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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 트레일에서 만난 얼어붙은 가노가폭포.
뉴욕 가까이에 4마일 협곡에 20개가 넘는 폭포가 쏟아지는 곳이 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인 리케츠 글렌Ricketts Glen State Park주립공원이다. 이곳엔 겨울이면 온 협곡이 얼어붙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는 미지의 트레일이 있는데 오직 일부의 사람들만이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우리와 같은 빙벽등반가들이다.
새해를 맞아 평소 등반을 함께하는 최기용(록파티 산악회) 형과 길을 나섰다. 새벽 4시에 집을 떠나야만 오가는 일 야마토게임연타 정을 감안해 하루 안에 등반을 마칠 수 있다. 리케츠공원은 펜실베이니아 내륙에 있고 워싱턴 D.C에서 약 5시간 거리다.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는 남한 면적의 1.2배 정도다. 미국 50개주에서 33번째 정도의 땅 크기다. 그렇지만 미국 동부지역에 있는 다른 주들에 비하면 아주 큰 편에 속한다. 이곳은 백인 노동자 계층이 많다 바다이야기합법 . 이러한 인구 특성 때문에 대통령 선거 때면 가장 주목 받는 곳이다. 미국 대선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곳이자 최대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이기는 자가 곧 백악관을 탈환한다"는 게 최근 잇따른 대선의 공식이 되어 버렸다.
펜실베이니아는 1681년 윌리엄 펜William Penn에 의해 건설되었다.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윌리엄 펜 야마토게임연타 의 아버지에게 1만2,000파운드의 빚을 지고 있었다. 국왕은 돈 대신 아메리카 신대륙의 버지니아와 뉴욕 사이 있는 광대한 땅을 줬다. 왕에게 받은 특허장으로 펜의 왕국이 개척됐다. 펜실베이니아는 '펜의 숲'이라는 뜻이다. 펜Penn 뒤에 붙은 실베니아Sylvania는 라틴어로 숲이라는 뜻이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폭포수 트레일로 들어서는 길. 일반인들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다.
윌리엄 펜은 영국 국교를 반대하고 스스로 퀘이커Quaker 교도가 되었다. 퀘이커는 독특한 종교다. 그들은 교회란 조직과 성직자란 존재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그리고 다른 종교를 포용하며 '모든 인간은 신 앞에 릴게임다운로드 평등하다'는 교리를 갖고 있었다. 퀘이커는 노예제를 반대했고 자연스럽게 펜실베이니아에서 노예해방 운동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윌리엄 펜은 그의 아버지가 받은 광대한 토지를 퀘이커 교도는 물론 박해받는 모든 종교인들의 피난처로 만들고자 했다. 종교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낙원을 꿈꾼 셈이다. 이 소식을 듣고 다양한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독일의 루터파, 아미쉬 등이다. 그래서 한때 펜실베이니아는 미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가장 잘 존중되는 땅'으로 불렸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필라델피아 같은 대도시로 향했다. 독일인과 폴란드 같은 동유럽인들은 내륙으로 향했다. 애팔래치아 산악지대로 진출한 사람들은 탄광 일을 했고, 구릉지대에 정착한 이들은 작은 농장을 일구었다. 지금도 펜실베이니아에는 독일과 동유럽계 후손들이 많다.
폭포수 트레일에선 단 4마일 동안 20개가 넘는 다양한 형태의 폭포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이 발견한 비경
집을 나선 지 2시간 만에 해리스버그에 도착했다. 이곳은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다. 이곳에는 지금도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재침례파 종교 공동체인 '아미쉬Amish'들을 볼 수 있다. 차가 오가는 도로를 내연기관이나 전기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해리스버그에 오면 매번 느끼는 것이 시내가 정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리는 방치되어 있고 도로는 움푹움푹 패여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주의 수도답지 않은 모습에 매번 실망한다. 28년 동안 재임했던 스티븐 리드Stephen Reed라는 시장이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고 결국 2011년 파산까지 한 상황이라 그 후폭풍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도심을 흐르는 수스케한나Susquehanna강과 건물이 만들어 낸 스카이라인이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그러나 실상 도심 안은 혼란스럽다. 오늘따라 신호등도 고장 나 있어 차량이 경적을 울리면서 중구난방으로 달린다. 웬만하면 피해 가고 싶은 도시다. 수스케한나강은 뉴욕 주 산골에서 시작되어 해리스버그를 지나 체사피크만을 통해 대서양으로 흐른다. 수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상업용 선박이 운행하기는 힘들다. 그런 이유로 해리스버그는 개발과 상업에 뒤처져 있다. 도시 재정이 빈곤한 또 하나의 이유다.
