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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끝부분을 듯한 언니는 엄두도 평범한 었다.[김재근 기자]
새벽은 언제나 여행자의 것이다. 지리산 능선 위로 해가 떠오를 때, 산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처럼 산허리에 안개를 두르고 있었다. 섬진강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강 위를 유영했다. 지난 7일은 입동, 절기상 겨울에 들어섰지만 지리산은 아직 가을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니, 가을의 끝자락을 더욱 깊이 붙들고 있는 듯했다.
삼홍소
구례읍에서 물을 따라 내려갔다. 왼쪽으로 지리산이 병풍처럼 이어졌고 오른쪽으로 섬진강이 흘렀다. 피아골 가는 길, 목적지는 삼홍소(三紅沼). 지리산 자락을 따라 굽이진 길을 오른다 . 단풍의 절정은 지났다. 붉고 누런 잎들이 두껍게 쌓여 있다.
대개가 절정의 순간을 찾는다. 가장 붉고, 가장 화려하고, 가장 찬란한 그 짧은 순간을. 단풍에도 나이가 있다면, 화려한 붉은 기운은 아마 이십 대일 것이다.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타오르는 젊음 같은 것. 그것도 아름답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마음이 가는 단풍은 따로 있다. 화려함이 조금 가시고, 흰머리가 하나둘 늘어가듯 갈색이 섞이기 시작한 단풍. 절정을 지나 성숙으로 접어드는, 나이로 치면 오십대, 그래서 더 깊은 이야기를 품은 단풍. 오늘 피아골의 단풍이 그랬다. 바람이 지난다. 나뭇잎들이 성근 눈처럼 날린다. 발아래 쌓인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사박사박, 마른 잎 부서지는 소리 가 난다. 세월을 담은 음악이 있다면 이런 소리일까.
삼홍소에 이르렀다. 산도 물도 사람도 모두 붉어 삼홍이다. 조선 중기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 경치에 반했나 보다. 시를 남겼다. 산이 붉게 변하니 산홍(山紅)이요, 물에 비치니 수홍(水紅)이요, 사람까지 물드니 인홍(人紅)이라, 했다.
▲ 삼홍소 남명 조식의 시에서 유래했다. 산도 물도 사람도 모두 붉어 삼홍이다.
ⓒ 김재근
오백 년 전 선비가 보았던 그 붉음을, 오늘 내가 보고 있다. 절정의 붉음은 지났다. 하지만 남명이 노래한 것은 단지 색깔만은 아니었을 터.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붉게 물드는 그 교감의 순간을 노래한 것이리라.
바위에 걸터앉아 소를 바라본다. 물은 잔잔하고, 낙엽들이 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이 인다. 낙엽들이 작은 배처럼 흔들린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아니, 시간이 흐른다는 것조차 잊게 했다.
사성암
새벽을 설쳐서인지 일찍 배가 고팠다. 여행에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식사다. 유튜브를 뒤지고, 인터넷에 물어보고, 신문 기사를 참고하지만, 막상 가보면 다를 때가 많다. 그래서 현지에서 직감으로 선택하는 편이다. 맛있으면 횡재고, 맛없으면 추억으로 여기면 그만이다.
사성암 가는 길에 섬진강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산채비빔밥을 주문했다. 피어오르는 들기름 내음이 향긋했고, 조몰락조몰락 무친 듯한 나물의 짭조름한 맛이 따스했다. 지리산의 들판에서 자란 나물들이 한 그릇 안에서 늦가을의 색을 품고 있었다. 음식은 횡재라고 하기엔 부족했지만 추억이라고 하기엔 넘쳤다. 창밖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가을빛이 창을 두드렸다. 멋진 풍경 앞에서 밥 한 그릇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 사성암 약사불인 마애여래입상이 바라보는 풍경. 마애여래입상이 약사전(유리광전) 건물 내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원효 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김재근
마을버스를 타고 사성암(四聖庵)에 올랐다. 오산(鰲山) 중턱에 자리한 암자다. 원효·의상·도선·진각, 네 명의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버스에서 내려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땀이 날 즈음, 사성암 마당에 섰다. 탁 트인 시야에 숨이 멎었다. 섬진강이 은빛 리본처럼 들판을 휘감았다. 노고단에서 반야봉까지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구례 시가지가 전설 속의 고대 도시 같았다. 강은 고요했고, 산은 묵묵했고, 들판은 안온했다.
