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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림 기자]
▲ 촬영중인 코메일 소헤일리 이란 감독. 그의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은 아내 김주영 감독과 같이 만든 2025년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2025년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작이자, 같은 해의 제16회 부산평화영화제 평화에 진심상 수상작이다. 그에게 영화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믿고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안내서와 같다.
손오공게임
ⓒ 코메일 소헤일리
"한국과 서구 언론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란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코메일 소헤일리(Komeil Soheili)는 바다신2 다운로드 그렇게 제보를 보내왔다. 메시지 속 그는 분명하고 단호했다. 그러나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예상과 달랐다. 유순한 인상에 부드러운 미소, 조용한 말투를 가진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귀화해 한국인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그는, 한국어도 가능했지만 "영어가 더 편하다"며 대화를 이어갔다.
소헤일리는 이란에서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해 골드몽사이트 왔고, 현재는 한국에서 영화를 가르치며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란을 다룬 작품뿐 아니라, 소성리 사드(THAAD)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삶을 담은 <잊혀진 마을>,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의 생태 파괴 문제를 다룬 <종이 울리는 순간> 등 한국 사회의 민감한 정치·사회적 현장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우리가 만난 날은 마침 이란에 릴게임방법 서 대규모 시위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그의 눈은 유난히 촉촉해 보였다. 한동안 시선을 맞추기 어려웠다. 계속 바라보다가는 나 역시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남 이후인 1월 29일, 서면으로 추가 질의 응답을 받았다.
- 이란을 떠난 한국에 사는 이유는?
"저는 이란에서 더 이상 살 수 없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저는 이란 '밖'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느꼈고, 그래서 지난해 다시 이란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극적인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항상 이란에서 살고, 이란에서 죽을 것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이란으로 돌아가 몇 달을 살았습니다. 다만 여러 사정,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에서의 일자리 제안 때문에 다시 한국에 머물기로 결정했고, 대신 이란을 자주 오가며 지낼 계획입니다."
- 이란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이란에서 사는 것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영화감독으로서 저는 이란에서 영화를 만들 때 더 책임감을 느끼고,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 년간 이란을 여행하고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란은 결코 살기 쉬운 곳이 아닙니다. 이란의 정치 체제는 자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반복해서 잘못된 선택을 해왔고, 국가와 시민 사이의 간극은 단기 방문자조차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제재, 부패, 구조적 문제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체류하던 기간 중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실제 혼란 상태가 됐고, 저는 한국 정부가 마련한 계획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이란을 떠나야 했습니다. 원래는 임시 체류였지만, 한국에서의 대학 강의와 영화 상영 기회가 생기면서 당분간 한국에 머물기로 했고, 이란은 계속 오갈 생각입니다."
- 귀화를 하게 된 결심은?
"귀화는 행정적인 문제에 가깝습니다. 저는 한국의 문화와 현대사를 배우고 싶고, 동시에 이란의 문화와 역사를 한국과 국제사회에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국적과 상관없이 이 목표는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란 국적자로서 제재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한국에서도 무례와 차별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그런 행정적 부담이 줄어든다면 삶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각은.
"이란의 민주화 운동은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연속된 역사입니다. 1905~1911년 입헌혁명에서 시작해, 1951년 모사데그 총리의 석유 국유화와 1953년 미·영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의 좌절, 2009년 녹색운동, 2022~2023년 '여성·삶·자유' 운동, 그리고 2026년 최근 시위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해외 언론은 이를 단순한 반정부 소요로 축소하거나, 동서 냉전의 대리전처럼 소비합니다. 이는 피를 흘린 사람들에게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단순화는 쉽지만 위험합니다. 코로나 시기 전 세계에서 동아시아인들이 차별받았던 것처럼, 복잡한 요구를 슬로건으로 축소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합니다. 다만 시위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세속 국가, 민주적 통치, 경제 개선, 세계와의 개방을 원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이란은 물 부족, 취약한 지정학적 위치 같은 장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통치자의 이름만 바꾸는 논의는 위험합니다. 지혜로운 결정과 시민 존중이 없다면, 환경과 삶의 조건은 계속 악화될 것입니다."
- 한국 언론이 다루는 이란 보도에 대해?
"한국의 주요 언론은 정부 재정에 크게 의존하며, 이란 보도에서 '서방은 옳고 중국은 틀리다'는 구도를 반복하고, 이스라엘의 시각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란 방문 당시 강제 히잡 착용을 '문화 존중'으로 묘사한 사례, 친이스라엘 집회는 크게 다루고 친팔레스타인 시위는 외면하는 보도들이 그 예입니다. 이는 오해를 심화시키고, 이란인의 목소리를 지웁니다. 현지 전문가가 아닌 인플루언서를 '내부자'처럼 쓰는 관행도 문제입니다.
