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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두의 무관심 속에 잊혀지는 일들이 너무 많다. 특히 지역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소외된 마이너리티의 고단한 삶이 그렇고, 정책과 현실의 간극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기자가 직접 체험에 나선 이유다. 강원도민일보는 2026년 신년기획으로 ‘체감on道’를 연재한다. 강원도에서 발생하는 각종 현안과 현장에 직접 들어가, 내면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그 첫 순서로 본지 사회부 최수현 기자가 무연고자의 장례식장에 상주 역할을 하며 1박2일간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서류상 가족이 없다고 무연고자로 분류된 그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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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 찾는 행정 한계 서류에 막힌 유언
153명. 2024년 강원지역에서 무연고자 공영장례 지원을 받은 수다. 죽은 나를 챙겨줄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해 치러진 장례들이다. 치열히 살아내느라 수고한 한 인생은, 그 생 야마토게임장 을 살아낸 것 만으로도 죽음을 애도 받을 존엄함이 있다. 남은 이로서 떠나간 이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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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없는 이의 장례식
1957년 9월 27일~2025년 12월 20일 고(故) 김00. 빈소 안내판엔 가족들의 이름 대신 ‘장 메이저릴게임사이트 례 주관: 원주의료원 장례식장, 장례지원: 원주시 공영장례 사업 지원 대상.’
이름도, 얼굴도, 생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은 처음이었다. 김씨는 재적등본에 등록된 배우자 및 직계가족이 아무도 없어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고 했다.
13일 오전 10시. 검은 정장을 차려 입고 간 원주의료원 장례식장엔 원주 릴게임몰 시자원봉사센터 소속 봉사단체 봉주르wonju와 장례식장 관계자가 고인의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의 첫 제사상이 올라왔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20일 새벽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고 했다.
원주시를 비롯한 강원도내 지자체들은 김씨와 같은 무연고 사망자들의 공영 장례를 지원하는 조례를 2023년부터 제정해 지원 중이다. 2021년 장사법이 개정되면서 지자체가 무연고 시신 등을 처리하는 경우 장례의식 등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하도록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임시 상주로서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렸다. 무연고자의 장례는 2일상으로 치러진다. 이미 입관은 끝난 뒤였다. 오랜 시간 안치된 시신이고, 무연고자라 따로 입관식을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동희 원주자원봉사센터 이사는 “봉사자들도 바쁘다 보니 보통 첫상 인사만 드리고 떠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오늘은 지키는 사람이 있어 김 씨는 세 끼를 다 먹게 되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쓸쓸했을 김 씨의 곁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화꽃 한 송이 없는 분향실은 황량했다. 향초, 과일, 약과, 술잔 등 제사를 위한 최소한의 예식이 갖춰졌고, 제단 위 놓여진 고(故) 김00 신위(神位)가 적힌 위패 하나가 영정사진을 대신해 세워져 있었다.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손님을 맞이해야 할 빈소 입구 부의함과 접수대는 텅 빈 의자와 빈 책상만이 자리를 지켰다. 1층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빈소 덕에 이따금 앞을 지나는 손님들이 얼굴 없는 안내판을 유심히 쳐다보다 발길을 이어갈 뿐이었다. 빈소 내 움직임이라곤 조용히 타들어가다 툭하고 떨어지는 향 잿가루와 흔들리는 촛불빛이 전부였다.
김 씨의 빈소에서부터 하얀 국화꽃 화환이 길을 이은 옆 호실에선 불경을 읊는 소리, 힘껏 흔드는 종소리, 조문객들의 말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빈소 앞 안내판에는 고인의 웃는 사진 옆으로 자, 부녀자, 손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혀 빼곡히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김 씨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들었지만 시청도, 봉사단체도, 장례식장 관계자도 잘 모른다고 했다. 알아낸 것은 김씨의 생년월일과 마지막 주소,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김씨에겐 유골을 인계받고 싶다며 연락 온 지인이 있었다고 했다.
저녁이 되자 뒤늦게 소식을 들은 김 씨의 지인이 찾아왔다. 이 모(67) 씨는 자신을 김씨와 40년 지기 지인라고 소개했다. 이 씨는 김 씨를 “천사같은 사람”이라며 “김 씨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몇 년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김 씨와 젊을 적 서울 마포에서 만나 임종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가족처럼 지냈다고 했다. 함께 명절을 보내고, 종종 여행도 함께 다녔댔다.