이 풍경 앞에서 번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터. 원효가 손톱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은 천 년 넘게 이 풍경을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성암 경내를 게으르게 거닐었다. 바위틈에 지어진 법당들, 기암괴석 사이로 난 좁은 길, 절벽에 매달린 듯한 건물들. 자연과 인간이 만든 조화였다.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다시 한번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말이 없었다. 천 년, 만 년을 그렇게 서 있었을 산. 앞으로도 천 년, 만 년을 그렇게 서 있을 산. 그 억겁의 시간 앞에서 겸손해졌다.
▲ 지리산 국보 사사자삼층석탑에서 바라본 풍광. 가을이 깊다.
ⓒ 김재근
쌍산재
여정의 종반은 구례의 고요한 역사 속으로 이어졌다. 사성암에서 내려와 지리산 자락의 상사마을 쌍산재(雙山齋)를 찾았다. 방송 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른 곳이라 했다. 구례에 간다고 하자 지인이 적극 추천했다. 한옥과 정원이 아름다운 공간이라 했다.
유명세가 매긴 값일지 고택을 유지하는 고단함의 값일지, 일만 원을 내고 고택의 문턱을 넘었다. 웰컴 티, 라는 이름으로 차거나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 또는 매실차가 주어졌다. 의무처럼 뜨거운 매실차를 받아 들었다.
나쁘진 않았다. 정성 들여 가꾼 듯한 정원, 나름대로 멋을 낸 한옥, 대나무 숲길을 지나 마주하는 풍경은 정갈했다. 에스엔에스(SNS)에 올릴 멋들어진 사진 한 장쯤은 충분히 건질 수 있겠다 싶었다. 포토 존마다 서 있는 사람들, 친구와 가족과 연인과 각자의 방식으로 추억을 쌓으며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툇마루에 앉았다. 사람 구경 실컷 했다. 가을바람에 감성이 푸석해졌나, 끝내 그 아름답다던 공간에는 스며들지 못했다. 입술만 적셨던, 차갑게 식어버린 매실차를 쓰레기통에 넣고 대문을 나섰다. 여행도 인생과 다르지 않았다.
화엄사
▲ 화엄사 각황전 국보. 왼쪽 뒤로 국보 사사자석탑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 김재근
마지막 목적지는 화엄사(華嚴寺)였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이곳에 모인 줄 알았다. 사람 사람 사람 천지였다. 단풍·주말, 명찰, 이 세 가지 조건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감했다. 절집에 들어섰을 때 늦가을 오후의 희미한 빛이 마당에 내려앉았다.
지리산 화엄사,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무게감을 주는 절집이다. 압도적이었다. 규모부터 다른 고찰이었다.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에 들어섰다 하니, 천사백 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곳 역시 흰머리 희끗한 느낌의 완숙한 단풍이었다. 오늘 하루 내내 만난 단풍처럼. 그래서 더 고즈넉했다. 각황전(覺皇殿)의 압도적인 규모와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의 정교하고도 힘 있는 자태 앞에서 천년 고찰의 진면목을 실감했다.
각황전,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장대한 목조 건축물이다. 2층 법당이다. 기둥이 굵고 처마가 깊었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건물은 위엄마저 느껴졌다. 돌계단에 앉았다. 뜰 아래 단풍나무에 마음 주었다. 단풍잎 떨어진다. 한 잎 또 한 잎,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어진다. 삶도 저렇게 흘러가리라. 절정이 있고, 성숙이 있고, 마침내 내려놓음이 있듯이. 이러다 출가(出家)할라. 떨어지는 잎 세는 걸 멈추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산에서 내려올 무렵,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만추의 끝을 알리는 조용한 비였다. 타오르던 것들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자연의 마침표 같은. 붉음이 사위어 가는 계절의 길목에서 만난 구례. 화려한 절정 대신 완숙한 늦가을의 정취를 가슴 가득 담은 하루였다. 성근 눈처럼 흩날리던 낙엽과 거대한 산수화 같던 풍경 그리고 천년 고찰의 묵직한 여운이, 내리는 가을비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 속에 머물 듯하다.
문득 깨달았다. 여행은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절정을 좇지 않고, 끝자락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오십 대가 되어서야 오십 대 단풍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비는 계속 내렸다. 지리산 어디쯤에선가 빗물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개울이 모여 섬진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은 흘러간다. 계절도, 시간도, 우리도. 구례의 늦가을, 오십 대 단풍 사이를 거닐며, 나는 천천히 흐르는 법을 배웠다.