폭포수 트레일에선 단 4마일 동안 20개가 넘는 다양한 형태의 폭포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해리스버그를 뒤로 하고 3시간이면 리케츠공원에 닿는다. 공원은 레드 록 마운틴Red Rock Mountain이라는 해발 700m 높이의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다. 무릎 높이로 쌓인 눈을 보며 이곳이 깊은 산골임을 실감한다. 주변에 비해 특출 나게 많은 적설량이다. 공원에 가까워질수록 눈발은 거세지고 함박눈이 내린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방문자 센터다. 공원은 눈으로 가득 찼다. 겨우 차량 한 대만 통과할 정도로 제설 작업을 해놓았다. 도착한 방문자 센터는 굳게 잠겨 있고 문 앞에는 노트 하나가 준비되어 있다. 얼어 있는 폭포 길을 걷기 위해선 여기에 인적사항을 적어야 한다. 우리는 이름, 차량 정보, 그리고 비상연락처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트레일에 들어가는 시간과 나오는 예상 시간까지 적어야 한다.
우리가 가는 곳은 '폭포수 길Falls Trail'이다. 12km 산길로 약 5시간 소요된다. 지금은 계곡 길 전체가 빙판으로 변해 있으니 운행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12월 이후 폭포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아이젠은 물론 피켈과 자일까지 준비해야 산행이 허락된다. 이곳은 여름철에도 종종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다. 암반을 깎아 만든 등산로는 협소하고 폭포 쪽은 가파른 벼랑이다. 폭포에서 불어오는 물보라가 바위 표면을 적셔 매끄럽게 만든다. 긴장을 늦추면 아차 하는 찰나 벼랑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폭포수 트레일에선 단 4마일 동안 20개가 넘는 다양한 형태의 폭포들을 만나볼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의 설계자가 윌리엄 펜이라면 이 공원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해준 사람은 제임스 리케츠James Ricketts다. 그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이었다.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남북전쟁에 첫 전투부터 참전했다. 그러나 바로 이 전투에서 4발의 총상을 입고 적의 포로가 된다. 그때 그의 아내는 자진해 적진으로 들어가 남편을 간호했다고 한다. 몇 달 후 포로 교환으로 풀려나 다시 전쟁에 참전했지만 총상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장군은 전역 후 이곳 리케츠공원 일대의 토지를 구매했다. 원래는 목재사업을 할 계획이었다. 그가 구매한 땅은 지금의 공원보다 훨씬 더 광대했다. 벌목 사업은 번창했고 목재를 위해 작업장 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러던 중 장군은 계곡 안쪽에서 믿지 못할 풍광을 보게 된다. 20여 개의 폭포가 계곡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외지인이 다녀가지 않은 처녀지 상태였다. 일대에 자생하던 나무는 수령이 최소 300년에서 최고 900년이 넘는 것들이었다. 리케츠 장군은 이곳만큼은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등반 중인 최기용 형.
이곳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도 무방할 만큼 훌륭한 경관을 갖추고 있다. 실제 1930년대 국립공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재정 문제로 그 계획은 중단되었다. 대신 종전 후 펜실베이니아주 정부가 땅을 사들여 주립공원으로 만들었다. 22개의 폭포가 반경 몇 마일 안에 밀집된 것은 매우 독특하다. 미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형이다. 언제든지 다시 논의만 된다면 국립공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곳은 숲이 잘 보존된 관계로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 흑곰, 사슴, 고슴도치 등을 볼 수 있고 루프 그라우스라는 펜실베이니아를 상징하는 새의 서식지기도 하다. 산 정상에는 진Jean이라는 인공호수가 있는데 여기선 미국의 국조 흰머리 독수리와, 물수리, 수달들이 발견된다. 공원 내 트레일은 대부분 바위를 닦아 만들어진 길을 따른다. 바위틈에는 방울뱀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손과 발을 딛을 때 늘 주의해야 한다.
