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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gamemong.info
이 도토리 알을 누가 땅에다 묻은 것일까. 다람쥐가 묻었을 수 있겠고, 뭐 자연스럽게 어디에서 흘러내려왔을 수도 있겠고. 도토리 알은 또 언제 흙 속으로 내려왔을까. 그 속에서 몇 번이나 겨울을 보냈던 것일까….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뒤 본원자리인 시인의 자리로 돌아온 도종환이 신작 시집을 발표했다. 그는 현실 정치에 발 담그면서 본의 아니게 받은 오해나 비판에 대해선 “많은 시간과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모두 야마토통기계 감당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최상수 기자
마당 잔디밭 풀을 뽑고 있던 그의 눈에 반 뼘쯤 되는 상수리나무의 새순이 들어왔다. 그냥 놔두면 나무가 되기에 잔디를 위해선 솎아내야 했다. 들고 있던 호미 끝으로 조심스럽게 살살 캐보았다. 그런데 여린 뿌리 끝에 도토리 한 알 릴게임뜻 이 따라 올라오는 게 아닌가. 도토리 몸은 이미 반쯤 허물어져 있었고, 허물어진 몸에서 위로는 줄기가 올라왔고 밑으론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도토리 알을 들여다보는 순간, 갑자기 온갖 생각과 상상이 몰려왔다.
이 도토리 알은 어떻게 위로 줄기를 뻗고 아래로는 뿌리를 내린 것일까. 땅 골드몽릴게임릴게임 속에서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선생님이 계시는 것도 아니며, 어른 도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몸을 덜어 위로 줄기를 뻗어야 해, 몸을 덜어 아래로 뿌리를 내려야 될 때야, 라고 어떻게 알고 결단하고 몸을 덜었던 것일까. 뿌리를 내리거나 줄기를 올리며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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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도종환은 어느 날 청주 집 마당 잔디밭에서 만난 상수리나무 뿌리 끝에 달린 도토리 알을 보고 한 생각을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특하고 신비로웠다. 결국 상수리나무 새순을 도토리와 함께 옆 산비탈에 심어주고, 그는 시 한 편을 얻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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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결심하면 새싹도 결심한다/ 뿌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나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흙 속에서 살아 있으면/ 땅 위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흙이 말하면/ 바람도 알아듣는다고 말했을까/ 도토리는 몸을 녹여 새순을 만들고/ 살을 덜어 뿌리로 내려 보냈으리라/ 잘게 나누어진 도토리 뼈는 나무둥치가 되고/ 도토리 손은 나뭇가지가 되고/ 도토리 눈은 우듬지로 올라가/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리라/ 그렇게 여러 해가 흐른 뒤에/ 다시 수백 개의 도토리가 되었으리라.”(‘도토리’ 부문)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뒤 본원자리인 시인의 자리로 복귀한 도종환이 ‘도토리’를 비롯해 85편의 시를 묶은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열림원·사진)를 들고 돌아왔다.
이번 시집은 무엇보다도 기존 천편일률적인 4부 구성 대신 ‘이월’, ‘고요’, ‘달팽이’, ‘슬픔을 문지르다’, ‘사랑해요’, ‘당신의 동쪽’, ‘손’, ‘끝’ 8개의 부로 구성하되, 각 부는 문을 여는 시 여덟 편을 1∼5행씩 나눠 여러 쪽에 연이어 수록한 뒤 마지막에 시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 인상적이다. 각 부를 마치 전시실 방처럼 배치해 독자가 방과 방 사이를 거닐면서 시의 사유 속으로 천천히 들어오도록 해 고요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려는 취지다.
시집에는 현실 정치를 완전히 그만두고 지난 1년 반 동안 청주에서 읽고 쓰는 일에만 순종하면서 만난 시편들이 담겼다. 대체로 날 선 폭풍의 불이 아닌 고요의 물을 닮아 “밀물과 썰물 사이에, 참혹과 환희 사이에, 분노와 슬픔 사이에 있다”(나희덕 시인)는 평가다. 감상보다 체험, 의미보다 호흡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현대인들은 소요(騷擾) 속에서 산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며 “소요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차분해지고 침착해지는 시간을 갖고, 그 시간 속에서 더 지혜로워지고 슬기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 도종환은 왜 고요로 가야겠다고 노래한 것일까. 그가 보고 느끼고 노래하는 고요는 과연 어떤 풍경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도 시인을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현실 정치를 떠난 그가 봄날 고요로 가는 길에서 만난 것은 크고 화려한 존재들이 아니라 오히려 누추한 자리에서 조용히 세상을 밝히는 존재들이었다. 나무와 새, 나무, 꽃 등등. 여름날에는 밭둑길을 걷다가 달팽이를 만나기도 했다. 어딘가 힘겹게 가고 있는 달팽이를 찬찬히 보다가 각자의 짐을 지고 아등바등하는 인간도 엿보기도.
