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관계, 낯설어진 당신, 프릴리지로 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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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금호은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6-01-02 17:02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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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관계, 낯설어진 당신,
프릴리지로 돌릴 수 있을까
점점 멀어지는 당신, 프릴리지로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오랜 시간 함께한 관계일수록 안정감과 편안함이 커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관계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반대로 점차 낯설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연애 초기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사라지고, 익숙함 대신 거리감이 느껴질 때, 우리는 상대와 다시 가까워질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특히, 성적 관계에서 오는 단절감은 이 거리감을 더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생활의 만족도가 줄어들면서 대화와 감정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기고, 결국 서로에게 낯설고 멀어진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존재합니다. 바로, 조루증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조루증은 남성들 사이에서 흔한 문제이지만,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확실하고 전문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프릴리지Priligy입니다.
프릴리지란 무엇인가?
프릴리지는 조루증 치료를 위한 전문적인 약물로, 성생활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관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프릴리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치료제로, 조루 문제를 개선하여 남성과 그 파트너 모두가 더욱 만족스러운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프릴리지의 주성분은 다폭세틴Dapoxetine으로, 이는 조루증 치료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약물입니다. 다폭세틴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하여 사정 시간을 조절하고 연장하는 효과를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남성은 자신감을 되찾고, 파트너와의 성적 친밀감 또한 회복할 수 있습니다.
프릴리지의 장점
1. 빠른 작용 시간
프릴리지는 복용 후 약 1시간 내에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계획된 성적 활동 전에 복용하면, 즉각적인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안정적인 사정 시간 연장
임상 연구에 따르면, 프릴리지를 복용한 남성의 사정 시간이 복용 전보다 최대 3~4배 연장될 수 있습니다. 이는 성적 관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3. 파트너와의 친밀감 회복
프릴리지는 단순히 약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와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성적 만족도가 높아지면 정서적인 유대감도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4. 전문적인 안전성
프릴리지는 조루증 치료를 목적으로 설계된 전문 약물로, 철저한 임상 실험과 승인을 거쳐 안전성을 입증받았습니다. 전문가의 상담과 함께 복용하면 부작용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성적 자신감 회복의 중요성
성적 관계는 단순한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감정과 소통, 신뢰를 바탕으로 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조루증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이 이어지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쌓여 관계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프릴리지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을 줍니다. 조루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성적 자신감을 회복하고, 이로 인해 더 적극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관계가 회복되면 대화와 일상적인 교감 역시 자연스럽게 증가하며,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됩니다.
프릴리지의 복용법
1. 적절한 복용 시점
프릴리지는 성적 활동 약 1~3시간 전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공복 상태나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어 일상 속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2. 하루 한 번 복용 권장
프릴리지는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해야 하며, 과다복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한 복용량이 다를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3. 주의사항
심장 질환, 간 또는 신장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 복용 전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해야 합니다.
다른 약물을 복용 중인 경우 상호작용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에게 알리십시오.
프릴리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
1. 전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치료제
프릴리지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조루증 치료제로 승인받은 전문 의약품입니다. 이는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2. 즉각적이면서도 지속적인 효과
프릴리지는 복용 후 빠르게 효과를 발휘하면서도, 장기적인 관계 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단기적인 만족감뿐 아니라, 성생활 전반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3. 파트너와 함께하는 행복
성생활에서의 만족도는 단순히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파트너와의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서로 간의 신뢰와 애정 또한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프릴리지를 통해 더 많은 기쁨과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다시 가까워지는 관계, 프릴리지와 함께
낯설어진 관계를 다시 뜨겁고 친밀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관계는 다시 예전처럼 따뜻하고 의미 있는 순간들로 가득 채워질 수 있습니다.
프릴리지는 단순히 조루증을 해결하는 약물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더 이상 낯설어진 관계 속에서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프릴리지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소중한 사람과 다시 가까워지세요.
프릴리지로 평범한 날들을 특별하게, 멀어진 마음들을 가까이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먼저 변화를 시작할 차례입니다.
레비트라 과다복용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권장 용량을 준수해야 합니다. 레비트라 구매는 공인된 판매처나 약국에서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며, 정품 여부를 꼭 확인하세요. 레비트라 복용법은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 가능하지만,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알코올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레비트라 복제약은 저렴한 가격으로 유혹할 수 있으나, 효과와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으니 정품 사용을 추천드립니다. 안전한 복용을 위해 비아그라구매 사이트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세요.
