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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 1920년대 전국 최초의 학생 비밀결사였던 성진회는 돌연 1927년 3월 해산했다. 전국적으로 1925년 결성된 공학회가 첫 학생조직이었지만, 사회주의 계열만 참여했다.
반면, 성진회는 왕재일, 장재성, 박인생 등 상층 주도학생은 사회주의 경향을 보였지만, 나머지 13명의 창립 멤버는 특정 계열로 분류하기 어려운 자발적 학생모임체였다.
하지만 불과 4~5개월만에 활동을 중단했다. 해산 사유는 회원 중에 이반자가 있었다는 설, 회원 친척이 일제 경찰이라서 보안 문제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대학생대환 다양하다. 현실적인 해산 사유도 존재했다. 주축인 5학년 왕재일, 장재성, 박인생이 졸업한 바람에 개편이 불가피했다.
#광주 각급 학교에 비밀 연구모임
성진회 해산를 둘러싸고 2개 가설이 충돌한다.하나는 성진회 존속이다. 1927년 3월 해산은 위장 해산으로, 실질적으로 연구모임을 지속했으며, 1929년 6월 '독서회중 국민은행 대출금리 앙부'로 조직을 재편했다는 것. 당시 일제 경찰의 시각이다. 1930년 7월17일 광주지방법원은 예심종결서를 보면 "성진회가 1927년 봄 형식상 해산했으나, 실제로 회합 연구는 계속되어 점차 동지의 수효가 증가하여 1929년 6월에는 각 학교별로 20여 명의 연구자를 규합했다"고 기록돼 있다.
다른 하나는 성진회 해체 후 독서모임설이다. 내생애최초주택자금대출 이자 성진회가 실질적으로 해체됐으며, 성진회 멤버들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각급 학교에 비밀독서모임이 생겼다는 것. 이는 광주 학생 비밀조직이 1926년 성진회-1927·8년 학교별 독서모임-1929년 독서회중앙부라는 3단계로 진보했다는 주장이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 독서회 회원이었던 이기홍 선생은 생전 회고록을 통해 "성진회가 은행 점포 실질적으로 해산했고, 이후 학생들이 학교별로 독서토론을 하다가 이 모임이 독서회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성진회가 해산한 지 8개월 후 성진회 멤버였던 광주농업학교 5학년인 문승수·정동수는 하급생인 김복만, 김재용, 유상걸, 주당석, 유치오와 사회과학 학습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에 광주고보 졸업생인 왕재일도 참석해 이들을 격려, 직간접적 채무불이행 삭제 으로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광주고보와 전남사범학교에도 농업학교와 유사한 독서모임이 존재했다. 1931년 6월13일 '대구복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28년 2월 고려공청의 야체이카(책임자급)인 강해석, 지용수는 ▲광주고보 임주홍, 최규창, 김광용 ▲농업학교 문승수, 정종석, 김인수, 주당석, 유치오 ▲전남사범학교 하의철, 이동선, 박무길, 정귀석, 임종근 등 13명을 지용수 집에 초대했다. 지용수 자택 모임은 광주 중등학교에 독서회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성민 박사(1929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저자)는 "광주고보 등 3개학교 사회과학 연구모임은 강해석, 지용수의 고려공산청년회의 지도를 받았다"면서 "강해석과 지용수를 통해 각 학교의 독서 모임간 연계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1928년 8월 강해석, 지용수 등 고려공산청년회원들이 체포되면서 독서모임의 지도력을 상실하고 만다. 이들의 후계 임무는 전남청년연맹 장석천.나승규가 받았다. 장석천과 광주학생 비밀조직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처음으로 형성됐다.
광주시 동구 금동 97 장재성·장매성의 집터.
장재성 옛집 가는 길 입구.
#장석천-장재성 라인에 주목해야
성진회 창설 주역인 광주고보 출신 장재성이 1929년 6월 급거 귀국했다. 그는 1927년 초 일본 중앙대학에 유학 중에 중퇴하고 2년여 만에 돌아왔다. 그는 유학 중에도 방학 때면 귀국해 후배들을 지도했고, 1928년 광주고보와 광주농고의 동맹휴학(맹휴) 당시 일본에서 파견돼 지원한 경험도 있어 학생들의 신망이 높았다. 귀국 후 9월에 전남청년연맹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임됐다. 학생과 청년조직의 가교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의 귀국 이유에 대해 강석원 등은 조선공산당(ML당) Y부에서 장재성을 후보당원으로 선정, 광주학생 조직을 관리하도록 임무를 맡겨 귀국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연구자들은 1928년 여름에 ML당이 와해된 상태여서 Y부 지시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일본 유학중 특별한 활동도 없었다는 점을 들어 조선공산당과 연결고리를 인정치 않는다.