“우리도 달팽이처럼 카르마의 집 한 채 지고/ 아침마다 문을 나선다/ 등짐 때문에 하루가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짐에 기대 잠시 쉬기도 하고/ 이 짐 아니었으면 얼마나 허전할까 생각하면서/ 우리도 겨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달팽이’ 전문)
―시는 인간 세사에 대한 놀라운 알레고리로도 읽힙니다.
“어느 날 밭둑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보고 쓴 시입니다. 우리도 늘 등짐으로 허덕이면서 가고 있잖아요. 아이고, 이놈의 짐 무거워서 힘들어 죽겠어.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짐을 내려놓고 기댈 때도 있지요. 짐이라는 것은 자식이나 일이기도 한데, 모두 인생의 업이죠. 우리는 업을 짊어지고 살지만, 가끔은 그 업에 또 기대어 살기도 하죠.”
시집은 그리하여 단순한 관조가 아닌,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거쳐 왔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고요의 마음을 향기롭게 담는 데 성공하는 듯하다.
―우리 현대인들은 왜 고요로 가야 하는 겁니까.
“우리 일상은 소요로 가득 차 있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매일 놀라운 일, 시끄러운 일, 분노하는 일, 욕하게 되는 일로 가득 차 있고 내면 역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대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프레임 속에서 싸움을 하면서 정작 무엇이 옳은가를 잊어버리고 있죠. 하지만 침착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 나도 틀릴 수도 있고 내가 부족할 수도 있고 내가 불완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요해지면 침착해지는 시간을 만나고, 침착해지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가서 숙의할 수 있어야 문제를 풀 수도 있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고 합의의 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 고요해지자, 순간순간 고요로 가자, 하루에도 몇 번씩 고요와 만나 차분해지고 침착해지고 균형을 회복하자, 는 취지입니다.”
미대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과연 대학에 보내줄까. 상의할 부모가 옆에 없어, 그는 한동안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백일장에 나갈 때 미술대회에 나갔고, 도화지가 부족하면 신문지에 그렸으며,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그려 친구들에게 보내던 그였다. 이때 고모가 말했다.
“객지에 있지 말고 여기 고향으로 내려와라. 등록금이 전액 면제되는 국립대 사범대학이 있는데, 이곳에 진학하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젊은 도종환은 가난 때문에 등록금이 면제되는 국립 충북대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사범대학에는 미술교육과가 없었고, 대신 국어교육과에 진학해야 했다. 미대를 가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에 그는 한동안 방황하고 헤맸다. 대학 1학년 시절 자주 술에 취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책가방에 소주병과 잔을 들고 다니며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점심 내내 술을 마시기도 했고요. 노래도 잘 하지 못하면서 괜히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기도 했죠.”
그런데 문학 서클에 있던 선배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오히려 문학에 끼가 있어 그러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를 문학 서클로 이끌었다. 서클 이름은 ‘오리 새끼’. 대학 2학년 시절, 글 쓰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서클 선배들이 어떻게 보면 저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문학에 소질이 있는 것으로 오해해 저를 문학 서클로 끌고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죠.(웃음)”
문학 서클에 들어간 뒤, 그는 처음에는 긴가민가하고 관망만 했다. 선배들은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있는 독서 토론을 했다. 선배들이 읽는 책을 읽고 싶었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키에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자연스럽게 문학의 자장 안으로 들어왔다. ‘시인 도종환’의 씨가 뿌려지던 순간이었다.
1955년 청주에서 태어난 도종환은 군에서 제대한 뒤인 1984년 대구와 청주 지역 교직원 및 문인들과 함께 만든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도 출간했다. 신동엽창작상과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박용철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시 창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론이 있으신지요.