기자 admin@seastorygame.top
[김삼웅 기자]
동지섯달 긴긴 겨울밤, 이제는 찹쌀떡 장수의 청량(淸凉)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하지만, 만년의 강수(江水)는 여전히 흐르고, 멀리 검단산의 어둠 속에 눈발 서리다. 만권 장서 곁에 두고 긴밤 세울적에 고인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 청상의 속치마 벗는 소리보다 더 청량(淸亮)하다.
잘 가꾼 꽃밭의 기화요초들 찬서리, 눈발에 흔적없이 사라져도, 글밭의 만화방초는 천년의 향기를 남긴다. 글밭 언저리에서 주은 야생화 몇 송이를 묶었다.
조선시대 이인상(1710~1760)은 다양한 재능에도 서출 릴게임꽁머니 이어서 음죽현감만을 지냈지만 시·서·화에 능해 삼절(三絶)이라 불렸다. 아내를 잃고 쓴 '제망실문(祭亡室文)'에서 책을 아껴준 아내에 대한 절실한 고마움을 담았다.
아! 당신은 홀로 노고를 떠맡아 집안 걱정을 하지 않게 해주었소. 굶주리는 가운데서도 책을 팔지 않아 내 우직함을 지켜주었고, 추울 때도 꽃나무는 때지 않 바다신2릴게임 아 내가 측은지심을 지닌 채 살아가게 해주었소.
간혹 산수를 유람하다보면, 기분에 취해 글이 장황해지기도 했소. 집에 돌아와 지은 글을 읊을 때면 당신은 그때마다 따끔한 충고를 해주었소. 그리하여 내 글이 미사여구로 늘어져 도학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도리를 이야기하며 즐기 바다신2릴게임 는 것은 옛날에도 있던 일인데, 우리가 좋았던 건 몇몇 친구들도 알고 있소. 아! 착한 여자란 참으로 가엽구려.(유미림 외 번역, <빈 방에 달빛들면>, 학고재, 2005)
20세기 아르헨티나의 시인·소설가·철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호르헤 보르헤스는 흔히 '지식의 장인(匠人)'으로 불린 검증완료릴게임 다. 당대의 지식인 중에서 가장 많은 책을 광범위하게 읽은 독서가로도 알려진다. 그를 위대한 독서가로 만든 것은 아버지의 서가였다.
만약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버지의 서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 나는 그 서가로부터 한 발작도 나선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때가 종종 바다이야기하는법 있다. 지금도 그것이 눈에 선하다. 유리로 선반을 온통 감싼 커다란 방에는 전체가 서가로 되어 있고, 5~6천 권의 장서가 들어 있었다. 대단히 근시였던 나는 당시의 접촉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거의 잊어버렸지만, <첸버스 백과사전>이라든가 브리태니카에 실린 강판인화 같은 것은 대부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보르헤스 〈자전적 에세이〉)
'책만 보는 바보', 그래서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린 조선시대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몹시 가난했다. 남산골 아래 집은 지극히 협소하지만 동 남 서쪽에 창을 내어 종일 해를 좇아가며 햇볕 아래서 책을 읽었다. 그의 글에 "'맹자'를 팔아 밥을 해먹다"란 것이 있다.
집안에 값나가는 것이라곤 겨우 <맹자(孟子)> 7권 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20전에 팔아 그 돈으로 밥을 지어 실컷 먹었소. 희희낙락 영재(유득공)에게 가서 한껏 자랑을 늘어 놓았더니 영재도 굶주린지 오래라, 내 말을 듣자마자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내가 마시게 하였소. 이야말로 '맹자'씨가 직접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이나 다를 바 없지요.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구명, 두 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칭송하였다오.