김 씨는 경기 군포 출신으로,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마트 직원, 환경공무직 등으로 일을 하다 4년 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일을 그만뒀다. 4개월 전 병원으로부터 수십 일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사형선고’를 듣고 원주로 왔다.
이 씨도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혼자 병치레를 할 김씨를 위해 원주에서 함께 살 것을 제안했다고 했다. 이 씨의 보살핌으로 군포와 원주를 오갈 만큼 병이 호전됐으나, 12월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결국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했다.
이 씨 덕에 김씨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다. 사진 속 검붉은색 스웨터를 입은 김 씨는 날렵한 얼굴형에 짧은 스포츠머리, 높게 솟은 눈썹 산, 쌍커풀 없는 부드러운 눈을 가진 평범한 얼굴이었다. 튼 입술 사이 번지고 있는 은은한 미소와 구렛나룻 주위로 삐져나온 흰머리, 이마 위 옅은 주름이 그간의 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씨는 “그동안 고마웠어요. 저도 곧 따라가니 편하게 먼저 기다리고 계세요. 이제 편하게 쉬세요. 존경합니다”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 14일 원주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씨의 빈소가 한산하기만 하다.
■ 서류상 가족이 아니라서
이 씨는 김 씨가 사망한 이후부터 김씨의 유골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고 했다. 김씨의 임종 직전 위임장도 받았지만, 보건소와 시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서류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이 씨는 “시신을 인계받기 위해서 보건소와 의료원을 수차례 오갔는데,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들었다. 가족관계는 등본에 가족이 없는 게 다 나오는데 아무도 없으면 지인이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며 “형편이 좋지 않아 장례식을 치르지 않더라도 김씨의 유언에 따라 치악산 인근에 수목장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럴수가 없어 아쉬움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사법상 직계가족이 아닌 지인도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로 연고자가 될 수 있지만, 서류상으로 고인과의 친분 입증이 어렵고,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걸림돌이 많다.
박기현 원주의료원장례식장 부대사업팀장은 “지자체를 통해 고인과 지속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장례주관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장례주관자로 지정되는 경우 장례주관자의 비용부담이 생긴다”고 말했다.
무연고자로 사망할 경우, 경찰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시청에서 고인의 가족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최소 일주일, 오래는 수십일이 걸린다. 일반 시신보다 더 부담되는 것은 이 기간동안 시신을 보관하는 안치실 비용이 하루 7만~1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최근들어 서류상 가족은 아닌데 키워주신 분의 장례를 직접 치를 수 있는지 문의가 온다. 그런 경우 시청에 가서 본인이 무연고자와 어떤 관계인지 증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증빙, 소장 제기 등 서류상 작업이 쉽지 않아서 중간에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천안과 부산 등의 경우 취약계층의 사전 장례주관자임명제를 활용하고 있다. 무연고자가 사망하기 전 자신의 장례주관자와 방식, 안치 방법 등을 직접 지정해 사망 후 신속하게 지정한 장례주관자가 고인의 상주가 돼 공영장례를 진행할 수 있다.
■ 68년의 생, 한 줌의 가루 되어
14일 아침. 김 씨의 영정사진 옆으로 놓인 밀대 양초 2개가 반쯤 타들어 가고 있을 때쯤 고인의 마지막 식사가 배달됐다. 이씨도 시간에 맞춰 김씨의 빈소를 찾았다. 김씨가 병치레를 할 때 먹고 싶어 했다며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와 함께 상에 올렸다. 잠시의 묵념.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었다.
김 씨를 배웅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안치실을 찾았다. 김씨는 약 23일간 차가운 안치실에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부디 이세상 너머에서 만큼은 따뜻히 지낼 수 있길 바랐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안치실 옆 참관실에서 염을 진행하는 가족들의 통곡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남겨진 사람들의 추모와 애도를 받는 일이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김씨의 마지막은 외롭진 않았다. 기자와 이 씨, 이 씨의 동생, 장례지도사와 운구자. 단출했지만 그의 곁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다. 무연고자의 관은 사람의 손으로 운구하는 대신, 환자 운반 이동식 침대에 실려 옮겨졌다.
