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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실수했으면 거기다 있었 정도로. 대학을 입맛에(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옥스퍼드의 탁월한 강의가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는 순간, 지식의 사회적 가치는 줄어든다고 봤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지식 공유 플랫폼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Voices from Oxford·VOX)를 17년째 이끌어온 김성희(74) 대표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좋은 지식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믿음은 '입학해야만 닿을 수 있는' 옥스퍼드의 울타리를 넘어, 석학의 통찰을 영상으로 기록해 전 세계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구체화했다.
한국에서 대학 강단과 교육 방송 현장을 누볐던 김 대표는 쉰 살을 넘겨 유학길에 올 황금성릴게임사이트 랐다. 주변의 만류 속에서도 옥스퍼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고, 그 경험은 이후 VOX의 기획 철학으로 이어졌다. '배움을 통한 자아실현'과 'Here and now, right now'(지금, 당장 실천)를 삶의 모토로 삼아온 그는 인터뷰 내내 '도전'과 '공유'를 같은 단어처럼 말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늦은 유학'의 두려움 바다신2릴게임 을 넘긴 방식, 젊은 동료와 섞여 공부한 시간, VOX를 지속시킨 운영 원칙, 그리고 그가 옥스퍼드대 석학을 움직이는 질문의 기술까지 들어봤다.
◇ 안주하는 마음 없애려고 50세에 떠난 英 유학길
--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나. 어떻게 극복했나. ▲ 두려움이 없었다기보다, 두려움과 지적 호기심 야마토게임장 이 동시에 나를 움직였다. 80~90년대 EBS에서 고교 영어를 시작으로 'BBC 영어'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서강대에서 가르치며 수업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 1시간 가르치기 위해 4~5시간 준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잘해오던 일을 내려놓고 유학을 간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왜 굳이 바다이야기고래 고생을 자처하느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다만 늘 '배움을 통한 자아실현', 그리고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하는 삶을 좌우명으로 삼아왔다. 그게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됐다.
--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선택이 어떤 의미였나. ▲ 요즘 더 실감한다.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VOX 대표로도 일하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오징어릴게임 초빙 석좌 교수로도 활동하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는 거 아닌가. '안주하지 않은 도전'은 나이와 환경을 뛰어넘는 성장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못한다. 가족의 인내와 지원이 정말 컸다.
-- 젊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그게 가장 힘들었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거울을 더 오래 보기도 했다. 거울 속 제 모습이 어느 순간 '어머니'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 모습으로 가면 애들이 자기 엄마 온 것처럼 불편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화장했다가 지우기도 하고, 혼자 소외감을 크게 느꼈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내가 잘 선택했나' 흔들릴 때가 많았다.
-- 어떤 전환점이 있었나. ▲ 많은 대학원생이 금요일에 토론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 갔다. 보트 파티였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춤을 추게 됐다. 프랑스 친구가 벨리댄스를 선보일 만큼 춤을 잘 추는 친구였고, 분위기를 확 바꿨다. 나는 원래 로큰롤 같은 춤도 배운 적이 있어서 음악이 나오면 그냥 나가서 열심히 췄다. 그랬더니 처음엔 수줍어하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다 따라 하는 거다. 그 뒤로는 파티에 내가 조금 늦으면 전화가 오고 "어디냐" 하고 찾고, 다음 자리에도 같이 가자고 하면서, 그때부터 나이를 잊게 됐다. 마음이 풀리니까 공부 집중도 더 잘 됐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라는 의심이 사라지니, 도서관에서 오히려 힘이 났다.
-- 한국 기준으로는 '어르신이 망가졌다'고 보일 수도 있지 않나. ▲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옥스퍼드는 지금도 살사 같은 댄스 동아리 문화가 자연스럽고, 젊은 연구자들과도 거리낌 없이 어울린다. 반면 한국에서 객원교수로 있을 때는 '내가 춤 동아리에 나타나면 학생들이 나를 온전히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화 차이는 분명히 있다.
