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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준정희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2-10 17:36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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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의 수사 : ‘움직임’에 관심을 두게 된 청년 안수진이 1990년대 제작했던 키네틱 작품의 일부분을 2025년에 새롭게 조각화한 작업이다. 벽면과 어우러져 회화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감각을 이끌어 낸다.
조각작품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조각가 안수진’의 작품은 움직인다. 그는 ‘키네틱(Kinetic) 작가’로, ‘키네틱 아트’라 하면 ‘움직이는 미술’을 말한다. 1990년대 초 그가 처음 한국미술계에 모터와 제어장치를 사용해서 움직이는 입체작품을 선보였을 때는 매우 신기한 작업이었다.
“작품이 작동한다는 것은 나에게 마 손오공릴게임 력으로 다가왔다. 미래파, 구성주의, 다다로 이어지는 조각에 있어서 시간성의 문제와 기술에 천착은 있었지만, 내가 이를 주목한 것은 ‘서사’를 표현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청년 안수진은 관람객에게 말하고 싶은 게 많았고, 방편으로 움직임을 선택했다. 그의 작품은 모터에 의한 단순한 회전운동이 기계적 장치와 그것을 제어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한국릴게임 ‘자신에게 주어진 순서에 따라’ 관객들 앞에서 특정한 사이클을 무한 반복한다. 정해진 사이클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1990년 안수진이 대학을 졸업하던 즈음 세상은 격변의 시기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한국미술계는 급격히 탈이념화 과정을 겪으며,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한국릴게임 ‘세계화’ 열풍이 불었다. 이런 상황에서 데뷔한 신진작가 안수진은 키네틱 작품으로 1992년 여러 기획전에 초대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미술계는 유학 자유화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갓 귀국한 청년 작가들의 낯선 작업과 동시대 서구미술계 담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자연히 ‘움직임의 신기함’이 ‘전위적’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그만큼 동시대 외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국 작가 작품 표절 시비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유학파가 아닌 안수진의 ‘움직이는 작품’은 남달랐다.
당시 청년 작가들은 서구 동시대 미술에 천착하거나, 전통 소재를 중심으로 주체적인 미술을 모색하는 두 부류로 양분됐다. 안수진은 이러한 흐름을 관망하며, 삶에서 직면한 사건들을 숙고하고 정리된 생각을 작품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그런 와중 알라딘게임 에 ‘키네틱’을 접했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불모지였던 키네틱 작업을 위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장치를 제작하는 모든 일을 스스로 발품을 팔아 해결해야 했다.
시간의 변주ll : 2013년부터 지속해 온 연작 중 하나로 관람객의 착시현상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평면의 시간 : 2005년 제작한 작품으로 세상을 향한 인간 의식의 평면성을 형상화했다. 손과 발로 원을 지탱하고 서 있는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에 등장하는 3인이다. 서울, 나이로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상징한다.
블라인드 시계 : 지표를 느끼는 도구인 지팡이와 ‘면의 세계’인 벽면을 만나게 했다. 2023년 제작.
직접 만든 작품에서는 기계의 차가움과 제품의 완전함은 찾아볼 수 없다. 대표적인 키네틱 작가인 스위스 출신 장 팅켈리의 작품처럼, 직접 설계해서 제작한 부품을 조립해서 만든 안수진의 작품은 손맛과 더불어 기계의 반복된 움직임마저 해학이 넘친다. 예컨대 물레를 차서 만든 완벽한 찻잔이 아니라 막사발에서 느낄 수 있는 질박함이라 하겠다. 더불어서 관객에게 움직임을 구현하는 장치를 그대로 보여줘서 작품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줬다. 한마디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기계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를 ‘움직임의 시학’이라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어(詩語)를 조립하듯 전혀 관계없는 오브제를 서로 병치시키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이용하여 작품을 구상한다.”
참고로 ‘데페이즈망’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주로 사용한 기법으로 ‘전치(轉置)’라고 번역한다. ‘일상적인 사물을 익숙한 환경에서 떼어내 전혀 다른 낯선 장소나 맥락에 배치하여 기이하고 낯선 느낌을 주는 것’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예로 들을 수 있다.