트레일은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폭포가 반긴다. 작지만 넓은 폭을 자랑하기도 하고 가늘고 높은 물줄기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곳을 대표하는 것은 가노가폭포Ganoga Fall다. 22개 폭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높이 30m로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가장 큰 폭포다. 트레일이 폭포 밑에 놓여 있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웅장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겨울이면 몰아치는 강추위로 인해 꽁꽁 얼어 있다. 물보라는 폭포 주변으로 날아가서 얼음벽을 길게 만들었다.
높이 30m의 가노가폭포는 인근 빙벽등반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등반지다.
빙벽등반 장비로 중무장한 우리는 곧바로 폭포에 붙어 보기로 했다. 얼음이 깨끗한 걸 보니 지금까지 아무도 등반하지 않은 듯하다. 선등을 서는 기용 형이 힘주어 피켈을 내리치지만 잘 박히지 않는다. 아주 단단한 청빙이다. 여러 번 찍으면 겨우 한 번 들어간다.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고 어렵게 아이스스크루를 설치한다. 확보자도 긴장되는 순간이다. 간 적 없는 곳의 첫 등반은 난이도를 떠나 심적으로 어렵다. 떨어지면 사망은 아니더라도 최소 부상은 감수해야 한다. 힘이 빠질수록 피켈을 휘두르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겨우 끝까지 올랐다. 이 폭포는 인근 빙벽등반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다음 등반자들에게 미안하게도 등반 과정에서 잘 결빙된 얼음 기둥을 많이 부서뜨렸다. 눈이 오고 더 추워지면 다시 복구되리라.
호수, 폭포에 일가친척 이름…가장 큰 폭포엔 선주민 고유지명
트레일을 마저 걷는다. 리케츠 장군의 가족사랑은 남달랐나보다. 공원에 있는 많은 폭포와 지명이 그의 가족 이름에서 왔다. 산정호수 '진 레이크'의 진Jean은 장녀의 이름이다. 프랭크Frank폭포는 동생의 이름을 가져왔다. 머레이Murray, 쉘든Sheldon, 레이놀드Raynolds폭포는 처남들의 이름이다. 오직 하나 가족의 이름이 아닌 게 가노가폭포다. 가노가는 이곳 선주민 세네카 족 언어로 '산 위의 물Water on the Mountain'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리케츠 장군은 계곡에서 가장 큰 폭포에 선주민을 존중하는 의미로 그들의 언어를 남겼다고 한다.
빙벽등반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장비가 부족한 일반 등산가들은 가이드 업체를 찾기도 한다. 이들을 통해 빙벽 트레일을 걸어볼 수 있다. 밸리 투 서밋Valley to Summit이라는 회사가 아이스 계곡 투어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운영한다. 주말에는 참가자가 많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라고 한다.
트레일을 걷고 폭포를 등반하고 나니 오후 2시가 넘어간다. 흐린 날씨에 눈발이 날리는 숲속에 갇혀 있으니 시간 감각이 없다. 이제 산을 벗어나야 한다. 오르는 길은 온통 빙판길이라 크램폰을 찼어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양손에 잡은 피켈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계곡을 올랐다. 능선에 다다랐을 즈음 회사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통신상태가 안 좋아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전화를 받았다. 통화 후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이 앞서 간 기용 형의 크램폰 발자국이 안 보인다. '아마도 크램폰을 벗었으리라' 짐작하고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30분이나 걷고 나서야 이곳이 왔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전화 받는 사이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을 못 보고 지나쳐서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던 것이다. 배낭 속에서 무전기를 꺼내 형에게 현재 상황을 알렸다. 전화기를 꺼내 나침반을 보니 역시 다른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길을 다시 찾아 걸었다. 멀리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등산객들이 트레일 초입까지 와 있는 것이라 생각해서 소리 나는 쪽으로 걸었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똑같이 생긴 놈이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초면이지만 친근하고 고맙고 반갑다. 미국에서는 동네 뒷산에서도 조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잠깐의 셀프 조난으로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미 도착해 있던 기용 형이 끓여놓은 물로 컵라면을 익혀 먹으니 이 세상 무엇과도 비길 바가 없는 맛이다. 오늘은 형이 미슐랭 쓰리스타 요리사보다 낫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뉴욕 가까이에 4마일 협곡에 20개가 넘는 폭포가 쏟아지는 곳이 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인 리케츠 글렌Ricketts Glen State Park주립공원이다. 이곳엔 겨울이면 온 협곡이 얼어붙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는 미지의 트레일이 있는데 오직 일부의 사람들만이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우리와 같은 빙벽등반가들이다.