덧붙이는 글
새벽은 언제나 여행자의 것이다. 지리산 능선 위로 해가 떠오를 때, 산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처럼 산허리에 안개를 두르고 있었다. 섬진강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강 위를 유영했다. 지난 7일은 입동, 절기상 겨울에 들어섰지만 지리산은 아직 가을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니, 가을의 끝자락을 더욱 깊이 붙들고 있는 듯했다.
삼홍소
구례읍에서 물을 따라 내려갔다. 왼쪽으로 지리산이 병풍처럼 이어졌고 오른쪽으로 섬진강이 흘렀다. 피아골 가는 길, 목적지는 삼홍소(三紅沼). 지리산 자락을 따라 굽이진 길을 오른다 . 단풍의 절정은 지났다. 붉고 누런 잎들이 두껍게 쌓여 있다.
대개가 절정의 순간을 찾는다. 가장 붉고, 가장 화려하고, 가장 찬란한 그 짧은 순간을. 단풍에도 나이가 있다면, 화려한 붉은 기운은 아마 이십 대일 것이다.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타오르는 젊음 같은 것. 그것도 아름답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마음이 가는 단풍은 따로 있다. 화려함이 조금 가시고, 흰머리가 하나둘 늘어가듯 갈색이 섞이기 시작한 단풍. 절정을 지나 성숙으로 접어드는, 나이로 치면 오십대, 그래서 더 깊은 이야기를 품은 단풍. 오늘 피아골의 단풍이 그랬다. 바람이 지난다. 나뭇잎들이 성근 눈처럼 날린다. 발아래 쌓인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사박사박, 마른 잎 부서지는 소리 가 난다. 세월을 담은 음악이 있다면 이런 소리일까.
삼홍소에 이르렀다. 산도 물도 사람도 모두 붉어 삼홍이다. 조선 중기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 경치에 반했나 보다. 시를 남겼다. 산이 붉게 변하니 산홍(山紅)이요, 물에 비치니 수홍(水紅)이요, 사람까지 물드니 인홍(人紅)이라, 했다.
▲ 삼홍소 남명 조식의 시에서 유래했다. 산도 물도 사람도 모두 붉어 삼홍이다.
ⓒ 김재근
오백 년 전 선비가 보았던 그 붉음을, 오늘 내가 보고 있다. 절정의 붉음은 지났다. 하지만 남명이 노래한 것은 단지 색깔만은 아니었을 터.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붉게 물드는 그 교감의 순간을 노래한 것이리라.
바위에 걸터앉아 소를 바라본다. 물은 잔잔하고, 낙엽들이 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이 인다. 낙엽들이 작은 배처럼 흔들린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아니, 시간이 흐른다는 것조차 잊게 했다.
사성암
새벽을 설쳐서인지 일찍 배가 고팠다. 여행에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식사다. 유튜브를 뒤지고, 인터넷에 물어보고, 신문 기사를 참고하지만, 막상 가보면 다를 때가 많다. 그래서 현지에서 직감으로 선택하는 편이다. 맛있으면 횡재고, 맛없으면 추억으로 여기면 그만이다.
사성암 가는 길에 섬진강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산채비빔밥을 주문했다. 피어오르는 들기름 내음이 향긋했고, 조몰락조몰락 무친 듯한 나물의 짭조름한 맛이 따스했다. 지리산의 들판에서 자란 나물들이 한 그릇 안에서 늦가을의 색을 품고 있었다. 음식은 횡재라고 하기엔 부족했지만 추억이라고 하기엔 넘쳤다. 창밖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가을빛이 창을 두드렸다. 멋진 풍경 앞에서 밥 한 그릇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 사성암 약사불인 마애여래입상이 바라보는 풍경. 마애여래입상이 약사전(유리광전) 건물 내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원효 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김재근
마을버스를 타고 사성암(四聖庵)에 올랐다. 오산(鰲山) 중턱에 자리한 암자다. 원효·의상·도선·진각, 네 명의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버스에서 내려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땀이 날 즈음, 사성암 마당에 섰다. 탁 트인 시야에 숨이 멎었다. 섬진강이 은빛 리본처럼 들판을 휘감았다. 노고단에서 반야봉까지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구례 시가지가 전설 속의 고대 도시 같았다. 강은 고요했고, 산은 묵묵했고, 들판은 안온했다.
