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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치 활동가 찰리 커크의 죽음을 9·11 추모 연설 서두로 삼았다. 커크를 “그 세대의 거인이자 자유의 투사”라고 일컫고, 그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월트 디즈니, 테레사 수녀 등이 받은 민간인 대상 최고 등급 훈장이다.


커크의 죽음 이후 미국은 둘로 갈려 있다. ‘분열’이란 표현으로만 간추리기에는 충분치 않다. 우세한 측은 추모와 애도다. 나아가 커크를 ‘순교자’로 신성시하려는 움직임도 대출금리인하 보인다. 커크를 기리는 데 신중한 입장조차 ‘모욕’으로 간주된다. 일각에서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삼엄한 미국 사회의 모습을 떠올린다.


찰리 커크는 1993년생이다. 대학은 한 학기 만에 중퇴했고 전문적 신학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정치권에 특별한 연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엘리트로 시장금리 규정되기 어려운 18세 청년은 2012년 ‘터닝포인트 USA(TPUSA)’를 설립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튜브 덕을 보았다. 일찌감치 개설한 유튜브에서 쉽고 짧은 말을 사용해 오바마 당시 행정부의 정책과 진보 이념 전반을 비판했다. 주로 초점을 맞춘 건 시장경제와 작은정부 옹호였다. 진보적 정책에 반감이 있는 청년층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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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하자 커크와 TPUSA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하고, 선거운동에 TPUSA 학생 조직을 동원했다. 지지 기반이 허약했던 트럼프에게 ‘청년 보수’ 조직으로 성장한 TPUSA는 상징적·실질적으로 중요한 우군이었다. 2020년 대선에 취업면접 서도 커크와 TPUSA는 트럼프 핵심 지지 세력이었다. 대선 후 커크는 트럼프의 패배 원인이 부정선거일 가능성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SNS에는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 도둑질을 멈춰라)’ 집회를 지원하기 위해 “애국자로 가득 찬 버스 80대 이상”을 보내겠다고 썼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이 발생하자 “어리석은 짓”이라고 도구 폴더옵션 비판하면서도, 그들이 “반란 세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찰리 커크 사망을 두고 미국 진보세력은 난처한 듯 보인다. 커크는 쉽사리 애도를 표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 발언을 여러 차례 내뱉었다. 탄약에 적힌 글귀(“야 파시스트! 잡아봐”) 등으로 미뤄보아 살해 동기는 정치적 테러일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커크 피격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살해범이 정확히 어떤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는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인파는 미국 전역에 늘어섰고, 그의 생전 언행에 비판적인 기사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진보지로 분류되는 매체에서도 커크를 대놓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오히려 재갈을 물리는 사례도 속속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흑인 여성은 지능이 부족하기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백인의 자리를 훔쳐야 한다’라는, 찰리 커크의 생전 발언을 SNS에 인용했다는 이유로 칼럼니스트 캐런 아티아를 해고했다. MSNBC 역시 “(커크의) 증오 발언은 증오에 찬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말한 평론가 매슈 다우드를 잘랐다.

커크는 폭력 대신 대화 옹호했다?

‘누구에게든 폭력은 옳지 않다’는 평가는 수용하기 쉽다. 그런데 몇몇 매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범죄 비판을 넘어 커크의 ‘태도’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평가받는 〈뉴욕타임스〉에는 9월11일 ‘찰리 커크는 올바른 방식으로 정치를 실천했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나는 정치 현안에 있어 커크와 다른 입장이었지만 (···) ‘정치는 전쟁이 아니라 논쟁이어야 하며 말이 아닌 총알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은 같았다”라고 썼다. 대학 캠퍼스에서 반대파 학생들과 토론한 이력을 높이 평가했다. 보수 성향 〈폭스뉴스〉에는 같은 날 커크의 ‘친구’라 밝힌 평론가가 쓴 글이 실렸다. “비판자들이 보는 찰리의 ‘죄’는 간단했다. 바로 시민적(시민들 간의) 담론을 옹호한 것이다. (···) 그는 미국인들이 서로 차이를 넘어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잃는다면 남는 건 혼돈뿐이라고 보았다.” 커크의 사상에 동의하는지와 무관하게, 토론하려는 태도는 옳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2024년 12월22일 아메리카 페스트 2024 행사에 참석한 찰리 커크(오른쪽)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FP PHOTO



생전 찰리 커크는 ‘혐오 표현(헤이트스피치)의 자유’를 옹호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와 달리 미국은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제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SNS에 커크는 “법적으로 미국에 혐오 표현이라는 건 없다. 추악한 표현도, 역겨운 표현도, 사악한 표현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는다. 미국을 자유롭게 하자”라고 적었다. 완전히 새롭거나 극단적 주장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할지는 학계에 논쟁이 있고, 각국 입법 정책도 나뉜다. 문제는 커크와 그 조직의 행적이 ‘온전한 표현의 자유 수호’와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커크가 항상 ‘폭력 대신 대화’를 옹호했다는 평가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찰리 커크의 터닝포인트 USA(TPUSA)는 2016년부터 ‘교수 감시 명단’이란 웹사이트를 운영해왔다. “보수 학생을 차별하고 강의실에서 좌파 선전을 퍼뜨리는 대학교수를 폭로·기록”하는 게 목표다. 명단에 적힌 사유에 따르면 ‘좌파 선전’이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마스크 의무화를 주장하거나, 백인의 우월적 지위를 비판한 것, 낙태권을 옹호한 것 따위다. 앞선 〈뉴욕타임스〉 칼럼에 대해 ‘독자 의견’을 보낸 교수 한 사람은 2022년 낙태 반대 운동가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이 명단에 올랐다. 이 교수는 칼럼을 두고 “명단에 실린 다수 교수들이 개인정보 유출, 괴롭힘, 신변 위협을 받았다. 이건 ‘올바른 정치’를 실천하는 게 아니다”라고 적었다.


