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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nara.info
A씨는 경찰공무원이었다. 20대 중반 입직해 50대 중반에 조기 은퇴했다. 평소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바다이야기2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수상스키, 산악자전거, 스카이다이빙 등 스포츠를 즐겼다. 관광 가이드로 제2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조기 은퇴하고 제주에 안착했다. 몇 개월 후, 2020년 2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원인불명의 척수염 진단을 받았다. 2년 가까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받다가 제주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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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A씨는 의사조력자살의 입법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A씨는 하지 마비 상태였다. 둔부에서 시작되어 무릎까지 통증이 지속됐다. A씨는 공업용 프레스기로 온몸을 누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펜타닐 성분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으로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았다. 자발적 모바일릴게임 배변활동이 불가능했고, 매일 A씨의 딸이 글러브를 착용하고 인위적으로 변을 빼내야 했다. A씨의 딸은 24시간 간병을 했고, 통증을 참기 어려워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상당한 고통을 느꼈다. 이런 상황 속에서 A씨는 스위스의 의사조력자살 지원 단체를 알게 되었고 회원으로 가입했다. A씨가 스위스로 가려면 딸이 동반해야 하는데,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 딸은 ‘자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살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여름 나는 재택의료를 하는 일반외과 의사 B씨와 함께 A씨를 만났다. 먼저 우리가 주목한 것은 A씨의 자세였다. 인터뷰는 2시간씩 총 네 차례 진행했는데, 휠체어에 앉은 A씨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었다. 다음으로 메이저릴게임사이트 우리는 A씨 건강상태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A씨가 느끼는 통증은 분명했지만, 발병 5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그 통증의 정도는 이전보다 강하지 않았다. 급성에서 만성화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보였다. 현재 그의 통증에 기여하고 있는 요소는 척수염보다는 오히려 침상 및 휠체어 생활로 인한 근골격계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A씨가 적극적으로 통증을 조절하며 시도해볼 수 있는 재활운동·치료를 떠올렸다. 그것이 A씨의 일상을 좀 더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A씨가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돌봄에 대해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A씨는 진통제 처방과 소변줄 교체를 위해 한 달에 두 번 병원을 방문하지만, 의사와 별다른 대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상 A씨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하면서 통증을 조절하고 있었다. 병원 외 외출은 없었고, 지인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경기도에 살던 30대 후반의 딸은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와서 아버지를 온종일 돌보고 있었다. 낮은 의료서비스 접근성과 부족한 사회서비스 연계로 인해 그들의 삶은 더욱 취약해졌다.
한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가 누워 있다. ⓒ시사IN 신선영
치료 방법 없는 고통에 어떻게 응답할까
9월1일 헌법재판소(헌재)에서 ‘안락사’에 대한 연구 발표회가 열렸다. 나는 토론자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A씨 사례를 포함해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국에서 회자되는 안락사란 무엇인가. 그 실체는 흐릿한데 소문은 무성하다. 정보는 부족한데 논쟁은 치열하다. 대개 찬성과 반대 의견으로 나뉜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스스로 죽음 시기와 방식에 대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 반대하는 쪽에서는 어떻게 말할까. “인간 생명에 내재된 존엄성은 삶의 조건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마지막까지 돌보고 지지해야 한다.” 이 역시 일리가 있어 보인다. 찬반 양론 모두 인간 존엄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논쟁에서 존엄이라는 단어는 마치 으뜸패(trump)처럼 사용된다. 결론은 없고 막막하기만 하다.
헌재는 A씨가 제기한 안락사에 관한 헌법소원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를 진행 중이다. 헌재가 연구 발표회를 주최한 이유는 안락사라는 난감한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숙의하기 위해서였다. 헌재 대회의실에 발제자, 토론자, 헌법재판관, 헌법연구관을 비롯한 관계자 50여 명이 모였다. 내가 이 발표회에서 받은 인상은 이렇다. 참석자들의 입장은 안락사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신중한 중립’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적극적 모호함’에 가까웠다. 안락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단편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관점과 혼란을 기꺼이 대면하고자 했다. 누구도 안락사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았다. 이 새로운 죽음의 방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한편, 또 어떤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이해했다. 최근 들어 안락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진 배경에도 주목했다. 그 이야기들을 세 부분으로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안락사라는 개념. 안락사에 관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개념부터 파악해야 한다. 안락사는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으로, 본인의 요청에 따른 의료적 조력을 통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안락사와 연명의료 결정은 다른 개념이다. 안락사의 대상은 불치의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지만, 꼭 말기 및 임종기 환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루게릭병이나 잠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 환자처럼 사망이 임박하지 않았지만 전신마비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도 안락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흔히 안락사로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안락사(euthanasia)’와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스스로 투여·섭취하는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로 나뉜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행위의 주체, 즉 누가 약물을 투여하는가에 있다. 참고로, 이 글에서는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락사로 통칭한다.
