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해외 성인 컨텐츠 제공 사이트와 국내 법적 이슈 밍키넷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반도우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2-18 00:24조회0회 댓글0건
관련링크
-
http://20.yadongkorea.me
0회 연결
-
http://38.kissjav.xyz
0회 연결
본문
[이길상 기자]
▲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커피 마시는 모습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2011년 어느 날 초등학교 교사로 35년 재직하셨던 나의 아버지께서 70대 중반의 연세에 치매 판정 게임릴사이트 을 받으셨다. 담배와 커피를 즐기셨던 아버지께서는 어디에선가 커피가 치매 환자에게 좋다는 얘기를 들으셨다고 하시며 커피를 더욱 자주 마셨다. 물론 편리한 커피믹스였다. 넓은 벌판이 내려다보이는 고향집 2층 아버지 침대맡에는 늘 커피믹스 박스가 놓여있었고, 식사 후나 흡연 후에는 항상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드셨다.
폭 뽀빠이릴게임 력성을 동반한 치매 증상이었기에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는 손발이 병원 침상에 묶여있으셨고, 커피조차 마시지 못하셨다. 언젠가 아버지와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장남인 내가 살아오며 느꼈던 섭섭했던 순간들을 얘기하고, 묵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싶었던 나의 작은 희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분과 마신 마지막 커피에 대한 기억조차 없이 그렇게 보내 드 바다이야기룰 렸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만든 발명품
세계 커피 역사 속에는 아버지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는 아버지와 마신 커피 이야기가 드물다. 1898년 9월 커피마니아였던 아버지 고종과 식후 커피를 함께 마시다가 독살될 뻔했던 황태자 시절 순종 이야기 정도가 남아 있다.
세계 커피 바다신2다운로드 역사에서 아버지 이야기로 가장 유명한 것은 디카페인 커피를 발견한 독일인 루트비히 로젤리우스 이야기일 것이다. 1874년 독일 브레멘 태생인 로젤리우스의 아버지는 상인이었고, 주요 취급 물품이 커피였다. 아들 로젤리우스가 아버지 회사에 들어간 것은 20살이 되던 1894년 무렵이었다. 해외에서 커피를 수입하여 유럽 여기저기로 판매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였다. 바다이야기게임장 로젤리우스는 물론 그의 아버지는 커피를 즐기는 커피마니아였다.
그러던 1902년 어느 날 59세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과도한 카페인 섭취가 원인일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로젤리우스는 카페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하게는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하기 위한 연구였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컸던 로젤리우스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19세기 말 당시는 유럽과 미국에서 커피 유해성 논쟁이 활발하였다. 산업화의 성공으로 소비력이 폭발하면서, 육류 소비가 늘고, 커피 소비도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각종 성인병이 유행하면서 커피에 함유되어 있는 카페인이 비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커피가 심장 질환, 신경과민, 불면증의 원인이라는 소식은 이어졌고, 카페인은 독성 물질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에서 시리얼 업체 포스트(Post)에서 개발한 커피 대용품 포스텀이 인기를 끈 것이 이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사망이 커피 중독, 이로 인한 카페인 과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 로젤리우스는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아무런 성과가 없던 로젤리우스에게 우연한 사건이 벌어졌다. 1903년 로젤리우스가 취급하던 커피 생두 화물이 해상 운송 중 바닷물에 젖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닷물에 잠겼던 원두는 판매할 수 없었고, 로젤리우스의 실험실로 옮겨졌다.
바닷물에 빠졌던 생두를 볶고, 갈아서, 물에 넣어 끓였다. 그런데 맛은 큰 차이가 없고, 각성 효과가 현저하게 약해진 느낌이었다. 생두의 성분을 분석해 보니 카페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로젤리우스가 염분이 들어 있는 바닷물과 만났을 때 카페인이 용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커피의 맛은 유지된 상태로 카페인만 제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은 것이다.
생두를 증기나 물로 불린 후 유기용매(초기에는 벤젠)를 사용해 카페인을 제거하는 기술을 발견한 로젤리우스는 1906년에 이 기술의 특허를 취득하였다. 세계 최초의 상업적 디카페인 커피 탄생이었다. 현재 세계 최고 기술의 디카페인 기업 Kaffee HAG가 이렇게 등장하였다. "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커피, 의사가 권하는 커피"를 내세우면서 디카페인 커피는 널리 퍼질 수 있었다. 특히 심장병 환자, 노인,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음료로 성장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만든 발명품이었다.
아들과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 2007년 1월 9일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콘퍼런스에서 애플 아이폰을 들고 있는 모습.
ⓒ AP/연합뉴스
2011년은 국내외적으로 유난히 많은 유명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해외에서는 악명이 높았던 오사마 빈 라덴,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사망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야구선수 최동원이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북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이 세상을 떠난 해도 2011년이다. 2001년 평양에서 단독 공연을 했던 가수 김연자에게 커피 접대를 했던 일화를 남긴 김정일이었다.
