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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들여다봤다. 출판 굿즈를 만드는 마음과 사들이는 마음을. 책과 함께 팔리던 굿즈가 ‘사은품’에서 ‘소장품’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출판 굿즈를 열정적으로 수집하는 이들, 출판 굿즈를 필사적으로 만드는 이들, 출판 생태계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출판 굿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물었다. 이들의 답변은 굿즈만큼 다채로 생명보험설계사 웠지만, 관통하는 열쇳말은 겹쳐졌다.




출판 굿즈의 모습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독서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키링, 출판 굿즈 전시 ‘책의 곁에 자리한 것들’ 풍경, 독서 애호가가 수집한 굿즈, 의류 브랜드 ‘트락타트’가 판매하는 프란츠 카프카 티셔츠. 지급실행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독자 제공



■ 굿즈 1.0부터 3.0까지 20년

팔랑이는 책갈피부터 육중한 책꽂이까지 출판 굿즈의 범주는 상당히 넓다. 독서대, 머그컵, 노트 같은 독서 인접 상품까지를 굿즈라고 묶 산업은행 필기 후기 을 수도, 고가의 전집류를 판매하기 위해 제공하던 사은품까지를 포함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책의 솔(soul)을 담은 (원칙적) 비매품’으로 범위를 제한했다. 그래야 굿즈를 얻기 위해 책을 사고, 북페어를 도장 깨듯 순례하는 최근의 현상을 비교적 정확히 해석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출판 굿즈가 오늘날의 형태로 직장인마이너스통장서류 자리 잡기까지는 두차례의 변곡점이 있었다. 먼저 출판 굿즈 1.0 시대, 2000년대 초중반 온라인 서점의 정착기다. 1999년부터 온라인 서점을 운영한 알라딘, 1998년에 온라인 서비스를 개시한 예스24는 독자들의 책 구매 패턴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시장 점유율을 선점하고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출판 굿즈’였 내려놓고 다. 특정 금액(보통 5만원) 이상을 구매하면 굿즈를 제공했는데, 이 굿즈가 책 좀 읽는 이들을 홀렸다. ‘자기만의 방’ ‘설국’ 같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모티브로 한 근사한 제품은 물론, 책 표지를 본뜬 냄비 받침, 책의 형상을 한 베개 등 유쾌한 굿즈도 줄줄이 탄생했다.

이렇게 태동한 굿즈 1.0 시대는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2.0시대로 넘어간다. 온라인 서점이 주도하던 굿즈 시장에 출판사와 서점도 뛰어들었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신·구간 관계없이 모든 간행물의 할인율을 정가의 15%(직접 할인 10%, 포인트 등 간접 할인 5%)로 제한했는데, 이 정책이 출판사와 서점을 굿즈 제작에 나서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했다. 가격으로 어필할 수 없으니, 굿즈로 차별성을 꾀한 것이다. 출판사 푸른숲의 문창운 마케팅 부장은 “온·오프라인 서점에 우리가 이 책에 이만큼 열과 성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출판사도 굿즈 제작에 뛰어들었다”며 “초창기에는 독자용보다는 서점 어필용이었던 셈”이라고 했다. 굿즈에 손을 벌린 건 서점도 마찬가지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대형 서점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할인 공세를 펼 수 없게 되자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동네 책방을 개업하기 시작했다”며 “작은 책방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발길을 끌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굿즈였다”고 했다.

굿즈 2.0의 흐름은 최근의 텍스트힙 사조와 만나면서 약간 다른 국면으로 전환된다. 굿즈 3.0 시대다. 이 시기에는 책과 굿즈의 경계가 흐려진다. 통상 책 굿즈는 책과 연관 있는 물건이었다. 메모지, 수첩, 노트, 책갈피 등의 지류이거나 독서 인접 상품(북커버, 독서대)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3.0 시대에는 상품군이 키링, 양말, 티셔츠, 모자 등 의류와 장신구까지로 확대됐다. 여기에는 출판 불황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출판이 확대된 것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 책의 취지, 내용 등을 선공개하고 이에 공감하는 이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책을 제작·배송하는 방식인데, 달랑 책만 배송하기에는 약소하니 가격을 높이되 모자, 티셔츠 같은 다른 상품군을 함께 구성해 판매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책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출판 굿즈의 가능성을 확인한 출판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문창운 푸른숲 부장은 “2018년도에 영화 유튜브 채널(‘무비건조’)을 토대로 제작한 신간을 텀블벅으로 펴내면서 티셔츠를 상품 구성에 포함시켰는데,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모금액을 달성했다”며 “이때 굿즈의 가능성을 엿보고 수년간 다양한 상품군을 시도했고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모자 ‘데드라인 아티스트’를 선보여 성공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굿즈가 책을 담는 방식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주로 표지를 차용한 디자인을 선보여 어떤 책을 모티브로 제작했는지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났던 초창기와 달리, 최근의 굿즈는 책을 ‘해체’해 문장만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최진영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장은 “책 전체가 아니라 분절된 문장을 소비하는 추세가 굿즈 인기와 맞아떨어진다”며 “텍스트를 주요하게 다룬 책 굿즈는 전체 굿즈 신(scene)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창운 부장은 “최근의 출판 굿즈는 문장 선정이 거의 처음이자 끝”이라며 “‘이건 내 얘기다!’ 싶은 강력한 문장이 담겨야 공산품이 아니라 소장품 반열에 오르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책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은근히 드러내기 위한 상징물로서의 굿즈도 늘어나는 추세다. ‘두꺼우면 유죄단’ ‘표지보고샀단’ 등의 문구가 새겨진 민음사 키링이 대표적인 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굿즈는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지, 어떤 지적 가치를 좋아하고 지지하는지, 어떤 수준의 지성으로 스스로를 지키는지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토템으로 기능한다”고 짚었다.

