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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수퍼스타즈









미국의 피아니스트 에릭 루가 지난달 폴란드에서 열린 19회 쇼팽 콩쿠르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그는 2015년 쇼팽 콩쿠르 4위 입상 이후 10년 만의 재도전 끝에 정상에 올랐다. [EPA=연합뉴스]







19회 쇼팽 콩쿠르 결승 결과는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오전 2내일추천주
시 30분경 발표됐다. 5시간이 넘는 심사위원단의 토의 끝에 위원장 게릭 올슨은 27세 미국 피아니스트 에릭 루를 우승자로 호명했다. 에릭 루는 2015년 쇼팽 콩쿠르 4위 입상 이후 10년 만의 재도전 끝에 ‘부와 명예를 동시에 보장하는’ 쇼팽 콩쿠르의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쇼팽 콩쿠르는 조성진, 브루스 류에 이어 3연속 아시아계 우승자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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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브루스 류 이은 3연속 아시아계 우승 2015년 쇼팽 콩쿠르 4위, 2018년 리즈 콩쿠르 우승, 워너 클래식스 전속 아티스트로 이미 국제적 인지도를 확보했지만, 에릭 루는 클래식 산업 내부에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서열 구조를 체험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조성진과 임윤찬처럼 쇼팽과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력의sbi글로벌 주식
아시아계 피아니스트가 시장에서 ‘최우량주’로 분류되는 현실 속에서, 음악적 자유를 확장한다는 명분으로 바르샤바의 경연장으로 돌아왔다. 쇼팽 콩쿠르는 주요 콩쿠르 우승자에게 자동 진출권을 부여하면서 ‘콩쿠르 위의 콩쿠르’로 자처했고 ‘묻고 더블’식 재도전을 부추겼다.
에릭 루 우승으로 ‘쇼팽 콩쿠르 입상자’가 아닌 ‘쇼팽 콩쿠르 우승자’벽산건설 주식
여야만 돈과 명성이 따라붙는 공식은 공고해졌다. 입상자 8명 가운데 공동 5위 표트르 알렉세비치를 제외하면 모두 아시아계가 차지하면서, 표면적으로 쇼팽 경연에선 아시아인이 서구 클래식 전통의 갱신자가 되었다. 아시아 출신의 콩쿠르 우승 경력 피아니스트가 쇼팽 콩쿠르에 재수, 삼수를 거듭하는 행보가 되풀이될 개연성이 높은 것도 에릭 루 우승이 불러올 ‘뉴 노파칭코슬롯
멀’이다.









에릭 루의 스승 당 타이 손. 베트남의 피아니스트로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에릭 루는 1997년 매사추세츠주에서 공학을 전공한 중국계 아버지와 대만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국적은 미국이지만 뉴욕 타임즈는 미국 국적 연주자의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 소식을 꽤 시차를 두고 전했다. 에릭 루는 대만을 자주 찾는 데 비해 중국 본토 공연은 자제하며, 미·중 갈등, 중국·대만, 대만 내성인(청 시절부터 대만 거주)·외성인(1949년 전후 대만 이주)의 정체성 경계에서 신중한 행보를 이어왔다. 커티스 음악원에서 조너선 비스와 로버트 맥도널드에게 사사하고, 우치다 미츠코와 이모젠 쿠퍼와의 교류를 통해 슈베르트 미학의 내면성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당 타이 손 제자로 들어가면서 “정신적으로 단단해졌다”고 회고한다.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를 좋아한다지만 내성적인 성격이 음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025년 쇼팽 콩쿠르에서의 행보를 살펴보면, 올림픽에서 주종목 외 종목까지 석권하는 선수처럼 에릭 루는 경연 내내 기세로 ‘이기는 힘’을 보여주었다. 프로 데뷔 이후 음악적 중심축은 줄곧 슈베르트였고, 시장은 차순위로 쇼팽과 모차르트를 기대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부전공이던 쇼팽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공개된 채점표에 따르면, 에릭 루는 총점의 10%를 차지하는 1차 라운드에서 21.82점(7위)으로 출발했으나, 2·3·4차에서 모두 최고점을 기록하며 2위 케빈 첸을 따돌렸다.
경연 내내 사운드를 조각하는 장인이라기보다, 생각을 소리로 풀어내는 젊은 철학자에 가까웠다. 세 주에 걸친 경연 기간 동안 거의 웃지 않았던 그는, 우승이 발표된 순간에도 슬픈 표정으로 주변을 마주했다. 마른 체형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만 보면 연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끝음까지 밀어넣는 단단한 손끝의 추진력이 놀랍다. 요즘 시대엔 좀처럼 보기 힘든 블라도 페를뮤테르와 에밀 길렐스 같은 지난 세기의 거장들이 떠오른다. 기술을 앞세우지 않고, 음악의 사유를 통해 깊이를 빚어내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탄생했다. 쇼팽 콩쿠르 직전에도 바흐 칸타타 같은 쇼팽 바깥 음악을 루틴에 넣어 연습하면서 표현의 내장(內臟)을 키운 전략도 파치올리의 명료한 공명과 어울리면서 ‘제3의 쇼팽’을 구현했다. 경력 내내 경연을 혐오했지만 에릭 루는 결국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자기 구원을 찾았다.
결선 과정에서는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스승 당 타이 손과 로버트 맥도널드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점은, 해당 심사에서 제척되었다 해도 심사 분위기가 일정 부분 공유되었을 가능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여기에 에릭 루가 자기 제자라고 밝힌 준 시마다와 같은 대회에 참가자로 나선 것도 본인 이미지엔 부정적이었다. 3차 라운드에서는 콩쿠르 측이 에릭 루의 건강 이상을 인정해 경연 순서를 뒤로 미뤘다. 팬데믹 시기 감염병 확진자에게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던 경연 순서 이동의 특례가 예외적으로 적용됐다. 그는 등받이 의자를 교체해가며 ‘경력 참가자’로서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했다. 결승에선 사회자가 에릭 루의 국적을 캐나다로 잘못 칭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전까지 각종 경연에서 스타인웨이로 우승했지만, 이번에는 파치올리를 선택해 바르샤바 필하모니홀의 음향 특성에 최적화된 사운드를 추구했다. 이미 프로 연주 경력을 통해 홀의 울림 구조, 피아노 기종의 반응, 심사위원들의 브랜드 선호도까지 감안한 전략적 선택이 10년 만의 우승을 끌어낸 숨은 힘이다.

