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정상.


가을과 겨울이 겹치는 계절,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것들로 가득하다. 나뭇잎 우수수 떨어지는 산길에는 바스락바스락 밟히는 소리뿐. 봄에서 가을까지 길지 않았던 나무들의 시간, 그리움과 헤어져야 하는 것은 사람들과 닮아 있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놀던 물고기와 여름내 마주했던 곤충들과 풀벌레 소리도 사라졌다. 텃새들과 산짐승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쓸쓸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속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가산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해발 902m, 팔공산(1,192m) 서쪽 산줄기 끝자락에 있는 갓산, 가산으로 가장 릴게임한국 자리를 뜻하는 산 이름. 한자 '가산架山'은 음을 빌린 것이다. 2023년 12월 국립공원이 된 팔공산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등산로가 완만하고 산성과 숲길이 어우러져 근교 산행에 안성맞춤이다. '가팔환초'로 불리는 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을 잇는 40여 ㎞ 종주 산행의 출발지다.
이 무렵에는 흩날리는 낙엽을 밟으며 구불구불 우주전함야마토게임 산자락 휘감아 도는 산성길 걸으면 계절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팔공산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출발해 임도를 따라 정자 쉼터, 산성 동문, 가산바위, 중문, 가산 정상, 능선길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 치키봉을 내려서 탐방지원센터로 되돌아오는 데 7㎞ 정도 4시간 30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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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마을 터.


단풍 따라 걷는 산성 길
아침 8시쯤 가산산성 팔공산국립공원 입구(동문 3.2·진남문 0.4·휴게정자 0.9km)에는 아직 어둠이 덜 걷힌 듯 네온사인 불빛이 남아 있다. 전광판에 뜬 기온은 7℃인데 춥고 손이 시리다. 내 바다이야기사이트 륙지역은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돌길을 걸어가는데 왼쪽 계곡에는 물소리 졸졸졸, 신갈·쪽동백·산뽕·진달래·생강·비목·밤·노린재·소나무. 여기저기 커다란 바위가 울뚝울뚝 솟아 있고 공중으로 쏴 소리 내며 한바탕 일진광풍이 지나간다. 나무 꼭대기를 마구 흔들어댄다. 산길에는 미처 단풍 들지 못한 나뭇잎이 생채기 되어 무더기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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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바위.


오전 8시 30분 임도합류 지점(동문 2.7·진남문 0.9/2.1·윗산당마을 6.7km), 굴참나무, 철쭉 이파리는 찬바람에 다 오그라들었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올라갈수록 바람이 차고 울긋불긋 단풍이 많이 들었다. 노란색 비목나무, 연록색 신갈·굴참나무, 당단풍나무는 노란색부터 붉은색까지 형형색색의 스펙트럼, 귀티 나는 빛깔이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주인공이 당단풍인데 황홀한 빛으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쪽동백나무 넓은 이파리는 구멍이 송송 뚫려 여름철 동안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단풍이 곱게 든다. 올해는 불볕더위가 기세를 부렸고 추석 무렵부터 20일 넘게 비가 내렸으니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단풍의 절정은 50% 이상 물들 때를 기준으로 하는데 10년 전에 비해 5일 정도 늦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악산은 10월 말, 팔공산 일대는 11월 초순 무렵이 절정기다.
오전 9시 임도 쉼터(동문 넓은길 0.7·진남문 3.8/2.9·윗산당마을 4.9km)에서 10분쯤 오르니 복수초 군락지는 산성마을 집터 분위기다. 이 구간은 당단풍·신갈·생강나무들이 우점종이다. 산꼭대기에 물이 졸졸 흐르는데 산성의 수문水門 터(진남문 3.6/4.5·중문 0.6·윗산당마을 4.2·가산바위 1.5·용바위 0.8·유선대 0.7·한티재 5.4km)에 선다. 빨간 깍지 열매를 매단 노박덩굴 이파리는 곱게 물들어 노랗다. 동쪽으로 도덕산이 옆에 섰고, 멀리 대구시가지는 흐리게 다가온다. 산성 주변을 걷는 것도 즐거운데 곳곳에 붉은 열매와 단풍이 진한 회잎나무, 자세히 보니 날개가 있어서 화살나무다. 물이 넘치고 산 아래 멀리 조망이 쉬운 천혜의 성터다. 산성은 남한에만 1,200개가량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산성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적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험준한 절벽과 높은 봉우리를 낀 분지,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연못, 축성에 필요한 바위나 단단한 돌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산산성은 험준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 후기 축성기법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산성으로 한양도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성곽城廓이다.



