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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월호 기사입니다.
세상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한 해 방문객이 40만 명에 달하는 울릉도에서 독도 테마 기념품 숍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정 대표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사람이다. 도망치듯 떠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가 실패로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시기에도 사람은 변하고 또 자라는 법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1인 사업가인 한 여성의 10년간 성장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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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대신 평범한 일상에서 독도를 지키는 법
겨울바람이 유독 차갑던 12월의 어느 날, 경북 포항에서 6시간 넘게 밤배를 타고 울릉도 사동항에 닿았다. 항구의 맑은 새벽 기운을 품고 차로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저동항. 이곳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면 독도가 있다는 사이다쿨접속방법 데, 그 길목에서 찾은 빨간 벽돌 건물 앞에 도착하자 김민정 대표(46)가 “먼 걸음 하셨어요”라며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김씨가 울릉도에 독도를 테마로 기념품 숍 ‘독도문방구’를 운영한 지는 올해로 11년 차이다. 19.83㎡(6평) 남짓한 가게 안에 들어서자, 노트, 포스트잇, 엽서 등 문구류부터 모자, 양말, 릴게임꽁머니 손수건 같은 생활용품과 키 링, 마그넷, 인형 등 통통 튀는 소품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 김씨가 전문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제작한 제품으로 그 종류만 80종이 넘는다.
상품 80여 종이 비치된 독도문방구 내부.
바다이야기합법 이 조그만 매장에서 지금까지, 영문으로 ‘Dokdo’가 새겨진 스포츠 양말은 3만여 개, 독도문방구 대표 상품인 강치 인형은 2만여 개가 판매됐다. 이런 매출 규모가 가능했던 까닭은 김씨의 남다른 사업 철학에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구호를 외치는 방식이 아닌, 일상용품을 통해 평범한 일과 속에 자연스럽게 독도를 떠올릴 수 있게 하겠다 신천지릴게임 는 것. 매년 매장 물품의 3분의 1을 신상품으로 부지런히 교체하는 것도 독도와 울릉도를 보다 생생하게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독도가 한국 사람들에게 역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특별하다 보니 사업하면서 받는 호의가 커요.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 책임감을 갖고 가게를 운영하죠. 협업을 위한 사업 제안서가 열 번 중 한 번 될까 말까 해도, 반드시 된다는 생각으로 의지를 다져요.”
첫사랑 같던 영화 일 뒤로하고 낙향
김씨는 5대째 울릉도 토박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으로 내려간 이후 울릉도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울릉도행 배를 타지 않았을 만큼 고향은 그에게 벗어나고픈 곳이었다. 청정 자연이 숨 쉬는 울릉도의 풍경이 지금은 김씨에게 자부심이자 영감의 원천이지만, 섬마을 소녀였던 당시의 그에게는 갑갑하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네필(Cinephile, 영화 애호가)로 자라 영화계에서 10년 동안 몸담은 것도 문화시설이 넉넉지 않던 섬 생활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제게 ‘영화’는 그 자체로 위로였어요. 자연히 부산에서 대학 졸업 후 곧장 서울로 올라가 영화 업계에 뛰어들었죠. 지금도 영화 얘길 하면 가슴이 뛸 정도로 영화판에서 보낸 10년은 제게 첫사랑 같은 거예요. 영화 흥행 스코어에 삶이 휘청거릴 정도로 업계가 불안정하다 보니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는 일임은 일찍이 알았지만, 엔딩 크래디트에 올라온 제 이름 한 줄에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했죠.”
결국 그의 나이 서른에 서울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머니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회사 임금은 6개월간 받지 못했고, 건설회사의 부도로 김씨의 원룸 방은 경매에 넘어갔다. 연이은 악재에 김씨는 2009년, 울릉도에 남아 있는 작은 상가에서 식당을 하면 최소한 먹고는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부산에서 지내던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된 섬살이는 울릉도의 겨울 바다만큼 매서웠다. 영화관은커녕 저녁 7시 이후엔 섬 전체가 어둠에 잠겨 숨 막히게 적막한 곳. 밀린 월급과 퇴직금도 정산받지 못했기에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당시 그를 깊은 어둠 속에 몰아넣은 건 서울에서 실패해서 돌아왔다는 자격지심과 업계에서 도망쳤다는 자책감이었다.
