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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상 기자]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흑인 버락 오바마가 취임한 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세상과 작별한 해, 젊은 신인 배우 장자연이 유서를 남기고 떠난 해, 존경받던 종교인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해, 바로 2009년이다. 이해 5월 23일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훼손한 명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과 작별하였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만들어 퍼뜨린 가짜뉴스의 힘을 실감하게 한 비극이었다.
이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노무현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그래서 노무현을 떠나보내는 날 카메라 황금성슬롯 앞에서 덜컥 눈물을 쏟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4년에는 소설가 한강이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두 번째로 노벨상(문학상)을 받았다. 1년 전이었고, 아시아 여성 최초였다.
노벨상 수상 비결이 왜 '커피 브레이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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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와 함께하는 휴식 시간
ⓒ 연합=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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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이 탄생한 190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가을이 되면 노벨상 위원회의 발표에 전 세계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고, 노벨의 사망일이며 노벨상 수상식이 열리는 12월 10일은 노벨상 수상자의 수상 소감이 지구인 모두의 시선을 모은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이 특히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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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중에서도 노벨상을 받게 된 특별한 비결이 무엇인지는 늘 전 세계 언론의 관심사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비결을 이야기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질문 좀 그만하라"라는 주변의 핀잔에 굴하지 않 바다이야기5만 고, 당장에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자신이 흥미롭다고 여기는 생각에 집중한 것이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켰다고 술회했다.
1965년에 양자역학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은 평소의 낙서 습관이 유명한 '파인먼 다이어그램'을 탄생시켰다는 에피소드를 남겼다. 물리학자이지만 공식이나 계산보다는 술집, 카페 등 일상생활에서 느끼던 직관이나 낙서 수준으로 즐기던 그림이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가져온 비결이었다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에서 가장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아마도 "노벨상은 생각해 본 적 없다"가 아닐까. 노벨상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받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수상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노벨상은 좋은 생활 습관, 태도, 그리고 우연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명예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축제인 강릉커피축제가 시작된 해인 2009년 말 AP통신은 매우 흥미로운 인터뷰 결과를 보도하였다. 그해의 노벨상 수상자 4명에게 어떻게 해서 그처럼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를 물었고, 그 대답을 정리하여 전 세계 언론에 전하였다. 국내 일간지들은 이를 인용하여 흥미로운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매일경제> 2009년 12월 8일 자에서 '노벨상 수상 비결은 커피브레이크', <문화일보> 12월 8일 자에서 '노벨상의 비결은 자율성과 커피타임', <한국일보> 12월 8일 자에서 '노벨상 비결? 커피 마시며 토론하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밝힌 '노벨상 수상 비결'은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적 자유'였고, 다른 하나는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였다. '지적 자유'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주장이었다. 그런데 '커피 브레이크'는 도대체 무슨 역할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것일까? 모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내용이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학수고대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토마스 스타이츠, 아다 요나트,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3인이었다. 이 중 미국인 토마스 스타이츠는 휴식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동료와 토론했던 것이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 발견과 실험에 도움이 되었다는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1966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해인 196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간 첫날을 회상하였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는 식사하고 차까지 마시면서, 언제 연구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학자들과 차를 마시면서 어떤 실험을 해야 할지를 배웠다"라고 술회했다.
이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인디애나대학의 엘리너 오스트롬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학문이 발전하려면 미래를 상상하고, 최신 연구와 난제를 정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커피 브레이크가 그런 역할을 했다는 대답이었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미스도 연구자들끼리의 협력을, 윌러드 보일은 연구 분야를 마음대로 택할 수 있었던 자유가 비결이라고 밝혔다. 커피 브레이크는 이들이 밝힌 연구자들끼리의 협력,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었다.
이들이 강조한 것은 커피 브레이크와 같은 비공식적인 대화의 중요성, 그리고 그런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었다. AP통신이 요약했듯이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는 휴식 시간을 자주 가져라"가 노벨상으로 가는 최고의 비결일지도 모른다.
한국도 커피 브레이크의 일상화, 하지만...
▲ 회사 탕비실의 모습을 그린 이미지
ⓒ 연합=OGQ
커피 브레이크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위스콘신주에 있는 작은 도시 스토턴에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에 갑자기 생긴 담배 농장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고 마을 주부들을 고용하게 되었고, 주부들은 육아와 가사를 위해 커피 한잔 마실 정도의 짧은 휴식 시간을 요청하였다. 이것이 커피 브레이크의 출발이었고, 1920년대에 맥스웰하우스 광고에 커피 브레이크가 등장하면서 모든 일터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는 6.25 전쟁 직후 도입되었다. 북유럽 3국이 설립한 국립서울의료원에서 커피타임 제도를 도입하였던 기록이 있다. 1990년대 후반 테이크아웃 커피 문화의 등장과 함께 커피 브레이크는 많은 일터에서 즐기는 문화가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커피 브레이크가 노벨상 아이디어를 얻는 시간이기는커녕,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 관한 뒷담화 시간, 불필요한 정치 이야기나 연예인 가십 공유 시간으로 변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21세기 들어 커피 브레이크와 함께 비공식적 정보 교환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정보통신망이다. 길고 뜨거운 논란 끝에 2025년 12월 24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법안은 손해를 가할 의도나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타인의 인격권이나 재산권,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하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규정했다.