책과 굿즈의 ‘역전’ 현상도 감지된다. 책 자체가 굿즈가 되거나, 책이 의류나 게임의 ‘굿즈’로 뒤바뀌는 현상이 포착된다. 출판사 ‘안전가옥’은 책의 표지를 뒤집으면 또 다른 일러스트가 등장하도록 제작했다. 표지만 따로 떼 북 커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출판사 ‘밝은세상’은 책날개를 뜯으면 책갈피가 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의류 브랜드 ‘트락타트’는 발터 베냐민, 프란츠 카프카 등을 모티브로 한 티셔츠를 제작해 소비자에게 눈도장을 찍었는데, 이후 인문학 기반 패션 잡지를 출간했다. 굿즈가 먼저, 책이 나중인 역전 현상이 엿보인다.






출판 굿즈는 약 20여년 동안 진화와 변주를 거듭했다. 지류(메모지, 노트)에 머물던 굿즈는 이제 책의 세계관을 연장하는 하나의 콘텐츠로도 기능한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 진행 중인 전시 ‘책의 곁에 자리한 것들’에 출품된 각종 굿즈들. 이 전시는 오는 12월12일까지 진행된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불황이 만든 상품, 굿즈

출판 굿즈가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고 20여년간 진화를 거듭하며 유지된 가장 강력한 동력은 단연 ‘책을 팔고 싶은 마음’이다. 굿즈 2.0 시대 서점 어필용으로 굿즈를 제작하던 출판사들은, 이제는 독자와의 유대를 다지기 위한 장치로 굿즈를 활용한다. 예전처럼 책이 잘 팔리지 않으니 충성도 높은 집단을 필요로 하게 됐고, 그 과정을 굿즈가 매개하기 시작했다. 신간 판매 촉진이라는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독자와의 관계 구축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굿즈 제작에 나서는 셈이다.

실제 출판 굿즈가 자아내는 ‘귀여움’은 “지속적 관계를 시작하는 데 마중물의 역할을 하는 감성”이다. 책 ‘귀여워서 삽니다’ 지은이 강승혜는 책에서 “저성장이 만성화되면서 소비자로부터 ‘재고 따지지 않는 선호’를 얻어야 하는 기업들이 선택하는 전략이 팬덤 구축”이라며 “팬덤을 구축하는 데 가장 용이한 감정이 바로 귀여움”이라고 했다.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앙증맞은 키링 제작에 나서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이들은 출판 굿즈를 이토록 열심히 수집할까. 출판 굿즈 1.0 시대부터 꾸준히 수집해 출판 굿즈 80여개를 모았다는 30대 직장인 이아무개씨는 “파는 게 아니니까”와 “지금 아니면 못 사니까”를 그 열쇳말로 꼽았다. 그는 “‘여성의 날’ 굿즈가 너무 갖고 싶어서 집에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쌓여 있는데 또 사고, 아름다운 문진을 받으려고 벽돌책 ‘코스모스’를 사본 적이 있다”며 “돈을 낸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고, 보통 ‘한정 수량’이어서 금세 소진되니까 더 강렬하게 손에 넣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막상 손에 넣고 나면 감흥이 지속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굿즈 수집이 ‘소유하는 순간의 기분을 소유하는 행위’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씨의 말처럼 출판 굿즈에는 자본주의의 문법과 자본주의에 대한 정복욕이 오묘하게 뒤섞여 있다. ‘한정판’으로 강력한 수요를 창출하는 자본주의의 문법을 따르지만, 파는 상품은 ‘재화로 즉각 구매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화제를 모았던 굿즈 중 하나는 한겨레출판의 ‘책벌레’였다. 편집자들이 한땀 한땀 손으로 만든 수공예품으로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다.






애서가가 지난 20년 동안 모은 출판 굿즈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한국형 책 굿즈, 한국 출판을 이롭게 하려면

출판 굿즈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 포착되는 특이점이 있다. ①어른이 타깃이고 ②대체로 무상(이거나 온라인 서점 포인트로 구매 가능)이며 ③완성도가 높다는 점이다. 한국·일본·유럽 등지의 동네 책방을 연구해온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유럽에도 출판 굿즈가 있지만 어린이·그림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만든 어린이 대상 판매 제품이거나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처럼 저작권 기한이 만료된 국민 도서를 활용한 상품이 주를 이룬다”며 “문구가 발달한 일본은 굿즈가 많지만 모두 가격표가 붙은 판매 상품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구별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인 시장에서, 사은품의 형태로 굿즈가 발달한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짚었다.

이제 과제는 이러한 한국형 책 굿즈가 고전하는 한국 출판계를 이롭게 하도록 방향성을 정립하는 일이다. 책을 둘러싼 에너지가 굿즈에 분산되는 사태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굿즈와 책이 이미 떼놓을 수 없는 짝꿍이 된 것도 사실이다.

굿즈가 책을 삼키는 결말을 경계하기 위해 출판사들은 성찰을 거듭하고 있다. 노유다 움직씨 출판사 대표는 “재정이 넉넉지 않은 소규모 독립 출판사는 북페어를 앞두고 편집자가 직접 미싱을 돌리기도 한다”며 “매번 이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생태·퀴어 같은 대안적 가치를 지지하는 독자들로부터 굿즈를 만들어달라는 요청과 기대가 있기에 부응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고민 끝에 정립한 기준은 ‘창조성’과 ‘가치’다. 노 대표는 “굿즈 자체도 하나의 콘텐츠가 되도록 창작자의 창조성이 반드시 녹아 있어야 하고, 책이 담은 대안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며 “굿즈의 쓸모를 재정립하는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