아이의 탄생으로 시작된 세상과의 연결
서울 지인들과도 연락을 끊고, 울릉도의 옛 이웃들도 피하며 스스로 고립됐던 김씨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건 2년 뒤 울릉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첫아이를 낳게 되면서부터다. 의료시스템이 열악하고 육아용품이 넉넉지 않은 섬에서 갓난아이를 키우면서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필수였다.
김씨는 자신이 쓰고 남은 육아용품을 섬에 사는 엄마들에게 나눠주겠다는 마음으로 소규모 벼룩시장을 열었다. 울릉학생체육관에 엄마들 20여 명이 모인 그 날을 시작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지기 전까지 벼룩시작은 8년 가까이 이어졌다.
“아이 낳고 섬살이를 제대로 직면했어요.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삶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벼룩시장을 열게 된 거예요. 이젠 나도 움직여야겠다 싶었어요.”
그러한 변화의 또 하나 결실이 독도문방구다. 내 아이가 생기니 도동항 인근에서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독도 활동가들의 우렁찬 구호 소리가 달리 들려왔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부드럽고 친근하게 독도를 알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때마침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독도 탐방 활동으로 울릉도에 찾아온 학생들을 보게 됐는데 아이들을 위한 기념품 가게를 만들면 좋겠다 싶었어요. 비싸지 않은 가격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구점을 콘셉트로 잡은 것도 그래서예요.”
친환경 소재로 국내 생산하는 강치 인형.
독도에 대해 찾아보다 알게 된, 일본의 남획으로 멸종한 독도와 울릉도에서 서식하던 바다사자 ‘강치’의 이야기는 사업 방향을 구체화시켜주었다. 강치 인형에 동물보호의 가치와 함께 가슴 아픈 독도의 역사를 담아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 하지만 부푼 기대를 안고 문을 연 독도문방구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문구에 전용 디자인을 입힌 탓에 가격이 좀 더 비쌀 수밖에 없었는데 주변에선 ‘그 가격에 팔리겠냐’며 혀를 찼죠. 둘째를 낳은 후로는 육아와 가게 운영이 겹치면서 포기할까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아기띠를 메고 내일 하루만 더 나가자는 마음으로 버텼어요. 그래야 독도를 향한 새로운 목소리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더 많은 꿈을 위해 기적을 나누는 곳
김씨의 다부진 마음은 다양한 독도 관련 상품들을 모아 판매하는 편집 숍 형태로 가게를 운영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그간 자신이 만든 디자인 문구만 고집해왔던 그가 2017년, 경기 가평에 있는 청심국제중고등학교 독도 동아리 ‘해밀’에서 만든 디자인 문구를 매대에 올린 것이 계기였다.
독도문방구의 대표 기념품인 ‘Dokdo’ 스포츠 양말.
상품의 질뿐 아니라 손님들의 반응도 좋았다. 이후 전국의 각급 학교 독도 지킴이 동아리 학생들의 디자인 상품이 더해지면서 상품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자연히 김씨의 업무 부담도 줄게 됐다. 2021년 무렵, 코로나19로 국내 여행 수요가 늘어 울릉도 관광객 수가 대폭 증가하면서 독도문방구도 마침내 호황기를 맞았다. 이제 독도문방구는 울릉도 현지인이 추천하는 울릉도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2014년 독도문방구를 열 당시 썼던 첫 사업계획서를 다시 보게 됐다는 김씨. 여행 사업, 학교 대량 납품, B to B(기업간거래) 사업 등 당시 절박한 심정으로 썼던 먼 꿈들이 모두 실현돼 있었다. 지금까지 가게를 운영해온 것 자체가 기적 같다고 말하는 김씨는 이제 울릉도에서 새롭게 뿌리내린 청년들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 역할에도 힘을 싣는다. 더 많은 사람들과 자신이 경험한 기적을 나누고 싶어서다.
울릉도 ‘독도문방구’ 김민정 대표
“낯도 가리고 나서길 싫어하는 제가 독도문방구를 운영하며 여행객들에게 먼저 말도 건네고 사업 발표도 하고 로컬 창업을 앞둔 청년들 앞에서 강연도 하게 됐어요. 2026년 3월 개점을 목표로 독도문방구 2호점을 준비 중인데 앞으로 독도문방구 1, 2, 3호점을 이어가며 더 깊고 다양한 독도와 울릉도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어요.”