안수진의 말을 요약하면, 그는 삶에서 비롯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낯선 움직이는 조각 작품을 매개로 관람객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특정한 사이클을 반복하는 기시감 있는 사물들의 낯선 움직임은 모종의 암시로 관람객의 무의식을 자극하여 각자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게 그의 전략이다. 가장 큰 특징은 구체적인 삶에서 비롯한 작품이라는 점과 감정이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암시의 단서를 제공하는 ‘작품 제목’이다. 예컨대 ‘평면의 시간(2005)’ ‘면도 기계(2009)’ ‘계단(2009)’ ‘작업자(2016)’ ‘갈림길(2018)’처럼 매우 익숙한 제목과 함께 그와 연관된 오브제가 알고리즘에 맞춰 반복해서 움직인다. 이와 함께 2013년 개인전부터 오브제 대신 두 개의 사각형이 중첩되며 움직이는 ‘시간의 변주’ 연작과 최근에는 단순한 세 개의 원판이 회전하는 ‘점·점·점(2023)’을 선보였다. 그러면서도 평면 작업과 조각 작품 제작도 병행했다.
작가로 데뷔하던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미술계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으나 그는 한결같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삶에서 비롯한 문제의식을 조형하는데, 청년 안수진은 세상에 관한 문제의식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자신이 해온 일을 성찰하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작품 가운데 주목할 작품이 2점 있다. ‘평면의 시간’과 ‘시간의 변주’다.
수평의 꿈 : 물의 표면 장력을 이용해 작품 속 나무형상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1999년 작업으로 ‘물’은 수평적 존재이자 죽음을 상징한다.
‘평면의 시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3명이 서로 기대 있는데 각각 서울, 나이로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상징한다. 자전축의 실시간 기울기 변화에 따라 각각의 인물(도시)도 기울기를 맞춰간다. 수평을 맞춰 고정한 모니터 속 영상도 기울기가 변한다. 둥근 지구 위에서 서울과 대척점, 그리고 적도에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수평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지, 실재하는 건지 묻고 있다. 어떤 계기인지 상식이라며 회의하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에 맹종하는 태도에 회의하기 시작했다. 그 후 8년이 지나 ‘시간의 변주’ 연작을 시작하며,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선·면으로 돌아왔다. 관심을 두고 있는 화두가 세상사에서 조형예술의 근본으로 바뀌며, ‘작업자’와 ‘갈림길’ 같은 작품을 통해 갈림길에 선 자기 내면을 돌아보며 다짐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이 1조 원을 돌파했다. 아무개 작품이 경매에서 기록적인 가격에 낙찰된 것과 아무개가 누구의 작품을 샀다는 게 미술계 뉴스의 가장 중요한 머리기사다. 이런 세태에 작가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안수진은 시류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동서고금을 통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예술가는 모두 헛된 일에 일생을 마쳤다”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 안수진은 누구국내 1세대 키네틱 작가… ‘정감’ 담은 장치들 눈길
국내 1세대 ‘키네틱(Kinetic)’ 작가라 할 수 있는 안수진(64)은 서울대 미술대학과 같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젊은 모색’ 전과 금호미술관에서 개최한 ‘가설의 정원’ 전을 통해 ‘키네틱’ 작품을 선보여 주목하는 작가가 됐다. ‘키네틱’은 ‘운동의, 운동에 관한’으로 번역하며, 물리적인 ‘움직임’ 그 자체를 의미한다. 미술에서 ‘키네틱 아트’라 하면 실제 작품이 움직이거나,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작품을 가리킨다.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는 마르셀 뒤샹으로, 1913년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세워 놓고 돌려볼 수 있게 한 ‘자전거 바퀴’가 최초의 키네틱 작품이다. 서구 미술계에서 키네틱 아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초부터이며 대표 작가로 스위스 출신의 장 팅켈리를 꼽을 수 있다.
