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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콘 라디오라는 선택
하우스콘서트에만 20년 이상 발을 담그고 있다 보니, 내가 하콘을 닮아간 것인지, 아니면 결이 같아서 이토록 오래 머물게 된 것인지 종종 헷갈린다. 예전에는 당연히 전자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곳곳에 조금씩 나의 색이 덧입혀진 하콘을 보며, 이 만남이 처음부터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밤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잠들었다. 라디오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이 흐르면 공테이프를 넣고 재빠르게 녹음 버튼을 눌렀고, 테이프가 늘어지면 냉동실에 넣어 되살려보기도 했다. 바다이야기합법 편지를 쓰면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고 친구의 답장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런 느린 시대를 살아간 것을 나는 무척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출처. pixabay
지금 돌이켜보면 결코 편리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릴게임하는법 는 언제나 그 불편함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스트리밍 시대에도 CD를 꺼내 듣고(곧 LP까지 손대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콘을 후원해 주시는 100여 명의 관객께 선물을 보낼 때도 손편지를 고수하는(직원들의 눈초리가 따가워 진희 매니저와 둘이 손이 빠지도록 썼다) 식이다.
골드몽사이트그런 감수성을 지닌 내가 하콘과 만났으니, 서로 닮아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합류 후 첫 10년은 하콘이라는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놀고, 배우고,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콘이라는 큰 그릇에 나도 조금씩 색을 더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하콘 라디오의 시작
2015년 무렵이었다. 황금성사이트 몇 년 전부터 관객과의 소통 방식에 서서히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고, 기존 방식만으로는 무언가 한계가 느껴졌다. 그동안 하콘은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교감해왔다. 공연 안내메일을 받은 관객이 회신을 보내오거나, 홈페이지 게시판에 스스럼없이 일상의 글을 남기며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SNS가 소통의 중심이 되면서 이전의 방식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바다이야기5만 물론 SNS는 훌륭한 홍보 채널이었지만, 그 특성상 관객과의 직접적인 스킨십이 줄어들고 있었고, 하콘의 온기를 담당해온 ‘아날로그 대사’로서 나는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관객이 하콘을 하나의 ‘주체’로 여기고 교감해 온 하콘의 고유의 정체성이 조금씩 흐려지는 듯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흐름을 인정하더라도 하콘다운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 수는 없을까. 방법이 반드시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떠올린 것이 바로 ‘하콘 라디오’였다. 학창 시절, 밤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키득거리던 그 시간처럼, 누군가 우리의 소식을 들으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 오래된 상상을 현실로 옮겨본 것이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19/ked/20251219140952582qusp.jpg" data-org-width="1000" dmcf-mid="Uvhb1UrNl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9/ked/20251219140952582qusp.jpg" width="658">
영화 <써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첫 방송의 설렘과 실험들
그 당시 클래식 음악계에서의 팟캐스트는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거의 없었다. 어깨너머 참고할 만한 사례조차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설렘 속에서, 하콘의 라디오는 2015년 12월 29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가볍고 편안한 방송을 목표로 했지만, 지금 첫 방송을 다시 들어보면 어떻게 저렇게까지 편하게 했을까 싶다. <2015년 연말 결산 늬우스>라는 이름으로 올린 당시 방송에는 그해 하콘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과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는데, 특히 각 에피소드에 붙인 음악이 가관이었다.
대학로로 공간을 옮긴 후 피아노 다리가 부러졌던, 잊고 싶은 사고를 이야기하며 피아졸라의 ‘망각’을, 여름 페스티벌의 강렬한 기억을 전하며 조혜영 작곡가의 ‘못 잊어’를 선곡했다. 사무실 화재 사건에는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를 선곡해 청취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라디오는 이후로도 재기발랄한 이야기와 선곡을 이어가며 조금씩 다듬어지고 발전했다. 이름도 ‘소심한 라디오’에서 ‘소심음감(소소하고 심도있는 음악 감상실)’으로 바뀌며 정체성을 갖춰갔다. 모든 음악을 하콘의 실황 음원으로 선곡한 것도 중요한 지점이었다. 당시에는 유튜브 생중계가 없었고, 하콘 실황 음반 발매도 중단된 상황이었기에 늘 정성껏 기록해 온 하콘의 실황 음원들은 라디오라는 새로운 통로에서 다시 생명을 얻었다.
