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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을 배우는 한국의 다문화가정. 참여자는 대부분 여성들이다. 뉴시스


추석이 다가온다. 명절 부엌의 풍경을 떠올리면, 각 나라의 문화와 사회가 압축된 지도 한 장을 보는 듯하다.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한 사회의 음식은 그 사회의 구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명절 음식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 그 사회의 분위기를 오롯이 드러낸다.
보수적인 유교문화권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서인지 미국에서 경험한 추수감사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오르는종목
. 영화에서나 보던 칠면조 요리가 오븐에서 나오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주방의 풍경이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요리를 준비했고, 칠면조가 익는 동안 보드게임을 하거나 담소를 나눴다. 식사가 끝나면 음식물 찌꺼기는 분쇄기로, 그릇들은 식기세척기로 들어갔다.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 과정에서 노동이 누군가에게 쏠리지 않으니 주방은 대화의 장이주식정보제공
자 협업의 공간으로 변했다.
한국의 추석 부엌은 사뭇 다르다. 국내에도 식기세척기가 보급됐지만 한식은 밥과 국, 탕과 찜, 반찬이 한 상에 차려지고, 그릇은 크기와 깊이가 제각각이라 식기세척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한동안 적지 않은 가정에서 세척기를 ‘식기 건조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흔했다. 오븐이 있어도 한식은 쉽게 맡겨놓을 수 없는 요리더블증권
들이 많아, 가족들이 느긋하게 게임을 즐길 여유가 나질 않는다. 그 결과 주방의 노동은 특정인에게 집중되고, 아이러니하게도 명절과 이혼율은 높은 상관관계를 갖게 됐다.
그나마 최근에는 전형적인 명절 풍경에 변화가 보인다.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의 증가, 한식 맞춤형 식기세척기의 등장, ‘외주형 명절 음식’의 확산이다. 반찬가게에서 전을 KCC건설 주식
사고, 떡집에서 송편을 예약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김치냉장고가 독립 가전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식기세척기도 ‘한국형 변용’을 거쳐 겨우 주방의 주민권을 얻고 있다. 그 덕분인지 명절 직후 이혼율도 서서히 완화되는 추세라니 씁쓸하면서도 다행스러운 변화다.
하지만 세계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생각하지도 못한 장면이 펼쳐진다. 제이스탁
전력이 불안정해 냉장고조차 사치품이 된 나라에서는 ‘명절 음식 준비’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고기를 사러 시장에 가면, 냉장 진열대 대신 사육 케이지가 놓여 있다. 닭이나 염소가 갇혀 있다가 손님이 고르면 즉석에서 도축된다. 처음 그 광경을 마주했을 때 너무 잔인하다 느꼈지만, 안정적인 전력과 냉장 시설을 담보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가장 신선하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주방 가전의 보급률은 단순히 생활의 편리함만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주방 가전은 우리 식문화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왔다. 에어프라이어의 등장은 냉동식품 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웠고, 전기밥솥은 가마솥의 ‘숭늉’ 문화를 조용히 밀어냈다. 기술은 이렇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동시에 오래된 전통을 소리 없이 지워내는 힘을 가진다.



주방은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를 비추는 가장 솔직한 거울이다. 미국의 오븐과 식기세척기는 협업과 대화를, 한국의 김치냉장고와 맞춤형 가전은 전통과 현대 사이의 줄다리기를, 그리고 제3세계의 사육 케이지는 사회 인프라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올 추석에도 수많은 집에서 “누가 설거지를 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다. 그 결과로 어느 집은 이혼서류를, 또 다른 집은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을 수도 있겠다. 다만 분명한 건, 전 세계 명절 부엌 풍경은 지금도 가전과 함께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식기세척기, 1886년 美 주부가 발명

식기세척기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다. 1886년 미국의 부유한 가정주부 조지핀 코크런(Josephine Cochrane)이 발명했는데, 이유가 흥미롭다. 하녀들이 값비싼 도자기를 자꾸 깨뜨리자 “차라리 내가 기계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가사노동의 갈등이 오히려 주방 혁신을 낳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