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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고 있었다. 벌써 하는 많지 어쩐지. 가리키며장창표 작가가 첫 번째 밀양의 속살로 꼽은 용두보 앞에 섰다. 그 순간 하늘에서 용두보로 서광이 비쳤다. /이일균 기자
숨겨진 밀양 이야기보따리를 짊어진 '밀양 이야기꾼'을 찾았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그렇게 된 거네!"하고 무릎을 치게 할 사람!
운이 좋았을까. 어렵지 않게 그런 분을 찾았다. 마침 그는 <밀양, 그 속살 이야기> 책까지 써냈다. 문제는 만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분과 정작 마주한 건 30분이 안 된다. 오늘은 강의, 내일은 해설, 모레는 답사….
바쁘다는데 릴게임가입머니 어떻게 하나. 그나마, 전화로 대화한 시간이 2시간, 그리고 문자로 주고받아 보완했다.
단 하루도 빠끔한 틈이 없는 이 사람, 누군가.
표지. /이일균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 릴게임황금성 n.net/news/202511/13/551744-1PikkrB/20251113180508162pwpe.jpg" data-org-width="650" dmcf-mid="5H4ZyvrN1j"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 바다이야기사이트 /t1.daumcdn.net/news/202511/13/551744-1PikkrB/20251113180508162pwpe.jpg" width="658">
장창표 작가가 쓴 <밀양, 그 속살 이야기> 표지. /이일균 기자
바람같은 사람 '장창표'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장창표, 그를 처음 만나 악수를 했을 때 손아귀 힘이 셌다. '트럼프'처럼 상대방을 압도하려는 그런 힘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기운이다.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됐다.
만 66세, 밀양 사포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전 교원, 밀양문화관광연구소와 밀양향교, 밀양시립박물관, 밀양시립도서관 등에서 지역사 강의와 해설을 하는 그를 뭐라 부 골드몽릴게임 를까 고민했다. 답은 아니지만 이분을 소개하게 된 매개인 <밀양, 그 속살 이야기>를 썼으니 '작가'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밀양 이야기, 심지어 밀양 사람도 모르는 밀양 속살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 숨겨진 '밀양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장 작가를 만나기 전에 "밀양의 대표 속살 이야기 셋만 들려달라"고 졸랐다.
그가 이야기할 밀양 사람들도 모르는 밀양 이야기가 정말, 궁금했다. 그때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 셋은 의외였다. 전공인 밀양 출신 유학자·도학자 점필재 김종직이 아니고, 사명대사도 아니고, 아랑도, 밀양아리랑도, 영남루도 아니다. '용두보'다.
'용두보'를 아시나?
장 작가를 30분가량 만난 장소도 용두보다. 밀양시 용평동 188-1번지 '밀양189 카페' 앞에서 용두보를 함께 보았다. 그가 첫 번째로 풀어놓은 이야기의 무대다.
"내 고향이 상남면 영금인데, 마흔 넘어서야 이 용두보가 내 고향 상남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수리시설의 시작점이라는 걸 알았다. 모른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수리시설이 만들어진 게 1904년부터 1907년. 그 전까지 상남들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논농사가 안 됐고, 시설이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논농사가 가능해졌다고 했다. 용두보에서 상남면까지 길이만 6.4㎞에 제방과 수로, 심지어 용두산을 관통하는 터널까지 기적 같은 공사가 지금부터 120년 전 벌어졌다.
밀양시 용평동 용두보는 용두산과 밀양강, 암새들을 끼고 있는 명소다. 그 앞에 장창표 작가가 섰다. /이일균 기자
이 근대 수리시설의 기록이 <밀양, 그 속살 이야기>에 담겼다.
"용두산은 산성산(391m)에서 뻗어내린 봉우리로, 그 모양이 용머리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아래 용두보는 일본인 마쓰시다 데이지로가 거액의 사비를 들여 만든 수리시설이다. 1904년 경부선 철로 부설 공사를 위해 밀양을 방문했다가 농업용수가 부족해 불모지와 같았던 상남면 들판을 보고는 용두보 건설을 착안했다. 용두보 물길은 총연장 120m의 도수로(물을 끌어들이는 수로)와 연결돼 있고, 용두산 허리를 관통한 통수로(터널 수로, 길이 433m)를 따라 총 540m의 수로를 따라 흐르다가 다시 밀양강 아래 지하관 450m를 통과해 예림마을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상남들판에 이르는 총연장 6.4㎞의 초대형 수리시설이다. 별도 동력 없이 수압을 이용하는 물 공급 방식으로 우리나라 근대 수리시설의 효시이다."
