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알리스 가격으로 완성하는 남성 통합 건강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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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수여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12-14 11:44조회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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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알리스 가격으로 완성하는 남성 통합 건강 전략
심리와 신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남성 건강 관리
남성 건강은 단순히 외형적인 근육이나 체력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건강은 신체적 기능과 심리적 안정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합니다. 특히 중장년 이후에는 체력과 성기능 저하가 함께 찾아오며 자신감과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때 많은 남성들이 신체의 기능적 저하만을 문제로 삼고 약물에만 의존하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심리와 신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관리에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남성 건강의 핵심인 성기능 회복과 관련된 전문적 접근법과 함께, 과학적이고 심리적 균형을 동시에 고려한 솔루션인 시알리스Cialis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회복 전략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성기능 저하단순한 문제가 아닌 복합적 요인
발기부전Erectile Dysfunction, ED이나 성욕 저하는 신체적 질환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적 요인, 생활습관, 스트레스, 관계의 갈등, 피로, 자신감 저하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심리적 요인: 긴장, 실패 경험, 스트레스는 발기부전의 큰 원인입니다. 특히 x27성공해야 한다x27는 압박감은 심리적 장애를 만들어냅니다.
신체적 요인: 혈관 질환, 고혈압, 당뇨, 호르몬 불균형 등은 음경으로 가는 혈류를 제한하고, 발기 유지에 어려움을 줍니다.
관계의 질: 파트너와의 신뢰와 소통도 성적 자신감에 직결되며, 관계의 악화는 성기능에도 직접적 영향을 줍니다.
이처럼 성기능 저하는 단일한 문제가 아닌, 심리신체사회적 요인이 복합된 통합적 이슈입니다. 따라서 해결 역시 단순 복용이 아닌, 통합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시알리스 가격신체 회복과 심리 안정의 동시 접근
시알리스Cialis는 타다라필Tadalafil을 주성분으로 한 PDE5 억제제로,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를 개선하고 발기를 유도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발기를 돕는 약으로만 시알리스를 정의하기엔 부족합니다. 실제로 시알리스는 성공 경험을 통해 심리 안정과 자신감 회복이라는 2차 효과를 제공합니다.
혈류 개선 신체 기능 향상
발기 지속 성적 경험의 성공
심리적 안정 성관계에 대한 긴장 해소
관계 회복 파트너와의 유대 강화
이런 선순환의 구조가 시알리스를 단순 약물이 아닌 남성 통합 건강 관리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만든 배경입니다.
과학적 근거타다라필의 작용 메커니즘
타다라필은 음경 내 평활근을 이완시켜 혈류를 증가시키는 PDE5 억제제입니다. 이 효소는 정상적인 발기 기능을 방해하는 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므로, 억제할 경우 더 오랜 시간 발기가 유지됩니다. 타다라필은 반감기 17.5시간으로 약효가 36시간까지 지속되어 성관계 전후의 긴장감을 덜어주는 데 효과적입니다.
발기 유지 성공률 80 이상 임상 결과
자연스러운 관계 가능 계획된 복용 부담 없음
심리적 불안 감소 성공 경험의 반복
장기 복용 시 성기능 개선 1일 5mg 요법 기준
시알리스 가격은 이렇게 물리적 회복과 심리적 회복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약제로,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권장되고 있습니다.
정기 복용 vs 필요 시 복용전략적 선택
시알리스는 2가지 복용 방식으로 나뉘며, 사용자의 목적과 상황에 따라 선택 가능합니다.
필요 시 복용 10mg 또는 20mg
성관계 30분~1시간 전 복용
최대 36시간 효과 지속
일회성 긴장감 완화에 도움
정기 복용 2.5mg 또는 5mg
매일 동일한 시간에 복용
안정적인 혈중 농도 유지
성관계 시간에 구애받지 않음
심리적 부담 감소 및 장기적 기능 회복에 적합
전문가 상담을 통해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패턴에 맞춘 복용법 선택이 중요합니다. 특히 심리적 긴장이 크거나 성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높을 경우, 정기 복용을 통한 일상화가 유리합니다.