◇ "옥스퍼드 안 와도 석학을 만난다"…VOX의 탄생
-- '지식 공유'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었나. ▲ 제가 소속된 옥스퍼드대 벨리올 칼리지 학장님이 '이제는 비디오 시대'라고 하면서,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 쪽과 함께 새로운 교육 프로젝트를 제안한 자리가 있었다. 그때 내가 '명문대의 강의를 듣기 위해선 입학이 전제조건이니 울타리가 너무 높다. 발상을 바꿔 명강의를 대중에게 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몇 사람이 시작한 일이 지금의 VOX가 됐다. 여러 교수의 지지가 있었고, 많은 석학이 동참하면서 점점 커졌다. 지금은 여러 분야의 핵심 멤버가 '통섭과 융합'을 가치로 콘텐츠를 만들고, 전 세계와 공유하고 있다.
-- VOX가 지식을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택한 이유는. ▲ 지식은 공유될 때 진짜 가치가 생긴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영상은 시대 언어가 됐다. VOX도 이제는 3분 콘텐츠, 쇼츠까지 고민한다. 강의를 100% 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20%만 건져도 한 단어, 한 문장이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늘 말해왔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안 하는 것보다 늦더라도 시작하는 게 낫다"는 말을 학생에게도, 자녀에게도 많이 했다.
-- 석학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하는가. ▲ 핵심은 '일반 대중'이다. 전문가가 인터뷰하면 오히려 기본 질문을 피하려고 한다. '이 질문하면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고, 지식 과시로 흐르기 쉽다. 그런데 VOX는 옥스퍼드 학생과 교수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전 세계 '제너럴 퍼블릭'(General public)을 위한 거다. 그래서 의대 교수를 인터뷰할 때 의대 석학을 굳이 보내지 않기도 한다. 경영학 쪽에서 질문하면 오히려 더 명료해진다. '어렵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그러나 본질은 놓치지 않게'가 원칙이다.
-- 석학을 섭외하고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 나는 'here and now' 성향이다. 노벨상 수상자 인터뷰를 빨리하고 싶었는데, 기다리다가 흐지부지되는 게 싫었다. 연락이 느리면 바로 다른 루트를 찾는다. 그렇게 진행하면 일이 굴러간다. (웃음) 많은 석학과 연결돼 있다는 건 큰 보람이다.
◇ 신뢰와 유연성, 가치공유가 비결
-- 17년째 대표를 맡아온 비결이 있다면. ▲ 내 힘만이 아니다. 함께한 여러분이 나를 믿고 지원해 준 힘이 크다. 그래도 원칙을 꼽자면 신뢰, 유연성, 가치공유다. 투명하게 소통하고 약속을 지키며 신뢰를 쌓았다. 또한 팀원의 목소리를 운영에 반영하면서 환경 변화에 맞게 전략을 재정비해 왔다. 그리고 단기 성과보다 기관의 미션을 우선했다. 사무실에 오면 "여긴 'hierarchy'(계급)가 없다"고들 말한다. 내가 출근길에 귤을 한가득 사서 놓고 오기도 하고, 서로 편하게 이야기한다. 결국 '함께 성장하는 리더십'이 지속가능성을 만든다고 믿는다.
-- 영국에서 본 한국의 위상은 무엇이 달라졌나. ▲ 처음 갔을 때는 한국 가족이 정말 손에 꼽혔다. 그때 한국 유학생은 근면의 상징이었고, 선진 학문을 따라잡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은 반도체, AI, K-콘텐츠가 결합한 '정점'의 나라가 됐다.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기준을 만드는 나라인 걸 현장에서 느낀다. 최근 옥스퍼드에 '서울 플라자' 같은 한국 슈퍼마켓이 생겼는데, 시험 끝난 학생들이 소주랑 라면을 사려고 줄을 선다. "오늘 시험 끝났으니 한국 라면 매콤하게 먹고 풀어야겠다"는 말을 유럽 학생들이 한다. 예쁘고 신기했다. 예전엔 존재감이 작다고 느껴 좌절할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왔다'는 게 제게 큰 자긍심을 준다.