이 풍경 앞에서 번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터. 원효가 손톱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은 천 년 넘게 이 풍경을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성암 경내를 게으르게 거닐었다. 바위틈에 지어진 법당들, 기암괴석 사이로 난 좁은 길, 절벽에 매달린 듯한 건물들. 자연과 인간이 만든 조화였다.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다시 한번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말이 없었다. 천 년, 만 년을 그렇게 서 있었을 산. 앞으로도 천 년, 만 년을 그렇게 서 있을 산. 그 억겁의 시간 앞에서 겸손해졌다.
▲ 지리산 국보 사사자삼층석탑에서 바라본 풍광. 가을이 깊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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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의 종반은 구례의 고요한 역사 속으로 이어졌다. 사성암에서 내려와 지리산 자락의 상사마을 쌍산재(雙山齋)를 찾았다. 방송 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른 곳이라 했다. 구례에 간다고 하자 지인이 적극 추천했다. 한옥과 정원이 아름다운 공간이라 했다.
유명세가 매긴 값일지 고택을 유지하는 고단함의 값일지, 일만 원을 내고 고택의 문턱을 넘었다. 웰컴 티, 라는 이름으로 차거나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 또는 매실차가 주어졌다. 의무처럼 뜨거운 매실차를 받아 들었다.
나쁘진 않았다. 정성 들여 가꾼 듯한 정원, 나름대로 멋을 낸 한옥, 대나무 숲길을 지나 마주하는 풍경은 정갈했다. 에스엔에스(SNS)에 올릴 멋들어진 사진 한 장쯤은 충분히 건질 수 있겠다 싶었다. 포토 존마다 서 있는 사람들, 친구와 가족과 연인과 각자의 방식으로 추억을 쌓으며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툇마루에 앉았다. 사람 구경 실컷 했다. 가을바람에 감성이 푸석해졌나, 끝내 그 아름답다던 공간에는 스며들지 못했다. 입술만 적셨던, 차갑게 식어버린 매실차를 쓰레기통에 넣고 대문을 나섰다. 여행도 인생과 다르지 않았다.
화엄사
▲ 화엄사 각황전 국보. 왼쪽 뒤로 국보 사사자석탑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 김재근
마지막 목적지는 화엄사(華嚴寺)였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이곳에 모인 줄 알았다. 사람 사람 사람 천지였다. 단풍·주말, 명찰, 이 세 가지 조건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감했다. 절집에 들어섰을 때 늦가을 오후의 희미한 빛이 마당에 내려앉았다.
지리산 화엄사,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무게감을 주는 절집이다. 압도적이었다. 규모부터 다른 고찰이었다.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에 들어섰다 하니, 천사백 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곳 역시 흰머리 희끗한 느낌의 완숙한 단풍이었다. 오늘 하루 내내 만난 단풍처럼. 그래서 더 고즈넉했다. 각황전(覺皇殿)의 압도적인 규모와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의 정교하고도 힘 있는 자태 앞에서 천년 고찰의 진면목을 실감했다.
각황전,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장대한 목조 건축물이다. 2층 법당이다. 기둥이 굵고 처마가 깊었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건물은 위엄마저 느껴졌다. 돌계단에 앉았다. 뜰 아래 단풍나무에 마음 주었다. 단풍잎 떨어진다. 한 잎 또 한 잎,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어진다. 삶도 저렇게 흘러가리라. 절정이 있고, 성숙이 있고, 마침내 내려놓음이 있듯이. 이러다 출가(出家)할라. 떨어지는 잎 세는 걸 멈추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산에서 내려올 무렵,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만추의 끝을 알리는 조용한 비였다. 타오르던 것들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자연의 마침표 같은. 붉음이 사위어 가는 계절의 길목에서 만난 구례. 화려한 절정 대신 완숙한 늦가을의 정취를 가슴 가득 담은 하루였다. 성근 눈처럼 흩날리던 낙엽과 거대한 산수화 같던 풍경 그리고 천년 고찰의 묵직한 여운이, 내리는 가을비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 속에 머물 듯하다.
문득 깨달았다. 여행은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절정을 좇지 않고, 끝자락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오십 대가 되어서야 오십 대 단풍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비는 계속 내렸다. 지리산 어디쯤에선가 빗물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개울이 모여 섬진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은 흘러간다. 계절도, 시간도, 우리도. 구례의 늦가을, 오십 대 단풍 사이를 거닐며, 나는 천천히 흐르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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