커피 역사에 간혹 등장하는 소설가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난 것도 이해 1월이었다. 박완서는 그녀의 작품에서 유난히 커피와 다방을 여러 장면에 등장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커피와 다방을 적절하게 활용한 작가였다. 그녀가 쓴 여러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 그녀의 치열했던 삶이 녹아 있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였다. 자고 나면 다방이 생기는 '다방전성시대', 혹은 '낭만세대'가 주름잡던 '낭만시대'였다. 그래서 낭만세대의 첫 주자였던 박완서의 커피에는 고독, 허영, 사랑, 우정 등이 진하게 묻어있다.
전쟁 후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하고 미8군 PX에 취직했던 박완서는 시레이션 커피의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당시 맛본 커피에 대해 "기절하게 쓴맛"이라고 표현했다. 1976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에서 커피숍을 무대로 영업하던 고소득 중매쟁이, 즉 뚜쟁이에게 '다담뚜'라는 별칭을 붙인 것도 그녀였다.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필자와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커피잔을 들어 조용히 입에 대던 그분의 단아한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도 그렇지만 2010년대 초반 세계 어디에서나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는 것은 정을 나누는 상징적인 행동의 하나였다. 2011년 당시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 아들과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은 간절한 꿈을 꾸던 사람이 있었다. 당시 80세였던 압둘파타 존 잔달리였다. 아들과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잔달리의 작지만 간절했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아들은 그 꿈을 외면한 채 2011년 10월 5일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바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그의 아버지 잔달리 얘기다.
잔달리는 시리아 출신이었고 무슬림이었다. 195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 유학하던 시절에 독일계 미국인 여성 조앤을 만났다. 연인 관계였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조앤의 아버지가 시리아 출신 무슬림 남성과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다. 조앤의 아버지가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1950년대는 이교도와의 결혼이나 유색인종과의 결혼이 허용되지 않던 때였다. 1955년에 조앤에게서 아들이 태어났으나 미혼모였던 그녀는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의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그 아이가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잡스는 성인이 된 뒤 생모 조앤과는 재회하였지만, 생부 잔달리와는 교류가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잔달리가 알게 된 것이 2005년쯤이었지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당시 잔달리도 꽤 성공한 사업가였다.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경력이 있었고, 네바다주 리노에서 호텔과 카지노를 경영할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였다.
잡스의 사망 후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통해 잔달리는 아들 생전에 커피 한 잔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표시하였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저 평범한 음료인 커피 한잔이 잔달리에게는 아들과 한 번이라도 나누고 싶었던 꿈같은 음료였다. 우리 모두 커피 한 잔의 가치, 알고 마시면 세상이 더 따듯해지지 않을까.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덧붙이는 글
▲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커피 마시는 모습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2011년 어느 날 초등학교 교사로 35년 재직하셨던 나의 아버지께서 70대 중반의 연세에 치매 판정 게임릴사이트 을 받으셨다. 담배와 커피를 즐기셨던 아버지께서는 어디에선가 커피가 치매 환자에게 좋다는 얘기를 들으셨다고 하시며 커피를 더욱 자주 마셨다. 물론 편리한 커피믹스였다. 넓은 벌판이 내려다보이는 고향집 2층 아버지 침대맡에는 늘 커피믹스 박스가 놓여있었고, 식사 후나 흡연 후에는 항상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드셨다.
폭 뽀빠이릴게임 력성을 동반한 치매 증상이었기에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는 손발이 병원 침상에 묶여있으셨고, 커피조차 마시지 못하셨다. 언젠가 아버지와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장남인 내가 살아오며 느꼈던 섭섭했던 순간들을 얘기하고, 묵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싶었던 나의 작은 희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분과 마신 마지막 커피에 대한 기억조차 없이 그렇게 보내 드 바다이야기룰 렸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만든 발명품
세계 커피 역사 속에는 아버지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는 아버지와 마신 커피 이야기가 드물다. 1898년 9월 커피마니아였던 아버지 고종과 식후 커피를 함께 마시다가 독살될 뻔했던 황태자 시절 순종 이야기 정도가 남아 있다.
세계 커피 바다신2다운로드 역사에서 아버지 이야기로 가장 유명한 것은 디카페인 커피를 발견한 독일인 루트비히 로젤리우스 이야기일 것이다. 1874년 독일 브레멘 태생인 로젤리우스의 아버지는 상인이었고, 주요 취급 물품이 커피였다. 아들 로젤리우스가 아버지 회사에 들어간 것은 20살이 되던 1894년 무렵이었다. 해외에서 커피를 수입하여 유럽 여기저기로 판매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였다. 바다이야기게임장 로젤리우스는 물론 그의 아버지는 커피를 즐기는 커피마니아였다.