--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인가. ▲ 옥스퍼드 석학에게 "미래 계획이 있느냐"고 물으면 의외로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다"는 답이 많다. 나도 비슷해졌다. 긴 계획을 세우느라 머리가 복잡했던 적이 많았고, 그걸 비우니까 오히려 건강도 좋아졌다. 오늘 하루 내가 건재하고, 여기 설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미래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내일의 기반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결론은… 지금을 즐기라는 말이다. (웃음)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기획·제작총괄 : 김희선, 구성 : 민지애, 영상 : 박주하·김종석, 취재협조 :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 연출 : 박소라>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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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 지식 공유 플랫폼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Voices from Oxford·VOX)를 17년째 이끌어온 김성희(74) 대표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좋은 지식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믿음은 '입학해야만 닿을 수 있는' 옥스퍼드의 울타리를 넘어, 석학의 통찰을 영상으로 기록해 전 세계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구체화했다.
한국에서 대학 강단과 교육 방송 현장을 누볐던 김 대표는 쉰 살을 넘겨 유학길에 올 황금성릴게임사이트 랐다. 주변의 만류 속에서도 옥스퍼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고, 그 경험은 이후 VOX의 기획 철학으로 이어졌다. '배움을 통한 자아실현'과 'Here and now, right now'(지금, 당장 실천)를 삶의 모토로 삼아온 그는 인터뷰 내내 '도전'과 '공유'를 같은 단어처럼 말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늦은 유학'의 두려움 바다신2릴게임 을 넘긴 방식, 젊은 동료와 섞여 공부한 시간, VOX를 지속시킨 운영 원칙, 그리고 그가 옥스퍼드대 석학을 움직이는 질문의 기술까지 들어봤다.
◇ 안주하는 마음 없애려고 50세에 떠난 英 유학길
--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나. 어떻게 극복했나. ▲ 두려움이 없었다기보다, 두려움과 지적 호기심 야마토게임장 이 동시에 나를 움직였다. 80~90년대 EBS에서 고교 영어를 시작으로 'BBC 영어'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서강대에서 가르치며 수업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 1시간 가르치기 위해 4~5시간 준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잘해오던 일을 내려놓고 유학을 간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왜 굳이 바다이야기고래 고생을 자처하느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다만 늘 '배움을 통한 자아실현', 그리고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하는 삶을 좌우명으로 삼아왔다. 그게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됐다.
--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선택이 어떤 의미였나. ▲ 요즘 더 실감한다.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VOX 대표로도 일하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오징어릴게임 초빙 석좌 교수로도 활동하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는 거 아닌가. '안주하지 않은 도전'은 나이와 환경을 뛰어넘는 성장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못한다. 가족의 인내와 지원이 정말 컸다.
-- 젊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그게 가장 힘들었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거울을 더 오래 보기도 했다. 거울 속 제 모습이 어느 순간 '어머니'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 모습으로 가면 애들이 자기 엄마 온 것처럼 불편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화장했다가 지우기도 하고, 혼자 소외감을 크게 느꼈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내가 잘 선택했나' 흔들릴 때가 많았다.
-- 어떤 전환점이 있었나. ▲ 많은 대학원생이 금요일에 토론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 갔다. 보트 파티였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춤을 추게 됐다. 프랑스 친구가 벨리댄스를 선보일 만큼 춤을 잘 추는 친구였고, 분위기를 확 바꿨다. 나는 원래 로큰롤 같은 춤도 배운 적이 있어서 음악이 나오면 그냥 나가서 열심히 췄다. 그랬더니 처음엔 수줍어하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다 따라 하는 거다. 그 뒤로는 파티에 내가 조금 늦으면 전화가 오고 "어디냐" 하고 찾고, 다음 자리에도 같이 가자고 하면서, 그때부터 나이를 잊게 됐다. 마음이 풀리니까 공부 집중도 더 잘 됐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라는 의심이 사라지니, 도서관에서 오히려 힘이 났다.
-- 한국 기준으로는 '어르신이 망가졌다'고 보일 수도 있지 않나. ▲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옥스퍼드는 지금도 살사 같은 댄스 동아리 문화가 자연스럽고, 젊은 연구자들과도 거리낌 없이 어울린다. 반면 한국에서 객원교수로 있을 때는 '내가 춤 동아리에 나타나면 학생들이 나를 온전히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화 차이는 분명히 있다.