새해를 맞아 평소 등반을 함께하는 최기용(록파티 산악회) 형과 길을 나섰다. 새벽 4시에 집을 떠나야만 오가는 일 야마토게임연타 정을 감안해 하루 안에 등반을 마칠 수 있다. 리케츠공원은 펜실베이니아 내륙에 있고 워싱턴 D.C에서 약 5시간 거리다.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는 남한 면적의 1.2배 정도다. 미국 50개주에서 33번째 정도의 땅 크기다. 그렇지만 미국 동부지역에 있는 다른 주들에 비하면 아주 큰 편에 속한다. 이곳은 백인 노동자 계층이 많다 바다이야기합법 . 이러한 인구 특성 때문에 대통령 선거 때면 가장 주목 받는 곳이다. 미국 대선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곳이자 최대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이기는 자가 곧 백악관을 탈환한다"는 게 최근 잇따른 대선의 공식이 되어 버렸다.
펜실베이니아는 1681년 윌리엄 펜William Penn에 의해 건설되었다.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윌리엄 펜 야마토게임연타 의 아버지에게 1만2,000파운드의 빚을 지고 있었다. 국왕은 돈 대신 아메리카 신대륙의 버지니아와 뉴욕 사이 있는 광대한 땅을 줬다. 왕에게 받은 특허장으로 펜의 왕국이 개척됐다. 펜실베이니아는 '펜의 숲'이라는 뜻이다. 펜Penn 뒤에 붙은 실베니아Sylvania는 라틴어로 숲이라는 뜻이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폭포수 트레일로 들어서는 길. 일반인들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다.
윌리엄 펜은 영국 국교를 반대하고 스스로 퀘이커Quaker 교도가 되었다. 퀘이커는 독특한 종교다. 그들은 교회란 조직과 성직자란 존재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그리고 다른 종교를 포용하며 '모든 인간은 신 앞에 릴게임다운로드 평등하다'는 교리를 갖고 있었다. 퀘이커는 노예제를 반대했고 자연스럽게 펜실베이니아에서 노예해방 운동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윌리엄 펜은 그의 아버지가 받은 광대한 토지를 퀘이커 교도는 물론 박해받는 모든 종교인들의 피난처로 만들고자 했다. 종교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낙원을 꿈꾼 셈이다. 이 소식을 듣고 다양한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독일의 루터파, 아미쉬 등이다. 그래서 한때 펜실베이니아는 미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가장 잘 존중되는 땅'으로 불렸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필라델피아 같은 대도시로 향했다. 독일인과 폴란드 같은 동유럽인들은 내륙으로 향했다. 애팔래치아 산악지대로 진출한 사람들은 탄광 일을 했고, 구릉지대에 정착한 이들은 작은 농장을 일구었다. 지금도 펜실베이니아에는 독일과 동유럽계 후손들이 많다.
폭포수 트레일에선 단 4마일 동안 20개가 넘는 다양한 형태의 폭포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이 발견한 비경
집을 나선 지 2시간 만에 해리스버그에 도착했다. 이곳은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다. 이곳에는 지금도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재침례파 종교 공동체인 '아미쉬Amish'들을 볼 수 있다. 차가 오가는 도로를 내연기관이나 전기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해리스버그에 오면 매번 느끼는 것이 시내가 정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리는 방치되어 있고 도로는 움푹움푹 패여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주의 수도답지 않은 모습에 매번 실망한다. 28년 동안 재임했던 스티븐 리드Stephen Reed라는 시장이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고 결국 2011년 파산까지 한 상황이라 그 후폭풍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도심을 흐르는 수스케한나Susquehanna강과 건물이 만들어 낸 스카이라인이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그러나 실상 도심 안은 혼란스럽다. 오늘따라 신호등도 고장 나 있어 차량이 경적을 울리면서 중구난방으로 달린다. 웬만하면 피해 가고 싶은 도시다. 수스케한나강은 뉴욕 주 산골에서 시작되어 해리스버그를 지나 체사피크만을 통해 대서양으로 흐른다. 수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상업용 선박이 운행하기는 힘들다. 그런 이유로 해리스버그는 개발과 상업에 뒤처져 있다. 도시 재정이 빈곤한 또 하나의 이유다.
