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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숙여 참나무 아래를 지나가고 있다. (21.10.24.)
"산이 좋은 건 내 걸음만큼, 흘린 땀만큼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정겨운군(18)은 2025년 12월, 5년 6개월의 대장정 끝에 1대간 9정맥 6기맥을 완주했다. 종주거리 4,413km. 서울-부산(325km)을 14번 왕복하는 거리다. 걷기 좋은 아스팔트가 아닌, 급경사 구간과 덤불과 나뭇가지가 가로막는 험한 산길이니, 실질적인 어려움은 서울-부산 왕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총 산행일 226일, 하루 평균 산 바다이야기부활 행거리 20km, 하루 평균 산행시간 9~12시간에 이른다. 등산로가 잘 나있는 명산이 아닌, 산길이 없는 곳도 많은 정맥과 기맥을 합친 것이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낙엽 쌓인 길을 걷고 있다. (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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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거나 학원에서 밤샘 공부에 매달려 있을 때, 중학교와 고교 시절을 온통 전국의 험준한 산줄기 종주를 하는 데 올인했다. 간혹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주말마다 산을 탔다. 그는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산 위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 '아,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뽀빠이릴게임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대간 9정맥 6기맥 최연소 완주자, 정겨운 군을 소개한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중고생이 학업을 중요시 여기지만, 그는 "공부와 산 중에서 크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10년 넘게 연주한 바이올린처럼, 뭐든지 한번 하면 꾸준히 하는 성향 탓에 산행도 그저 일과라는 생각으로 5년 넘게 전념했다. 주변의 반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응은 어땠을까. 아버지는 "주변에서 '한창 공부해야 할 아이를 산에 데리고 다닌다'고 뭐라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럴 때면 아들이 먼저 산에 가자고 했고, 아들의 뜻을 항상 존중하고 응원해서 함께 산행한다고 설명해요"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혹여 사고가 날까 걱정하고, 친구들과 선생님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 굳이 말하고 다니진 않아서 그의 산행 이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밧줄을 잡고 암릉을 타고 있다. (25.11.02.)
11세 소년, 형 따라 산에 갔다
그가 산에 다니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 때이다. 두 살 터울인 형이 체력을 기르겠다며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와 형만 산에 가니까 혼자 집에 남는 것이 심심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형에게 본인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권유도 강제도 아닌, 어린 아이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아버지 정범진씨(66)는 원래 산을 잘 알지 못했다. 어린 두 아들이 먼저 산에 가자고 조르니까 산에 입문한 케이스다. '초등학생이 주말마다 산행한다면 몇 번이나 탈까?' 서너 번 타면 다행이고, 그 이상은 못 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금방 포기할 거라는 예상을 보란 듯이 깨고 형제는 산행을 이어갔다. 한 번이 열 번이 되고 백 번이 되더니, 삼부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김없이 산행에 나섰다. 매번 산행지를 고르기도 번거롭던 중에 백두대간을 알게 됐다. 정군은 당시 "백두대간 이름이 멋있었다"며 "호랑이의 등줄기를 탄다는 게 뭔가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백두대간 종주 중 급경사 암릉 위를 걷고 있다. (21.2.21.)
고등학교에 진학한 형이 기숙사 생활로 집을 떠나게 되자 삼부자의 주말 산행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정군은 계속 산을 타겠다고 했다. 그렇게 삼부자의 산행은 부자 둘만의 산행이 되었고, 백두대간에서 9정맥과 6기맥까지 여정이 이어졌다. 평생 풀어내도 다 못할 만큼의 추억이 담긴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종주 초기에는 택시를 불러 차량을 회수하는 기본적인 종주 방법도 몰랐다. 그때는 한 구간을 끝내고 원점으로 회귀하느라 구간을 왕복하기도 했다. 산길까지 접근하는 길이 산길보다 길어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산행 방법을 터득해 갔다.
산행이 길어질 것 같으면 미리 목적지에 차를 대고, 택시를 타고 출발점으로 갔다. 또는 출발점에 차를 대고 목적지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선답자들이 블로그에 남긴 택시 전화번호가 도움이 됐다. 들머리와 날머리까지 교통도 문제였지만, 더 걱정됐던 건 이동거리였다. 살고 있는 전북 전주에서 강원도나 경기도까지 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백수리산 정상석에 기대어 있는 정겨운군. (20.11.15.)
우여곡절 좌충우돌 산줄기 종주
"중학교 입학을 앞둔 2월 마지막 날이었을걸요. 길을 잃어 자정 가까이 산속에서 고생했어요. 너무 힘들고 무서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가시넝쿨과 거미줄을 헤치고 수많은 진드기와 해충에 뜯길 때면 포근한 집이 생각났다. 뜨거운 여름, 바람 하나 없는 민둥산을 탈 때는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겨울에는 칼날 같은 바람에 귀와 손이 떨어질 듯했다. 길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되돌아가 보면 어처구니없는 곳에서 길을 잘못 들곤 했다. 이후 산행 맵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잘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아버지가 정군을 믿고 신경을 덜 쓸 정도가 되었다.