개정된 정보통신망 법이 비공식적 대화나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갖는 가치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가짜뉴스로 인한 희생자 발생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법보다 중요한 것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덧붙이는 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흑인 버락 오바마가 취임한 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세상과 작별한 해, 젊은 신인 배우 장자연이 유서를 남기고 떠난 해, 존경받던 종교인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해, 바로 2009년이다. 이해 5월 23일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훼손한 명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과 작별하였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만들어 퍼뜨린 가짜뉴스의 힘을 실감하게 한 비극이었다.
이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노무현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그래서 노무현을 떠나보내는 날 카메라 황금성슬롯 앞에서 덜컥 눈물을 쏟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4년에는 소설가 한강이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두 번째로 노벨상(문학상)을 받았다. 1년 전이었고, 아시아 여성 최초였다.
노벨상 수상 비결이 왜 '커피 브레이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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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와 함께하는 휴식 시간
ⓒ 연합=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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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이 탄생한 190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가을이 되면 노벨상 위원회의 발표에 전 세계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고, 노벨의 사망일이며 노벨상 수상식이 열리는 12월 10일은 노벨상 수상자의 수상 소감이 지구인 모두의 시선을 모은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이 특히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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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중에서도 노벨상을 받게 된 특별한 비결이 무엇인지는 늘 전 세계 언론의 관심사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비결을 이야기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질문 좀 그만하라"라는 주변의 핀잔에 굴하지 않 바다이야기5만 고, 당장에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자신이 흥미롭다고 여기는 생각에 집중한 것이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켰다고 술회했다.
1965년에 양자역학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은 평소의 낙서 습관이 유명한 '파인먼 다이어그램'을 탄생시켰다는 에피소드를 남겼다. 물리학자이지만 공식이나 계산보다는 술집, 카페 등 일상생활에서 느끼던 직관이나 낙서 수준으로 즐기던 그림이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가져온 비결이었다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에서 가장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아마도 "노벨상은 생각해 본 적 없다"가 아닐까. 노벨상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받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수상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노벨상은 좋은 생활 습관, 태도, 그리고 우연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명예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축제인 강릉커피축제가 시작된 해인 2009년 말 AP통신은 매우 흥미로운 인터뷰 결과를 보도하였다. 그해의 노벨상 수상자 4명에게 어떻게 해서 그처럼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를 물었고, 그 대답을 정리하여 전 세계 언론에 전하였다. 국내 일간지들은 이를 인용하여 흥미로운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매일경제> 2009년 12월 8일 자에서 '노벨상 수상 비결은 커피브레이크', <문화일보> 12월 8일 자에서 '노벨상의 비결은 자율성과 커피타임', <한국일보> 12월 8일 자에서 '노벨상 비결? 커피 마시며 토론하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밝힌 '노벨상 수상 비결'은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적 자유'였고, 다른 하나는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였다. '지적 자유'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주장이었다. 그런데 '커피 브레이크'는 도대체 무슨 역할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것일까? 모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내용이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학수고대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토마스 스타이츠, 아다 요나트,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3인이었다. 이 중 미국인 토마스 스타이츠는 휴식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동료와 토론했던 것이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 발견과 실험에 도움이 되었다는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1966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해인 196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간 첫날을 회상하였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는 식사하고 차까지 마시면서, 언제 연구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학자들과 차를 마시면서 어떤 실험을 해야 할지를 배웠다"라고 술회했다.
이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인디애나대학의 엘리너 오스트롬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학문이 발전하려면 미래를 상상하고, 최신 연구와 난제를 정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커피 브레이크가 그런 역할을 했다는 대답이었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미스도 연구자들끼리의 협력을, 윌러드 보일은 연구 분야를 마음대로 택할 수 있었던 자유가 비결이라고 밝혔다. 커피 브레이크는 이들이 밝힌 연구자들끼리의 협력,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었다.
이들이 강조한 것은 커피 브레이크와 같은 비공식적인 대화의 중요성, 그리고 그런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었다. AP통신이 요약했듯이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는 휴식 시간을 자주 가져라"가 노벨상으로 가는 최고의 비결일지도 모른다.
한국도 커피 브레이크의 일상화, 하지만...
▲ 회사 탕비실의 모습을 그린 이미지
ⓒ 연합=OGQ
커피 브레이크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위스콘신주에 있는 작은 도시 스토턴에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에 갑자기 생긴 담배 농장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고 마을 주부들을 고용하게 되었고, 주부들은 육아와 가사를 위해 커피 한잔 마실 정도의 짧은 휴식 시간을 요청하였다. 이것이 커피 브레이크의 출발이었고, 1920년대에 맥스웰하우스 광고에 커피 브레이크가 등장하면서 모든 일터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는 6.25 전쟁 직후 도입되었다. 북유럽 3국이 설립한 국립서울의료원에서 커피타임 제도를 도입하였던 기록이 있다. 1990년대 후반 테이크아웃 커피 문화의 등장과 함께 커피 브레이크는 많은 일터에서 즐기는 문화가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커피 브레이크가 노벨상 아이디어를 얻는 시간이기는커녕,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 관한 뒷담화 시간, 불필요한 정치 이야기나 연예인 가십 공유 시간으로 변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21세기 들어 커피 브레이크와 함께 비공식적 정보 교환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정보통신망이다. 길고 뜨거운 논란 끝에 2025년 12월 24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법안은 손해를 가할 의도나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타인의 인격권이나 재산권,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하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규정했다.
개정된 정보통신망 법이 비공식적 대화나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갖는 가치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가짜뉴스로 인한 희생자 발생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법보다 중요한 것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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