폭포수 트레일에선 단 4마일 동안 20개가 넘는 다양한 형태의 폭포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해리스버그를 뒤로 하고 3시간이면 리케츠공원에 닿는다. 공원은 레드 록 마운틴Red Rock Mountain이라는 해발 700m 높이의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다. 무릎 높이로 쌓인 눈을 보며 이곳이 깊은 산골임을 실감한다. 주변에 비해 특출 나게 많은 적설량이다. 공원에 가까워질수록 눈발은 거세지고 함박눈이 내린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방문자 센터다. 공원은 눈으로 가득 찼다. 겨우 차량 한 대만 통과할 정도로 제설 작업을 해놓았다. 도착한 방문자 센터는 굳게 잠겨 있고 문 앞에는 노트 하나가 준비되어 있다. 얼어 있는 폭포 길을 걷기 위해선 여기에 인적사항을 적어야 한다. 우리는 이름, 차량 정보, 그리고 비상연락처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트레일에 들어가는 시간과 나오는 예상 시간까지 적어야 한다.
우리가 가는 곳은 '폭포수 길Falls Trail'이다. 12km 산길로 약 5시간 소요된다. 지금은 계곡 길 전체가 빙판으로 변해 있으니 운행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12월 이후 폭포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아이젠은 물론 피켈과 자일까지 준비해야 산행이 허락된다. 이곳은 여름철에도 종종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다. 암반을 깎아 만든 등산로는 협소하고 폭포 쪽은 가파른 벼랑이다. 폭포에서 불어오는 물보라가 바위 표면을 적셔 매끄럽게 만든다. 긴장을 늦추면 아차 하는 찰나 벼랑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폭포수 트레일에선 단 4마일 동안 20개가 넘는 다양한 형태의 폭포들을 만나볼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의 설계자가 윌리엄 펜이라면 이 공원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해준 사람은 제임스 리케츠James Ricketts다. 그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이었다.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남북전쟁에 첫 전투부터 참전했다. 그러나 바로 이 전투에서 4발의 총상을 입고 적의 포로가 된다. 그때 그의 아내는 자진해 적진으로 들어가 남편을 간호했다고 한다. 몇 달 후 포로 교환으로 풀려나 다시 전쟁에 참전했지만 총상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장군은 전역 후 이곳 리케츠공원 일대의 토지를 구매했다. 원래는 목재사업을 할 계획이었다. 그가 구매한 땅은 지금의 공원보다 훨씬 더 광대했다. 벌목 사업은 번창했고 목재를 위해 작업장 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러던 중 장군은 계곡 안쪽에서 믿지 못할 풍광을 보게 된다. 20여 개의 폭포가 계곡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외지인이 다녀가지 않은 처녀지 상태였다. 일대에 자생하던 나무는 수령이 최소 300년에서 최고 900년이 넘는 것들이었다. 리케츠 장군은 이곳만큼은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등반 중인 최기용 형.
이곳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도 무방할 만큼 훌륭한 경관을 갖추고 있다. 실제 1930년대 국립공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재정 문제로 그 계획은 중단되었다. 대신 종전 후 펜실베이니아주 정부가 땅을 사들여 주립공원으로 만들었다. 22개의 폭포가 반경 몇 마일 안에 밀집된 것은 매우 독특하다. 미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형이다. 언제든지 다시 논의만 된다면 국립공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곳은 숲이 잘 보존된 관계로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 흑곰, 사슴, 고슴도치 등을 볼 수 있고 루프 그라우스라는 펜실베이니아를 상징하는 새의 서식지기도 하다. 산 정상에는 진Jean이라는 인공호수가 있는데 여기선 미국의 국조 흰머리 독수리와, 물수리, 수달들이 발견된다. 공원 내 트레일은 대부분 바위를 닦아 만들어진 길을 따른다. 바위틈에는 방울뱀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손과 발을 딛을 때 늘 주의해야 한다.
