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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범죄 피해자가 피해를 복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사기 범죄의 경제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 범 개인회생자 죄로 발생한 피해액은 28조1300억원(잠정치)에 달했다. 2023년 18조5100억원보다 51.9% 증가했다.
지난해 서울시 예산 45조7230억원의 60%가 넘는 규모다. 피해 규모만큼 사기 범죄 건수도 많다. 지난해 발생한 사기 범죄는 42만1936건을 기록했다. 하루에 1175.7건, 시간당 48.9건의 사기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lh국민임대아파트 셈이다.
■ 범죄와 눈물 = 문제는 사기범을 검거하더라고 피해자의 피해를 복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한둘이 아닌 데다 범죄자들이 돈을 빼돌리거나 은닉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물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재판부의 판결을 받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막대한 소송 수수료 면제 통장 비용과 정신적 고통까지 감내해야 한다. 어렵사리 소송에서 이겨도 사기범이 "돈 없다"고 버티면 당장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
피해자들에게 사기꾼을 엄벌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피해 복구라는 걸 감안하면 답답한 현실이다. 사기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범죄자들이 챙겨둔 범죄 수익을 빠르게 몰수·추징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제1금융권금리 몰수·추징은 범죄 수익의 처분을 막는 가압류와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피해자의 피해 복구에 큰 도움이 된다.
수사 과정에서 범죄 수익을 몰수·추징하고, 재판에서 법원이 추징 선고를 내리면 피해를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최근 법원의 판결이 바뀌면서 사기 범죄 피해자의 피해 복구가 막막해진 사건이 발생했다. 더구나 피해자 성남통합 는 법원이 판결을 내린지 2년 가까이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글로벌스탁 사건 = 시계추를 2021년으로 되돌려 보자. 팬데믹 이후 폭락했던 주식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관련 사기 범죄도 덩달아 폭증했다. 대표적인 것이 '사이버피싱'으로 불리는 비상장주식 사기였다.[※참고: 이는 증시에 상장될 가능성이 낮은 비상장기업의 주식을 "기업공개(IPO)가 머지않았다"는 말로 속여 비싸게 파는 사기수법이다.]
이런 비상장주식 사기꾼 중엔 '글로벌스탁'이란 곳도 있었다. 총책 이○○를 비롯한 14명은 2019년 '글로벌스탁'이란 회사를 만들었다. 비상장주식 컨설팅기업이란 그럴듯한 이름을 내세웠지만 실은 사기꾼 집단이었다.
'글로벌스탁'은 투자자들에게 바이오업체로 포장된 '대한바이오팜'의 비상장주식을 팔아넘겼다. 소셜미디어 오픈 채팅방과 무작위로 보낸 문자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수법은 교묘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들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프라인 기업설명회를 개최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서 온라인으로 공모주를 판매한다" "상장 요건인 소액주주비율 25%를 맞추기 위해 일반투자자를 모집 중이다" "상장하면 5~6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로 투자자를 유혹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활용해 상장청구 심사승인서 등 기업 정보를 조작해 투자자들에게 제시했고, 상장에 실패하면 투자금을 모두 돌려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걸었다. 이렇게 사기꾼들은 2000원짜리 비상장주식을 주당 1만2000~1만4000원에 팔아치웠다.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팔아치운 주식만 160만주에 달했다.
다행히 글로벌스탁의 사기 행위는 2022년 1월 총책 이○○ 등이 검거되면서 멈췄다. 하지만 193억원에 이르는 돈을 1248명의 투자자로부터 이미 빼돌린 후였다. 사기꾼들은 투자자의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몰수·추징 내역이다. 경찰과 검찰은 사기꾼들을 검거·기소하면서 총책 이○○가 빼돌린 범죄 수익 61억701만원을 몰수·추징했다.
몰수·추징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시 성동구 고급아파트 전세 보증금 25억원, 서울시 강남구 오피스텔 분양계약금 2억2856만원, 서울시 강남구 최고급 오피스텔 계약금 4억3420만원, 서울시 도봉구 아파트 계약금 4억원, 경기도 의정부시 소재 아파트 전세보증금 3억9000만원, 3억원이 넘는 고급 외제차, 시중은행에 맡긴 예금 등이었다. 공범 13명에게서도 18억여원을 몰수했다.
■ 피해자 외면한 판결 = 그렇다면 사기꾼들은 엄벌에 처해졌을까. 2023년 3월 내려진 1심 판결을 살펴보자. 법원은 글로벌스탁의 총책 이○○에게 징역 12년에 벌금 5억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영업 총괄관리자, 현금 인출책, 중간 관리자 등 공범 13명에게도 징역 2년 6개월∼8년의 실형과 150만∼3억5000만원의 벌금을 각각 선고했다. 이와 함께 법원은 이○○의 범죄 수익 61억701만원을 추징선고까지 내렸다. 1심 법원의 추징 선고로 피해자에겐 금전적 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이 2심에서 뒤집혔다. 2심 법원은 그해 10월 2심 재판에서 1심 재판의 추징 선고를 두고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 제6조 제1항에 따른 몰수 또는 추징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피고인들에게 몰수 또는 추징을 선고했다"며 "이는 몰수·추징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무슨 의미일까. 부패재산몰수법 제6조 제1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몰수 재산이 범죄피해 재산으로 피해자가 범인에게 재산반환청구권 또는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는 등 피해회복이 심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몰수·추징할 수 있다."
2심 법원은 "글로벌스탁의 피해자가 많지만 글로벌스탁 명의의 계좌를 통해 실질적인 피해금액을 산정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재산반환청구권 또는 손해배상청구권을 어렵지 않게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일부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나서고 있다"며 "범행가담자들이 이 사건의 범죄수익을 은닉하거나 해외로 반출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부패재산몰수법 제6조 제1항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 상태를 볼 때 피해자가 얼마든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사진｜뉴시스] 


2심 법원은 1심과 달리 범죄 수익도 엄격하게 계산했다. 1심에선 피고인(이○○)이 비상장주식 사기로 갈취한 금액을 모두 범죄수익으로 인정했다. 2심 법원은 달랐다. 이○○가 범죄수익을 공범과 나눠 가졌기 때문에 피해자로부터 갈취한 금액을 모두 범죄 수익으로 보기 힘든 데다 피고인이 실제로 취득한 범죄수익을 특정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이를 바탕으로 2심 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실제로 취득한 범죄수익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다"며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른 몰수·추징을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2심 법원이 글로벌스탁이 피해자로부터 갈취한 모든 금액을 '범죄 수익'으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이야기는 심층취재 추적+ '글로벌스탁 사건 후 벌어진 일' 2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ks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