“특별한 원칙과 방법을 세워놓고 글을 쓰지는 않고요. 다만, 내면으로 도피하거나 시간 공간으로 도피하는 문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문학과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만 리얼리즘 문학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술성과 작품 그 자체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할 말을 하되 거칠지 않은 시여야 하고, 예술성과 사회성이 균형 잡힌 문장이어야 하지요.”
현실 정치에 몸을 담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3선 국회의원을 거쳤고, 2017년 6월부터 2년 가까이 문체부 장관도 역임했다.
―시인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하셨는데요.
“시를 쓰던 사람이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받아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게 고맙고, 특히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보람찬 일은 무엇이었는지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체를 파악해 블랙리스트를 작성 시행한 사람들이 처벌받고 다시는 이유 없이 배제되거나 차별받거나 검열받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친일 역사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하고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던 박근혜정부의 시도를 막아낸 것도 보람 있었고요. 세 번째론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해 예술인들이 공연이나 촬영이 없을 때 실업급여를 받도록 해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만명 이상의 예술인들이 밥을 굶지 않도록 한 제도인데,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오디오부터 켜고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 음악을 듣는다. 매일 한두 시간 정도 오디오를 틀어놓는다.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기도 하고, 고요 속에서 시의 언어를 만나기도 한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성의 평범하면서도 충만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처럼.
시인 도종환은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 무렵엔 강변을 걸으며 다시 고요 속으로 간다.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 조용히 글을 쓴다. 충분히 잠을 잔 뒤, 아침이 오면 일어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다시 고요 속으로. 그리하여 강가의 흙빛 플라타너스를 만나고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조우하기도 한다. 소멸의 끝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다시 죽을힘을 다하는 그 마음을….
“끝난 지 오래되었는데/ 나무는 가지 끝에 버리지 않은 걸 지니고 있었다/ 비어 있는 것을 안쪽을 채우는 광명진언/ 허무를 끌어안고 그 끝에서/ 다시 처절하게 시작하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바람의 독송/ 당신들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려고/ 부활이라 하지 않았는가.”(‘끝’ 부문)
시인 도종환은… ●1955년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졸업(1980) ●충북대 석사(1982) 및 충남대 문학박사(2006)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 발표 ●신동엽창작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 수상 ●제19∼21대 국회의원 및 제50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17.6∼2019.4) 역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뒤 본원자리인 시인의 자리로 돌아온 도종환이 신작 시집을 발표했다. 그는 현실 정치에 발 담그면서 본의 아니게 받은 오해나 비판에 대해선 “많은 시간과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모두 야마토통기계 감당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최상수 기자
마당 잔디밭 풀을 뽑고 있던 그의 눈에 반 뼘쯤 되는 상수리나무의 새순이 들어왔다. 그냥 놔두면 나무가 되기에 잔디를 위해선 솎아내야 했다. 들고 있던 호미 끝으로 조심스럽게 살살 캐보았다. 그런데 여린 뿌리 끝에 도토리 한 알 릴게임뜻 이 따라 올라오는 게 아닌가. 도토리 몸은 이미 반쯤 허물어져 있었고, 허물어진 몸에서 위로는 줄기가 올라왔고 밑으론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도토리 알을 들여다보는 순간, 갑자기 온갖 생각과 상상이 몰려왔다.
이 도토리 알은 어떻게 위로 줄기를 뻗고 아래로는 뿌리를 내린 것일까. 땅 골드몽릴게임릴게임 속에서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선생님이 계시는 것도 아니며, 어른 도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몸을 덜어 위로 줄기를 뻗어야 해, 몸을 덜어 아래로 뿌리를 내려야 될 때야, 라고 어떻게 알고 결단하고 몸을 덜었던 것일까. 뿌리를 내리거나 줄기를 올리며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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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도종환은 어느 날 청주 집 마당 잔디밭에서 만난 상수리나무 뿌리 끝에 달린 도토리 알을 보고 한 생각을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특하고 신비로웠다. 결국 상수리나무 새순을 도토리와 함께 옆 산비탈에 심어주고, 그는 시 한 편을 얻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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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결심하면 새싹도 결심한다/ 뿌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나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흙 속에서 살아 있으면/ 땅 위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흙이 말하면/ 바람도 알아듣는다고 말했을까/ 도토리는 몸을 녹여 새순을 만들고/ 살을 덜어 뿌리로 내려 보냈으리라/ 잘게 나누어진 도토리 뼈는 나무둥치가 되고/ 도토리 손은 나뭇가지가 되고/ 도토리 눈은 우듬지로 올라가/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리라/ 그렇게 여러 해가 흐른 뒤에/ 다시 수백 개의 도토리가 되었으리라.”(‘도토리’ 부문)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뒤 본원자리인 시인의 자리로 복귀한 도종환이 ‘도토리’를 비롯해 85편의 시를 묶은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열림원·사진)를 들고 돌아왔다.