작품이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라고 한다면, 키네틱 아트의 출발은 형식에 주안점을 두었다. 안수진은 사진이 활동사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삶에서 비롯한 이야기를 키네틱 아트에 담을 수 있음을 인식했다. 단순히 작동하는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오는 정감이 넘쳐나는 장치를 만든다.
조각작품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조각가 안수진’의 작품은 움직인다. 그는 ‘키네틱(Kinetic) 작가’로, ‘키네틱 아트’라 하면 ‘움직이는 미술’을 말한다. 1990년대 초 그가 처음 한국미술계에 모터와 제어장치를 사용해서 움직이는 입체작품을 선보였을 때는 매우 신기한 작업이었다.
“작품이 작동한다는 것은 나에게 마 손오공릴게임 력으로 다가왔다. 미래파, 구성주의, 다다로 이어지는 조각에 있어서 시간성의 문제와 기술에 천착은 있었지만, 내가 이를 주목한 것은 ‘서사’를 표현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청년 안수진은 관람객에게 말하고 싶은 게 많았고, 방편으로 움직임을 선택했다. 그의 작품은 모터에 의한 단순한 회전운동이 기계적 장치와 그것을 제어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한국릴게임 ‘자신에게 주어진 순서에 따라’ 관객들 앞에서 특정한 사이클을 무한 반복한다. 정해진 사이클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1990년 안수진이 대학을 졸업하던 즈음 세상은 격변의 시기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한국미술계는 급격히 탈이념화 과정을 겪으며,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한국릴게임 ‘세계화’ 열풍이 불었다. 이런 상황에서 데뷔한 신진작가 안수진은 키네틱 작품으로 1992년 여러 기획전에 초대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미술계는 유학 자유화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갓 귀국한 청년 작가들의 낯선 작업과 동시대 서구미술계 담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자연히 ‘움직임의 신기함’이 ‘전위적’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그만큼 동시대 외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국 작가 작품 표절 시비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유학파가 아닌 안수진의 ‘움직이는 작품’은 남달랐다.
당시 청년 작가들은 서구 동시대 미술에 천착하거나, 전통 소재를 중심으로 주체적인 미술을 모색하는 두 부류로 양분됐다. 안수진은 이러한 흐름을 관망하며, 삶에서 직면한 사건들을 숙고하고 정리된 생각을 작품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그런 와중 알라딘게임 에 ‘키네틱’을 접했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불모지였던 키네틱 작업을 위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장치를 제작하는 모든 일을 스스로 발품을 팔아 해결해야 했다.
시간의 변주ll : 2013년부터 지속해 온 연작 중 하나로 관람객의 착시현상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평면의 시간 : 2005년 제작한 작품으로 세상을 향한 인간 의식의 평면성을 형상화했다. 손과 발로 원을 지탱하고 서 있는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에 등장하는 3인이다. 서울, 나이로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상징한다.
블라인드 시계 : 지표를 느끼는 도구인 지팡이와 ‘면의 세계’인 벽면을 만나게 했다. 2023년 제작.
직접 만든 작품에서는 기계의 차가움과 제품의 완전함은 찾아볼 수 없다. 대표적인 키네틱 작가인 스위스 출신 장 팅켈리의 작품처럼, 직접 설계해서 제작한 부품을 조립해서 만든 안수진의 작품은 손맛과 더불어 기계의 반복된 움직임마저 해학이 넘친다. 예컨대 물레를 차서 만든 완벽한 찻잔이 아니라 막사발에서 느낄 수 있는 질박함이라 하겠다. 더불어서 관객에게 움직임을 구현하는 장치를 그대로 보여줘서 작품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줬다. 한마디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기계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를 ‘움직임의 시학’이라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어(詩語)를 조립하듯 전혀 관계없는 오브제를 서로 병치시키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이용하여 작품을 구상한다.”
참고로 ‘데페이즈망’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주로 사용한 기법으로 ‘전치(轉置)’라고 번역한다. ‘일상적인 사물을 익숙한 환경에서 떼어내 전혀 다른 낯선 장소나 맥락에 배치하여 기이하고 낯선 느낌을 주는 것’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예로 들을 수 있다.