커크는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재작년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찰리 커크 쇼〉에서 “조 바이든은 치매 걸린 부패한 독재자다. 미국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고, 감옥에 보내 사형선고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테러 옹호’가 의심되는 발언도 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의 남편이 2022년 자택에서 괴한에게 공격받아 두개골이 골절되자, 팟캐스트에서 “끔찍하고 옳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그런데 왜 아직 범인이 감옥에 있나? 지역의 애국자가 진정한 영웅이 되고 싶다면 가서 보석금을 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커크의 발언과 행적들 사이 이런 모순은 어째서 발생할까. 토론의 형태를 띤 찰리 커크의 발화가 실은 민주주의와 융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활동을 이어갈수록 커크는 개신교적 가치를 강조했다. 개신교가 곧 ‘미국적 가치’이기 때문에 국민이라면 종교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논지를 전개했다. 종교 논리에서 ‘선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정적에 대한 테러는 끔찍한 일이지만 그게 ‘불신자’를 향한다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기독교 교리마저 집권 전략에 종속시켜

‘토론가’ 찰리 커크의 본모습은 개신교 정치행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 저널리스트 팀 앨버타는 책 〈나라, 권력, 영광〉에서 2023년 초 한 보수 교회 집회에서 커크를 만난 경험을 적었다. 이 자리에서 2022년 공화당의 중간선거 참패를 두고 커크는 말했다. “우리는 두 배 더 노력해야 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항복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공화당의 승리를 보류한 이유는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계획 때문이다.” 정치적 패배조차 장기적 승리를 위한 신의 섭리라는 것이다.


앨버타에 따르면 이날 커크의 메시지는 너무 극단적인 나머지 보수 목회자와 신자조차 술렁일 정도였다. 커크와 함께 연단에 오른 보수 목사가 성정체성 혼란에 대한 한 참가자의 질문을 받고 “그들에게 연민을 느껴야 한다”라고 말하자 커크는 비웃었다. “그건 너무 상냥하다. 그들은 자신이 얼룩말, 기린, 사자라 생각한다. 트랜스젠더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장 사악한 일이다. 우리는 이 악을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 (···) 성전환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모두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


찰리 커크를 비롯한 개신교 정치세력은 정교분리 원칙만 위협한 게 아니었다. 개신교의 근본 교리 역시 곡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목사의 아들이자 신학을 공부한 팀 앨버타는 “휠체어를 탄 레즈비언들의 말만 진리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조롱한 찰리 커크의 이날 발언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특정 주제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 그들은 히틀러나 낙태 시술자들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 박수를 치지만, 이민자를 ‘외계인’, 민주당원을 ‘악마’, LGBTQ 청소년을 ‘휠체어 탄 레즈비언’이라 부를 때 드러나는 편견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고 무시한다.” 커크와 그 세력이 교리를 취사선택했다는 의미다. 2016년 대선 시절부터 찰리 커크와 끈끈한 관계였던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2021년 TPUSA 행사에서 보수파가 더 강경하게 행동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예수 말씀처럼) 다른 쪽 뺨도 돌려 댔는데, 성경이 무슨 말을 하는진 이해하지만 우리는 그걸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찰리 커크가 남긴 문제의 핵심은 그의 ‘혐오’나 ‘비하’ 발언 자체가 아니다. 커크는 생각이 다른 시민과 정치적 반대파의 존재가치를 부인하고, 그 절멸이야말로 선의 구현이라고 주창한 인물이었다. 그가 상대를 낙인찍은 근거가 정통 개신교에 부합하는지도 비판이 있다. 미국에서 TPUSA의 성향은 ‘개신교 국가주의’로 분류된다. 이 이념은 트럼프와 우파의 승리를 종교 수준으로 신성시하는 한편, 수천 년 이상 이어온 기독교 교리는 일개 정파의 집권 전략에 종속시킨다.


상대를 악으로 본 토론 전문가, 정규 종교 교육을 받지 않은 종교 활동가, 입장이 다른 학자를 박제한 이른바 ‘표현의 자유’ 옹호자 찰리 커크의 삶 전반은 역설이었다. 죽음마저 그런 면이 있다. 2023년 4월 한 종교 행사에서 커크는 총기 소지를 변호하며 이런 말을 했다. “무장한 시민이 있는데 총기 사고로 단 한 명도 죽지 않는 사회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총기 사망자가 발생해도 그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통사고를 없애겠다고 운전을 금지할 수는 없다.”


총기 폭력의 피해자를 ‘순교자’로 시성하려는 미국과 세계의 인파는 무엇을 뜻할까. 2019년 3월 TPUSA 행사, 공화당 유력 정치인들과 주요 매체 간부들 앞에서 찰리 커크가 자신만만하게 선포한 바를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는 MAGA의 국가입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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