이번 시집은 무엇보다도 기존 천편일률적인 4부 구성 대신 ‘이월’, ‘고요’, ‘달팽이’, ‘슬픔을 문지르다’, ‘사랑해요’, ‘당신의 동쪽’, ‘손’, ‘끝’ 8개의 부로 구성하되, 각 부는 문을 여는 시 여덟 편을 1∼5행씩 나눠 여러 쪽에 연이어 수록한 뒤 마지막에 시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 인상적이다. 각 부를 마치 전시실 방처럼 배치해 독자가 방과 방 사이를 거닐면서 시의 사유 속으로 천천히 들어오도록 해 고요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려는 취지다.
시집에는 현실 정치를 완전히 그만두고 지난 1년 반 동안 청주에서 읽고 쓰는 일에만 순종하면서 만난 시편들이 담겼다. 대체로 날 선 폭풍의 불이 아닌 고요의 물을 닮아 “밀물과 썰물 사이에, 참혹과 환희 사이에, 분노와 슬픔 사이에 있다”(나희덕 시인)는 평가다. 감상보다 체험, 의미보다 호흡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현대인들은 소요(騷擾) 속에서 산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며 “소요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차분해지고 침착해지는 시간을 갖고, 그 시간 속에서 더 지혜로워지고 슬기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 도종환은 왜 고요로 가야겠다고 노래한 것일까. 그가 보고 느끼고 노래하는 고요는 과연 어떤 풍경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도 시인을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현실 정치를 떠난 그가 봄날 고요로 가는 길에서 만난 것은 크고 화려한 존재들이 아니라 오히려 누추한 자리에서 조용히 세상을 밝히는 존재들이었다. 나무와 새, 나무, 꽃 등등. 여름날에는 밭둑길을 걷다가 달팽이를 만나기도 했다. 어딘가 힘겹게 가고 있는 달팽이를 찬찬히 보다가 각자의 짐을 지고 아등바등하는 인간도 엿보기도.
“우리도 달팽이처럼 카르마의 집 한 채 지고/ 아침마다 문을 나선다/ 등짐 때문에 하루가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짐에 기대 잠시 쉬기도 하고/ 이 짐 아니었으면 얼마나 허전할까 생각하면서/ 우리도 겨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달팽이’ 전문)
―시는 인간 세사에 대한 놀라운 알레고리로도 읽힙니다.
“어느 날 밭둑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보고 쓴 시입니다. 우리도 늘 등짐으로 허덕이면서 가고 있잖아요. 아이고, 이놈의 짐 무거워서 힘들어 죽겠어.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짐을 내려놓고 기댈 때도 있지요. 짐이라는 것은 자식이나 일이기도 한데, 모두 인생의 업이죠. 우리는 업을 짊어지고 살지만, 가끔은 그 업에 또 기대어 살기도 하죠.”
시집은 그리하여 단순한 관조가 아닌,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거쳐 왔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고요의 마음을 향기롭게 담는 데 성공하는 듯하다.
―우리 현대인들은 왜 고요로 가야 하는 겁니까.
“우리 일상은 소요로 가득 차 있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매일 놀라운 일, 시끄러운 일, 분노하는 일, 욕하게 되는 일로 가득 차 있고 내면 역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대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프레임 속에서 싸움을 하면서 정작 무엇이 옳은가를 잊어버리고 있죠. 하지만 침착하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 나도 틀릴 수도 있고 내가 부족할 수도 있고 내가 불완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요해지면 침착해지는 시간을 만나고, 침착해지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가서 숙의할 수 있어야 문제를 풀 수도 있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고 합의의 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 고요해지자, 순간순간 고요로 가자, 하루에도 몇 번씩 고요와 만나 차분해지고 침착해지고 균형을 회복하자, 는 취지입니다.”
