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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드·레더·나일론·새틴 등 소재로 다양한 분위기 연출
단순 아우터를 넘어 성별 경계 허무는 ‘젠더리스’ 아이템

아침과 저녁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상의 하나만 입기에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점퍼만 한 아이템이 없다.
지난해부터 두드러지게 부상한 아이템이 바로 봄버 재킷이다. 쉽게 말해 항공 점퍼다. ‘항공 점퍼’라는 표현은 한동안 쓰였으나 현재 글로벌 패션 산업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은 ‘봄버 재킷(Bomber Jacket)’이다. 여기서 ‘봄버(Bomber)’는 폭격기와 조종사들의 군복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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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버 재킷은 매 시즌 꾸준히 트렌드의 한 축을 차지해 왔지만, 이렇게 존재감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오랜만으로 느껴진다. 예전에는 오버사이즈 봄버 재킷을 루스하게 걸치고 드레스나 미니스커트와 매치해 남성적인 무드를 살짝 누그러뜨리는 스타일링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팬츠 위에 무심하게 걸치면 된다. 말 그대로, 남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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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버 재킷의 기원은 전쟁에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들은 높은 고도에서의 추위를 막기 위해 짧은 기장의 두꺼운 가죽 점퍼를 착용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제작한 MA-1 봄버 재킷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항공 점퍼의 기본형이 되었다. 허리까지 오는 짧은 기장, 소매와 밑단을 감싸는 탄탄한 립 조직,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난독새증권연구소
나일론 소재는 모두 기능성에서 출발했지만 곧 일상복으로 확장되었다. 전후에는 반항과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86년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착용한 항공 점퍼는 ‘파일럿 룩’을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어 2011년 <드라이브>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입은 새틴 소재의 봄버 재킷은 한 시대를뜨는증권
대표하는 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봄버 재킷은 군복에서 출발해, 시대를 거치며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패션 아이콘으로 진화해 왔다.
봄버 재킷은 소재에 따라 분위기와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스웨이드는 부드럽고 빈티지 무드를 더해 주며, 이번 시즌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유의 보송하고 부드러운 촉감은 고급스러움을 한층 주가수익률
강조해 준다. 레더는 봄버 재킷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소재로 여전히 많이 사용된다. 실루엣은 또렷하게 살리고, 캐주얼하면서도 젊은 무드를 연출하기에는 레더나 비건 레더 소재가 적절하다. 나일론과 폴리에스터는 가볍고 기능적인 장점이 크다. 최근에는 고급 패션 브랜드는 물론 SPA 브랜드에서도 나일론 소재를 선보이고 있어 실용성이 높은 스타일을 폭넓게 고를 수 있다. 한편, 새틴 같은 소재의 봄버 재킷은 은은한 광택으로 중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더해, 드레시한 룩에도 잘 어울린다.
이러한 차이는 브랜드마다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토즈(Tod’s)는 스웨이드 블루종으로 클래식한 무드를 선보였으며, 셀린느(Celine)는 오버사이즈 봄버 재킷으로 젠더리스한 실루엣을 강조했다. 프라다(Prada)는 시그니처인 나일론 봄버로 미래적인 감각을 표현했고,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는 레더 봄버 재킷으로 정제된 스타일을 완성했다. 아미리(Amiri)와 루이 뷔통(Louis Vuitton)은 컬러, 자수, 디테일을 활용해 봄버 재킷을 한층 화려하게 변주했다.
봄버 재킷은 남성 군복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입는 옷이 되었다. 런웨이에서 남녀 모델이 같은 점퍼를 걸치고 등장하는 장면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봄버 재킷은 단순한 아우터를 넘어,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이 시대의 감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옷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패션 브랜드들은 사이즈만 달리한 봄버 재킷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J W 앤더슨과 유니클로 C로, 두 브랜드 모두 이번 시즌에 같은 모델을 남녀 소비자에게 제안하고 있다.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체형에 맞게 사이즈만 고르면 된다.
젠더리스 아이템은 점차 늘어나야 하며, 이 단어 자체가 진부해져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제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으로 단순히 구분하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다. 가장 과감한 변화와 파격을 시도하는 패션계가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에만 묶여 있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물론 제조업 기반의 산업 구조상 갑작스러운 변화가 어렵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사이, 패션계에서는 남성 컬렉션을 별도로 론칭하는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예컨대 빌 블라스(Bill Blass)는 1967년 최초로 남성복 라인을 선보였고, 이후 여러 브랜드가 여성 라인과는 독립적으로 남성 영역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산업적으로 확장된 ‘황금기’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에는 남성과 여성의 컬렉션을 분리해 운영하는 것이 브랜드의 성장과 위상을 드러내는 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 패션은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남녀가 함께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을 하나로 묶어 출시하는 방식은 생산 라인을 단순화하고, 재고와 낭비를 줄이며, 환경에 대한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 패션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버려지는 옷의 양이다. 소비자의 취향과 유행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불필요하게 생산되는 옷들이 결국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이렇듯 젠더리스 아이템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점퍼처럼 남녀가 함께 입을 수 있는 옷은 생산과 소비 방식을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오래 입을 수 있는 옷, 쉽게 버려지지 않는 옷이다. 봄버 재킷이 한 세기를 넘어 여전히 아이콘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박민지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