통합적 회복을 위한 병행 전략
시알리스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생활 습관 개선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는 신체와 심리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심리관리
명상, 심호흡, 인지행동요법 등으로 긴장을 완화
파트너와의 대화를 통한 관계 회복
성에 대한 건강한 인식 형성
신체관리
유산소 운동 조깅, 자전거, 수영
하체 근력 운동 스쿼트, 런지
체중 관리 및 혈압혈당 조절
식이관리
혈관 건강에 좋은 식단 아르기닌, 오메가3, 아연 등
기름진 음식, 과도한 음주, 흡연은 피할 것
이러한 요소들이 시알리스와 만나면, 단순한 약물 효과를 넘어서 심리와 신체의 전방위적 회복이 이루어지며, 남성으로서의 건강한 삶을 회복하게 됩니다.
사용자 리뷰로 본 회복 스토리
김진수 45세, 중견기업 임원회의와 출장으로 피곤함이 일상이었고, 관계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시알리스를 복용하면서 관계가 자연스러워졌고, 무엇보다도 아내와의 소통이 좋아졌습니다. 자신감이 돌아오니 업무 효율도 좋아졌죠.
조성훈 61세, 자영업예전보다 발기도 약하고 마음도 조급했습니다. 정기 복용으로 바꾸고 나서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찾았고, 아내와의 관계도 예전 같아졌습니다. 시알리스는 제 삶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결론시알리스, 남성 통합 건강의 핵심 파트너
시알리스는 단순히 기능을 돕는 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체적 회복과 심리적 자신감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통합적 솔루션입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전문가와 함께 계획적으로 관리할 때, 성기능 회복은 단순한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됩니다.
이제는 단순한 처방이 아닌, 삶의 질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시알리스는 그 선택의 중심에 있으며, 심리와 신체를 동시에 회복하는 과학적 길을 제시합니다.남성 건강, 이제는 통합적으로 관리하십시오.당신의 변화, 시알리스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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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nara.info
[이완우 기자]
▲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 이완우
진안 모운정 세겹처마 정자에서 출발한 미재천(미계천) 답사는 영모정과 미룡정을 지나 비사동천의 바다신2다운로드 암각서로 이어졌다. 돌너와 지붕의 흔적, 점판암 노두, 효자 신의련의 설화까지 정자와 지질,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 진안 백운면이었다.
지난 9일, 진안 백운면 운교리 용두봉 아래 모운정에서 5km 거리의 백운면 덕산리 비사랑 계곡까지 답사하였다. 진안 백운면의 동쪽에 우뚝 솟은 덕태산(德泰山, 1,112m) 남사 바다신릴게임 면의 으뜸 계곡인 미재골에서 미재천이 흘러내린다. 이 미재천이 섬진강 상류인 백운천에 합류하는 지점에 세겹처마 지붕에 단청이 아름다운 모운정이 있다.
모운정은 전면 3간 측면 2간의 주심포 양식 전통 건축 정자이다. 모운정에는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 공포 역할을 하는 화반이 장식되었다. 이 화반 아래의 창방과 화반 위의 주심도리 장여에 산 황금성오락실 수화와 초화도 등 회화가 건물 내외로 40점이 그려졌다.
▲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이완우
신천지릴게임
▲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옆 돌너와 무더기
야마토게임연타
ⓒ 이완우
모운정은 1977년 지어졌는데, 자료 사진을 보면 건축 당시에는 돌너와 지붕이었다. 이 돌너와를 미재천 상류 비사랑 계곡에서 채취하여 소달구지에 실어 날랐다고 한다. 모운정 옆 비탈면에는 정자 지붕에 기와를 올리고, 걷어낸 돌너와가 지금도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관련기사 : 1970년대에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수소문 끝에 만난 전북 백운면 모운정
영모정
미재천을 따라 2.5km 거리의 진안 영모정과 하천숲에 이르렀다. 이곳은 미재천의 절경과 더불어 아름다운 하천숲으로 이름난 곳이다. 영모정은 팔작지붕에 정면 3간 측면 3간의 정방형 전통 건축 양식의 정자이다. 이 정자는 기둥이 16개 줄지어 특색 있게 세워졌다.
▲ 진안 백운면 노촌리 영모정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노촌리 영모정
ⓒ 이완우
단층인 영모정은 건물 앞부분이 미재천 절벽 밖의 긴 누하주 위에 2층처럼 서 있다. 이 정자는 1869년(고종 6년)에 건립되었다. 효자 미계(美溪) 신의련(愼義連, 1546~1606)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라고 한다.