안수진의 말을 요약하면, 그는 삶에서 비롯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낯선 움직이는 조각 작품을 매개로 관람객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특정한 사이클을 반복하는 기시감 있는 사물들의 낯선 움직임은 모종의 암시로 관람객의 무의식을 자극하여 각자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게 그의 전략이다. 가장 큰 특징은 구체적인 삶에서 비롯한 작품이라는 점과 감정이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암시의 단서를 제공하는 ‘작품 제목’이다. 예컨대 ‘평면의 시간(2005)’ ‘면도 기계(2009)’ ‘계단(2009)’ ‘작업자(2016)’ ‘갈림길(2018)’처럼 매우 익숙한 제목과 함께 그와 연관된 오브제가 알고리즘에 맞춰 반복해서 움직인다. 이와 함께 2013년 개인전부터 오브제 대신 두 개의 사각형이 중첩되며 움직이는 ‘시간의 변주’ 연작과 최근에는 단순한 세 개의 원판이 회전하는 ‘점·점·점(2023)’을 선보였다. 그러면서도 평면 작업과 조각 작품 제작도 병행했다.
작가로 데뷔하던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미술계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으나 그는 한결같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삶에서 비롯한 문제의식을 조형하는데, 청년 안수진은 세상에 관한 문제의식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자신이 해온 일을 성찰하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작품 가운데 주목할 작품이 2점 있다. ‘평면의 시간’과 ‘시간의 변주’다.
수평의 꿈 : 물의 표면 장력을 이용해 작품 속 나무형상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1999년 작업으로 ‘물’은 수평적 존재이자 죽음을 상징한다.
‘평면의 시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3명이 서로 기대 있는데 각각 서울, 나이로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상징한다. 자전축의 실시간 기울기 변화에 따라 각각의 인물(도시)도 기울기를 맞춰간다. 수평을 맞춰 고정한 모니터 속 영상도 기울기가 변한다. 둥근 지구 위에서 서울과 대척점, 그리고 적도에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수평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지, 실재하는 건지 묻고 있다. 어떤 계기인지 상식이라며 회의하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에 맹종하는 태도에 회의하기 시작했다. 그 후 8년이 지나 ‘시간의 변주’ 연작을 시작하며,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선·면으로 돌아왔다. 관심을 두고 있는 화두가 세상사에서 조형예술의 근본으로 바뀌며, ‘작업자’와 ‘갈림길’ 같은 작품을 통해 갈림길에 선 자기 내면을 돌아보며 다짐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이 1조 원을 돌파했다. 아무개 작품이 경매에서 기록적인 가격에 낙찰된 것과 아무개가 누구의 작품을 샀다는 게 미술계 뉴스의 가장 중요한 머리기사다. 이런 세태에 작가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안수진은 시류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동서고금을 통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예술가는 모두 헛된 일에 일생을 마쳤다”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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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진은 누구국내 1세대 키네틱 작가… ‘정감’ 담은 장치들 눈길
국내 1세대 ‘키네틱(Kinetic)’ 작가라 할 수 있는 안수진(64)은 서울대 미술대학과 같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젊은 모색’ 전과 금호미술관에서 개최한 ‘가설의 정원’ 전을 통해 ‘키네틱’ 작품을 선보여 주목하는 작가가 됐다. ‘키네틱’은 ‘운동의, 운동에 관한’으로 번역하며, 물리적인 ‘움직임’ 그 자체를 의미한다. 미술에서 ‘키네틱 아트’라 하면 실제 작품이 움직이거나,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작품을 가리킨다.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는 마르셀 뒤샹으로, 1913년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세워 놓고 돌려볼 수 있게 한 ‘자전거 바퀴’가 최초의 키네틱 작품이다. 서구 미술계에서 키네틱 아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초부터이며 대표 작가로 스위스 출신의 장 팅켈리를 꼽을 수 있다.
작품이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라고 한다면, 키네틱 아트의 출발은 형식에 주안점을 두었다. 안수진은 사진이 활동사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삶에서 비롯한 이야기를 키네틱 아트에 담을 수 있음을 인식했다. 단순히 작동하는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오는 정감이 넘쳐나는 장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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