그렇다오. 우리들이 한 해 내내 이 두 종의 책을 읽는다 해도 굶주림을 한 푼이나 모면할 수 있었겠소? 이제야 알았소. 독서를 해서 부귀를 구한다는 말이 말짱 요행수나 바라는 것임을. 차라리 책을 팔아서 한바탕 술에 취하고 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마음이 아니겠소? 쯪쯪쯪!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안대희 교수 번역)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빼어난 작가로 평가받는 루쉰(1881~1936)은 의학도였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서양의 의학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 도쿄 북동쪽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였다. 학업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전쟁이 나면 군의관으로 복무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어느 날 강의를 듣던 중에 뉴스 영화를 보게 되었다. 러·일전쟁의 뉴스를 촬영한 영화 속에서 러시아군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한 명의 중국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일본군의 군도로 목이 막 베어지려 하고 있는 그 중국인을 에워싸고 마치 축제 때 법석을 떨듯하며 몰려 있는 구경꾼들은 모두 중국인들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루쉰은 대학 2학년을 미쳐 마치기도 전에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작가의 길을 택한 루쉰은 그 심경을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의학이 결코 아주 긴박하게 중요한 일은 결코 아니라고 느꼈다. 무릇 어리석고 나약한 국민은 제아무리 체격이 멀쩡하고 건장하다 해도 무의미한 볼거리가 되거나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병들어 죽었다 한들 불행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을 개조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정신을 개조하는 데 뛰어난 것으로 문필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문예운동을 제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쉰, 〈외침〉, 머리말)
조선시대 문신, 소설가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공조판서, 대사헌에 이르고 한글로 쓴 소설 <구운몽>으로 너무 잘 알려져있다.이밖에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 등이 전한다. 김만중은 문과에 장원급제할 만큼 대표적인 유학자이면서도 한글 소설의 문을 연 <구운몽> 등을 저술하여 남달리 한글을 사랑했다. 외국어(외래어)가 분별없이 남용되고 있는 오늘에도 경각심을 주는 글이다.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요, 말이 가락이 있는 것이 시가문부(詩歌文賦)이다. 사방의 말이 비록 같지는 않더라도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그 말에 따라서 가락을 맞춘다면, 다같이 천지를 감동시키고 귀신을 통할 수가 있는 것은 유독 중국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자기 말을 버려 두고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다. 여염집 골목길에서 나무꾼이나 물긷는 아낙네들이 에야디야 하며 서로 주고받는 노래가 비록 저속하다 하여도 그 진가(眞假)를 따진다면, 정녕 학사(學士) 대부(大夫)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고 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논할 수는 없다. (<서포만필>에서)
흔히 '천고(千古)의 서(書)'로 불리는 <사기>를 쓴 사마천(145~80 B.C)은 흉노에 항복한 이능(李陵)을 변호하다가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 궁형에 처해졌다. 동전 50만 전을 내면 형을 면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선비는 남성으로써 가장 치욕적인 궁형을 당했다.
나이 36세 때부터 시작하여 19년 동안 저술한 130권의 <사기>는 52만 6천 5백자로 구성된 장엄한 역사의 파노라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심경을 친구에게 밝히는 글은, 고난 속에서도 불후의 명저를 낸 사람들의 사례를 담고 있다.
고래로 부귀했어도 죽은 후에 그 이름이 사라져버린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출중한 인물들은 후세의 칭송을 받습니다. 서백(西佰, 주의 문왕)은 감옥에 갇혀서 <주역>을 저술하고, 공자는 진(陳)과 채(蔡) 사이에서 곤경을 겪고 <춘추>를 저작하고, 굴원은 추방되어 <이소(離騷)>를 지어 노래하고, 좌구명(左丘明, 춘추시대의 현인)은 실명한 뒤에 <국어>를 저술하고, 손자(孫子)는 두 다리를 잘리고 <병법>을 서술하고, 여불위(呂不韋, 진의 재상)는 촉나라 땅으로 유배되어 <여씨춘추>를 세상에 전하고, 한비자는 진의 감옥에서 <세난(世難)>, <고분(孤憤)>을 남겼습니다. <시경> 백 편도 성인·현인들이 분한 마음을 풀 길이 없어서 편찬한 것입니다.
요컨대 인간이란 심중에 응어리진 게 있으면서도 이것을 발산할 길이 막히면 과거사를 서술해서 미래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좌구명이 눈이 멀게 되고 손자가 두 다리를 잘려서 불구가 되자 사회에 나와 활동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세상을 피하여 저술에 전념함으로써 비분강개의 뜻을 문장으로 풀어서 세상에 남겼습니다.
나도 엉뚱한 생각일지 몰라도 비재(非才)를 돌볼 겨를도 없이 보잘것 없는 문장이나마 천하에 흩어진 기록이나 구문(舊聞)을 망라하고, 역사상에 활동했던 인간의 행동을 깊이 관찰하고 그 진상을 추구하여 왕조의 흥망성쇠를 대국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성공과 실패의 이치를 구명하여 130권의 저술을 완성시킬 결심을 했습니다. 이 저술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은 아깝다는 오로지 이 한 마음으로 궁형이라는 극형을 감수했습니다.(<사기>, '임소경에게 보내는 글')
덧붙이는 글
동지섯달 긴긴 겨울밤, 이제는 찹쌀떡 장수의 청량(淸凉)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하지만, 만년의 강수(江水)는 여전히 흐르고, 멀리 검단산의 어둠 속에 눈발 서리다. 만권 장서 곁에 두고 긴밤 세울적에 고인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 청상의 속치마 벗는 소리보다 더 청량(淸亮)하다.