<진안지>(1924)에 의하면 신의련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릴 때부터 병든 아버지를 모셨다고 한다. 영모정의 성격을 보여주는 핵심 자료는 정자에 걸린 편액이었다. 이 영모정에 김홍집(金弘集, 1842~1896)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었다. 이 편액에 쓰인 정자의 창건 유래를 해독해 보았다.
鎭安之山有美溪慎公義連舊址地 公隱居力學以孝閒壬辰之亂 (중략) 寧殺我毋害吾親 虜問其姓名書而杸諸火不燃驚曰天孝也 (중략) 大匡輔國崇祿大夫 判中樞府事 慶州 金弘集
진안의 산중에 미계(美溪) 신공 의련(慎公 義連)의 옛터(장구지소)가 있다. 공은 은거하며 효를 행하고 힘써 학문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중략) 그는 말하기를, '차라리 나를 죽이라. 내 부모를 해치지 말라.' 하였다. 왜적이 그의 이름을 묻고 이름을 써서 불 속에 던졌으나 타지 않으니, 놀라 말하였다. '이는 하늘이 내린 효행이다.' (중략) 대광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경주 김홍집.
영모정 편액의 글씨는 '대광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김홍집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는 개화파의 핵심 인물로 조선 말 격변기 중앙 정계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진안 영모정과의 직접적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편액을 남긴 경위는 문헌에 전하지 않아 후속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진안군의 <디지털진안문화대전>에는 효자 신의련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병든 아버지를 왜적의 손에서 지켜낸 신의련(愼義連, 1546~1606)의 효행을 포창하여 선조 때 수의 부위(修義副尉)를 증직하고 정려를 내렸다. 당시에 세워진 정려비는 현존하지 않는다. 현재의 효자각은 1801년(순조 1)에 세워진 것이지만 중수의 내력은 전하지 않고 있다.
신의련은 임진왜란 때 자기의 집까지 쳐들어온 왜적들의 손에서 병든 아버지를 지켜냈다. 그의 효성에 감동한 일본 왜장이 "이곳은 효자가 사는 곳이다(孝子所居之地)"라는 방을 동구 밖에 써 붙이고 부하들에게 절대 침범하지 말라고 명하고는 물러갔다.
이후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1만여 명이 무사히 피난하였다고 하여 그 후부터 이 골짜기를 만인동(萬人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모정의 지붕은 돌너와를 이었다. 돌너와 위에 팔작지붕의 마루처럼 기와로 용마루, 합각마루와 처마마루를 쌓았다. 산간 지역의 가옥에 나무나 돌의 너와 지붕은 드물지 않은 사례이다.
미룡정
영모정에서 미재천의 하천숲을 따라 250m 올라가서 다리를 건너면 미룡정이 있다. 미룡정이 위치한 하천숲 아래는 검푸른 물이 감도는 단애의 깊은 용추(龍湫) 계곡이었다. 이 미룡정은 1990년에 건축된 정면 3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이었다. 미룡정은 영모정의 자매 정자 성격이었다.
▲ 진안 백운면 노촌리 미룡정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노촌리 미룡정 앞 용추계곡
ⓒ 이완우
정자 옆에 '미계 신선생 영모비'가 있다. 키 큰 선돌에는 '美溪德山高(미계덕산고)'라 쓰였다. 그 의미는 '미계 신의련 선생의 덕은 산(덕태산)처럼 높다'라고 풀이 된다.
진안 백운면의 지명 백운(白雲, 흰구름)은 효심과 관련이 깊다. 흰 구름을 바라보는 시선은 옛 문인들에게 곧 부모와 고향을 떠올리는 마음이었다. 진안 백운면의 지명은 백운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동여지도> 등 고지도에 표시된 백운산을 현재 지도와 비교해 보면 현재 진안 성수산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문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백운(白雲)은 효자(孝子)가 어버이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부모를 그리는 마음의 시각적 표현인 백운(白雲) 땅의 성수산(백운산)과 덕태산 사이의 하천에 효를 상징하는 영모정과 모운정이 가깝게 있다.
미룡정을 뒤로하고 비사동 계곡을 찾아 올라갔다. 노촌저수지를 오른쪽에 두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서 왼쪽 갈림길로 들어섰다. 금남호남정맥의 마루금인 성수산(聖壽山, 1059m)의 비사동 계곡이 길게 이어졌다.