그러던 1902년 어느 날 59세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과도한 카페인 섭취가 원인일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로젤리우스는 카페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하게는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하기 위한 연구였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컸던 로젤리우스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19세기 말 당시는 유럽과 미국에서 커피 유해성 논쟁이 활발하였다. 산업화의 성공으로 소비력이 폭발하면서, 육류 소비가 늘고, 커피 소비도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각종 성인병이 유행하면서 커피에 함유되어 있는 카페인이 비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커피가 심장 질환, 신경과민, 불면증의 원인이라는 소식은 이어졌고, 카페인은 독성 물질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에서 시리얼 업체 포스트(Post)에서 개발한 커피 대용품 포스텀이 인기를 끈 것이 이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사망이 커피 중독, 이로 인한 카페인 과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 로젤리우스는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아무런 성과가 없던 로젤리우스에게 우연한 사건이 벌어졌다. 1903년 로젤리우스가 취급하던 커피 생두 화물이 해상 운송 중 바닷물에 젖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닷물에 잠겼던 원두는 판매할 수 없었고, 로젤리우스의 실험실로 옮겨졌다.
바닷물에 빠졌던 생두를 볶고, 갈아서, 물에 넣어 끓였다. 그런데 맛은 큰 차이가 없고, 각성 효과가 현저하게 약해진 느낌이었다. 생두의 성분을 분석해 보니 카페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로젤리우스가 염분이 들어 있는 바닷물과 만났을 때 카페인이 용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커피의 맛은 유지된 상태로 카페인만 제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은 것이다.
생두를 증기나 물로 불린 후 유기용매(초기에는 벤젠)를 사용해 카페인을 제거하는 기술을 발견한 로젤리우스는 1906년에 이 기술의 특허를 취득하였다. 세계 최초의 상업적 디카페인 커피 탄생이었다. 현재 세계 최고 기술의 디카페인 기업 Kaffee HAG가 이렇게 등장하였다. "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커피, 의사가 권하는 커피"를 내세우면서 디카페인 커피는 널리 퍼질 수 있었다. 특히 심장병 환자, 노인,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음료로 성장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만든 발명품이었다.
아들과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 2007년 1월 9일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콘퍼런스에서 애플 아이폰을 들고 있는 모습.
ⓒ AP/연합뉴스
2011년은 국내외적으로 유난히 많은 유명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해외에서는 악명이 높았던 오사마 빈 라덴,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사망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야구선수 최동원이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북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이 세상을 떠난 해도 2011년이다. 2001년 평양에서 단독 공연을 했던 가수 김연자에게 커피 접대를 했던 일화를 남긴 김정일이었다.
커피 역사에 간혹 등장하는 소설가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난 것도 이해 1월이었다. 박완서는 그녀의 작품에서 유난히 커피와 다방을 여러 장면에 등장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커피와 다방을 적절하게 활용한 작가였다. 그녀가 쓴 여러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 그녀의 치열했던 삶이 녹아 있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였다. 자고 나면 다방이 생기는 '다방전성시대', 혹은 '낭만세대'가 주름잡던 '낭만시대'였다. 그래서 낭만세대의 첫 주자였던 박완서의 커피에는 고독, 허영, 사랑, 우정 등이 진하게 묻어있다.
전쟁 후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하고 미8군 PX에 취직했던 박완서는 시레이션 커피의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당시 맛본 커피에 대해 "기절하게 쓴맛"이라고 표현했다. 1976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에서 커피숍을 무대로 영업하던 고소득 중매쟁이, 즉 뚜쟁이에게 '다담뚜'라는 별칭을 붙인 것도 그녀였다.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필자와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커피잔을 들어 조용히 입에 대던 그분의 단아한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도 그렇지만 2010년대 초반 세계 어디에서나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는 것은 정을 나누는 상징적인 행동의 하나였다. 2011년 당시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 아들과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은 간절한 꿈을 꾸던 사람이 있었다. 당시 80세였던 압둘파타 존 잔달리였다. 아들과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잔달리의 작지만 간절했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아들은 그 꿈을 외면한 채 2011년 10월 5일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바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그의 아버지 잔달리 얘기다.
잔달리는 시리아 출신이었고 무슬림이었다. 195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 유학하던 시절에 독일계 미국인 여성 조앤을 만났다. 연인 관계였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조앤의 아버지가 시리아 출신 무슬림 남성과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다. 조앤의 아버지가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1950년대는 이교도와의 결혼이나 유색인종과의 결혼이 허용되지 않던 때였다. 1955년에 조앤에게서 아들이 태어났으나 미혼모였던 그녀는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의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그 아이가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잡스는 성인이 된 뒤 생모 조앤과는 재회하였지만, 생부 잔달리와는 교류가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잔달리가 알게 된 것이 2005년쯤이었지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당시 잔달리도 꽤 성공한 사업가였다.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경력이 있었고, 네바다주 리노에서 호텔과 카지노를 경영할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였다.
잡스의 사망 후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통해 잔달리는 아들 생전에 커피 한 잔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표시하였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저 평범한 음료인 커피 한잔이 잔달리에게는 아들과 한 번이라도 나누고 싶었던 꿈같은 음료였다. 우리 모두 커피 한 잔의 가치, 알고 마시면 세상이 더 따듯해지지 않을까.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덧붙이는 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