매순간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 안개 때문에 그야말로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비에 젖은 돌무지를 내려왔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힘들었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백두대간을 마치고 눈길은 자연스레 정맥과 기맥으로 갔다. 백두대간이 몸통이라면, 정맥은 팔다리이고, 기맥은 손가락·발가락쯤 된다.
낙남정맥 종주 중 눈 무게에 주저앉은 산죽 아래를 기어가고 있다. (24.01.28.)
"기맥이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타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대간 탔으니 정맥도 타야지, 정맥 탔으니 기맥 타야지. 이런 식이었어요. 매번 산 고르는 것도 일이니까요."
대간과 정맥은 큰 산줄기이고, 사람들이 꽤 많이 다녀 길도 잘 닦여 있었다. 그런데 기맥을 타다 보면 가시덤불이 많아서 길이 안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정맥보다 기맥에 그런 길이 좀 더 많다는 점 빼고는 둘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맥이라 하면 진짜 길이 안 좋고 힘들 것 같다 생각하는데, 정맥과 거의 비슷했어요. 그냥 작은 정맥 느낌이랄까요."
한강기맥 종주 중 운두령 인근. (25.09.14.)
아버지라는 최고의 서포터와 함께
1대간 9정맥 6기맥 완주는 아버지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포트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날 등교에 지장이 없도록 산행거리와 왕복 교통시간 등을 계산하고, 먹거리와 자질구레한 산행 준비에 운전까지 도맡았다. 결국 주말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기름값과 식비 등 비용이 꽤 많이 들었지만, 아버지는 딱히 별말이 없었다. "아이들이 산을 타는 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결같이 지켜줬을 뿐이다.
"가끔 농담 삼아 골프보다 돈이 더 든다고 하세요. (웃음) 오히려 저희 형제 덕분에 산행을 시작해서 건강해졌다며 항상 고마워하시죠."
바위를 짚다가 쇳물이 밴 손바닥.
그와 아버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48살 띠동갑이다. 운전하는 시간이 길고 산행 중에도 계속 붙어 있으니까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평소에 말 못 한 것들도 산행하면서 편하게 꺼낼 수 있다. 아버지와만 할 수 있는 대화가 있고, 다른 사람과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의 옛날 모습을 많이 알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버지 정범진씨는 부자의 모든 산행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산행마다 50~100컷의 사진과 함께 구간별 거리와 시간, 그리고 산행 일기를 자세히 남겼다.
"그걸 왜 하냐고 물어봤어요. 나중에 제가 커서 시간 나면 한 번씩 읽어보면서 생각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백두대간을 완주한 후의 등산화.
산에서 삶의 체력을 기르다
기맥을 완주했으니 머지않아 지맥도 도전하지 않을까 싶다. 지맥 완주자들이 말하기를 지맥 역시 기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니, 개수만 많아졌을 뿐 완주는 시간문제다. 다만 올해 고등학생 3학년이 된 만큼 당분간은 본업에 집중하고, 감을 잃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기맥을 탈 계획이다. 성인이 되면 다시 일주일에 한 번씩 산행을 이어갈 생각이다.
한창 꿈 많을 나이, 그는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은 꿈이 있다. 그동안의 산행이 요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겠지만, 산에서 기른 체력이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요리든 자영업이든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니까, 체력적인 면에서 산행 경험이 값진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영산기맥 종주 중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정겨운군과 정범진씨. (24.08.24.)
정군은 "산에서 체력과 끈기, 인내를 길렀다"고 스스로 말한다. 웬만한 시련에는 흔들리지 않고 무엇이든 넓고 멀리 관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고등학생이 담기에는 어려운 말이지만, 4,413km는 소년을 안팎으로 성장시켰다.
길고 험난했던 대간·정맥·기맥 종주를 마친 지금 그에게 산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그는 "산이란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것, 돌아보면 추억으로 남은 것, 남들은 쉽게 느끼지 못할 귀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제가 살아온 날이 많지 않지만, 산은 삶의 축소판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욱 값진 것은 따로 있다고 한다.
"최연소 종주자란 타이틀보다, 어떤 산객분 말씀처럼 부자 최초로 1대간 9정맥 6기맥 완주라는 점이 기뻐요."
1대간 9정맥 6기맥 완주 피날레로 산패를 달고 있다. (25.12.13.)