이들 견해 보다는 장석천과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일본 유학파로 전남청년연맹 위원장을 맡고 있던 장석천이 장재성의 귀국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 그가 귀국 후 전남청년연맹 간부를 맡고 학생 조직 관리자가 된 것도 모두 장석천의 추천이었다.
이후 광주학생 조직의 관리는 철저하게 장석천-장재성 체제로 전개된다. 장재성은 자퇴 전인 3월에 김상환을 통해 광주고보 독서회 멤버 10여명을 초대, 연구해야 할 서적 등을 지도했다.
장재성은 각 학교의 비밀 연구모임을 점검했다. 각 학교별로 진행되는 연구모임의 통합 필요성을 절감했다.
1929년 6월 중순, 광주고보, 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 등 3개학교 대표 7명이 김기권의 집에 모였다. 참석자는 ▲고보 김상환, 김보섭, 윤창하 ▲농고 조길룡, 김순복 ▲사범학교 송동식, 강달모 등 이었다.
장재성이 입을 열었다. "무작정하게 집합하여 분파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조직적으로 단결하여 공산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이를 보급 실행하자" (독립운동사자료집 13권 참조) 장재성의 제안에 따라 학생들은 즉각 새로운 비밀 조직을 결성했다. 독서회중앙부-.
독서회중앙부 간부로 소비조합 문구점을 운영한 고 김기권 선생.
#책임비서, 조사선전부 등 조직 구축
독서회중앙부는 책임비서에 장재성을 선임하고 ▲조사선전부 김상환, 김보섭 ▲조직교양부 송동식, 김순복 ▲출판부 조길룡 ▲재정부 강달모, 윤창하로 정했다. 부원은 매주 1회씩 회합하여 협의할 것, 중앙부를 통해 3개 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하고 중앙부에서 연락 통일을 도모할 것, 학교별 결사원에게는 중앙부의 존재를 비밀로 할 것 등 행동강령을 결정했다. 성진회와 유사한 운영 형태다.
중앙부의 지침에 따라 즉각 학교 별로 독서회를 구축하고, 독서회 내에는 중앙부와 동일하게 조사선전부 등 산하 조직 3~4개를 두었다.
독서회중앙부 김보섭이 태어난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에 세워진 기녑탑과 김보섭 표지석.
광주고보의 경우 1929년 6월 하순께 김상환, 김보섭, 윤창하 등 22명이 참가한 가운데 무등산에서 조직을 출범했다. 이들 22명은 오쾌일, 김보섭, 김상환, 윤창하, 김대원 등 5명의 그룹대표 하부조직원으로 각각 배치됐다.
광주농업학교도 그 해 6월 무등산에서 조길룡 등 18명이 참여한 독서회를 띄웠다. 이들도 김순복, 조길룡, 이령범, 정욱이를 그룹 대표로 선정했다. 전남사범학교는 7월께 수피아여학교 뒷산에서 14명이 참석, 하부조직을 5개로 나눠 출진했다.
3개학교 독서회 회원 54명 중 29명은 광주에서 하숙했다. 이들 중 김상환, 김홍남, 김병기는 전남소년동맹 간부인 박광신의 집에서, 정석규, 최규문은 최동문의 집에서, 권수동, 송두현, 홍원표, 안종변은 정치운의 집에서 지냈다. 동일한 집에서 거주하는 그룹 하숙은 회원의 모집과 활동, 결속, 보안 등 여러모로 유리했을 것이다.
하숙집 주인인 최동문은 광주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던 중 1928년 광주고보생 맹휴 당시 장재성과 함께 동경유학생대책강구회 회원으로 맹휴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최동문의 집은 성진회 창립멤버 최규창이 하숙했고, 성진회 결성했던 곳이다.