높다란 단애 바위에 암각서가 눈에 띄었다. '飛獅洞天(비사동천)', 이 지명의 유래와 전승 설화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길옆 산비탈에 규모가 큰 점판암 노두가 보였다. 비탈면 경사가 45도에 가까워서, 퇴적암의 층리 따라서 분리된 조각이 돌너와가 되어 굴러내리고 있었다.
▲ 진안 백운면 노촌리 비사동계곡 ‘비사동천' 암각서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노촌리 비사동계곡의 점판암 노두 돌너와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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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백운면 모운정에서 영모정을 거쳐 비사동계곡으로 돌너와를 찾는 답사 여행을 마쳤다. 진안 백운면에 주산으로 우뚝 선 덕태산만큼 효자 신의련의 행적은 400년 넘게 이 고을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미재천 영모정에 머물러 있었다.
▲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 이완우
진안 모운정 세겹처마 정자에서 출발한 미재천(미계천) 답사는 영모정과 미룡정을 지나 비사동천의 바다신2다운로드 암각서로 이어졌다. 돌너와 지붕의 흔적, 점판암 노두, 효자 신의련의 설화까지 정자와 지질,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 진안 백운면이었다.
지난 9일, 진안 백운면 운교리 용두봉 아래 모운정에서 5km 거리의 백운면 덕산리 비사랑 계곡까지 답사하였다. 진안 백운면의 동쪽에 우뚝 솟은 덕태산(德泰山, 1,112m) 남사 바다신릴게임 면의 으뜸 계곡인 미재골에서 미재천이 흘러내린다. 이 미재천이 섬진강 상류인 백운천에 합류하는 지점에 세겹처마 지붕에 단청이 아름다운 모운정이 있다.
모운정은 전면 3간 측면 2간의 주심포 양식 전통 건축 정자이다. 모운정에는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 공포 역할을 하는 화반이 장식되었다. 이 화반 아래의 창방과 화반 위의 주심도리 장여에 산 황금성오락실 수화와 초화도 등 회화가 건물 내외로 40점이 그려졌다.
▲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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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백운면 운교리 모운정 옆 돌너와 무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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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운정은 1977년 지어졌는데, 자료 사진을 보면 건축 당시에는 돌너와 지붕이었다. 이 돌너와를 미재천 상류 비사랑 계곡에서 채취하여 소달구지에 실어 날랐다고 한다. 모운정 옆 비탈면에는 정자 지붕에 기와를 올리고, 걷어낸 돌너와가 지금도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관련기사 : 1970년대에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수소문 끝에 만난 전북 백운면 모운정
영모정
미재천을 따라 2.5km 거리의 진안 영모정과 하천숲에 이르렀다. 이곳은 미재천의 절경과 더불어 아름다운 하천숲으로 이름난 곳이다. 영모정은 팔작지붕에 정면 3간 측면 3간의 정방형 전통 건축 양식의 정자이다. 이 정자는 기둥이 16개 줄지어 특색 있게 세워졌다.
▲ 진안 백운면 노촌리 영모정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노촌리 영모정
ⓒ 이완우
단층인 영모정은 건물 앞부분이 미재천 절벽 밖의 긴 누하주 위에 2층처럼 서 있다. 이 정자는 1869년(고종 6년)에 건립되었다. 효자 미계(美溪) 신의련(愼義連, 1546~1606)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라고 한다.
<진안지>(1924)에 의하면 신의련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릴 때부터 병든 아버지를 모셨다고 한다. 영모정의 성격을 보여주는 핵심 자료는 정자에 걸린 편액이었다. 이 영모정에 김홍집(金弘集, 1842~1896)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었다. 이 편액에 쓰인 정자의 창건 유래를 해독해 보았다.
鎭安之山有美溪慎公義連舊址地 公隱居力學以孝閒壬辰之亂 (중략) 寧殺我毋害吾親 虜問其姓名書而杸諸火不燃驚曰天孝也 (중략) 大匡輔國崇祿大夫 判中樞府事 慶州 金弘集
진안의 산중에 미계(美溪) 신공 의련(慎公 義連)의 옛터(장구지소)가 있다. 공은 은거하며 효를 행하고 힘써 학문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중략) 그는 말하기를, '차라리 나를 죽이라. 내 부모를 해치지 말라.' 하였다. 왜적이 그의 이름을 묻고 이름을 써서 불 속에 던졌으나 타지 않으니, 놀라 말하였다. '이는 하늘이 내린 효행이다.' (중략) 대광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경주 김홍집.
