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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깊이를 따질 수는 없어요. 거기엔 각자의 진심이 녹아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1호 개그맨 전유성의 소천은 연예계를 넘어온 국민이 애도하는 분위기여서 동료 개그맨들은 각자의 인연으로 고인을 추모하고 친분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다 문득 한국방송(KBS) 카메라에 기록된 최양락의 울먹이는 인터뷰를 보게 됐어요. “전유성이 아니었으면 개그맨도 될 수 없었고 아내 팽현숙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고마운 은인입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신관 ‘개그콘서트’ 녹화 스튜디오에서 개그맨 전유성 노제가 엄 임대차 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1. 80년대 어느 날이었어요. 자전거포 앞에서 멈춰 선 전유성은 개그맨 초년생 최양락에게 자전거를 2대 사오라고 했어요. 영문을 몰라 약간 망설였지만, 최양락은 가진 돈을 다 털어 중고 자전거를 샀고 둘은 곧바로 페달을 밟아 갑자기 여행을 떠났어요. 가진 돈은 없었지만 중간 부산개인파산신청 중간 캠핑을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밥을 얻어먹기도 했어요. 그렇게 동해까지 갔어요. 바다를 본 뒤에는 고물이 된 자전거를 처분한 돈으로 돌아오는 여비를 했어요. 즉흥적이지만 아름다웠던 자전거 여행이었어요. 지금 같으면 그걸 그대로 찍어 예능 프로그램을 해도 되겠죠. 나름 낭만이 있던 시절 얘기에요.
2. KBS ‘유머1번지’에서 가장 기 직장인 학자금대출 다리던 코너는 ‘손님’이었어요. 정규 코너는 아니고 짧은 브릿지 콩트였는데 대략의 내용은 이렇게 기억해요. 레인코트를 입은 최양락이 바텐더 전유성이 있는 바 형태의 술집에 들어서요. 밖은 천둥, 번개가 치고 비를 쫄딱 맞은 최양락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척 슬픈 느낌에 술에 취한 상태. 그리고 울부짖어요. “아저씨 술 주세요.” “어떤 술로 드릴까요?” 마이너스통장 금리비교 “늘 마시던 거로요. 그거 있잖아요. 그거 주세요.” “야! 이놈아. 너는 소주 마시잖아.” 뭐 이런 식이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웃겼어요. 일종의 허무개그 같은 거였죠. 제대로 웃겨주는 최양락과 그걸 받쳐주는 전유성은 환상의 콤비였고 매주 기다리던 코너였어요.
3. 최양락이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주인공으로 나선 ‘쇼비디오자키’의 ‘ 나 주의 도움 받고자 네로25시’는 정말 대단한 코너였어요. 최양락이 네로 황제 역을 맡았고 얼떨리우스, 날나리아 등 그 당시 캐릭터로 평생 먹고산 출연자도 있어요. ‘네로25시’에 전유성도 출연했지만, 워낙 튀는 출연자가 많은 탓에 돋보이지 않아 아쉬웠어요, 하긴 그럴 만도 해요. 전유성은 무심하게 툭툭 던지듯 아이디어를 내고 묵묵히 다른 사람의 웃음을 받쳐주는 역할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아이디어가 많지만 남을 잘 받쳐주는 사람.
4. 전유성의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못해 뼈를 때리게 아프기도 했어요. 리포터가 국내 바닷가를 찾아가 소개하면서 “외국 같아요”를 연발하자, 전유성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나라 같다고 해야지. 이렇게 아름다운 게 우리나라라고” 상식을 넘어서는 생각을 하는 사람. 그는 식당 주인들에게도 호소했는데 “오후 3시에 점심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야박하게 하지 마시고 얼른 한 그릇 내주세요. 밥때도 놓치면서 일하다가 온 사람입니다.”
5. 언젠가 전유성이 서울 인사동에 ‘학교종이 땡땡땡’이란 주점을 낸 적이 있어요. 교실처럼 꾸민 콘셉트 주점(그것도 전유성의 아이디어)이었는데 책상 서랍에 스케치북하고 크레파스가 있었어요. 그 이유를 묻자 전유성이 대답했어요. “거지스님 중광이 와서 자꾸 낙서해서 스케치북을 갖다 놓았어. 혹시 알아. 나중에 중광 낙서가 비싸게 팔릴지도 모르지.” 그 스케치북의 행방은 모르겠어요. 사실 말을 그렇게 했지, 잇속이나 챙기려고 스케치북을 갖다 놓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실 아무나 거기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6. 경북 청도에서 코미디극장을 운영할 당시 누가 물어봤어요. “나이 들면 감 떨어지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전유성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여기 감 많아요. 경북 청도가 감으로 얼마나 유명한데” 경북 청도는 코미디 감이 그렇게 좋았던 그를 쫓아냈어요.



경북 청도에 철가방 극장을 짓고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했던 전유성. 한겨레 자료사진


7. 후배 개그맨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전유성을 ‘리스펙’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이디어도 좋고 업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욕심이 없었다는 점 같아요. 흔히들 말하는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인데 전유성은 돈 때문에 동료, 후배와 경쟁한 적이 없어요. 후배들은요, 당연한 얘기지만 자기 것을 지나치게 챙기는 선배를 리스펙하지는 않아요. 전유성은 자기 것을 독하게 챙기는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8. 데뷔 초창기이던 동양방송(TBC) 시절 ‘살짜기 웃어예’를 보면, 임성훈, 김병조가 날아다닐 때 전유성의 연기는 어눌했고 특히 시선 처리가 미숙해서 시청자들이 답답해하기도 했어요. 기가 막힌 아이디어도 많았지만 의외로 안 웃기거나 실패한 것들도 있긴 해요. 라디오 회식을 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서 맥주잔 가득 소주를 따라 원샷 몇 번 하고서 딱히 바쁜 일이 없는 거 같은데도 먼저 일어서 가버리는 사람. 영혼의 후배 최양락과 진심으로 친했지만, 고 김형곤과 다툼이 있을 때는 편은 안 들어준 무심했던 사람. 지나고 나니 결국 그게 다 옳았던 사람. 많은 후배가 리스펙하지만, 정작 본인은 많이 고독했던 사람. 그래서 더 생각나고 그리운 사람이 고 전유성 형입니다.
작가 김성 (‘싱글벙글쇼’, ‘개그야’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