원주추모공원 화장장에 도착하니 리무진과 대형 버스가 줄을 이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이날 화장 일정 2회차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정됐다. 앞선 고인들은 흰 장갑을 낀 가족들의 손에 들려 차례대로 옮겨졌다. 화장장엔 유족들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김씨의 차례가 다가왔다. 관을 실을 수 있도록 개조된 승합차에서 내린 붉은 천으로 덮인 관. 그 위에 매직으로 적힌 김 씨의 이름 석자. 이동식 침대를 타고 화장장 직원의 손에 넘겨졌다. 1번 화장로로 들어가는 김 씨의 관을 보며 목례로 그간의 생을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하늘 아래 피붙이 하나 없는 삶. 실패한 결혼, 암과 같이 깊은 상처를 남긴 고단하고 치열했던 삶이었지만, 떠나는 길 만큼은 훌훌 털어버리고 편히 갈 수 있길 바랐다.
화장은 통상 1시간~2시간 사이 마무리된다. 무연고자들은 대개 공개되는 수골 절차 없이 화장장 직원들이 수습해 지정 장소에 안치한다고 했다. 그렇게 68년의 한 생이 하얀 가루가 돼 봉안당에 안치됐다.
봉안당엔 하나의 태생과 죽음, 주인의 이름이 기록된 도자기 유골함들이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유골함 곁으로는 고인들의 환한 모습과 그 가족들이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 사이 흰 보자기로 싸인 김씨의 나무 유골함엔 주인의 흔적이 없었다.
사전에 전달받은 위치와 ‘이름 찾기 키오스크’를 통해 김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씨는 2031년 1월 14일까지 이곳에 머문다. 5년 내 연고자가 김 씨를 찾으러 오지 않으면 추모공원 안에 있는 유택 동산에 뿌려져 자연으로 돌아간다.
▲ 14일 원주추모공원에서 지인이 김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본지 최수현 기자와 함께 화장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무연고자, 당장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강원도 내 김 씨와 같이 무연고자 공영장례 지원을 받은 건수는 2024년 153건. 이틀에 한번 꼴로 한 생명이 연고자 없는 생을 마감하고 있다.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도 133명 발생했다.
당장은 곁의 이야기로 와닿지 않지만, 매년 증가하는 1인가구 추이를 보면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2022년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장래가구 추계를 보면, 2025년 강원 1인가구는 27만 3463가구, 전체 가구의 39.1%를 예상했다. 2050년엔 전체 가구 77만 7825가구 중 45.3%인 35만 2759가구가 1인가구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이미 2024년 기준 강원지역 1인가구는 27만7109가구로, 전체 가구의 39.4%를 넘어서며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김동희 원주자원봉사센터 이사는 “무연고자의 경우 경찰이 조사를 마친 뒤 담당부서에 연락을 하면 담당부서에서 민원과에 다시 공문을 보내 등본 열람 권한을 받는다. 이 과정만 최소 3일 이상 걸린다. 또 공무원들이 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연고자에게 연락을 하고 포기각서를 받는데 까지 수십 일은 걸린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위기 1인가구에 대한 사전 발견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대개 연고자들이 있다. 쓰레기집에서 발견된 분들은 거의 모든 관계가 단절된 분들이다. 쓰레기집을 특히 위기가구라 생각하는 이유는 건강이 빠르게 악화된다. 폐질환도 생기기 쉽고, 악취와 벌레도 많아 위생이 좋지 않다. 생을 마감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다”고 말했다.
최수현 기자
#빈소 #가족 #무연고자 #장례식장 #체감온도 #공영장례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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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없는 이의 장례식
1957년 9월 27일~2025년 12월 20일 고(故) 김00. 빈소 안내판엔 가족들의 이름 대신 ‘장 메이저릴게임사이트 례 주관: 원주의료원 장례식장, 장례지원: 원주시 공영장례 사업 지원 대상.’
이름도, 얼굴도, 생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은 처음이었다. 김씨는 재적등본에 등록된 배우자 및 직계가족이 아무도 없어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고 했다.
13일 오전 10시. 검은 정장을 차려 입고 간 원주의료원 장례식장엔 원주 릴게임몰 시자원봉사센터 소속 봉사단체 봉주르wonju와 장례식장 관계자가 고인의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의 첫 제사상이 올라왔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20일 새벽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고 했다.