중앙부는 독서회 조직의 경제적 안정과 회합공간 확보를 위해 '소비조합'도 추진했다. 고보 독서회원이 60원, 김기권이 500원을 출자했다. 1929년 9월 장재성의 빵집 옆에 문구점을 열고, 경영은 김기권이 전담했다. 문구점은 지금 금남로3가 금남로공원 자리로 추정된다.
각 학교 독서회는 중앙부의 지시에 따라 1929년 9~10월께 전격 해체했다. 독서회중앙부는 사라졌지만, 광주 전 중등학교에 비밀독서회가 결성하고, 통일적으로 운영했던 조직 경험은 다가올 대 투쟁의 자양분이 됐다. 바로 그날, 대투쟁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1929년 10월30일…나주역~!!.
/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
위치: 광주시 동구 금남로 3가 금남로공원(독서회중앙부 소비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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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성진회는 왕재일, 장재성, 박인생 등 상층 주도학생은 사회주의 경향을 보였지만, 나머지 13명의 창립 멤버는 특정 계열로 분류하기 어려운 자발적 학생모임체였다.
하지만 불과 4~5개월만에 활동을 중단했다. 해산 사유는 회원 중에 이반자가 있었다는 설, 회원 친척이 일제 경찰이라서 보안 문제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대학생대환 다양하다. 현실적인 해산 사유도 존재했다. 주축인 5학년 왕재일, 장재성, 박인생이 졸업한 바람에 개편이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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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회 해산를 둘러싸고 2개 가설이 충돌한다.하나는 성진회 존속이다. 1927년 3월 해산은 위장 해산으로, 실질적으로 연구모임을 지속했으며, 1929년 6월 '독서회중 국민은행 대출금리 앙부'로 조직을 재편했다는 것. 당시 일제 경찰의 시각이다. 1930년 7월17일 광주지방법원은 예심종결서를 보면 "성진회가 1927년 봄 형식상 해산했으나, 실제로 회합 연구는 계속되어 점차 동지의 수효가 증가하여 1929년 6월에는 각 학교별로 20여 명의 연구자를 규합했다"고 기록돼 있다.
다른 하나는 성진회 해체 후 독서모임설이다. 내생애최초주택자금대출 이자 성진회가 실질적으로 해체됐으며, 성진회 멤버들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각급 학교에 비밀독서모임이 생겼다는 것. 이는 광주 학생 비밀조직이 1926년 성진회-1927·8년 학교별 독서모임-1929년 독서회중앙부라는 3단계로 진보했다는 주장이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 독서회 회원이었던 이기홍 선생은 생전 회고록을 통해 "성진회가 은행 점포 실질적으로 해산했고, 이후 학생들이 학교별로 독서토론을 하다가 이 모임이 독서회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성진회가 해산한 지 8개월 후 성진회 멤버였던 광주농업학교 5학년인 문승수·정동수는 하급생인 김복만, 김재용, 유상걸, 주당석, 유치오와 사회과학 학습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에 광주고보 졸업생인 왕재일도 참석해 이들을 격려, 직간접적 채무불이행 삭제 으로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광주고보와 전남사범학교에도 농업학교와 유사한 독서모임이 존재했다. 1931년 6월13일 '대구복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28년 2월 고려공청의 야체이카(책임자급)인 강해석, 지용수는 ▲광주고보 임주홍, 최규창, 김광용 ▲농업학교 문승수, 정종석, 김인수, 주당석, 유치오 ▲전남사범학교 하의철, 이동선, 박무길, 정귀석, 임종근 등 13명을 지용수 집에 초대했다. 지용수 자택 모임은 광주 중등학교에 독서회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성민 박사(1929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저자)는 "광주고보 등 3개학교 사회과학 연구모임은 강해석, 지용수의 고려공산청년회의 지도를 받았다"면서 "강해석과 지용수를 통해 각 학교의 독서 모임간 연계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1928년 8월 강해석, 지용수 등 고려공산청년회원들이 체포되면서 독서모임의 지도력을 상실하고 만다. 이들의 후계 임무는 전남청년연맹 장석천.나승규가 받았다. 장석천과 광주학생 비밀조직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처음으로 형성됐다.
광주시 동구 금동 97 장재성·장매성의 집터.