마산교대 사회과 재학 때 은사인 고 박동백 전 창원문화원장을 만나 역사 공부와 답사 활동에 흠뻑 빠졌다는 장 작가. 그때 창녕 진흥왕척경비, 울산 반구천암각화를 탁본한 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용두보의 진실을 발견했던 일은 무지에 대한 각성과 함께 역사 공부와 답사의 매력을 일깨웠다. 6년 전 교직을 마친 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밀양시보 편집위원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지도위원, 밀양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 의열기념관 도슨트 등 할 일은 많았다. 용두보의 여파였다.
박위와 의비연개비
그가 말한 두 번째 밀양 이야기는 '박위'다. 대마도를 처음 정벌한 이가 조선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아니라, 고려 창왕 때 박위 장군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기록에는 1419년 세종 원년 때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한 것으로 돼 있다. 고려 창왕 때인 1389년, 밀양 무안 출신 박위가 처음 정벌했다."
장창표는 왜 이 이야기를 할까. 책 속의 내용을 옮긴다.
'무안면 판정로에 있는 신남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을 찾았다. 이곳은 여말선초 대마도 정벌과 경복궁 창건 중책을 맡았던 충의백 정국군 박위 장군과 조선 초 문신인 이조참판 소총재 박기 부자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박위는 고려 충숙왕 때인 1332년 태어나 공민왕 때 왕의 호위병으로 관직을 시작했다. 우왕 때인 1375년 왜구 침범으로 폐허가 된 김해 부사로 부임해 일했고, 창왕 때인 1389년 2월에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했다. 이는 반만년 역사상 최초로 국외에 원정하여 승리한 전투다.'
세 번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장 작가는 이 말부터 했다.
"보통 비석은 양반을 기리는 것 아니냐. 노비를 기리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비석이 밀양 삼랑진에 있다는 건 아시나?"
모른다는 대답밖에…. 그런 기자에게 장 작가는 노비 연개 이야기를 길게 했다. 책 속의 내용을 옮기는 게 좋겠다.
밀양시 삼랑진읍 용성리 영사정에 있는 '의비 연개비'. /장창표 작가
'부산대 밀양캠퍼스를 지나 용성리에는 문화 류씨 곤산군파 사재감정공 종중 재실인 영사정이 있다. 건물 오른쪽 뒤편에 세워진 이 비석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천한 여종의 신분으로 4대 90여 년 평생을 성심으로 주인을 섬겨 사라질 뻔한 위기의 한 가문을 살려낸 500여 년 전의 이야기가 의비연개비에 담겨 있다. 연개는 성도 없는 노비이다. 임진왜란 전후 경상도 칠곡땅 문화 류씨 집안의 노비였다. 그로부터 4대 90여 년간 멸문의 위기 속에서도 한 가문을 살려 지금까지 500년 이상 이어오게 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뒤에 그의 공덕을 기려 집안 후손들이 추모의 비를 세웠다.'
다시 '김종직'
만난 지 30분도 채 안 돼서 가야 한다는 그에게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예림초교 학부모들과 답사 준비 모임을 해야 한다. 밀양교육지원청 의뢰로 '우리가 미처 모르는 밀양 이야기' 강의·답사를 하는데, 급하게 잡혔다."
매일 이렇게 일정이 잡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그러면 못 버틴다. 일주일에 한 두 건이 적당한데, 요즘은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고 답했다.
줄이고 줄였다는 것인데, 그는 요즘도 밀양문화관광연구소와 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에서 의뢰한 선비문화탐험대, 별도 법인인 역사문화탐험대에서 강의·해설을 한다. 밀양향교, 밀양시립박물관, 밀양시립도서관에서 '유학'과 '유적', '길 위의 인문학' 강사활동도 한다.
장창표 작가가 경남도의회 '경남역사문화연구팀'을 밀양시 부북면 김종직 선생 생가의 추원재로 안내해 해설하고 있다. /장창표 작가
왜 이토록 열심히 활동하는 것일까.
"밀양사람들만이라도 밀양의 매력을 제대로 알았으면 싶다. 유서 깊고, 뛰어난 인물이 정말 많았던 곳이다. 그 중심에 점필재 선생이 있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조선 문명사회의 '집현전'이요, 시대의 스승이었다. 그런데 그를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다. 아직 선생을 문묘에 배향하지 않는 점은 뼈아픈 일이다. 선생이 워낙 문장에 출중했기 때문에 문장가 면모만 부각돼서 그런 것이다. 그는 조선 유교를 실천유교로 발전시킨 '도학'의 집대성자이다. 지금 비록, 부북면 생가가 있고, 예림서원에서 선생을 주향하고 있으나, 우리는 '점필재 기념관'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밀양시 부북면 김종직 선생 생가에 보존된 선생의 영정. /장창표 작가
점필재, 사명대사, 김원봉·윤세주 등 여러 독립운동가, 근래 신영복 선생까지 밀양 인물들의 접점은 무엇일까.
