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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남자가 그래선지 했었다. 그래도 아니요. 돌아가야겠어요.그레이 게이머이자 28년간 ‘카리스마짱’이라는 닉네임으로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즐겨온 김병수씨가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 상화도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닉네임 ‘카리스마짱’은 리니지 세계에서 꽤나 이름을 날린 이른바 ‘네임드’ 유저다. 리니지 1에서 ‘인연’이라는 이름의 혈맹을 이끌었고, 리니지 2 레볼루션에선 혈원 45명을 거느린 혈맹 ‘꽃섬’의 군주를 맡고 있다.
지난 21일 전남 여수의 작은 섬 상화도에서 만난 카리스마짱의 ‘본체’는 호탕한 인상의 김병수씨(66)였다. 꽃섬이란 혈맹 이름은 그가 돌문어와 소라를 잡으며 살아가는 이 섬의 별칭에서 따왔다.
“완전 전쟁통이에요, 전쟁통.” 김씨오르는종목
가 기자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전날 그의 혈맹이 적들의 공격을 받는 바람에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고 했다. 군주인 그가 협상에 나서며 큰 싸움은 막았지만 출혈(레벨 하락)이 컸다.
“군주를 오래 하다 보니 협상에 익숙해졌다고 할까? 저쪽 군주한테 문자를 넣어서 왜 우리를 치느냐 따졌더니 최근 우리 혈(맹)에 이사온 혈원 하나willclub
가 꼬장을 부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이 혈원을 탈퇴시키고 쟁(전쟁)을 끝냈습니다. 군주가 중재를 못하면 혈(맹)도 해체되고 복잡해지거든요.”
리니지는 김씨가 1998년부터 28년째 놓지 않고 있는 취미다. 초등학생인 아들을 따라간 PC방에서 우연히 접한 이후 리니지는 그에게 떼려야 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요즘도 모바일파칭코
하루 서너 시간은 리니지에 투자한다. 혈맹의 지도자로서 혈원을 관리하고, 적으로부터 성을 지키려면 눈을 돌릴 틈이 없다. ‘자동 사냥’(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스스로 몬스터를 찾아 사냥하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기능)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카리스마짱’이 리니지 안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 최소 12시간 이상이다.
“리국민주
니지는 나한테 인생이에요. 우리 사는 거랑 똑같아요.”
온라인 게임 30년…떠오른 ‘그레이 게이머’
시니어 게이머 김병수씨가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 상화도 자택에서 ‘리니지2 레볼루션’ 속 자신의 게임 캐릭터인 ‘릴게임다운로드
카리스마짱’을 소개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국내 최초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가 1996년 정식 출시된 이후 30년이 된다. 이제 10~20년 역사를 가진 게임은 흔하고 서비스 종료 후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게임과 함께 게이머들도 나이를 먹었다. 고령화가 먼저 진행된 일본에선 이미 4년 전 최초의 e스포츠 시니어 프로팀이 탄생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게임에 빠진 중장년층, 일명 ‘그레이 게이머’(Gray Gamer)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레이 게이머의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를 보면 40대의 60.7%, 50대의 44.6%가 게임을 한다고 응답했다. 60대의 게임 이용률도 31.1%에 달했다. 경제력을 확보한 이들은 아이템 구매 등 소비에서도 청년 세대에 뒤지지 않는다.
그레이 게이머에 대한 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2020년대 들어 특히 활발해진 ‘추억의 게임’ 잇단 부활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의 후속작이 내년 초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고, 2000년대 중반 인기였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윈드 슬레이어’는 서비스 종료 12년 만인 지난 7월 다시 돌아왔다. 2016년 인기 하락과 함께 폐지된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프로리그의 부활도 추진되고 있다.
업계에선 어린 시절 해봤던 추억의 게임이 다시 나올 경우 이용자의 주머니가 보다 쉽게 열린다고 본다. 중견 게임사 팡스카이의 이병진 대표는 “이미 높은 인지도와 팬층을 확보한 IP(지식재산권)로 다시 서비스하면 유저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켜 효과적인 마케팅이 가능하다”며 “아낀 마케팅 비용으로는 게임 콘텐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노안 오고 반응 속도 느려도···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중장년층 게이머의 폭발적 성장에도 여전히 게이머를 대표하는 얼굴은 10~30대의 청년이다. 디자인 등 게임의 구성 요소가 이들의 젊은 신체를 전제로 만들어져 게임 방법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글자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다. 게임의 주 무대가 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이런 경향은 더 강해졌다.
통증의학전문의이자 30년 넘게 게임을 해온 자칭 ‘올드 게이머’ 김홍선씨(48)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그는 진료실에서 게임 때문에 통증을 호소하는 중장년 환자를 종종 만난다.
“피지컬(신체 능력)이 중요한 게임은 아무래도 어렵죠. 집중력이 떨어지는 데다 일이나 육아를 하다 보면 시간을 투자하기도 어렵고요. 글씨나 자막이 너무 작은 것도 고령 게이머에겐 부담스러워요. 직접 게임을 하기보다 게임 라이브 방송을 보는 경우도 많죠”
열정적인 그레이 게이머들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게임을 한다. 시간을 들여 약초·광물(체력 회복 및 능력치 강화에 쓰인다)을 캐지 못하는 대신 아이템을 구매해 전력을 보충하거나 신체 능력에 따른 유불리가 덜한 장르로 아예 갈아타기도 한다. 중장년층 하면 흔히 떠올리는,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과 달리 능동적인 모습이다.
“롤(LOL)처럼 반응 속도가 중요한 게임 말고 ‘턴제’로 넘어간 친구들이 많아요.” 30년 넘게 온갖 게임을 섭렵한 A씨(45)의 말이다. 턴제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차례에 플레이하도록 구성된 게임 장르다. 그는 “이제 내 몸을 이해하고 노하우가 생기다 보니 딱 1시간만이라도 젊은 게이머와 대등하게 싸우려고 한다”고도 했다.
‘모두를 위한 게임’이 필요해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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