◇ "옥스퍼드 안 와도 석학을 만난다"…VOX의 탄생
-- '지식 공유'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었나. ▲ 제가 소속된 옥스퍼드대 벨리올 칼리지 학장님이 '이제는 비디오 시대'라고 하면서,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 쪽과 함께 새로운 교육 프로젝트를 제안한 자리가 있었다. 그때 내가 '명문대의 강의를 듣기 위해선 입학이 전제조건이니 울타리가 너무 높다. 발상을 바꿔 명강의를 대중에게 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몇 사람이 시작한 일이 지금의 VOX가 됐다. 여러 교수의 지지가 있었고, 많은 석학이 동참하면서 점점 커졌다. 지금은 여러 분야의 핵심 멤버가 '통섭과 융합'을 가치로 콘텐츠를 만들고, 전 세계와 공유하고 있다.
-- VOX가 지식을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택한 이유는. ▲ 지식은 공유될 때 진짜 가치가 생긴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영상은 시대 언어가 됐다. VOX도 이제는 3분 콘텐츠, 쇼츠까지 고민한다. 강의를 100% 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20%만 건져도 한 단어, 한 문장이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늘 말해왔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안 하는 것보다 늦더라도 시작하는 게 낫다"는 말을 학생에게도, 자녀에게도 많이 했다.
-- 석학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하는가. ▲ 핵심은 '일반 대중'이다. 전문가가 인터뷰하면 오히려 기본 질문을 피하려고 한다. '이 질문하면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고, 지식 과시로 흐르기 쉽다. 그런데 VOX는 옥스퍼드 학생과 교수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전 세계 '제너럴 퍼블릭'(General public)을 위한 거다. 그래서 의대 교수를 인터뷰할 때 의대 석학을 굳이 보내지 않기도 한다. 경영학 쪽에서 질문하면 오히려 더 명료해진다. '어렵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그러나 본질은 놓치지 않게'가 원칙이다.
-- 석학을 섭외하고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 나는 'here and now' 성향이다. 노벨상 수상자 인터뷰를 빨리하고 싶었는데, 기다리다가 흐지부지되는 게 싫었다. 연락이 느리면 바로 다른 루트를 찾는다. 그렇게 진행하면 일이 굴러간다. (웃음) 많은 석학과 연결돼 있다는 건 큰 보람이다.
◇ 신뢰와 유연성, 가치공유가 비결
-- 17년째 대표를 맡아온 비결이 있다면. ▲ 내 힘만이 아니다. 함께한 여러분이 나를 믿고 지원해 준 힘이 크다. 그래도 원칙을 꼽자면 신뢰, 유연성, 가치공유다. 투명하게 소통하고 약속을 지키며 신뢰를 쌓았다. 또한 팀원의 목소리를 운영에 반영하면서 환경 변화에 맞게 전략을 재정비해 왔다. 그리고 단기 성과보다 기관의 미션을 우선했다. 사무실에 오면 "여긴 'hierarchy'(계급)가 없다"고들 말한다. 내가 출근길에 귤을 한가득 사서 놓고 오기도 하고, 서로 편하게 이야기한다. 결국 '함께 성장하는 리더십'이 지속가능성을 만든다고 믿는다.
-- 영국에서 본 한국의 위상은 무엇이 달라졌나. ▲ 처음 갔을 때는 한국 가족이 정말 손에 꼽혔다. 그때 한국 유학생은 근면의 상징이었고, 선진 학문을 따라잡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은 반도체, AI, K-콘텐츠가 결합한 '정점'의 나라가 됐다.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기준을 만드는 나라인 걸 현장에서 느낀다. 최근 옥스퍼드에 '서울 플라자' 같은 한국 슈퍼마켓이 생겼는데, 시험 끝난 학생들이 소주랑 라면을 사려고 줄을 선다. "오늘 시험 끝났으니 한국 라면 매콤하게 먹고 풀어야겠다"는 말을 유럽 학생들이 한다. 예쁘고 신기했다. 예전엔 존재감이 작다고 느껴 좌절할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왔다'는 게 제게 큰 자긍심을 준다.
--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인가. ▲ 옥스퍼드 석학에게 "미래 계획이 있느냐"고 물으면 의외로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다"는 답이 많다. 나도 비슷해졌다. 긴 계획을 세우느라 머리가 복잡했던 적이 많았고, 그걸 비우니까 오히려 건강도 좋아졌다. 오늘 하루 내가 건재하고, 여기 설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미래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내일의 기반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결론은… 지금을 즐기라는 말이다. (웃음)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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