"'의(義)'다. 옳음이다. 점필재는 백성이 의라고 했다. 수령의 의무, 본분이 백성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강조한 책이 '소학'이다. 한훤당 김굉필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가벼움을 직관한 선생은 '소학'을 다시 읽기를 강조했다. 이를 받아들인 한훤당은 소학을 거듭 읽었고, 나중에는 '소학 동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다시, 김종직이었다.
/이일균 기자 기자 admin@reelnara.info
숨겨진 밀양 이야기보따리를 짊어진 '밀양 이야기꾼'을 찾았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그렇게 된 거네!"하고 무릎을 치게 할 사람!
운이 좋았을까. 어렵지 않게 그런 분을 찾았다. 마침 그는 <밀양, 그 속살 이야기> 책까지 써냈다. 문제는 만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분과 정작 마주한 건 30분이 안 된다. 오늘은 강의, 내일은 해설, 모레는 답사….
바쁘다는데 릴게임가입머니 어떻게 하나. 그나마, 전화로 대화한 시간이 2시간, 그리고 문자로 주고받아 보완했다.
단 하루도 빠끔한 틈이 없는 이 사람,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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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표 작가가 쓴 <밀양, 그 속살 이야기> 표지. /이일균 기자
바람같은 사람 '장창표'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장창표, 그를 처음 만나 악수를 했을 때 손아귀 힘이 셌다. '트럼프'처럼 상대방을 압도하려는 그런 힘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기운이다.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됐다.
만 66세, 밀양 사포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전 교원, 밀양문화관광연구소와 밀양향교, 밀양시립박물관, 밀양시립도서관 등에서 지역사 강의와 해설을 하는 그를 뭐라 부 골드몽릴게임 를까 고민했다. 답은 아니지만 이분을 소개하게 된 매개인 <밀양, 그 속살 이야기>를 썼으니 '작가'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밀양 이야기, 심지어 밀양 사람도 모르는 밀양 속살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 숨겨진 '밀양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장 작가를 만나기 전에 "밀양의 대표 속살 이야기 셋만 들려달라"고 졸랐다.
그가 이야기할 밀양 사람들도 모르는 밀양 이야기가 정말, 궁금했다. 그때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 셋은 의외였다. 전공인 밀양 출신 유학자·도학자 점필재 김종직이 아니고, 사명대사도 아니고, 아랑도, 밀양아리랑도, 영남루도 아니다. '용두보'다.
'용두보'를 아시나?
장 작가를 30분가량 만난 장소도 용두보다. 밀양시 용평동 188-1번지 '밀양189 카페' 앞에서 용두보를 함께 보았다. 그가 첫 번째로 풀어놓은 이야기의 무대다.
"내 고향이 상남면 영금인데, 마흔 넘어서야 이 용두보가 내 고향 상남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수리시설의 시작점이라는 걸 알았다. 모른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수리시설이 만들어진 게 1904년부터 1907년. 그 전까지 상남들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논농사가 안 됐고, 시설이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논농사가 가능해졌다고 했다. 용두보에서 상남면까지 길이만 6.4㎞에 제방과 수로, 심지어 용두산을 관통하는 터널까지 기적 같은 공사가 지금부터 120년 전 벌어졌다.
밀양시 용평동 용두보는 용두산과 밀양강, 암새들을 끼고 있는 명소다. 그 앞에 장창표 작가가 섰다. /이일균 기자
이 근대 수리시설의 기록이 <밀양, 그 속살 이야기>에 담겼다.
"용두산은 산성산(391m)에서 뻗어내린 봉우리로, 그 모양이 용머리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아래 용두보는 일본인 마쓰시다 데이지로가 거액의 사비를 들여 만든 수리시설이다. 1904년 경부선 철로 부설 공사를 위해 밀양을 방문했다가 농업용수가 부족해 불모지와 같았던 상남면 들판을 보고는 용두보 건설을 착안했다. 용두보 물길은 총연장 120m의 도수로(물을 끌어들이는 수로)와 연결돼 있고, 용두산 허리를 관통한 통수로(터널 수로, 길이 433m)를 따라 총 540m의 수로를 따라 흐르다가 다시 밀양강 아래 지하관 450m를 통과해 예림마을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상남들판에 이르는 총연장 6.4㎞의 초대형 수리시설이다. 별도 동력 없이 수압을 이용하는 물 공급 방식으로 우리나라 근대 수리시설의 효시이다."
