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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젤리피쉬>의 오프닝 장면 / 국립극단 제 집담보대출연말정산 공


“진행 과정은 배울 점이 많아 보이지만 불편하지 않고 재밌었어. 솔직한 로맨틱 코미디라 더 공감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젤리피쉬>(벤 웨더릴 원작, 민새롬 연출, 고권금 안무)를 관람하고 객석을 나서는데 관객들의 소감이 들려 와 귀를 쫑긋 세웠다. 다운증후군 여성 켈리(백지윤 분)가 비장애 사회통합 남성 닐(김바다·이휘종 분)을 만나 사랑하고 임신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의 난관을 적나라하게 담은 이 작품에서 많은 관객이 ‘장애’보다 ‘관계’에 더 집중함을 알 수 있어서다. 실제 다운증후군인 백지윤 배우가 출연해 주목받은 <젤리피쉬>를 지난해 쇼케이스부터 올해 초 본공연, 이날 앙코르 공연까지 모두 관람한 입장에서 만면에 미소가 배어 나왔다. 창작진들과 신한은행 자유적금 출연진들이 이를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미학적으로 재해석된 무장애성 ‘배리어프리’, ‘무장애’, ‘접근성 높은’, ‘장애 당사자성’ 등의 수식어로 시작하는 신개념 공연들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무대 한쪽에 서 있는 검은 의상의 수어 통역사와 건조한 문체의 자막해설은 더 이상 ‘무장애’의 상징이 아니다. 장애 당사자성을 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경기지역본부 룬 연극 <젤리피쉬>를 비롯해 수어 통역 배우들이 일반 배우들과 함께 군무와 노래에 동참하는 연극 <해리엇>과 음악극 <다정히 세상을 누리면> 등은 무장애를 미학적으로 재해석한 신개념 무장애 공연들이다.<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 켈리와 엄마 아그네스(정수영 분)의 해변 산책으로 시작된다. 딸이 비장애인 닐과 연애하는 것을 반대하는 아그네스는 저신장 장애 도미 캐피탈이자 닉(김범진 분)과 딸을 연결해주려 하지만 비난만 받는다. 켈리의 솔직함을 사랑하는 소심남 닐은 아그네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신과 출산을 강행한다. 한바탕 애증과 이해의 폭풍우를 겪은 이들 모녀는 엄마가 된 켈리와 할머니가 된 아그네스가 첫 장면처럼 영국 스케그니스 해변을 산책하며 마무리된다.

은 수어통역이 작품 안에 스며들어 퍼포먼스와 안무로 미학적 재해석을 거듭한 작품이다. 강동문화재단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26/weeklykh/20250926150951606vswg.jpg" data-org-width="1200" dmcf-mid="XAX57iJqW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6/weeklykh/20250926150951606vswg.jpg" width="658">