1대간 9정맥 6기맥 완주를 기념하는 산패.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산이 좋은 건 내 걸음만큼, 흘린 땀만큼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정겨운군(18)은 2025년 12월, 5년 6개월의 대장정 끝에 1대간 9정맥 6기맥을 완주했다. 종주거리 4,413km. 서울-부산(325km)을 14번 왕복하는 거리다. 걷기 좋은 아스팔트가 아닌, 급경사 구간과 덤불과 나뭇가지가 가로막는 험한 산길이니, 실질적인 어려움은 서울-부산 왕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총 산행일 226일, 하루 평균 산 바다이야기부활 행거리 20km, 하루 평균 산행시간 9~12시간에 이른다. 등산로가 잘 나있는 명산이 아닌, 산길이 없는 곳도 많은 정맥과 기맥을 합친 것이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낙엽 쌓인 길을 걷고 있다. (20.11.22)
모바일바다이야기
또래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거나 학원에서 밤샘 공부에 매달려 있을 때, 중학교와 고교 시절을 온통 전국의 험준한 산줄기 종주를 하는 데 올인했다. 간혹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주말마다 산을 탔다. 그는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산 위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 '아,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뽀빠이릴게임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대간 9정맥 6기맥 최연소 완주자, 정겨운 군을 소개한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중고생이 학업을 중요시 여기지만, 그는 "공부와 산 중에서 크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10년 넘게 연주한 바이올린처럼, 뭐든지 한번 하면 꾸준히 하는 성향 탓에 산행도 그저 일과라는 생각으로 5년 넘게 전념했다. 주변의 반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응은 어땠을까. 아버지는 "주변에서 '한창 공부해야 할 아이를 산에 데리고 다닌다'고 뭐라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럴 때면 아들이 먼저 산에 가자고 했고, 아들의 뜻을 항상 존중하고 응원해서 함께 산행한다고 설명해요"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혹여 사고가 날까 걱정하고, 친구들과 선생님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 굳이 말하고 다니진 않아서 그의 산행 이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밧줄을 잡고 암릉을 타고 있다. (25.11.02.)
11세 소년, 형 따라 산에 갔다
그가 산에 다니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 때이다. 두 살 터울인 형이 체력을 기르겠다며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와 형만 산에 가니까 혼자 집에 남는 것이 심심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형에게 본인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권유도 강제도 아닌, 어린 아이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아버지 정범진씨(66)는 원래 산을 잘 알지 못했다. 어린 두 아들이 먼저 산에 가자고 조르니까 산에 입문한 케이스다. '초등학생이 주말마다 산행한다면 몇 번이나 탈까?' 서너 번 타면 다행이고, 그 이상은 못 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금방 포기할 거라는 예상을 보란 듯이 깨고 형제는 산행을 이어갔다. 한 번이 열 번이 되고 백 번이 되더니, 삼부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김없이 산행에 나섰다. 매번 산행지를 고르기도 번거롭던 중에 백두대간을 알게 됐다. 정군은 당시 "백두대간 이름이 멋있었다"며 "호랑이의 등줄기를 탄다는 게 뭔가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백두대간 종주 중 급경사 암릉 위를 걷고 있다. (21.2.21.)
고등학교에 진학한 형이 기숙사 생활로 집을 떠나게 되자 삼부자의 주말 산행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정군은 계속 산을 타겠다고 했다. 그렇게 삼부자의 산행은 부자 둘만의 산행이 되었고, 백두대간에서 9정맥과 6기맥까지 여정이 이어졌다. 평생 풀어내도 다 못할 만큼의 추억이 담긴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종주 초기에는 택시를 불러 차량을 회수하는 기본적인 종주 방법도 몰랐다. 그때는 한 구간을 끝내고 원점으로 회귀하느라 구간을 왕복하기도 했다. 산길까지 접근하는 길이 산길보다 길어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산행 방법을 터득해 갔다.
산행이 길어질 것 같으면 미리 목적지에 차를 대고, 택시를 타고 출발점으로 갔다. 또는 출발점에 차를 대고 목적지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선답자들이 블로그에 남긴 택시 전화번호가 도움이 됐다. 들머리와 날머리까지 교통도 문제였지만, 더 걱정됐던 건 이동거리였다. 살고 있는 전북 전주에서 강원도나 경기도까지 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백수리산 정상석에 기대어 있는 정겨운군. (20.11.15.)
우여곡절 좌충우돌 산줄기 종주
"중학교 입학을 앞둔 2월 마지막 날이었을걸요. 길을 잃어 자정 가까이 산속에서 고생했어요. 너무 힘들고 무서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가시넝쿨과 거미줄을 헤치고 수많은 진드기와 해충에 뜯길 때면 포근한 집이 생각났다. 뜨거운 여름, 바람 하나 없는 민둥산을 탈 때는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겨울에는 칼날 같은 바람에 귀와 손이 떨어질 듯했다. 길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되돌아가 보면 어처구니없는 곳에서 길을 잘못 들곤 했다. 이후 산행 맵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잘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아버지가 정군을 믿고 신경을 덜 쓸 정도가 되었다.