원주시를 비롯한 강원도내 지자체들은 김씨와 같은 무연고 사망자들의 공영 장례를 지원하는 조례를 2023년부터 제정해 지원 중이다. 2021년 장사법이 개정되면서 지자체가 무연고 시신 등을 처리하는 경우 장례의식 등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하도록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임시 상주로서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렸다. 무연고자의 장례는 2일상으로 치러진다. 이미 입관은 끝난 뒤였다. 오랜 시간 안치된 시신이고, 무연고자라 따로 입관식을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동희 원주자원봉사센터 이사는 “봉사자들도 바쁘다 보니 보통 첫상 인사만 드리고 떠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오늘은 지키는 사람이 있어 김 씨는 세 끼를 다 먹게 되겠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쓸쓸했을 김 씨의 곁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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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손님을 맞이해야 할 빈소 입구 부의함과 접수대는 텅 빈 의자와 빈 책상만이 자리를 지켰다. 1층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빈소 덕에 이따금 앞을 지나는 손님들이 얼굴 없는 안내판을 유심히 쳐다보다 발길을 이어갈 뿐이었다. 빈소 내 움직임이라곤 조용히 타들어가다 툭하고 떨어지는 향 잿가루와 흔들리는 촛불빛이 전부였다.
김 씨의 빈소에서부터 하얀 국화꽃 화환이 길을 이은 옆 호실에선 불경을 읊는 소리, 힘껏 흔드는 종소리, 조문객들의 말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빈소 앞 안내판에는 고인의 웃는 사진 옆으로 자, 부녀자, 손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혀 빼곡히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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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경기 군포 출신으로,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마트 직원, 환경공무직 등으로 일을 하다 4년 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일을 그만뒀다. 4개월 전 병원으로부터 수십 일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사형선고’를 듣고 원주로 왔다.
이 씨도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혼자 병치레를 할 김씨를 위해 원주에서 함께 살 것을 제안했다고 했다. 이 씨의 보살핌으로 군포와 원주를 오갈 만큼 병이 호전됐으나, 12월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결국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했다.
이 씨 덕에 김씨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다. 사진 속 검붉은색 스웨터를 입은 김 씨는 날렵한 얼굴형에 짧은 스포츠머리, 높게 솟은 눈썹 산, 쌍커풀 없는 부드러운 눈을 가진 평범한 얼굴이었다. 튼 입술 사이 번지고 있는 은은한 미소와 구렛나룻 주위로 삐져나온 흰머리, 이마 위 옅은 주름이 그간의 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씨는 “그동안 고마웠어요. 저도 곧 따라가니 편하게 먼저 기다리고 계세요. 이제 편하게 쉬세요. 존경합니다”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 14일 원주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씨의 빈소가 한산하기만 하다.
■ 서류상 가족이 아니라서
이 씨는 김 씨가 사망한 이후부터 김씨의 유골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고 했다. 김씨의 임종 직전 위임장도 받았지만, 보건소와 시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서류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이 씨는 “시신을 인계받기 위해서 보건소와 의료원을 수차례 오갔는데,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들었다. 가족관계는 등본에 가족이 없는 게 다 나오는데 아무도 없으면 지인이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며 “형편이 좋지 않아 장례식을 치르지 않더라도 김씨의 유언에 따라 치악산 인근에 수목장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럴수가 없어 아쉬움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사법상 직계가족이 아닌 지인도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로 연고자가 될 수 있지만, 서류상으로 고인과의 친분 입증이 어렵고,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걸림돌이 많다.
박기현 원주의료원장례식장 부대사업팀장은 “지자체를 통해 고인과 지속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장례주관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장례주관자로 지정되는 경우 장례주관자의 비용부담이 생긴다”고 말했다.
무연고자로 사망할 경우, 경찰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시청에서 고인의 가족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최소 일주일, 오래는 수십일이 걸린다. 일반 시신보다 더 부담되는 것은 이 기간동안 시신을 보관하는 안치실 비용이 하루 7만~1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최근들어 서류상 가족은 아닌데 키워주신 분의 장례를 직접 치를 수 있는지 문의가 온다. 그런 경우 시청에 가서 본인이 무연고자와 어떤 관계인지 증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증빙, 소장 제기 등 서류상 작업이 쉽지 않아서 중간에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천안과 부산 등의 경우 취약계층의 사전 장례주관자임명제를 활용하고 있다. 무연고자가 사망하기 전 자신의 장례주관자와 방식, 안치 방법 등을 직접 지정해 사망 후 신속하게 지정한 장례주관자가 고인의 상주가 돼 공영장례를 진행할 수 있다.