영모정 편액의 글씨는 '대광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김홍집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는 개화파의 핵심 인물로 조선 말 격변기 중앙 정계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진안 영모정과의 직접적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편액을 남긴 경위는 문헌에 전하지 않아 후속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진안군의 <디지털진안문화대전>에는 효자 신의련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병든 아버지를 왜적의 손에서 지켜낸 신의련(愼義連, 1546~1606)의 효행을 포창하여 선조 때 수의 부위(修義副尉)를 증직하고 정려를 내렸다. 당시에 세워진 정려비는 현존하지 않는다. 현재의 효자각은 1801년(순조 1)에 세워진 것이지만 중수의 내력은 전하지 않고 있다.
신의련은 임진왜란 때 자기의 집까지 쳐들어온 왜적들의 손에서 병든 아버지를 지켜냈다. 그의 효성에 감동한 일본 왜장이 "이곳은 효자가 사는 곳이다(孝子所居之地)"라는 방을 동구 밖에 써 붙이고 부하들에게 절대 침범하지 말라고 명하고는 물러갔다.
이후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1만여 명이 무사히 피난하였다고 하여 그 후부터 이 골짜기를 만인동(萬人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모정의 지붕은 돌너와를 이었다. 돌너와 위에 팔작지붕의 마루처럼 기와로 용마루, 합각마루와 처마마루를 쌓았다. 산간 지역의 가옥에 나무나 돌의 너와 지붕은 드물지 않은 사례이다.
미룡정
영모정에서 미재천의 하천숲을 따라 250m 올라가서 다리를 건너면 미룡정이 있다. 미룡정이 위치한 하천숲 아래는 검푸른 물이 감도는 단애의 깊은 용추(龍湫) 계곡이었다. 이 미룡정은 1990년에 건축된 정면 3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이었다. 미룡정은 영모정의 자매 정자 성격이었다.
▲ 진안 백운면 노촌리 미룡정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노촌리 미룡정 앞 용추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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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옆에 '미계 신선생 영모비'가 있다. 키 큰 선돌에는 '美溪德山高(미계덕산고)'라 쓰였다. 그 의미는 '미계 신의련 선생의 덕은 산(덕태산)처럼 높다'라고 풀이 된다.
진안 백운면의 지명 백운(白雲, 흰구름)은 효심과 관련이 깊다. 흰 구름을 바라보는 시선은 옛 문인들에게 곧 부모와 고향을 떠올리는 마음이었다. 진안 백운면의 지명은 백운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동여지도> 등 고지도에 표시된 백운산을 현재 지도와 비교해 보면 현재 진안 성수산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문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백운(白雲)은 효자(孝子)가 어버이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부모를 그리는 마음의 시각적 표현인 백운(白雲) 땅의 성수산(백운산)과 덕태산 사이의 하천에 효를 상징하는 영모정과 모운정이 가깝게 있다.
미룡정을 뒤로하고 비사동 계곡을 찾아 올라갔다. 노촌저수지를 오른쪽에 두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서 왼쪽 갈림길로 들어섰다. 금남호남정맥의 마루금인 성수산(聖壽山, 1059m)의 비사동 계곡이 길게 이어졌다.
높다란 단애 바위에 암각서가 눈에 띄었다. '飛獅洞天(비사동천)', 이 지명의 유래와 전승 설화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길옆 산비탈에 규모가 큰 점판암 노두가 보였다. 비탈면 경사가 45도에 가까워서, 퇴적암의 층리 따라서 분리된 조각이 돌너와가 되어 굴러내리고 있었다.
▲ 진안 백운면 노촌리 비사동계곡 ‘비사동천' 암각서
ⓒ 이완우
▲ 진안 백운면 노촌리 비사동계곡의 점판암 노두 돌너와 지대
ⓒ 이완우
진안 백운면 모운정에서 영모정을 거쳐 비사동계곡으로 돌너와를 찾는 답사 여행을 마쳤다. 진안 백운면에 주산으로 우뚝 선 덕태산만큼 효자 신의련의 행적은 400년 넘게 이 고을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미재천 영모정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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