쇼팽 콩쿠르 ‘유학루트’ 아시아 전역 퍼져









에릭 루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앨범. [사진 워너 클래식스 홈페이지]







에릭 루는 이달 21일 롯데콘서트홀 KBS교향악단 협연을 시작으로, 22일 울산 HD아트센터, 23일 통영국제음악당,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독주회로 한국팬과 만난다. 내년 2월경 별도의 한국 독주회 투어가 유력하다. 2015년부터 쇼팽 콩쿠르와 공식 협력해온 도이치 그라모폰 입장에서는, 기존 워너 클래식스 전속 아티스트가 우승자가 된 만큼 당분간 에릭 루와의 전속 전환은 쉽지 않다. 2026년 초 슈베르트 ‘즉흥곡’ 앨범이 워너에서 출반 예정이어서, 도이치 그라모폰은 입상자 투어 동안 공연 티켓 흐름과 앨범 판매 추이를 면밀히 살필 것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 열린 대회였던 이번 쇼팽 콩쿠르는, 러시아 국적이지만 중립 표기로 출전한 본선 참가자들에게도 ‘반(反)러 서약서’ 제출을 요구했다. 이러한 조치는 2027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친(親)러 서약’을 비례적으로 내세울 빌미를 제공하며, 국제 음악 콩쿠르의 정치화를 가속시켰다. WFIMC(세계국제음악콩쿠르연맹)가 국적 구분 표기의 지양을 권고하고 있음에도, 쇼팽 콩쿠르는 결승 무대에서 사회자가 참가자의 국적을 강조하며 ‘피아노 올림픽’식 긴장감을 연출했다. 각국이 ‘국적’ 서사로 들썩일수록 유튜브 조회수는 급등하고, 그 관심을 기반으로 고액 스폰서를 유치하기 쉬워진다. 정치적 긴장과 상업적 전략이 맞물려야 쇼팽 콩쿠르는 흥행한다.
신인을 확인하는 묘미로는 중국의 십대 피아니스트 뤼텐야오의 4위 입상이 단연 돋보인다. 그녀의 깜짝 등장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 추진해온 신(新)유럽 전략의 결실이기도 하다. 폴란드를 ‘일대일로’의 유럽 관문으로 설정한 중국은 철도와 무역에 이어 문화 인재 교류를 전략적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중국의 10대 피아니스트들이 바르샤바와 포즈난에서 유학하며 쇼팽 콩쿠르를 통해 국제 무대에 진출하는 흐름이 형성됐고, 뤼텐야오의 입상은 그 선형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일대일로 구상 속에서 2030년 중국인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탄생한다면 중국은 스스로를 ‘피아노 강국’으로 선언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뤼텐야오의 ‘신데렐라식 데뷔’를 잇는 움직임도 발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2008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한 소피아 류는 일찌감치 캐나다로 건너가 당 타이 손 문하에서 수학 중이다. 여기에 쇼팽 콩쿠르 단골 심사위원인 표트르 팔레츠니가 보증인으로 가세하며, 차세대 ‘중국-폴란드 협업형 쇼팽 콩쿠르 우승자’ 모델이 구체화된다.
반면, 쇼팽 콩쿠르에서 이번에도 우승자를 내지 못한 일본의 결핍은 ‘쇼팽 콩쿠르용 테스트 공연’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에릭 루와 준우승자 케빈 첸의 일본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노벨레테 매니지먼트는 쇼팽 콩쿠르를 앞두고 입상권 참가자들이 과제곡을 실전 형식으로 연습하는 무대를 제작했다. 일본은 바르샤바 본선을 ‘일본 무대를 거친 자들의 결승전’으로 프레이밍하고 있다. 쇼팽 콩쿠르를 염두에 둔 폴란드 거주와 수학 루트가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지 오래다. 대치동식 선행학습처럼, 일타 강사, 지리적 이전(移轉), 테스트 공연이 결합된 수험 생태의 정점에 쇼팽 콩쿠르가 있다. 서구 인재의 쇼팽 콩쿠르 부진이 혹시 클래식 예술을 유지하려는 유럽 사회의 열망이 약화된 결과는 아닌지 함께 살필 때다.














한정호 공연평론가·에투알클래식 대표. 런던 시티대 대학원 문화정책 매니지먼트 석사. 발레리나 박세은, 축구인 박지성 등 예술 체육계 명사의 에이전시와 문화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에투알클래식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