안락사에 대한 기술적 정의는 같아도 공식 용어는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유럽(벨기에·스페인·스위스·네덜란드 등)에서는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이라는 말이 무리 없이 통용된다. 한편 캐나다는 ‘의료조력사망(Medical Assistance In Dying, MAID)’이란 용어로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포괄하며, 이 둘 모두를 허용한다. 의료조력사망이란 용어는 자살과 안락사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범죄나 죄악으로 여겨지는 자살이라는 행위’ ‘나치 독일이 실행한 안락사 프로그램’)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 캐나다에서 의료조력사망은 말기 돌봄의 연장선 위에 있다. 여러 의사의 진료,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 여부, 심리상담, 간병 지원, 생계 문제, 사회복지사 연계 등이 검토되는 일이다.
헌재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은 의료조력사망과 안락사를 완전히 구별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공유했다. 그럼에도 안락사 대신 의료조력사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사람들은 그 용어를 통해 안락사 논의의 초점이 죽음(death)이라는 순간이 아니라 ‘죽어감(dying)’이라는 과정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 의료와 돌봄이 필수적임을 확인했다. 특히 안락사의 정당성 문제는 ‘조력’에 있음을 환기했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A씨가 제기한 안락사에 관한 헌법소원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를 진행 중이다. 사진은 헌법재판소 경내 모습. ⓒ시사IN 박미소
의사·간호사가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죽음을 앞당기는 데 관여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 질문은 의료계(의료인·의료기관·의료보험 등), 더 나아가 공동체가 안락사 요청자의 고통을 어떻게 규정하고 다루는지에 관한 태도와 논의로 연결된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공동체(국가·사회·문화적으로 결속된 다양한 집단을 아우르는 말로 사용)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안락사의 범위는 그 응답에 따라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은 캐나다처럼 의료조력사망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 허용 범위는 캐나다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다. 2025년 9월 기준, 워싱턴 D.C.를 포함해 11개주만이 말기 환자만을 대상으로 의사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세간의 상식과 달리 안락사는 요청자의 자기결정-자율성만으로 정당화되는 행위가 아니다. 그 죽음(death),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죽어감(dying)에 제3자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의료조력사망이 영어로 ‘Medical Assistance In Dying’임을 다시금 음미해보자. 여기서 의료조력은 직접적으로는 의사 및 간호사의 관여를 가리킨다. 예컨대 의료진은 환자가 왜 안락사를 원하는지 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혹시 그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의 간병 부담 때문에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그의 의료기록과 건강상태도 살펴봐야 한다. 환자와 의료진 간 라포르 형성은 기본이다. 다시 말해 안락사 요청자는 이러한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
둘째, 안락사에 대한 열망.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생각은 타자의 죽음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헌재 연구 발표회에서 발제를 맡은 법학자 김현철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타인의 죽음에 대한 유추이므로, 살아 있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죽음이란 결국 그 죽음에 관한 관계 맺음일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죽음,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죽음, 희망하는 죽음을 공유한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은 죽음에 관한 규범을 형성하고, 또 그 규범을 통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마름질한다. 죽음은 개인에게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공동체 전체의 이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다.
안락사에 대한 열망은 타인의 죽어감(dying)에 대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대개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여겨진다. 나는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현장 연구를 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연명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병상에서 몇 달 며칠을 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서 숨마저도 기계로 조절하는 삶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콧줄, 소변줄, 기저귀로 연명하느니 하루빨리 안락사를 도입해서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합시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있다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 효용을 체감하지 못한 채 죽어간다. 우리네 마지막 모습이 왜 이렇게 궁색할 수밖에 없는지, 분노와 답답함이 밀려온다.