비올리스트 이승원의 초대석 / 사진제공. ©강선애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 초대석
한편으로 클래식 FM처럼 많은 이들이 듣는 라디오를 꿈꾸고 있었던 걸까. 나는 하콘 라디오 8회차 만에 연주자 초대석을 마련하며 음악가들의 생각을 듣고 나누기 시작했다. 첫 게스트인 피아니스트 김태형을 시작으로 김선욱, 문지영을 비롯해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인 이경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피아니스트 김대진 등 굵직한 음악가들이 이 자리에 함께해 주었다.
처음에는 가볍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 철학과 삶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는 자리로 발전했다.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던 연주자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청취자들은 공감했고, 유튜브 생중계가 더해지며 ‘보이는 라디오’와 같은 매력도 생겼다.
하지만 초대석을 진행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120%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만큼, 더욱 치열하게 자료를 찾아보고,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질문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어떤 날은 공연 하나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음악가가 아닌 내가 질문을 던진다는 점도 늘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어떤 날은 마음에 드는 방송이 되어 벅차오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오래 남아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 모든 시간 덕분일까. 지금의 나는 여전히 음악가는 아니지만, 이들의 삶과 생각을 이전보다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연주자들이 귀한 시간을 내어 하콘 라디오에 찾아와 준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피아니스트 김대진과의 초대석 / 사진제공. ©강선애
10년의 기록, 또 다른 시작 앞에서
2015년 첫 방송 이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하콘의 라디오는 하콘의 소식을 가장 먼저, 가장 자세하게 전하는 창구였고, 관객과 교감하는 자리였으며, 초대석을 통해 연주자들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디오만 있던 팟캐스트로 시작해 페이스북 라이브를 거쳐 유튜브 생중계로 이어진 변화는, 그 자체로 하콘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사이 비슷한 프로그램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하콘의 라디오 <소심음감>은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다.
10년을 넘어서며 <소심음감>도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와 있음을 느낀다. 변화와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하콘처럼, 우리의 라디오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 변화의 흐름 앞에서도 하콘만의 온기를 전하고자 하는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다. 10년 전, “사실 이런 꿈을 꾸고 있어.”라고 툭 던진 아이디어를 품어준 동료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내가 새로 꾸는 꿈에도 발맞춰줄 사람들의 온기를 믿는다.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마음속에 문장을 하나 적는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
하우스콘서트에만 20년 이상 발을 담그고 있다 보니, 내가 하콘을 닮아간 것인지, 아니면 결이 같아서 이토록 오래 머물게 된 것인지 종종 헷갈린다. 예전에는 당연히 전자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곳곳에 조금씩 나의 색이 덧입혀진 하콘을 보며, 이 만남이 처음부터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밤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잠들었다. 라디오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이 흐르면 공테이프를 넣고 재빠르게 녹음 버튼을 눌렀고, 테이프가 늘어지면 냉동실에 넣어 되살려보기도 했다. 바다이야기합법 편지를 쓰면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고 친구의 답장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런 느린 시대를 살아간 것을 나는 무척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출처. pixabay
지금 돌이켜보면 결코 편리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릴게임하는법 는 언제나 그 불편함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스트리밍 시대에도 CD를 꺼내 듣고(곧 LP까지 손대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콘을 후원해 주시는 100여 명의 관객께 선물을 보낼 때도 손편지를 고수하는(직원들의 눈초리가 따가워 진희 매니저와 둘이 손이 빠지도록 썼다) 식이다.