잘 가꾼 꽃밭의 기화요초들 찬서리, 눈발에 흔적없이 사라져도, 글밭의 만화방초는 천년의 향기를 남긴다. 글밭 언저리에서 주은 야생화 몇 송이를 묶었다.
조선시대 이인상(1710~1760)은 다양한 재능에도 서출 릴게임꽁머니 이어서 음죽현감만을 지냈지만 시·서·화에 능해 삼절(三絶)이라 불렸다. 아내를 잃고 쓴 '제망실문(祭亡室文)'에서 책을 아껴준 아내에 대한 절실한 고마움을 담았다.
아! 당신은 홀로 노고를 떠맡아 집안 걱정을 하지 않게 해주었소. 굶주리는 가운데서도 책을 팔지 않아 내 우직함을 지켜주었고, 추울 때도 꽃나무는 때지 않 바다신2릴게임 아 내가 측은지심을 지닌 채 살아가게 해주었소.
간혹 산수를 유람하다보면, 기분에 취해 글이 장황해지기도 했소. 집에 돌아와 지은 글을 읊을 때면 당신은 그때마다 따끔한 충고를 해주었소. 그리하여 내 글이 미사여구로 늘어져 도학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도리를 이야기하며 즐기 바다신2릴게임 는 것은 옛날에도 있던 일인데, 우리가 좋았던 건 몇몇 친구들도 알고 있소. 아! 착한 여자란 참으로 가엽구려.(유미림 외 번역, <빈 방에 달빛들면>, 학고재, 2005)
20세기 아르헨티나의 시인·소설가·철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호르헤 보르헤스는 흔히 '지식의 장인(匠人)'으로 불린 검증완료릴게임 다. 당대의 지식인 중에서 가장 많은 책을 광범위하게 읽은 독서가로도 알려진다. 그를 위대한 독서가로 만든 것은 아버지의 서가였다.
만약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버지의 서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 나는 그 서가로부터 한 발작도 나선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때가 종종 바다이야기하는법 있다. 지금도 그것이 눈에 선하다. 유리로 선반을 온통 감싼 커다란 방에는 전체가 서가로 되어 있고, 5~6천 권의 장서가 들어 있었다. 대단히 근시였던 나는 당시의 접촉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거의 잊어버렸지만, <첸버스 백과사전>이라든가 브리태니카에 실린 강판인화 같은 것은 대부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보르헤스 〈자전적 에세이〉)
'책만 보는 바보', 그래서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린 조선시대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몹시 가난했다. 남산골 아래 집은 지극히 협소하지만 동 남 서쪽에 창을 내어 종일 해를 좇아가며 햇볕 아래서 책을 읽었다. 그의 글에 "'맹자'를 팔아 밥을 해먹다"란 것이 있다.
집안에 값나가는 것이라곤 겨우 <맹자(孟子)> 7권 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20전에 팔아 그 돈으로 밥을 지어 실컷 먹었소. 희희낙락 영재(유득공)에게 가서 한껏 자랑을 늘어 놓았더니 영재도 굶주린지 오래라, 내 말을 듣자마자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내가 마시게 하였소. 이야말로 '맹자'씨가 직접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이나 다를 바 없지요.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구명, 두 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칭송하였다오.