진남문.


오전 9시 40분 갈림길(가산바위 1.1·용바위 0.4·유선대 0.6·동문 0.8km)에서 가산바위 쪽으로 걷는다. 층층나무를 만나니 오른쪽 숲속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영화에 나올 듯한 분위기, 이 산꼭대기 우거진 숲속에 저수지가 있다니 별유천지 아닌가? 햇살을 머금은 억새의 이삭들은 바람이 지날 때마다 속삭이듯 사르르 소리를 낸다. 가을 들녘처럼 흔들리는 자연의 모습들, 통칭해서 들국화로 부르는 산국, 구절초, 취꽃. 수국은 군락을 이루어 아직도 푸르다. 하늘로 올라가는 듯 직선으로 뻗은 낙엽송 조림지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속삭이는 억새와 가산바위 전설
잠시 후 중문 갈림길(가산바위 0.5·남포루 1.1·진남문 5.6·동문 0.8·윗산당마을,산당저수지 3.2km)지나 곧장 500m 지점에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안내판을 바라보다 철제 사다리로 올라간다. 멀리 대구시가지와 광활한 산줄기, 도덕산, 앞산, 비슬산, 낙동강, 가야산, 구미, 금오산, 냉산, 황악산, 속리산, 상주, 백두대간, 뒤로 돌아보면 소백산 자락, 낙동정맥 줄기,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요새 가산바위(동문 1.4·서문 0.6·계정사 2.6km)에 닿는다. 발아래 20m 넘는 아찔한 절벽이지만 평평한 너럭바위다. 이 척박한 곳의 화살나무와 층층나무잎은 추위에 시달린 듯 두껍다. 얼추 수백 명가량 앉을 만큼 넓은 바위는 산성에서 가장 높은 망루인 셈이다. 서북쪽으로 곽재우 장군이 왜병을 물리친 천생산과 6·25전쟁 당시 대구 사수의 격전지였던 유학산이 바로 옆에 있다.



동문 성터.


"어떤 장사가 금강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산을 지나면서 주머니에 있던 돌을 하나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가산바위가 됐다" 는 것. "바위 가운데 큰 구멍은 신라 고승 도선이 쇠로 만든 소·말의 형상을 묻어 지기를 눌러놓았는데 성을 쌓으면서 없애버렸다"고 한다. 가산바위 쪽은 다소 완만하지만 북서쪽의 가산 정상은 절벽이다. 바위와 돌이 많은 남쪽 등산로 주변 골짜기는 화강암이 아래로 흘러내린 암괴류巖塊流 지대. 강물이 흘러가는 것 같아 돌강으로 부르기도 한다. 부채꼴로 비탈에 쌓인 돌 더미를 애추崖錐talus, 산 정상이나 지표에 노출된 암괴 지형이 토르tor다. 비슬산, 관악산 정상이 대표적이다. 남포루로 가다 되돌아서서 중문, 가산으로 걷는다. 올라올 때 바라보던 산중의 저수지는 왼쪽에 두고 부지런히 간다. 멀리서 보면 억새 길은 하얀 비단이 산허리를 감싸안은 듯 부드럽고 가까이 다가서면 줄기마다 묵직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계절이 지나는 자리에 억새는 그저 고요히 흔들릴 뿐이다.
오전 10시 40분, 해발 902m 가산架山(용바위 0.1·유선대 0.2·동문 0.7·가산바위 1.4km)에 도착한다. 가산바위에서 30분, 용바위 갈림길에서 5분 거리다. 저 멀리 팔공산 정상 비로봉과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발아래 북창, 군위 한밤마을, 오른쪽 도덕산 너머 멀리 흐릿한 도시, 구불구불한 능선을 따라 산성은 복원했는데 외곽으로 길게 움푹 파인 것이 해자垓子처럼 보인다. 정상은 밋밋해서 볼품없지만 바로 밑에는 깎아지른 돌출바위 유선대, 북쪽으로 용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니 긴장감이 떨어지나 능선길 내려서 뒤돌아보면 바위와 단풍이 어우러져 볼 만하다. 사람들은 산성 때문에 가산바위는 알지만 가산은 잘 모른다. 가산은 일곱 개 골짜기와 봉우리가 있어 칠곡七谷, 칠봉산七峰山으로도 불렸다. 칠곡漆谷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옻나무의 유래는 확실치 않은 듯하다.