미대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과연 대학에 보내줄까. 상의할 부모가 옆에 없어, 그는 한동안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백일장에 나갈 때 미술대회에 나갔고, 도화지가 부족하면 신문지에 그렸으며,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그려 친구들에게 보내던 그였다. 이때 고모가 말했다.
“객지에 있지 말고 여기 고향으로 내려와라. 등록금이 전액 면제되는 국립대 사범대학이 있는데, 이곳에 진학하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젊은 도종환은 가난 때문에 등록금이 면제되는 국립 충북대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사범대학에는 미술교육과가 없었고, 대신 국어교육과에 진학해야 했다. 미대를 가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에 그는 한동안 방황하고 헤맸다. 대학 1학년 시절 자주 술에 취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책가방에 소주병과 잔을 들고 다니며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점심 내내 술을 마시기도 했고요. 노래도 잘 하지 못하면서 괜히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기도 했죠.”
그런데 문학 서클에 있던 선배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오히려 문학에 끼가 있어 그러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를 문학 서클로 이끌었다. 서클 이름은 ‘오리 새끼’. 대학 2학년 시절, 글 쓰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서클 선배들이 어떻게 보면 저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문학에 소질이 있는 것으로 오해해 저를 문학 서클로 끌고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죠.(웃음)”
문학 서클에 들어간 뒤, 그는 처음에는 긴가민가하고 관망만 했다. 선배들은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있는 독서 토론을 했다. 선배들이 읽는 책을 읽고 싶었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키에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자연스럽게 문학의 자장 안으로 들어왔다. ‘시인 도종환’의 씨가 뿌려지던 순간이었다.
1955년 청주에서 태어난 도종환은 군에서 제대한 뒤인 1984년 대구와 청주 지역 교직원 및 문인들과 함께 만든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도 출간했다. 신동엽창작상과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박용철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시 창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론이 있으신지요.
“특별한 원칙과 방법을 세워놓고 글을 쓰지는 않고요. 다만, 내면으로 도피하거나 시간 공간으로 도피하는 문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문학과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만 리얼리즘 문학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술성과 작품 그 자체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할 말을 하되 거칠지 않은 시여야 하고, 예술성과 사회성이 균형 잡힌 문장이어야 하지요.”
현실 정치에 몸을 담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3선 국회의원을 거쳤고, 2017년 6월부터 2년 가까이 문체부 장관도 역임했다.
―시인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하셨는데요.
“시를 쓰던 사람이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받아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게 고맙고, 특히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보람찬 일은 무엇이었는지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체를 파악해 블랙리스트를 작성 시행한 사람들이 처벌받고 다시는 이유 없이 배제되거나 차별받거나 검열받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친일 역사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하고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던 박근혜정부의 시도를 막아낸 것도 보람 있었고요. 세 번째론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해 예술인들이 공연이나 촬영이 없을 때 실업급여를 받도록 해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만명 이상의 예술인들이 밥을 굶지 않도록 한 제도인데,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오디오부터 켜고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 음악을 듣는다. 매일 한두 시간 정도 오디오를 틀어놓는다.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기도 하고, 고요 속에서 시의 언어를 만나기도 한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성의 평범하면서도 충만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처럼.
시인 도종환은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 무렵엔 강변을 걸으며 다시 고요 속으로 간다.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 조용히 글을 쓴다. 충분히 잠을 잔 뒤, 아침이 오면 일어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다시 고요 속으로. 그리하여 강가의 흙빛 플라타너스를 만나고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조우하기도 한다. 소멸의 끝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다시 죽을힘을 다하는 그 마음을….
“끝난 지 오래되었는데/ 나무는 가지 끝에 버리지 않은 걸 지니고 있었다/ 비어 있는 것을 안쪽을 채우는 광명진언/ 허무를 끌어안고 그 끝에서/ 다시 처절하게 시작하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바람의 독송/ 당신들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려고/ 부활이라 하지 않았는가.”(‘끝’ 부문)
시인 도종환은… ●1955년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졸업(1980) ●충북대 석사(1982) 및 충남대 문학박사(2006)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 발표 ●신동엽창작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 수상 ●제19∼21대 국회의원 및 제50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17.6∼2019.4) 역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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