트레일은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폭포가 반긴다. 작지만 넓은 폭을 자랑하기도 하고 가늘고 높은 물줄기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곳을 대표하는 것은 가노가폭포Ganoga Fall다. 22개 폭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높이 30m로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가장 큰 폭포다. 트레일이 폭포 밑에 놓여 있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웅장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겨울이면 몰아치는 강추위로 인해 꽁꽁 얼어 있다. 물보라는 폭포 주변으로 날아가서 얼음벽을 길게 만들었다.
높이 30m의 가노가폭포는 인근 빙벽등반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등반지다.
빙벽등반 장비로 중무장한 우리는 곧바로 폭포에 붙어 보기로 했다. 얼음이 깨끗한 걸 보니 지금까지 아무도 등반하지 않은 듯하다. 선등을 서는 기용 형이 힘주어 피켈을 내리치지만 잘 박히지 않는다. 아주 단단한 청빙이다. 여러 번 찍으면 겨우 한 번 들어간다.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고 어렵게 아이스스크루를 설치한다. 확보자도 긴장되는 순간이다. 간 적 없는 곳의 첫 등반은 난이도를 떠나 심적으로 어렵다. 떨어지면 사망은 아니더라도 최소 부상은 감수해야 한다. 힘이 빠질수록 피켈을 휘두르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겨우 끝까지 올랐다. 이 폭포는 인근 빙벽등반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다음 등반자들에게 미안하게도 등반 과정에서 잘 결빙된 얼음 기둥을 많이 부서뜨렸다. 눈이 오고 더 추워지면 다시 복구되리라.
호수, 폭포에 일가친척 이름…가장 큰 폭포엔 선주민 고유지명
트레일을 마저 걷는다. 리케츠 장군의 가족사랑은 남달랐나보다. 공원에 있는 많은 폭포와 지명이 그의 가족 이름에서 왔다. 산정호수 '진 레이크'의 진Jean은 장녀의 이름이다. 프랭크Frank폭포는 동생의 이름을 가져왔다. 머레이Murray, 쉘든Sheldon, 레이놀드Raynolds폭포는 처남들의 이름이다. 오직 하나 가족의 이름이 아닌 게 가노가폭포다. 가노가는 이곳 선주민 세네카 족 언어로 '산 위의 물Water on the Mountain'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리케츠 장군은 계곡에서 가장 큰 폭포에 선주민을 존중하는 의미로 그들의 언어를 남겼다고 한다.
빙벽등반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장비가 부족한 일반 등산가들은 가이드 업체를 찾기도 한다. 이들을 통해 빙벽 트레일을 걸어볼 수 있다. 밸리 투 서밋Valley to Summit이라는 회사가 아이스 계곡 투어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운영한다. 주말에는 참가자가 많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라고 한다.
트레일을 걷고 폭포를 등반하고 나니 오후 2시가 넘어간다. 흐린 날씨에 눈발이 날리는 숲속에 갇혀 있으니 시간 감각이 없다. 이제 산을 벗어나야 한다. 오르는 길은 온통 빙판길이라 크램폰을 찼어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양손에 잡은 피켈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계곡을 올랐다. 능선에 다다랐을 즈음 회사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통신상태가 안 좋아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전화를 받았다. 통화 후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이 앞서 간 기용 형의 크램폰 발자국이 안 보인다. '아마도 크램폰을 벗었으리라' 짐작하고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30분이나 걷고 나서야 이곳이 왔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전화 받는 사이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을 못 보고 지나쳐서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던 것이다. 배낭 속에서 무전기를 꺼내 형에게 현재 상황을 알렸다. 전화기를 꺼내 나침반을 보니 역시 다른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길을 다시 찾아 걸었다. 멀리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등산객들이 트레일 초입까지 와 있는 것이라 생각해서 소리 나는 쪽으로 걸었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똑같이 생긴 놈이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초면이지만 친근하고 고맙고 반갑다. 미국에서는 동네 뒷산에서도 조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잠깐의 셀프 조난으로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미 도착해 있던 기용 형이 끓여놓은 물로 컵라면을 익혀 먹으니 이 세상 무엇과도 비길 바가 없는 맛이다. 오늘은 형이 미슐랭 쓰리스타 요리사보다 낫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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