가산산성과 치키봉, 노을빛 들녘
인조 무렵 시작된 가산산성이 영조 때 완공되면서 성주목 팔거현이 칠곡도호부가 되고 의성·군위·의흥·신령·하양·경산 지역이 군사적으로 이 산성에 예속되었다. 약 11km 석축 산성으로 사적지다.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것이지만 정작 한국전쟁 때 격전지로 알려졌다. 오전 11시경 능선 따라 걷는데 마치 성 위를 걷는 듯하다. 갈림길(한티재 5.3·동문 0.2·유선대 0.7·용바위 0.6km)로 내려서니 울긋불긋 단풍과 하얀 바위산이 어우러진 가산 꼭대기 풍경은 이내 나무에 가려졌다. 신갈·쪽동백·생강나무 산길에는 바위들이 불뚝불뚝 솟아 있다.
능선길 불어오는 찬바람에 왼쪽으로 머리를 숙이고 간다. 날아간 모자를 주우려다 실족 사고가 잦으므로 바람 불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오전 11시 15분 갈림길(동문 1·한티재 4·치키봉 0.9km), 은빛 억새는 찬바람에 드러눕고 우리는 시린 뺨을 만지며 곧장 한티재 방향으로 간다. 나뭇가지에 걸린 '비실이 부부' 리본을 뒤로하고 금실 좋은 부부를 닮았다는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 선돌이다. 이 능선길 다시 걷는 데 10년은 더 됐다. 흙과 낙엽, 나무가 섞인 냄새가 참 좋다. 숲의 향기 피톤치드phytoncide와 섞인 흙냄새 페트리커Petrichor 방향芳香이다.
오전 11시 30분 가산의 동쪽 봉우리, 해발 757m 치키봉(한티재 3.2·동문 1.9km)에 올랐다. 은해사에서 시작한 팔공산 종주산행 때 해원정사로 내려갔던 구간이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붙인 이름으로 여길 수 있으나 산세가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를 고르는 키와 닮아서 '치키봉'이다. 여기서 능선길 바로 가면 한티재, 팔공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바람 불며 요란하더니 남쪽 기슭으로 내려서면서 사방이 조용하다.
낙엽 밟는 소리만 사각사각, 신갈·서어·철쭉·진달래·생강나무. 12시 15분 공원 입구 주차장으로 되돌아왔다. 진남문을 잠시 둘러보다 남원동마을로 내려와 청국장에 막걸리 한 잔 기울인다. 들녘의 억새는 노을빛과 뒤섞여 물결처럼 일렁인다. 계절이 지나가는 이곳에도 누운 햇살은 유리창을 물들이고 있다.
산행길잡이
가산산성 탐방지원센터 주차장 ~ 등산로(돌길, 임도) ~ 정자 쉼터 ~ 산성 동문 ~ 가산바위 ~ 중문 ~ 가산 정상 ~ 팔공산 능선길 ~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 ~ 치키봉 ~ 등산로(임도) 합류 ~ 가산산성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원점회귀) ※ 대략 7㎞, 4시간 30분 정도, 주차장 입구 화장실, 먼지떨이기(아래쪽) 있음.
교통
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칠곡IC,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 중앙고속도로 가산IC
※ 내비게이션 → 가산산성 주차장(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625-1), 가산산성 남문 공영 주차장(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산1-1)
숙식
팔공산 및 대구광역시 일대에 호텔·모텔·펜션, 다양한 식당 많음.
주변 볼거리
진남문, 송림사, 파계사, 제2석굴암, 한밤마을, 한티재, 한티성지, 가산산성 야영장 등.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