2018년 10월10일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고위험 희귀난치 근육장애인생존권 보장연대 회원이 침대에 누워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활동지원사 근무 시간이 줄어든 것에 항의하며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이 말하는 ‘안락사’란 무엇인가. 생애 말기에 병원(요양원 포함)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 통증 없이 죽고 싶다는 희망, 병원보다는 집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믿음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우선 주목할 것은 환자가 생애 말기에 어디서든(집이든 시설이든) 통증 없이 죽을 수 있도록 돕는 의료시스템이다. 그리고 연명의료결정제도의 확충이다. 안락사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다. 안락사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전에, 우리가 가리키는 ‘안락사’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미 연명의료결정법은 ‘모든 환자는 최선의 치료를 받으며, 자신이 앓고 있는 상병(傷病)의 상태와 예후 및 향후 본인에게 시행될 의료행위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사회적·문화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정부의 책무도 언급하고 있다. 문제는 법과 현실의 괴리다. 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시민들이 안락사를 그 대안으로 보고 있는 형국이다.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 경향 및 과제’를 살펴보자. 성인 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8명이 의사조력자살의 합법화에 찬성했다. 주요 이유는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41.2%)’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기 때문(27.3%)’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안락사·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응답했는지 의문이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일지라도 무의미한 치료가 계속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스스로 죽음을 결정(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유지하고 있다)하는 것과 타인의 죽음을 의료적으로 조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편 주목할 점은 ‘좋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서비스’를 묻는 질문에 대해, 대다수 응답자들이 ‘신체적 통증의 최소화’ ‘생애 말기 환자의 치료 비용 지원’ ‘생애 말기 환자 및 가족의 정서적 지원’을 꼽았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응답자들은 의사조력자살이란 ‘강한 말’을 통해서 환자의 목소리가 존중되는 의료·돌봄 환경을 촉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대한 공동체적 저항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프시케의숲, 2024)에서 김호성과 내가 지적했듯이, 한국에서 죽어가는 이들은 진단과 치료라는 가치로 디자인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떠도는 대상으로 변모한다. 삶의 형식은 의학적 판단에 따라 규정되는 한편, 삶의 역사는 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주변으로 밀려난다. 이들에게는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집, 요양원, 병원 모두 불안한 장소일 뿐이다. 더욱이 누구에게 돌봄을 받을지, 어떤 의료 처치를 지속하거나 중단할지 등 여러 사안에 대해 함께 논의할 상대(제도)도 없다. 그렇게 목숨만 이어가는 듯한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죽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죽느니 차라리 안락사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즉, 이런 엄혹한 현실에서 안락사에 대한 열망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열망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아니라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대한 공동체적 저항으로 봐야 한다.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동백 성루카 병원 1층에는 성모마리아상 뒤로 세상을 떠난 환자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시사IN 신선영
셋째, 안락사와 고통.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면 안락사가 필요하거나 정당화될 뚜렷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안락사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사람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고통이란 무엇인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불치의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락사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의사조력자살을 뜻하는 ‘조력존엄사’ 헌법소원 청구인 A씨의 고통에는 그간 한국 사회가 간과한 현실이 들어 있다.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사람의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사계절, 2025)에서 남유하 작가는 어머니가 의사조력자살을 결심한 배경과 그 죽음을 준비하고 이행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몸 곳곳에 퍼진 암세포로 인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어머니는 끝 모를 치료의 시간을 거부하고 조금 다른 삶의 마무리를 모색한다. 이 책을 읽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답게 살고자 하는 어머니의 씩씩한 태도에 감탄했다. 또 그의 고통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의료 체계(통증에 별 관심이 없는 병원, 호스피스 접근성 문제)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가 ‘자율적으로 내린 결정(의사조력자살)’에 공감했다. 한편 그 결정의 이행은 가족, 의료진, 스위스 기관 관계자, 돈, 시간, 공간, 제도, 사물로 구성된 네트워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안락사는 두터운 관계성을 동반하는(해야 하는) 행위다.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사람의 고통에 응답하는 관계성 말이다. 안락사를 요청하는 사람은 진공상태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존재라기보다는, 타인과 외부 변화에 열려 있는 유동적인 존재에 가깝다.
■ 참고한 도서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스테파니 그린, 최정수 옮김, 2023, 이봄)〈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주디스 버틀러 외, 조현준 옮김, 2024, 문학과지성사)〈사회적 고통〉 (아서 클라인만 외, 안종설 옮김, 2002, 그린비)
송병기 (의료인류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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