글 이수정 기자
세상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한 해 방문객이 40만 명에 달하는 울릉도에서 독도 테마 기념품 숍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정 대표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사람이다. 도망치듯 떠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가 실패로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시기에도 사람은 변하고 또 자라는 법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1인 사업가인 한 여성의 10년간 성장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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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이 유독 차갑던 12월의 어느 날, 경북 포항에서 6시간 넘게 밤배를 타고 울릉도 사동항에 닿았다. 항구의 맑은 새벽 기운을 품고 차로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저동항. 이곳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면 독도가 있다는 사이다쿨접속방법 데, 그 길목에서 찾은 빨간 벽돌 건물 앞에 도착하자 김민정 대표(46)가 “먼 걸음 하셨어요”라며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김씨가 울릉도에 독도를 테마로 기념품 숍 ‘독도문방구’를 운영한 지는 올해로 11년 차이다. 19.83㎡(6평) 남짓한 가게 안에 들어서자, 노트, 포스트잇, 엽서 등 문구류부터 모자, 양말, 릴게임꽁머니 손수건 같은 생활용품과 키 링, 마그넷, 인형 등 통통 튀는 소품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 김씨가 전문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제작한 제품으로 그 종류만 80종이 넘는다.
상품 80여 종이 비치된 독도문방구 내부.
바다이야기합법 이 조그만 매장에서 지금까지, 영문으로 ‘Dokdo’가 새겨진 스포츠 양말은 3만여 개, 독도문방구 대표 상품인 강치 인형은 2만여 개가 판매됐다. 이런 매출 규모가 가능했던 까닭은 김씨의 남다른 사업 철학에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구호를 외치는 방식이 아닌, 일상용품을 통해 평범한 일과 속에 자연스럽게 독도를 떠올릴 수 있게 하겠다 신천지릴게임 는 것. 매년 매장 물품의 3분의 1을 신상품으로 부지런히 교체하는 것도 독도와 울릉도를 보다 생생하게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독도가 한국 사람들에게 역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특별하다 보니 사업하면서 받는 호의가 커요.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 책임감을 갖고 가게를 운영하죠. 협업을 위한 사업 제안서가 열 번 중 한 번 될까 말까 해도, 반드시 된다는 생각으로 의지를 다져요.”
첫사랑 같던 영화 일 뒤로하고 낙향
김씨는 5대째 울릉도 토박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으로 내려간 이후 울릉도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울릉도행 배를 타지 않았을 만큼 고향은 그에게 벗어나고픈 곳이었다. 청정 자연이 숨 쉬는 울릉도의 풍경이 지금은 김씨에게 자부심이자 영감의 원천이지만, 섬마을 소녀였던 당시의 그에게는 갑갑하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네필(Cinephile, 영화 애호가)로 자라 영화계에서 10년 동안 몸담은 것도 문화시설이 넉넉지 않던 섬 생활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제게 ‘영화’는 그 자체로 위로였어요. 자연히 부산에서 대학 졸업 후 곧장 서울로 올라가 영화 업계에 뛰어들었죠. 지금도 영화 얘길 하면 가슴이 뛸 정도로 영화판에서 보낸 10년은 제게 첫사랑 같은 거예요. 영화 흥행 스코어에 삶이 휘청거릴 정도로 업계가 불안정하다 보니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는 일임은 일찍이 알았지만, 엔딩 크래디트에 올라온 제 이름 한 줄에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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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방구의 대표 기념품인 ‘Dokdo’ 스포츠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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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독도문방구’ 김민정 대표
“낯도 가리고 나서길 싫어하는 제가 독도문방구를 운영하며 여행객들에게 먼저 말도 건네고 사업 발표도 하고 로컬 창업을 앞둔 청년들 앞에서 강연도 하게 됐어요. 2026년 3월 개점을 목표로 독도문방구 2호점을 준비 중인데 앞으로 독도문방구 1, 2, 3호점을 이어가며 더 깊고 다양한 독도와 울릉도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어요.”
글 이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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