매순간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 안개 때문에 그야말로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비에 젖은 돌무지를 내려왔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힘들었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백두대간을 마치고 눈길은 자연스레 정맥과 기맥으로 갔다. 백두대간이 몸통이라면, 정맥은 팔다리이고, 기맥은 손가락·발가락쯤 된다.
낙남정맥 종주 중 눈 무게에 주저앉은 산죽 아래를 기어가고 있다. (24.01.28.)
"기맥이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타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대간 탔으니 정맥도 타야지, 정맥 탔으니 기맥 타야지. 이런 식이었어요. 매번 산 고르는 것도 일이니까요."
대간과 정맥은 큰 산줄기이고, 사람들이 꽤 많이 다녀 길도 잘 닦여 있었다. 그런데 기맥을 타다 보면 가시덤불이 많아서 길이 안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정맥보다 기맥에 그런 길이 좀 더 많다는 점 빼고는 둘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맥이라 하면 진짜 길이 안 좋고 힘들 것 같다 생각하는데, 정맥과 거의 비슷했어요. 그냥 작은 정맥 느낌이랄까요."
한강기맥 종주 중 운두령 인근. (25.09.14.)
아버지라는 최고의 서포터와 함께
1대간 9정맥 6기맥 완주는 아버지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포트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날 등교에 지장이 없도록 산행거리와 왕복 교통시간 등을 계산하고, 먹거리와 자질구레한 산행 준비에 운전까지 도맡았다. 결국 주말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기름값과 식비 등 비용이 꽤 많이 들었지만, 아버지는 딱히 별말이 없었다. "아이들이 산을 타는 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결같이 지켜줬을 뿐이다.
"가끔 농담 삼아 골프보다 돈이 더 든다고 하세요. (웃음) 오히려 저희 형제 덕분에 산행을 시작해서 건강해졌다며 항상 고마워하시죠."
바위를 짚다가 쇳물이 밴 손바닥.
그와 아버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48살 띠동갑이다. 운전하는 시간이 길고 산행 중에도 계속 붙어 있으니까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평소에 말 못 한 것들도 산행하면서 편하게 꺼낼 수 있다. 아버지와만 할 수 있는 대화가 있고, 다른 사람과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의 옛날 모습을 많이 알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버지 정범진씨는 부자의 모든 산행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산행마다 50~100컷의 사진과 함께 구간별 거리와 시간, 그리고 산행 일기를 자세히 남겼다.
"그걸 왜 하냐고 물어봤어요. 나중에 제가 커서 시간 나면 한 번씩 읽어보면서 생각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백두대간을 완주한 후의 등산화.
산에서 삶의 체력을 기르다
기맥을 완주했으니 머지않아 지맥도 도전하지 않을까 싶다. 지맥 완주자들이 말하기를 지맥 역시 기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니, 개수만 많아졌을 뿐 완주는 시간문제다. 다만 올해 고등학생 3학년이 된 만큼 당분간은 본업에 집중하고, 감을 잃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기맥을 탈 계획이다. 성인이 되면 다시 일주일에 한 번씩 산행을 이어갈 생각이다.
한창 꿈 많을 나이, 그는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은 꿈이 있다. 그동안의 산행이 요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겠지만, 산에서 기른 체력이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요리든 자영업이든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니까, 체력적인 면에서 산행 경험이 값진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영산기맥 종주 중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정겨운군과 정범진씨. (24.08.24.)
정군은 "산에서 체력과 끈기, 인내를 길렀다"고 스스로 말한다. 웬만한 시련에는 흔들리지 않고 무엇이든 넓고 멀리 관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고등학생이 담기에는 어려운 말이지만, 4,413km는 소년을 안팎으로 성장시켰다.
길고 험난했던 대간·정맥·기맥 종주를 마친 지금 그에게 산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그는 "산이란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것, 돌아보면 추억으로 남은 것, 남들은 쉽게 느끼지 못할 귀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제가 살아온 날이 많지 않지만, 산은 삶의 축소판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욱 값진 것은 따로 있다고 한다.
"최연소 종주자란 타이틀보다, 어떤 산객분 말씀처럼 부자 최초로 1대간 9정맥 6기맥 완주라는 점이 기뻐요."
1대간 9정맥 6기맥 완주 피날레로 산패를 달고 있다. (25.12.13.)
1대간 9정맥 6기맥 완주를 기념하는 산패.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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