연극 <해리엇>은 수어통역이 작품 안에 스며들어 퍼포먼스와 안무로 미학적 재해석을 거듭한 작품이다. 강동문화재단 제공


다운증후군의 특징인 기억력과 체력 저하를 내재한 백지윤 배우는 전체 장면에 거의 등장한다. 빠르게 주고받는 티키타카식 대사량이 대부분이다. 비장애 배우도 하기 어려운 역할을 해내기 위해 모든 관계자는 서로의 어려움을 모두 인지하고 털어놓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서로의 본질을 이해하며 한 켜씩 신뢰와 공감을 쌓아가는 기초작업은 장애 비장애 구분 없이 모두에게 필요한 과정이었다. 모두의 불안과 고통을 깨달으면서 작품은 ‘불가능’에서 ‘가능할 수 있음’으로 상태가 바뀌었고, 지난해 쇼케이스에서의 호평을 바탕으로 올해 본 공연, 앙코르 공연을 전석 매진으로 마무리했다. 각자의 상태를 가감 없이 나누는 ‘체크인과 체크아웃’은 이런 과정을 일상화한 근간이다. 원작자 벤 웨더릴이 영국 런던 초연 때 시작한 방법론으로 극의 안과 밖을 구분하고 서로를 포용하며 이해하는 정서적 융합의 기초가 됐다. 공연 시작 전, 공연 중간중간 전환과 인터미션에서도 서로의 상태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몸풀기 등을 통해 이를 유연하게 수용한다. 백지윤 배우의 경우, 대사 암기 조력자인 프롬프터(대본을 읽어준다)를 적극 활용하고 무대 전환과 의상 전환 역시 스태프들이 모두 무대에 상주하며 함께 해나간다. 무대 바로 옆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이 모든 연대를, 미세한 표정과 수어로 주고받는 응원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무장애로 확장한 연대, 포용 속 자기 결정권연극 <해리엇>(한윤섭 원작, 김지원 각색·극작·연출, 고수영 음악, 박신별 움직임)은 작품 안에 스며든 모든 배우의 수어 연기를 바탕으로 장애와 비장애, 인간과 비인간의 입장과 경계를 해체한 본격 수어 융합 작품이다. 반목하던 개코원숭이(송철호 분)와 자바 원숭이(홍준기 분)는 지혜로운 너구리(전유경 분)의 도움으로 다른 여러 동물과 함께 175년 된 바다거북이 해리엇(문상희 분)이 바다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힘을 모은다.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과정을 담은 수어 군무와 합창은 인간과 동물이 종을 넘어 장애와 편견을 연대로 승화한 명장면이다.음악극 <다정히 세상을 누리면>(오인하 작, 민준호 연출, 손다혜·정종임 작곡, 정종임 음악, 차형도 안무)은 19세기 초 홍경래의 난으로 척박했던 조선시대 서북지방을 배경으로 인간과 비인간, 신분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를 해체하고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수어 통역 배우들과 일반 배우들이 연결된 캐릭터처럼 극 안에 녹아든다. 군무와 합창은 물론이고 특징적인 액팅은 합을 맞추어본 적 없는 새로운 공연으로 거듭난다. 관객들도 어느새 여러 감각을 열고 수어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합창에서 ‘다정히 세상을 누리면’을 수어로 합창하는 관객들을 보는 것 또한 이 작품의 무장애성이다.뮤지컬 <아몬드>(손원평 원작, 서휘원 각색·작사, 브랜든 리 작곡, 김태형 연출, 이현정 안무)는 감정표현 불능증 윤재가 쓴 자전적 이야기이다. 공포와 슬픔, 무서움과 기쁨을 느끼지 못해 괴물로 취급됐던 윤재(문태유·윤소호·김리현 분)는 가족들의 사랑으로 감정을 학습해 어느 정도 정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연이은 비극으로 안정감의 원천인 할머니를 잃고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보살피며 책방을 하며 또래 친구들과 사건·사고를 겪으며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감정의 세계를 체험한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기적적인 순간이지만, 작품은 이 과정을 관객과 온전히 공유하기 위해 무대 한쪽의 장벽을 개방해 윤재의 변화를 인식하게 한다.

은 여러 인종이 섞인 앙상블의 아크로바틱과 군무가 작품의 백미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26/weeklykh/20250926150953777hvsu.jpg" data-org-width="1200" dmcf-mid="ZAWG0RMUl2"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6/weeklykh/20250926150953777hvsu.jpg" width="658">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은 여러 인종이 섞인 앙상블의 아크로바틱과 군무가 작품의 백미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빅토르 위고 원작, 뤽 플라몽동 극본·가사, 리카르도 코치안테 음악, 질 마으 연출, 마르티노 뮐러 안무)은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 원작의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그랭구와르(지안 마르코 스키아레띠·플로 칼리·에릭 제트네 분)가 화자로 등장해 노트르담의 종치기인 척추장애 콰지모도(안젤로 델 베키오·조제 뒤푸르 분)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엘하이다 다니·로미니 팔메리 분)의 구원하는 사랑을 담아냈다. 에스메랄다를 욕망하며 죽이는 프롤로(다니엘 라부아·로베르 마리앙·솔랄 분)와 근위대 페뷔스(존 아이젠·플로 칼리 분)의 폭력을 방어하는 이들은 여러 인종의 아크로바틱 댄서들과 브레이크 댄서들의 화려한 군무다. 장애를 해체하고 포용하는 연대를 시각적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감각하게 한다.섭식장애 여성들을 다룬 연극 <마른 여자들>(다이애나 클라크 원작, 박주영 각색·연출, 하영미 안무, 남경식 무대)에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활기찬 군무가 등장한다. 극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셔플댄스는 섭식장애를 둘러싼 자기혐오·비교의 회로를 무대 전체를 뛰어다니는 동선과 조명으로 시각화했다. 이들이 바꾸려는 것은 체중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임을 인식하려는 깨달음의 퍼포먼스다.이들 작품이 제안하는 것은 ‘형식으로서의 접근성’이 아닌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미학적 접근성’이다. 수어·자막·음성 해설은 이제 보조 장치가 아니라 장면의 문법이자 미학적 요소로 거듭난다. 움직임과 컨템포러리 댄스로 거듭 재해석되는 접근성은 관객층을 넓히는 전략이 아니라 감각을 보편화하는 미학적 선택이다. 동시대 관객의 무의식과 방향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타자화에서 벗어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함께-살기’의 기술을 익히려는 노력으로. <아몬드>는 12월 14일까지 상연하고, 다른 작품들은 상연이 끝났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11월 말까지 세종·대구 등 투어공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