마산교대 사회과 재학 때 은사인 고 박동백 전 창원문화원장을 만나 역사 공부와 답사 활동에 흠뻑 빠졌다는 장 작가. 그때 창녕 진흥왕척경비, 울산 반구천암각화를 탁본한 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용두보의 진실을 발견했던 일은 무지에 대한 각성과 함께 역사 공부와 답사의 매력을 일깨웠다. 6년 전 교직을 마친 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밀양시보 편집위원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지도위원, 밀양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 의열기념관 도슨트 등 할 일은 많았다. 용두보의 여파였다.
박위와 의비연개비
그가 말한 두 번째 밀양 이야기는 '박위'다. 대마도를 처음 정벌한 이가 조선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아니라, 고려 창왕 때 박위 장군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기록에는 1419년 세종 원년 때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한 것으로 돼 있다. 고려 창왕 때인 1389년, 밀양 무안 출신 박위가 처음 정벌했다."
장창표는 왜 이 이야기를 할까. 책 속의 내용을 옮긴다.
'무안면 판정로에 있는 신남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을 찾았다. 이곳은 여말선초 대마도 정벌과 경복궁 창건 중책을 맡았던 충의백 정국군 박위 장군과 조선 초 문신인 이조참판 소총재 박기 부자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박위는 고려 충숙왕 때인 1332년 태어나 공민왕 때 왕의 호위병으로 관직을 시작했다. 우왕 때인 1375년 왜구 침범으로 폐허가 된 김해 부사로 부임해 일했고, 창왕 때인 1389년 2월에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했다. 이는 반만년 역사상 최초로 국외에 원정하여 승리한 전투다.'
세 번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장 작가는 이 말부터 했다.
"보통 비석은 양반을 기리는 것 아니냐. 노비를 기리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비석이 밀양 삼랑진에 있다는 건 아시나?"
모른다는 대답밖에…. 그런 기자에게 장 작가는 노비 연개 이야기를 길게 했다. 책 속의 내용을 옮기는 게 좋겠다.
밀양시 삼랑진읍 용성리 영사정에 있는 '의비 연개비'. /장창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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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종직'
만난 지 30분도 채 안 돼서 가야 한다는 그에게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예림초교 학부모들과 답사 준비 모임을 해야 한다. 밀양교육지원청 의뢰로 '우리가 미처 모르는 밀양 이야기' 강의·답사를 하는데, 급하게 잡혔다."
매일 이렇게 일정이 잡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그러면 못 버틴다. 일주일에 한 두 건이 적당한데, 요즘은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고 답했다.
줄이고 줄였다는 것인데, 그는 요즘도 밀양문화관광연구소와 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에서 의뢰한 선비문화탐험대, 별도 법인인 역사문화탐험대에서 강의·해설을 한다. 밀양향교, 밀양시립박물관, 밀양시립도서관에서 '유학'과 '유적', '길 위의 인문학' 강사활동도 한다.
장창표 작가가 경남도의회 '경남역사문화연구팀'을 밀양시 부북면 김종직 선생 생가의 추원재로 안내해 해설하고 있다. /장창표 작가
왜 이토록 열심히 활동하는 것일까.
"밀양사람들만이라도 밀양의 매력을 제대로 알았으면 싶다. 유서 깊고, 뛰어난 인물이 정말 많았던 곳이다. 그 중심에 점필재 선생이 있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조선 문명사회의 '집현전'이요, 시대의 스승이었다. 그런데 그를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다. 아직 선생을 문묘에 배향하지 않는 점은 뼈아픈 일이다. 선생이 워낙 문장에 출중했기 때문에 문장가 면모만 부각돼서 그런 것이다. 그는 조선 유교를 실천유교로 발전시킨 '도학'의 집대성자이다. 지금 비록, 부북면 생가가 있고, 예림서원에서 선생을 주향하고 있으나, 우리는 '점필재 기념관'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밀양시 부북면 김종직 선생 생가에 보존된 선생의 영정. /장창표 작가
점필재, 사명대사, 김원봉·윤세주 등 여러 독립운동가, 근래 신영복 선생까지 밀양 인물들의 접점은 무엇일까.
"'의(義)'다. 옳음이다. 점필재는 백성이 의라고 했다. 수령의 의무, 본분이 백성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강조한 책이 '소학'이다. 한훤당 김굉필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가벼움을 직관한 선생은 '소학'을 다시 읽기를 강조했다. 이를 받아들인 한훤당은 소학을 거듭 읽었고, 나중에는 '소학 동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다시, 김종직이었다.
/이일균 기자 기자 admin@reelnara.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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