이란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역사적 맥락이 필요합니다. 유관순 열사가 기억되는 이유는 한국이 독립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 이란에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젊은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역사 속에 묻혔습니다. 그들의 목소리 역시 기억돼야 합니다."
"그들이 틀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란이 아직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헤일리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특정 국가나 언론만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해온 사람들의 역사를 단순한 소음이나 지정학적 도구로 소비하는 시선 자체였다. 그의 말은 격렬하지 않았지만, 오래 남았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처럼 빠른 해답 대신,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조용히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 촬영중인 코메일 소헤일리 이란 감독. 그의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은 아내 김주영 감독과 같이 만든 2025년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2025년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작이자, 같은 해의 제16회 부산평화영화제 평화에 진심상 수상작이다. 그에게 영화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믿고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안내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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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헤일리는 이란에서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해 골드몽사이트 왔고, 현재는 한국에서 영화를 가르치며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란을 다룬 작품뿐 아니라, 소성리 사드(THAAD)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삶을 담은 <잊혀진 마을>,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의 생태 파괴 문제를 다룬 <종이 울리는 순간> 등 한국 사회의 민감한 정치·사회적 현장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우리가 만난 날은 마침 이란에 릴게임방법 서 대규모 시위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그의 눈은 유난히 촉촉해 보였다. 한동안 시선을 맞추기 어려웠다. 계속 바라보다가는 나 역시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남 이후인 1월 29일, 서면으로 추가 질의 응답을 받았다.
- 이란을 떠난 한국에 사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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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사는 것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영화감독으로서 저는 이란에서 영화를 만들 때 더 책임감을 느끼고,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 년간 이란을 여행하고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란은 결코 살기 쉬운 곳이 아닙니다. 이란의 정치 체제는 자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반복해서 잘못된 선택을 해왔고, 국가와 시민 사이의 간극은 단기 방문자조차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제재, 부패, 구조적 문제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체류하던 기간 중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실제 혼란 상태가 됐고, 저는 한국 정부가 마련한 계획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이란을 떠나야 했습니다. 원래는 임시 체류였지만, 한국에서의 대학 강의와 영화 상영 기회가 생기면서 당분간 한국에 머물기로 했고, 이란은 계속 오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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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각은.
"이란의 민주화 운동은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연속된 역사입니다. 1905~1911년 입헌혁명에서 시작해, 1951년 모사데그 총리의 석유 국유화와 1953년 미·영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의 좌절, 2009년 녹색운동, 2022~2023년 '여성·삶·자유' 운동, 그리고 2026년 최근 시위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해외 언론은 이를 단순한 반정부 소요로 축소하거나, 동서 냉전의 대리전처럼 소비합니다. 이는 피를 흘린 사람들에게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단순화는 쉽지만 위험합니다. 코로나 시기 전 세계에서 동아시아인들이 차별받았던 것처럼, 복잡한 요구를 슬로건으로 축소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합니다. 다만 시위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세속 국가, 민주적 통치, 경제 개선, 세계와의 개방을 원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이란은 물 부족, 취약한 지정학적 위치 같은 장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통치자의 이름만 바꾸는 논의는 위험합니다. 지혜로운 결정과 시민 존중이 없다면, 환경과 삶의 조건은 계속 악화될 것입니다."
- 한국 언론이 다루는 이란 보도에 대해?
"한국의 주요 언론은 정부 재정에 크게 의존하며, 이란 보도에서 '서방은 옳고 중국은 틀리다'는 구도를 반복하고, 이스라엘의 시각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란 방문 당시 강제 히잡 착용을 '문화 존중'으로 묘사한 사례, 친이스라엘 집회는 크게 다루고 친팔레스타인 시위는 외면하는 보도들이 그 예입니다. 이는 오해를 심화시키고, 이란인의 목소리를 지웁니다. 현지 전문가가 아닌 인플루언서를 '내부자'처럼 쓰는 관행도 문제입니다.
이란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역사적 맥락이 필요합니다. 유관순 열사가 기억되는 이유는 한국이 독립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 이란에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젊은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역사 속에 묻혔습니다. 그들의 목소리 역시 기억돼야 합니다."
"그들이 틀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란이 아직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헤일리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특정 국가나 언론만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해온 사람들의 역사를 단순한 소음이나 지정학적 도구로 소비하는 시선 자체였다. 그의 말은 격렬하지 않았지만, 오래 남았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처럼 빠른 해답 대신,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조용히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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