골드몽사이트그런 감수성을 지닌 내가 하콘과 만났으니, 서로 닮아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합류 후 첫 10년은 하콘이라는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놀고, 배우고,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콘이라는 큰 그릇에 나도 조금씩 색을 더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하콘 라디오의 시작
2015년 무렵이었다. 황금성사이트 몇 년 전부터 관객과의 소통 방식에 서서히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고, 기존 방식만으로는 무언가 한계가 느껴졌다. 그동안 하콘은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교감해왔다. 공연 안내메일을 받은 관객이 회신을 보내오거나, 홈페이지 게시판에 스스럼없이 일상의 글을 남기며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SNS가 소통의 중심이 되면서 이전의 방식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바다이야기5만 물론 SNS는 훌륭한 홍보 채널이었지만, 그 특성상 관객과의 직접적인 스킨십이 줄어들고 있었고, 하콘의 온기를 담당해온 ‘아날로그 대사’로서 나는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관객이 하콘을 하나의 ‘주체’로 여기고 교감해 온 하콘의 고유의 정체성이 조금씩 흐려지는 듯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흐름을 인정하더라도 하콘다운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 수는 없을까. 방법이 반드시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떠올린 것이 바로 ‘하콘 라디오’였다. 학창 시절, 밤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키득거리던 그 시간처럼, 누군가 우리의 소식을 들으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 오래된 상상을 현실로 옮겨본 것이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19/ked/20251219140952582qusp.jpg" data-org-width="1000" dmcf-mid="Uvhb1UrNl8"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9/ked/20251219140952582qusp.jpg" width="658">
영화 <써니>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첫 방송의 설렘과 실험들
그 당시 클래식 음악계에서의 팟캐스트는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거의 없었다. 어깨너머 참고할 만한 사례조차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설렘 속에서, 하콘의 라디오는 2015년 12월 29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가볍고 편안한 방송을 목표로 했지만, 지금 첫 방송을 다시 들어보면 어떻게 저렇게까지 편하게 했을까 싶다. <2015년 연말 결산 늬우스>라는 이름으로 올린 당시 방송에는 그해 하콘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과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는데, 특히 각 에피소드에 붙인 음악이 가관이었다.
대학로로 공간을 옮긴 후 피아노 다리가 부러졌던, 잊고 싶은 사고를 이야기하며 피아졸라의 ‘망각’을, 여름 페스티벌의 강렬한 기억을 전하며 조혜영 작곡가의 ‘못 잊어’를 선곡했다. 사무실 화재 사건에는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를 선곡해 청취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라디오는 이후로도 재기발랄한 이야기와 선곡을 이어가며 조금씩 다듬어지고 발전했다. 이름도 ‘소심한 라디오’에서 ‘소심음감(소소하고 심도있는 음악 감상실)’으로 바뀌며 정체성을 갖춰갔다. 모든 음악을 하콘의 실황 음원으로 선곡한 것도 중요한 지점이었다. 당시에는 유튜브 생중계가 없었고, 하콘 실황 음반 발매도 중단된 상황이었기에 늘 정성껏 기록해 온 하콘의 실황 음원들은 라디오라는 새로운 통로에서 다시 생명을 얻었다.
비올리스트 이승원의 초대석 / 사진제공. ©강선애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 초대석
한편으로 클래식 FM처럼 많은 이들이 듣는 라디오를 꿈꾸고 있었던 걸까. 나는 하콘 라디오 8회차 만에 연주자 초대석을 마련하며 음악가들의 생각을 듣고 나누기 시작했다. 첫 게스트인 피아니스트 김태형을 시작으로 김선욱, 문지영을 비롯해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인 이경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피아니스트 김대진 등 굵직한 음악가들이 이 자리에 함께해 주었다.
처음에는 가볍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 철학과 삶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는 자리로 발전했다.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던 연주자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청취자들은 공감했고, 유튜브 생중계가 더해지며 ‘보이는 라디오’와 같은 매력도 생겼다.
하지만 초대석을 진행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120%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만큼, 더욱 치열하게 자료를 찾아보고,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질문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어떤 날은 공연 하나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음악가가 아닌 내가 질문을 던진다는 점도 늘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어떤 날은 마음에 드는 방송이 되어 벅차오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오래 남아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 모든 시간 덕분일까. 지금의 나는 여전히 음악가는 아니지만, 이들의 삶과 생각을 이전보다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연주자들이 귀한 시간을 내어 하콘 라디오에 찾아와 준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피아니스트 김대진과의 초대석 / 사진제공. ©강선애
10년의 기록, 또 다른 시작 앞에서
2015년 첫 방송 이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하콘의 라디오는 하콘의 소식을 가장 먼저, 가장 자세하게 전하는 창구였고, 관객과 교감하는 자리였으며, 초대석을 통해 연주자들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디오만 있던 팟캐스트로 시작해 페이스북 라이브를 거쳐 유튜브 생중계로 이어진 변화는, 그 자체로 하콘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사이 비슷한 프로그램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하콘의 라디오 <소심음감>은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다.
10년을 넘어서며 <소심음감>도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와 있음을 느낀다. 변화와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하콘처럼, 우리의 라디오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 변화의 흐름 앞에서도 하콘만의 온기를 전하고자 하는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다. 10년 전, “사실 이런 꿈을 꾸고 있어.”라고 툭 던진 아이디어를 품어준 동료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내가 새로 꾸는 꿈에도 발맞춰줄 사람들의 온기를 믿는다.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마음속에 문장을 하나 적는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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