부모들이 실컷 재미 있게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아이들의 행복을 모른다. 누구나 행복감이 중요하다. 평생 정서의 기초는 행복감에서 온다. 행복감은 대체로 유년시절에 형성된다. 9살 전에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다. 무의식이 불행한 사람은 바꾸지 못한다.
제가 가끔 한국에 가면 깜짝 놀란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어둡고 날이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사회에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깔깔대며 웃는다. 한국은 어린이부터 자연과 놀이를 빼앗겼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놀이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숙제다."
- 여기서 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가령 이런 것이다. 오는 2월 중순에 한국에서 학생 4명이 온다. 모두 음악 밴드하는 아이들이다. 다른 거는 하지 않고 필리핀에서 밴드만 하려고 온다. 필리핀이 밴드로서는 세계 최고다. 그래서 제가 두마게티에서 최고의 밴드를 구해서 함께 하도록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하루 반나절씩 같이 할 것이다. 여기 국제학교의 특징은 배우겠다고 오는 아이들과 지역사회의 인재를 연결시키는 게 중요하다. 교사는 코디, 도와주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여기서 예술가들과 같이 공연하는 장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아이들과 이곳 예술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할 거다."
- 한국사회의 고민거리 하나가 수도권과 지역의 불균형이다. 그런데 두마게티는 대학이 많다. 지역 불균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결국은 돈 흐름이 대도시 중심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다 그렇다. 인구를 비롯해 교육, 문화 등 모든 게 대도시 중심이다. 시골은 자연 외에 좋은 게 별로 없다.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답이 없다. 결국은 자기가 먹고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대학 정도 나온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 오니까 일이 있는 것 같더라. 지방정부에서 고학력자가 없다 보니 대학 나온 사람들한테는 임시직이라도 주어서 주변에서 꽤 취직을 하는 거 같더라."
"학업 중시하며 영어·수학 가르치는 방식으로만 해서는 안된다"
- 한국의 교육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혁신학교도 일부는 잘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데는 껍데기만 혁신학교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관료주의가 심할수록 모든 게 껍데기만 있다. 미국은 학교 운영자한테 계획서를 내면 동의가 돼 지원을 해주는 방식인데, 한국 사회는 그런 게 없다. 돈을 줄 때는 엄청난 감독과 감시가 뒤따른다. 돈을 주고 알아서 혁신적으로 해보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안학교는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고 자율성 속에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그런 게 축적돼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게 좋은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공립학교는 전혀 그런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관료주의 때문이다. 이왕 혁신학교를 한다면 대폭적으로 지원하면서 간섭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교육부에서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 두 개 학교라도 창의적인 학교가 나올 것이라 본다."
"대안교육 진화방안, 한가지가 1년 학교, 자기발견에 완전히 집중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이런 데 와서 1년 3학기를 전문가와 작업을 하면 아이의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제학교를 하면서 3년 과정으로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3년까지 하지 않고 기간을 줄이더라도 가능할 것 같다."
- 한국 사회에서는 국제학교라 하면 부정적 시선이 있는데.
"제가 말하는 국제학교와 완전히 다르다. 저는 학업과 완전히 관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개인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자기발견을 위한 학교다. 여기서 배출한 졸업생 중에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자기의 길을 개척한 친구들이 꽤 나왔다. 1학기에 1시간 영어 발표를 시켰다. 졸업까지 12번 발표한다. 한 시간을 보지도 않고 영어로 발표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졸업하고 나더니 동시통역사가 될 정도였다. 여기 출신 중에는 대사관이나 유엔, 아프리카, 코트라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 한국 대안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반학교도 대안학교도 다 어렵다. 그래서 진화를 이야기 한다. 진화가 아니면 종말이다. 어느 나라든 어느 때든 마찬가지다. 진화할 것이냐 종말을 맞을 것이냐. 각 대안학교는 바쁜 일정 속에서 진화를 준비하기가 어렵다. 따로 준비해야 한다.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저가항공사를 세운 사람이 있다. 엄청난 사업가인데, 그 분이 대안학교 출신이다. 그 대안학교가 세계에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영국의 귀족이 그냥 세웠다. 거기는 수업이 없다. 중고등학교 정도 연령의 아이들이 학기마다 개인 비즈니스 계획을 내서 비즈니스를 실제 하도록 했다. 그분은 자동차와 자전거 고치는 가게를 했고 채소장사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업의 경험을 쌓았다.
그런 식으로 대안학교가 완전히 진화해야 한다. 옛날처럼 학업을 중시하면서 영어, 수학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전국에 학업 잘하는 사람이 천지인데 대안학교에서까지 그것을 중심을 두면 안된다. 우리는 프로젝트 학교다. 우리 학교에 다녔던 한 아이는 '퓨전의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필리핀과 한국 고유 의상의 장점을 살려서 옷을 만들었다. 졸업하고 나서 그동안 해왔던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인정받아서 국제 의류회사에 들어갔다. 대학에 가지 않았는데도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수업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한다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 자기발견을 하고 난 뒤에 그 분야의 전문가를 붙어서 함께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면 최고의 미술가를 붙여주는 것이다. 몰두하고 몰입해서 하는 것이고, 이른바 야성을 살리는 것이다.
기억나는 아이가 있다. 3년간 여기에 와서 지냈다. 처음에는 진짜 뺀질이였다. 교사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 아이의 목표는 오로지 돈 버는 것 뿐이었고 다른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속으로 '저 이이는 인간이 안 될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게 목표였다.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광고가 나가면서 효과를 보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하더라. 자기가 온라인 회사를 만들어서 여기 협동조합에서 만든 액세서리를 한국에 팔고 하면서 돈을 벌더라. 번 돈을 누구한테 주고 싶지는 않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 기부를 한다고 하더라. 그게 놀랍더라.
그 일을 한번 하고 나서 아이가 변했다. 그 아이는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을 안해 왔는데, 이목이 두려워서 기부는 했지만, 한번의 행동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나중에 철이 들더라. 가면서 선생들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진심을 보이더라. 그 아이가 나중에 온라인 회사에 들어갔는데,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더라. 그 아이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여기서 3년 동안 개발했던 아이템으로 온라인 회사에 들어가서 승부를 건 것이다. 저는 그런 야성을 가진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학벌로 어떻게 승부하겠나. 어떻게 공부를 해서 아이들이 서울대, 하바드에 갈 수 있겠나.
전통적인 수업에는 관심이 없다. 중학교 1~2학년까지 수업하는 거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중3부터 고등학생이 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학문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학문을 하도록 해야 한다.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학문을 해야 한다며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안교육은 다중지능 이론에 맞춰야 한다. 기능이 다양하고 거기에 맞춰주는 게 대안교육이다."
- 필리핀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정했다고 하던데, 이곳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지난 10년 사이 한국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게 폭증했다. 어린애부터 어른까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젊은 애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 10년 전에 거리에 나가면 약간 적개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드라마와 한국 노래(케이팝)의 영향 때문이다. 한국시민으로 태어나고 싶어한다. 한국 음식도 엄청 좋아한다. 한국을 동경한다."
국제문화교류 참가자들은 필리핀에 있는 동안 공립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대)학생 50여 명을 초청해 한국 음식을 나누고 전통놀이, 민요 부르기, 태권도 시범 등을 함께 하기도 했다.
▲ 대전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는 1월 13~18일 사이 필리핀에서 '한국-필리핀 우정과 환대의 한마당' 국제문화교류 활동을 벌였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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