그렇다오. 우리들이 한 해 내내 이 두 종의 책을 읽는다 해도 굶주림을 한 푼이나 모면할 수 있었겠소? 이제야 알았소. 독서를 해서 부귀를 구한다는 말이 말짱 요행수나 바라는 것임을. 차라리 책을 팔아서 한바탕 술에 취하고 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마음이 아니겠소? 쯪쯪쯪!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안대희 교수 번역)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빼어난 작가로 평가받는 루쉰(1881~1936)은 의학도였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서양의 의학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 도쿄 북동쪽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였다. 학업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전쟁이 나면 군의관으로 복무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어느 날 강의를 듣던 중에 뉴스 영화를 보게 되었다. 러·일전쟁의 뉴스를 촬영한 영화 속에서 러시아군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한 명의 중국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일본군의 군도로 목이 막 베어지려 하고 있는 그 중국인을 에워싸고 마치 축제 때 법석을 떨듯하며 몰려 있는 구경꾼들은 모두 중국인들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루쉰은 대학 2학년을 미쳐 마치기도 전에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작가의 길을 택한 루쉰은 그 심경을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의학이 결코 아주 긴박하게 중요한 일은 결코 아니라고 느꼈다. 무릇 어리석고 나약한 국민은 제아무리 체격이 멀쩡하고 건장하다 해도 무의미한 볼거리가 되거나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병들어 죽었다 한들 불행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을 개조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정신을 개조하는 데 뛰어난 것으로 문필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문예운동을 제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쉰, 〈외침〉, 머리말)
조선시대 문신, 소설가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공조판서, 대사헌에 이르고 한글로 쓴 소설 <구운몽>으로 너무 잘 알려져있다.이밖에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 등이 전한다. 김만중은 문과에 장원급제할 만큼 대표적인 유학자이면서도 한글 소설의 문을 연 <구운몽> 등을 저술하여 남달리 한글을 사랑했다. 외국어(외래어)가 분별없이 남용되고 있는 오늘에도 경각심을 주는 글이다.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요, 말이 가락이 있는 것이 시가문부(詩歌文賦)이다. 사방의 말이 비록 같지는 않더라도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그 말에 따라서 가락을 맞춘다면, 다같이 천지를 감동시키고 귀신을 통할 수가 있는 것은 유독 중국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자기 말을 버려 두고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다. 여염집 골목길에서 나무꾼이나 물긷는 아낙네들이 에야디야 하며 서로 주고받는 노래가 비록 저속하다 하여도 그 진가(眞假)를 따진다면, 정녕 학사(學士) 대부(大夫)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고 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논할 수는 없다. (<서포만필>에서)
흔히 '천고(千古)의 서(書)'로 불리는 <사기>를 쓴 사마천(145~80 B.C)은 흉노에 항복한 이능(李陵)을 변호하다가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 궁형에 처해졌다. 동전 50만 전을 내면 형을 면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선비는 남성으로써 가장 치욕적인 궁형을 당했다.
나이 36세 때부터 시작하여 19년 동안 저술한 130권의 <사기>는 52만 6천 5백자로 구성된 장엄한 역사의 파노라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심경을 친구에게 밝히는 글은, 고난 속에서도 불후의 명저를 낸 사람들의 사례를 담고 있다.
고래로 부귀했어도 죽은 후에 그 이름이 사라져버린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출중한 인물들은 후세의 칭송을 받습니다. 서백(西佰, 주의 문왕)은 감옥에 갇혀서 <주역>을 저술하고, 공자는 진(陳)과 채(蔡) 사이에서 곤경을 겪고 <춘추>를 저작하고, 굴원은 추방되어 <이소(離騷)>를 지어 노래하고, 좌구명(左丘明, 춘추시대의 현인)은 실명한 뒤에 <국어>를 저술하고, 손자(孫子)는 두 다리를 잘리고 <병법>을 서술하고, 여불위(呂不韋, 진의 재상)는 촉나라 땅으로 유배되어 <여씨춘추>를 세상에 전하고, 한비자는 진의 감옥에서 <세난(世難)>, <고분(孤憤)>을 남겼습니다. <시경> 백 편도 성인·현인들이 분한 마음을 풀 길이 없어서 편찬한 것입니다.
요컨대 인간이란 심중에 응어리진 게 있으면서도 이것을 발산할 길이 막히면 과거사를 서술해서 미래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좌구명이 눈이 멀게 되고 손자가 두 다리를 잘려서 불구가 되자 사회에 나와 활동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세상을 피하여 저술에 전념함으로써 비분강개의 뜻을 문장으로 풀어서 세상에 남겼습니다.
나도 엉뚱한 생각일지 몰라도 비재(非才)를 돌볼 겨를도 없이 보잘것 없는 문장이나마 천하에 흩어진 기록이나 구문(舊聞)을 망라하고, 역사상에 활동했던 인간의 행동을 깊이 관찰하고 그 진상을 추구하여 왕조의 흥망성쇠를 대국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성공과 실패의 이치를 구명하여 130권의 저술을 완성시킬 결심을 했습니다. 이 저술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은 아깝다는 오로지 이 한 마음으로 궁형이라는 극형을 감수했습니다.(<사기>, '임소경에게 보내는 글')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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