■ 68년의 생, 한 줌의 가루 되어
14일 아침. 김 씨의 영정사진 옆으로 놓인 밀대 양초 2개가 반쯤 타들어 가고 있을 때쯤 고인의 마지막 식사가 배달됐다. 이씨도 시간에 맞춰 김씨의 빈소를 찾았다. 김씨가 병치레를 할 때 먹고 싶어 했다며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와 함께 상에 올렸다. 잠시의 묵념.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었다.
김 씨를 배웅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안치실을 찾았다. 김씨는 약 23일간 차가운 안치실에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부디 이세상 너머에서 만큼은 따뜻히 지낼 수 있길 바랐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안치실 옆 참관실에서 염을 진행하는 가족들의 통곡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남겨진 사람들의 추모와 애도를 받는 일이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김씨의 마지막은 외롭진 않았다. 기자와 이 씨, 이 씨의 동생, 장례지도사와 운구자. 단출했지만 그의 곁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다. 무연고자의 관은 사람의 손으로 운구하는 대신, 환자 운반 이동식 침대에 실려 옮겨졌다.
원주추모공원 화장장에 도착하니 리무진과 대형 버스가 줄을 이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이날 화장 일정 2회차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정됐다. 앞선 고인들은 흰 장갑을 낀 가족들의 손에 들려 차례대로 옮겨졌다. 화장장엔 유족들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김씨의 차례가 다가왔다. 관을 실을 수 있도록 개조된 승합차에서 내린 붉은 천으로 덮인 관. 그 위에 매직으로 적힌 김 씨의 이름 석자. 이동식 침대를 타고 화장장 직원의 손에 넘겨졌다. 1번 화장로로 들어가는 김 씨의 관을 보며 목례로 그간의 생을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하늘 아래 피붙이 하나 없는 삶. 실패한 결혼, 암과 같이 깊은 상처를 남긴 고단하고 치열했던 삶이었지만, 떠나는 길 만큼은 훌훌 털어버리고 편히 갈 수 있길 바랐다.
화장은 통상 1시간~2시간 사이 마무리된다. 무연고자들은 대개 공개되는 수골 절차 없이 화장장 직원들이 수습해 지정 장소에 안치한다고 했다. 그렇게 68년의 한 생이 하얀 가루가 돼 봉안당에 안치됐다.
봉안당엔 하나의 태생과 죽음, 주인의 이름이 기록된 도자기 유골함들이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유골함 곁으로는 고인들의 환한 모습과 그 가족들이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 사이 흰 보자기로 싸인 김씨의 나무 유골함엔 주인의 흔적이 없었다.
사전에 전달받은 위치와 ‘이름 찾기 키오스크’를 통해 김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씨는 2031년 1월 14일까지 이곳에 머문다. 5년 내 연고자가 김 씨를 찾으러 오지 않으면 추모공원 안에 있는 유택 동산에 뿌려져 자연으로 돌아간다.
▲ 14일 원주추모공원에서 지인이 김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본지 최수현 기자와 함께 화장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무연고자, 당장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강원도 내 김 씨와 같이 무연고자 공영장례 지원을 받은 건수는 2024년 153건. 이틀에 한번 꼴로 한 생명이 연고자 없는 생을 마감하고 있다.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도 133명 발생했다.
당장은 곁의 이야기로 와닿지 않지만, 매년 증가하는 1인가구 추이를 보면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2022년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장래가구 추계를 보면, 2025년 강원 1인가구는 27만 3463가구, 전체 가구의 39.1%를 예상했다. 2050년엔 전체 가구 77만 7825가구 중 45.3%인 35만 2759가구가 1인가구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이미 2024년 기준 강원지역 1인가구는 27만7109가구로, 전체 가구의 39.4%를 넘어서며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김동희 원주자원봉사센터 이사는 “무연고자의 경우 경찰이 조사를 마친 뒤 담당부서에 연락을 하면 담당부서에서 민원과에 다시 공문을 보내 등본 열람 권한을 받는다. 이 과정만 최소 3일 이상 걸린다. 또 공무원들이 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연고자에게 연락을 하고 포기각서를 받는데 까지 수십 일은 걸린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위기 1인가구에 대한 사전 발견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대개 연고자들이 있다. 쓰레기집에서 발견된 분들은 거의 모든 관계가 단절된 분들이다. 쓰레기집을 특히 위기가구라 생각하는 이유는 건강이 빠르게 악화된다. 폐질환도 생기기 쉽고, 악취와 벌레도 많아 위생이 좋지 않다. 생을 마감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다”고 말했다.
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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