장재성 옛집 가는 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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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회 창설 주역인 광주고보 출신 장재성이 1929년 6월 급거 귀국했다. 그는 1927년 초 일본 중앙대학에 유학 중에 중퇴하고 2년여 만에 돌아왔다. 그는 유학 중에도 방학 때면 귀국해 후배들을 지도했고, 1928년 광주고보와 광주농고의 동맹휴학(맹휴) 당시 일본에서 파견돼 지원한 경험도 있어 학생들의 신망이 높았다. 귀국 후 9월에 전남청년연맹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임됐다. 학생과 청년조직의 가교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의 귀국 이유에 대해 강석원 등은 조선공산당(ML당) Y부에서 장재성을 후보당원으로 선정, 광주학생 조직을 관리하도록 임무를 맡겨 귀국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연구자들은 1928년 여름에 ML당이 와해된 상태여서 Y부 지시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일본 유학중 특별한 활동도 없었다는 점을 들어 조선공산당과 연결고리를 인정치 않는다.
이들 견해 보다는 장석천과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일본 유학파로 전남청년연맹 위원장을 맡고 있던 장석천이 장재성의 귀국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 그가 귀국 후 전남청년연맹 간부를 맡고 학생 조직 관리자가 된 것도 모두 장석천의 추천이었다.
이후 광주학생 조직의 관리는 철저하게 장석천-장재성 체제로 전개된다. 장재성은 자퇴 전인 3월에 김상환을 통해 광주고보 독서회 멤버 10여명을 초대, 연구해야 할 서적 등을 지도했다.
장재성은 각 학교의 비밀 연구모임을 점검했다. 각 학교별로 진행되는 연구모임의 통합 필요성을 절감했다.
1929년 6월 중순, 광주고보, 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 등 3개학교 대표 7명이 김기권의 집에 모였다. 참석자는 ▲고보 김상환, 김보섭, 윤창하 ▲농고 조길룡, 김순복 ▲사범학교 송동식, 강달모 등 이었다.
장재성이 입을 열었다. "무작정하게 집합하여 분파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조직적으로 단결하여 공산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이를 보급 실행하자" (독립운동사자료집 13권 참조) 장재성의 제안에 따라 학생들은 즉각 새로운 비밀 조직을 결성했다. 독서회중앙부-.
독서회중앙부 간부로 소비조합 문구점을 운영한 고 김기권 선생.
#책임비서, 조사선전부 등 조직 구축
독서회중앙부는 책임비서에 장재성을 선임하고 ▲조사선전부 김상환, 김보섭 ▲조직교양부 송동식, 김순복 ▲출판부 조길룡 ▲재정부 강달모, 윤창하로 정했다. 부원은 매주 1회씩 회합하여 협의할 것, 중앙부를 통해 3개 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하고 중앙부에서 연락 통일을 도모할 것, 학교별 결사원에게는 중앙부의 존재를 비밀로 할 것 등 행동강령을 결정했다. 성진회와 유사한 운영 형태다.
중앙부의 지침에 따라 즉각 학교 별로 독서회를 구축하고, 독서회 내에는 중앙부와 동일하게 조사선전부 등 산하 조직 3~4개를 두었다.
독서회중앙부 김보섭이 태어난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에 세워진 기녑탑과 김보섭 표지석.
광주고보의 경우 1929년 6월 하순께 김상환, 김보섭, 윤창하 등 22명이 참가한 가운데 무등산에서 조직을 출범했다. 이들 22명은 오쾌일, 김보섭, 김상환, 윤창하, 김대원 등 5명의 그룹대표 하부조직원으로 각각 배치됐다.
광주농업학교도 그 해 6월 무등산에서 조길룡 등 18명이 참여한 독서회를 띄웠다. 이들도 김순복, 조길룡, 이령범, 정욱이를 그룹 대표로 선정했다. 전남사범학교는 7월께 수피아여학교 뒷산에서 14명이 참석, 하부조직을 5개로 나눠 출진했다.
3개학교 독서회 회원 54명 중 29명은 광주에서 하숙했다. 이들 중 김상환, 김홍남, 김병기는 전남소년동맹 간부인 박광신의 집에서, 정석규, 최규문은 최동문의 집에서, 권수동, 송두현, 홍원표, 안종변은 정치운의 집에서 지냈다. 동일한 집에서 거주하는 그룹 하숙은 회원의 모집과 활동, 결속, 보안 등 여러모로 유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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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
위치: 광주시 동구 금남로 3가 금남로공원(독서회중앙부 소비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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